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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순례를 떠나는 아메드 왕자 이야기

알함브라 궁전에서 바라 본 헤네랄리페 궁전
 알함브라 궁전에서 바라 본 헤네랄리페 궁전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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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네랄리페 궁전에서 왕자는 현자인 에벤 보나벤으로부터 여러 가지 학문을 배운다. 그 결과 20세가 되었을 때 그는 놀라울 정도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왕자에게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그는 공부를 포기하고 정원을 거닐기도 하고 분수 옆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러면서 보나벤 선생에게 "좀 더 감정에 호소하는 그 어떤 것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에벤 보나벤은 이에 위기를 느껴 그를 탑에 유폐시키고는 새들과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왕자는 새들에게 감정에 호소하는 사랑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매에 쫓긴 비둘기가 창문으로 들어와 마룻바닥에 떨어졌다. 왕자는 헐떡이는 새를 품에 안아 깃털을 쓰다듬어 주고는 황금으로 된 새장에 넣어주었다. 그리고는 좋은 먹이와 깨끗한 물을 넣어주었다.

헤네랄리페 궁전
 헤네랄리페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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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비둘기는 음식은 먹지 않고 힘없이 그 자리에 앉아 슬픈 노래만을 부르는 것이었다. 왕자가 우는 이유를 묻자, 비둘기는 사랑의 계절인 봄에 연인과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왕자는 비둘기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말해달라고 애원한다.

"해 드리지요. 왕자님. 혼자 있는 건 고문이에요. 둘이 있으면 말할 수 없이 행복해요. 그런데 셋이 있으면 불화와 증오가 생겨요. 둘이 함께 있는 게 좋아요. 둘이 서로 공감하면서 하나가 되고, 함께 있음으로 해서 행복해져요. 그러나 헤어지면 불행해져요. 왕자님은 달콤한 애정으로 끈끈하게 연결해주는 그런 여자가 없단 말이에요?"

톨레도 왕궁 알카사르
 톨레도 왕궁 알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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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들은 왕자는 올빼미의 도움으로 밤에 몰래 탑을 빠져나와 세비야를 구경하고, 톨레도 왕궁으로 가서는 죽을병에 걸린 공주의 병을 고치는 일에 도전한다. 그는 피리로 아라비아 음악을 연주하나 별 차도가 없자 이번에는 자신의 열정을 표현하는 연가(amatory verses)를 부른다. 공주가 그 노랫소리를 듣고는 심장이 고동치는 기쁨을 느낀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그 노래를 듣는다. 눈에서 눈물이 솟아 뺨으로 흘러내린다. 그녀는 감정에 북받쳐 가슴이 울렁거린다.

그녀는 왕자를 가까이 오도록 한다. 왕은 공주가 원하는 대로 그들을 한 방에 있게 한다. 두 연인은 신중하게 서로의 눈빛으로 수백마디 말을 주고받았다. 왕자가 계속 음악을 연주하자 공주의 뺨에 화색이 돌았고 입술이 불그레해졌다. 퀭한 그녀의 두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결국 아메드 왕자는 사랑의 순례를 통해 공주를 아내로 맞이했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라나다의 술탄이 되었다. 그리고 공주 역시 왕비가 되었으니 그녀 이름이 알데곤다이다.    

술탄의 여름 궁전 헤네랄리페

바호스 정원
 바호스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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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호스 정원에 이르면 조경을 기가 막히게 한 향나무 벽이 앞을 가린다. 그리고 나무의 한 가운데를 고딕식 아치로 만들어 출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아치를 지나면 연못이 나오고 그 뒤로 사이프러스 나무가 높게 자라고 있다. 그리고 연못에는 분수를 만들어 물이 지속적으로 흐르도록 했다. 이 물은 5㎞ 떨어진 다로강에서 수로를 통해 이곳까지 흘러온다. 바호스 정원은 물과 나무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무어식 정원이다. 정원 주위로는 밭이 있어 일종의 왕실 농장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정원을 지나 남쪽으로 나 있는 아치형 문을 통과하면 헤네랄리페 궁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헤네랄리페 궁전은 무하마드 3세(1302-1309) 때 건축가 아벤 왈리드 이스마일에 의해 만들어졌다. 헤네랄리페라는 이름은 우아한 천국을 의미하는 아랍어 야나트 알 아리프(Yannat al-Arif)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수로, 연못, 분수가 자연 그리고 건물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세키아 안뜰
 아세키아 안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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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네랄리페 궁전은 술탄의 여름 궁전이다. 그래서 궁전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바호스 정원이 길고 넓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곳을 지나 남향하고 있는 데스카발가미엔토 안뜰을 통해 헤네랄리페 궁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헤네랄리페 궁은 ㅋ자 모양의 궁궐건물과 그 사이에 자리 잡은 두 개의 안뜰로 이루어져 있다. 이 안뜰의 이름이 아세키아 안뜰과 왕비의 안뜰이다.

