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미국 노스다코타의 공립고등학교 재학중인 아들, 영대로부터 매일이 왔습니다. 미국공립고등학교 교환학생 자격으로 지난해 8월 말에 도미한 후, 체류기한 1년 중 6개월째 미국 중북부의 작은 읍내 유일한 고등학교인 '헤이즌고등학교' 11학년에서 수학중입니다.

 

아들의 안부가 궁금하다는 엄마의 메일에 대한 답변인 이번 메일에서는 고등학교 2학년의 눈 높이에서 본 미국의 고등학교 단면과 학국 교육의 정책에 대한 고민거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교육의 정책입안자나 위정자의 입장이 되어보지 못한 미성숙한 피교육자의 단편적인 관찰이긴하지만 피교육자의 목소리는 교육이라는 것을 잠시 '시장'이라는 것으로 한정시켜놓고 볼 때 교육서비스의 제공자들이 경청해야할 교육소비자의 목소리이기도 합니다.

 

'소비자는 왕이다'라는 태도는 이제 모든 기업에게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쩐일인지 교육시장에서만은 여전히 공급자가 왕인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물론 교육이라는 것은 다른 소비재와 동일시 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소비재의 질을 향상시키고자하는 노력에 대한 비판이나 대안제시는 거듭되어야된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아들의 개인메일을 기사로 송고합니다.

 

미국공립고등학교 11학년 아들의 메일 전문

RE: 파주에서 엄마가

보낸사람: "이영대

보낸시간: 2011-02-14 (월) 10:07:03 [GMT +09:00 (서울, 도쿄)]

받는사람: "이안수

 

엄마! 오늘에서야 메일 드리네요.

 

저는 잘 생활하고 있어요. 어제는 아침 8시 15분에 학교친구들과 교회사람 몇 분과 비즈마크에 있는 스키장에 다녀왔어요.

 

배워서 버릴 것은 하나도 없다

 

헤이즌 고등학교에 같이 다니는 앤디, 딜른 그리고 이웃 도시 뷸라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알렉스, 타이레일, 앤디와 교회 어른 두 분과 갔어요. 비즈마크의 작은 산에 있는 스키장인데 산이 없는 노스다코타에서 생각보다 큰 언덕에 만들어진 스키장이었어요.

 

우리나라 스키장 못지않은 규모였고 리프트lift도 있었습니다. 10시쯤에 도착해서 5시까지 충분히 스키와 스노보드를 즐기고 왔어요. 스키장에서 학교 친구 칼과 더스틴도 만나서 같이 타며 더 재미있게 놀 수 있었어요.

 

5시에 스키장을 닫더라구요. 역시 미국은 대부분의 사업장들이 일찍 닫아요.

 

딜른 차를 타고 교회에 가서 큰 차로 바꿔 타고 비즈마크로 갔습니다. 아무튼 정말 재미있는 하루였어요. 역시 옛날에 학교 스키캠프로 갔을 때 스노보드를 배워놓기를 잘했어요. 7시간정도 쉬지 않고 계속 리프트 타고 올라가서 탔는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에 알이 배겨서 지금 물건도 못들 지경이에요. 정말 배워서 쓸데없는 건 하나도 없는 거 같아요.

 

피아노학원도 없는데 연주 실력이 누구나 오케스트라 단원이 될 수 있어요

 

여기 밴드부의 학생들 실력은 정말 굉장해요. 중학교 때부터 수업이 들어있어서 여기 아이들은 적어도 4~6년 정도 악기를 다룬 아이들이에요. 수업이니 일주일에 다섯 번은 기본적으로 악기를 다룰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그런지 한명이 악기 두세 개쯤은 쉽게 다루더라구요. 베이스 클라리넷 하던 애가 공연 때 드럼을 멋있게 치고, 심심하면 피아노도 정말 완벽하게 연주합니다. 정말 기본적으로 두세 개 악기를 다루는데 정말 부러워요. 헤이즌에 피아노학원도 없으니 학원에 다닌 적도 없는데 말입니다.

