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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과학 혁명〉
책겉그림 〈과학 혁명〉 ⓒ 뿌리와이파리

범죄드라마 <싸인>이 참 재밌다. 예전의 의학드라마에 버금가는 실증위주 드라마다. 살인범을 밝혀내는 과정과 그것을 둘러싼 음모도 위력적이다. 한미 FTA를 둘러싼 설정과 약소국의 서러움도 그럴 듯 하다. 그 중심에 있는 권력은 과학적 실증까지도 위협할 기세다.

 

그건 마치 중세를 떠올리게 한다. 갈릴레오의 지동설이 교황의 권위에 짓눌리는 것 같은 상황 말이다. 그건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와도 관련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물질은 본질과 형상으로 구성된다고 하여, 그것들이 실제로 예수의 살과 피로 변환되는 주장에 설득력을 제공했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그에 딴죽을 걸어 원자로만 이뤄진다고 했고, 그만큼 교회의 반항자가 되었다.

 

중세는 그만큼 신학과 철학이 대세였다. 하지만 모든 철학과 학문은 신학의 시녀였다. 신 존재 증명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으로 귀결되는 경험과 직관에 관한 학문이 대세였다. 그 뒤에 과학의 혁명이라 불릴만한 갈릴레오·케플러·데카르트·라이프니츠 등의 천문학과 광학이 부활하여, 오늘날 과학기술의 진일보를 일궈냈다.

 

피터 디어의 <과학 혁명>(뿌리와 이파리)은 16∼17세기의 중세유럽의 지식혁명과 야망에 관한 전반적인 개론서라 할 수 있다. 이른바 신학이 최고의 학문을 점하던 시대에서 과학철학이 점점 주가를 올릴 수밖에 없던 토대를 밝혀준다. 그렇다고 해서 신학과 과학, 교회와 세상의 다툼을 드러내는 것은 없다. 오히려 상호관계의 연관성과 합리점을 찾아가고 있다.

 

이 책에는 과학혁명의 근간이랄 수 있는 천문학과 역학과 광학과 화학의 발전상을 읽을 수 있게 한다. 특별히 이 책을 통해 알려주는 갈릴레오의 주장은 신선했다. 이른바 태양 표면에 흠집이 나 있다는 것을 통해, 하늘에서도 생성과 소멸이 일어난다고 주장한 게 그것이다. 그것은 분명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되는 개념이었다. 그것은, 하늘의 불변과 신의 절대적인 위치를 상대화할 수 있는, 그 당시의 주장인 셈이다.

 

재밌는 것은 그런 자연철학의 토대 위에 점차 대학의 학문들이 발전됐다는 것이다. 중세 초에 3학이라 불리던 문법·논리학·수사학에서 점차 기하학·산수·천문학·음악의 4가지 수학적 과목들이 합하여 일곱 가지 교양학문을 구성한 게 그것이다.

 

물론 그런 발전과 더불어 프랑스의 왕립아카데미도 발족된다. 그것은 국가의 정치권력 아래에 있는 학문기관이라 할 수 있다. 그 속에서는 개별저자의 이름을 내걸지 않고 아카데미의 이름으로 학문업적을 출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국가의 이름 아래 있는 동안 권력의 시녀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왕립학회는 군주 개인의 관심사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는 활동을 추구했고, 그러한 이유로 왕은 악명 높게도 그 회원들을 '나의 바보들'이라 부르며, 공기의 무게나 재보려고 하는 사람들이라고 조롱했다고 전해진다. 절대왕정을 향한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인 영국의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권위의 원천과 그것이 독자적으로 행사되는 영역이 넓게 흩어져 있던 상황은 국가와 왕가가 후원하는 과학단체의 관계를 한쪽 방향으로 규정해버렸다."(221쪽)

 

이와 같은 상황이 요즘이라고 다를까. 어느 시대에든 완연하게 독립된 학문의 장은 존재하기 힘든 법이다. 어떤 과학기술에 의한 실증물이라도 국가와 협력단체들의 지원 아래에서는 그 존재의 주장마저도 흔들릴 수 있는 까닭이다. 마치 <싸인>에서와 같이 말이다. 물론 그와 같은 통제와 갈등 속에서도 학문은 새 싹이 돋는 법이다. 중세의 과학혁명도 그런 흐름 속에서 일궈낸 쾌거임에 분명하다.


#중세과학#과학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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