궁궐에서 우리가 처음 만나는 곳은 아세키아 안뜰이다. 아세키아 안뜰은 안뜰이라 하기에는 조금 커서 정원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 수도 있다. 아세키아는 수로라는 뜻으로, 이곳도 역시 연못과 분수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런 방식의 정원을 사람들은 페르시아식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아름다우면서도 은밀한 공간이다. 그래서 왕이 왕비나 궁녀를 이곳에서 만나 밀회를 즐겼다고 한다.

왕비의 안뜰
 왕비의 안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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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키아 안뜰을 감싸고 있는 ㄷ자 건물 북쪽에는 왕비의 안뜰이 있다. 이름이 왕비라고 해서 꼭 왕비만 사용한 것은 아니고, 왕비와 애첩이 필요에 따라 거주하면서 놀던 작은 정원으로 보인다. 아세키아 정원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연못과 분수 그리고 나무들이 잘 어울린다. 정원의 북쪽 벽으로는 고목이 하나 서 있고, 그 옆에 설명문이 붙어있는데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어 아쉽다.

왕비의 안뜰을 보고 우리는 동쪽으로 나 있는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간다. 문 위로는 사자 두 마리가 지키고 있는데, 이 녀석들이 왼발로 지구를 뜻하는 공(球)을 밟고 있다. 두 마리 사자는 안달루시아 문장에 나온다. 그러므로 이 조형물은 에스파냐 사람들이 안달루시아의 항구도시 세비야, 말라가, 카디스를 떠나 세계를 정복한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사자들은 그라나다 왕국의 유산이 아닌 에스파냐 왕국의 유산이다.  

헤네랄리페에서 바라 본 알함브라 궁전과 알바이신 언덕

헤네랄리페에서 바라 본 알함브라
 헤네랄리페에서 바라 본 알함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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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을 나오면 계단이 있고, 계단을 올라가면 바호스 정원 쪽으로 다시 나오게 된다. 여기서 남동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가면 알함브라 궁전 매표소와 광장으로 갈 수 있다. 그런데 장미, 오렌지나무, 사철나무, 사이프러스 나무 등으로 조경된 이 길이 헤네랄리페 궁전을 조망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해가 이미 서쪽으로 상당히 기울어 헤네랄리페 궁전에 저녁놀이 조금씩 비쳐든다. 그중에서도 산타 마리아 성당의 종탑이 아주 인상적이다. 또 동쪽의 눈 덮인 시에라네바다 산맥 정상에도 붉은 석양이 물들어간다.

헤네랄리페 궁전에서는 서쪽으로 알함브라 궁전을, 북서쪽으로 알바이신 언덕을, 동쪽으로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남쪽으로 그라나다 평원을 조망할 수 있다. 알바이신 언덕은 알함브라 궁전과 함께 198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된 곳으로 다로강 북쪽 경사면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그라나다 왕국 시절 잘 나가던 이슬람교도들이 살던 주택지였다. 좁은 골목길에는 자갈이 깔려 있고, 길가에는 정원이 갖춰진 저택들이 들어서 있다.

알바이신 지구
 알바이신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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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이신 지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산 살바도르 교회다. 이슬람 모스크를 개조한 것으로 알바이신 지구에서 가장 우뚝하다. 이곳에는 또한 아랍식 목욕탕, 그라나다 고고학 박물관 등이 있다. 그리고 알바이신 지구 외곽을 성벽이 감싸고 있으며, 그 안쪽을 사람들은 사크로몬테(Sacromonte)라고 부른다. 사크로몬테는 성스런 산이라는 뜻이다.

헤네랄리페를 내려가면서 보니 산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수로를 볼 수 있다. 이 수로는 다로강물을 이곳 헤네랄리페와 알함브라 궁전으로 연결해주는 물길이다. 당시 아랍 사람들은 상하수도 건설에 있어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로마 사람들이 만든 수도교와 물이 증발되지 않도록 하는 카레즈 기법을 활용하여 물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석양이 내리는 시에라네바다 산맥
 석양이 내리는 시에라네바다 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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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로강에서 이곳까지 물을 끌어들여 생활용수로 쓰고, 연못도 만들고, 분수도 만들고, 농업용수로도 쓰고 나서 다시 물을 다로강으로 돌려보내는 방식이다. 이번 겨울에 비가 많이 와서인지 수로를 흐르는 물이 상당히 많다. 그렇지만 이들은 중간 중간 수문을 만들어 물이 넘치지 않도록 조절했다고 한다. 치수에 성공한 사람이 왕이 되고 번성한 시대를 열어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 것 같다.

알함브라 궁전 전체를 다 보고 광장으로 나오니 오후 6시 10분이다. 3시 30분에 궁전으로 들어갔으니 2시간 40분 정도 알함브라를 관람한 셈이다. 그러니 관람이 주마간산이 될 수 밖에. 구경하랴, 설명 들으랴, 사진 찍으랴,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이라는 것이 천천히 보고 듣고 즐겨야 하는 건데, 단체로 다니다 보니 전체에 보조를 맞출 수 밖에 없는 문제가 있다. 그렇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로 자위를 해 본다. 그리고 여기에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 보는 만큼 알게 될 수도 있다고.


태그:#헤네랄리페 궁전, #아메드 왕자, #아세키아 안뜰, #왕비의 안뜰, #알바이신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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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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