 

정말 우리나라 학교는 뭘 가르치는 건지 모르겠더라구요…. 이곳 아이들이 다양한 악기를 자유롭게 다루는 것을 보면서, 저도 일찍 피아노, 기타 등 좀 더 많은 악기들을 열심히 배워두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되더라구요. 드럼도 배문고등학교 밴드부에 있을 때 기초적인거만 배웠었는데 정말 다시 배워보고 싶어요.

 

여기 아이들의 폭 넓은 활동영역을 보면서 저도 점점 더 다양한 소질의 개발에 욕심이 나요. 일기는 계속 쓰고 있어요. 반복되는 일과들이라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간혹 건너뛰긴 하지만 그래도 계속 쓰고 있어요.

 

고등학교 2학년의 딜른은 자신이 번 돈으로 차를 샀어요

 

오늘 보내드린 사진에 노란색 차를 보실 수 있을 텐데 어제 딜른이 저를 픽업하로 왔을 때 찍어놓은 것입니다. 자기가 돈을 아끼고 아껴서 크라우지스토어에서 일하면서 번 돈으로 산거래요. 5000불이라고 하는데 한국돈으로 600만 원 정돈데 대단하죠. 자기가 직접 벌어서 차를 사다니!

 

미국에 있다 보면 불편한 게 없지 않지만 그런 것은 다 감수할 만한 부분이에요. 하지만 계속 생활하다 보면 한국학교는 도대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에 대해 의심이가요. 오바마가 대단하다고 극찬했던 그 교육정책이 '교육'이 아니라 '압박' 이라는 게 제 머릿속에 굳어지고 있는 것같아요.

 

한국에서 그렇게 대단한 듯, 현재 공교육의 대안인 듯 주목받고 있는 이우학교, 간디학교가 제가 지금 재학 중인 미국 시골의 가장 평범한 공립학교인 헤이즌고등학교가 아닐지 싶어요.

 

저는 한국이 싫어서나 또한 미국이 좋아서 미국으로 교환학생으로 온 것은 아니잖아요. 미국교육을 받고 미국인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이곳의 문화를 알고 더 폭넓게 이해하고 싶었을 뿐이었으니 저의 1년 학기의 체류기한이 만료되면 한국으로 되돌아가고 싶어요. 제가 이곳에서 사립유학으로 전환해서 계속 체류하게 되면 저의 등록금과 숙식비의 압박도 우리 가족에게 비상이겠지요.

 

제가 한국으로 되돌아가면 한국의 고등학교로 복학을 해야 되는데 어떤 학교가 좋을지 인터넷으로 좀 찾아보았어요. 이유학교나 간디학교같은 대안학교가 제게 맞을 것 같아요.

 

미국의 공립학교가 한국의 대안학교다

 

이우학교를 찾아봤어요. 학교이름인 이우가 以友 즉 '벗과 함께, 벗 삼아'라는 뜻이래요. 제 인터넷 아이디인 'withbuddy'와 그 이름을 정한 뜻이 똑 같아서 마음에 드네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있던데 서울에서 파주 가는 거리정도로 반대편에 있더라구요. 파주에서 3시간가량, 서울에서 1시간 10분가량의 거리정도이더라구요.

 

제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이우학교가 좋을 거 같아요.  학교 홈페이지의 사진을 보니 교장선생님도 꽤 젊은 분이드라구요.

 

"자신의 행복에 머물지 않고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일에 나서고, 그것을 감당할 능력을 갖추려면 아이들에게 우리의 교육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라는 교장선생님의 인사말도 지금의 제 생각과 공통점이 많은 거 같아요.

 

특히 '아이들에게 우리의 교육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라는 질문은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전부 함축시켜 놓은 거 같아요. 아직 자세히 다 읽어보지는 못했으므로 더 자세히 구석구석 읽어보고 나중에 한번 같이 논의해 봐요.

 

저는 잘 살고 있어요. 자주자주 메일 드릴게요. 할머니, 할아버지, 사부님, 사모님 그리고 이웃 분들 외 모두에게 안부전해주세요. 사랑해요!

 

헤이즌에서 영대 올림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미국공립학교교환학생, #이영대, #헤이즌, #노스다코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삶의 다양한 풍경에 관심있는 여행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