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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안을 내 방식대로 살펴보기

 

     

성당 안에서 우리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면서 메스키다 시절의 유산을 살펴볼 것이다. 중간에 잠깐 왕실 예배당을 보고, 메스키다의 핵심인 미흐랍을 찾아가려고 한다. 미흐랍은 이슬람교 종교지도자인 이맘이 기도를 하는 신성한 공간으로 메스키다에서 가장 중시되는 곳이다. 그 다음에는 성녀 데레사 성당을 보고, 대성당의 중심인 중앙 예배실로 가 기독교 문화의 정수를 보고 느낄 예정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물전시공간으로 가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의 유산들을 살펴볼 것이다.

 

압둘 라만 1세 때 만들어진 메스키다에는 제대로 만들어진 아치가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중 아치인데, 높은 천정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코린트식 석주 위에 바로 연결된 하단의 아치는 말발굽 모양이고, 상단의 아치는 반원형이다. 이 아치에서 특이한 것은 홍예석(voussoirs)이다. 붉은색과 흰색이 교대로 연결되는데, 이것은 예루살렘에 있는 바위 돔 내부의 아치와 홍예석을 모방했다고 한다. 아치 외에도 메스키다의 천정이 나무로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천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기독교 건축과 대비된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왕실 예배당이다. 왕실 예배당의 역사는 131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하엔(Jaen)에서 죽은 페르디난드 4세가 이곳 코르도바 성당에 묻히게 되면서 왕실 예배당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알퐁소 6세도 이곳에 묻히길 원해 1371년 이곳으로 이장되었다. 그러므로 이곳은 엄밀한 의미에서 왕실 예배당이라기보다는 영묘에 해당한다. 그래서 예수의 십자가상이 벽에 소박하게 걸려 있다. 그리고 동쪽 벽에는 성인으로 추대된 페르디난드 3세의 조소상이 서 있다. 왕실 예배당은 당시 유행하던 무데야르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왕실 예배당의 남쪽으로는 미흐랍과 성녀 데레사 예배당이 있다. 우리는 미흐랍을 먼저 보고 그 옆에 있는 데레사 예배당을 보려고 한다. 미흐랍은 메스키다의 중심 영역으로, 벽에 문을 내고 공간을 만들어 금박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문은 말발굽 모양의 아치이며, 아치의 원형을 이루는 홍예석은 여러 가지 색과 문양으로 장식되었다. 그리고 홍예석 위 사각형 벽에 아랍어로 쿠란의 구절을 새겨 넣었다. 사람들은 이 미흐랍을 조금 더 가까이서 보려고 마크수라(Maqsura: 미흐랍 앞의 공간) 차단문에 기대서서는 몸을 잔뜩 미흐랍 쪽으로 향한다.

 

 

미흐랍 옆에 있는 데레사 예배당은 1330년 성 마르틴 예배당으로 처음 만들어졌다. 그것이 1697년에 코르도바의 주교였던 살라자르 추기경의 지시로 바로크 스타일의 성녀 데레사 예배당으로 개조되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살라자르 추기경의 시신도 묻혀 있다. 그리고 예배당 한 가운데는 성녀 데레사 제단이 있다. 이곳에는 1705년 호세 데 모라가 여러 가지 색이 나는 나무로 만든 데레사 상이 모셔져 있다. 성녀 데레사는 오른쪽 어깨 위에 앉은 비둘기로부터 성령을 받고 있다.

 

데레사 예배당의 한쪽 독립 공간에는 대성당과 관련된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방 한 가운데는 엔리케 데 아르프 가에서 소장하던 은제장식 성물이 있다. 1514년부터 1518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높이가 2.6m나 된다. 이것은 현재도 예배의식 때 사용되고 있다. 그 외에 만리케 주교의 십자가, 아기 예수를 안은 마리아상 등이 유명하다. 이들 공예품은 코르도바의 금속세공사인 다미안 데 카스트로에 의해 만들어졌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대성당 한 가운데 있는 중앙 예배당이다. 이곳은 메스키다가 카테드랄로 바뀌면서 만들어진 예배공간으로 대성당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예배당은 1523년 건축가 에르난 루이스 등이 라틴식 십자가 모양을 한 고딕양식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성당의 뼈대는 고딕양식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이 도입되었다. 그리고 예배당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게 되는 제단과 합창대석은 장식이 풍부한 바로크 양식이다.

 

제단은 1618년 알론소 마티아스(Alonso Matias)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대리석 전문가인 루이스 곤잘레스 바옌을 동원하여 12년 만인 1629년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제단 한 가운데는 네 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바로크 양식의 성당이 있고, 그 좌우와 상단부에 5개의 그림을 그려 넣었다. 상단부 가운데 그림은 성모 마리아의 승천 장면이고, 나머지 네 개의 그림은 코르도바의 순교성인들이다. 그리고 제단 앞에 있는 성찬식 제대는 1653년에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합창대석은 페드로 두케 코르네요(Pedro Duque Cornejo)의 작품으로, 상단부에 좌우로 예수 그리스의 신비와 성모 마리아의 신비를 조각해 넣었다. 하단부에는 선지자, 사도, 성인들의 상을 반 부조로 조각했다. 합창대석 가운데 옥좌에는 예수 승천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지상에서는 사도들이 승천하는 예수를 올려다보고, 위에서는 대천사가 예수를 하늘나라로 인도한다. 이 작품은 1748년부터 1751년까지 4년 동안 만들어졌다. 그리고 1753/54년에는 합창대석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청동제 황금독수리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들을 다 보고 나니 한편으로는 가슴이 벅차고 다른 한편으로는 머리가 복잡하다. 내가 뭘 본건지 정리가 잘 안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내와 나는 메스키다-카테드랄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물전시공간으로 간다. 이들 유물 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석주에 새겨진 아랍어 사인이다. 석주를 자세히 살펴보면 사인을 하나하나 확인할 수 있지만, 한쪽에 그 사인들을 석고에 떠서 벽에 가지런히 붙여 놓았다. 이 사인들은 건축에 책임을 지기 위한 실명제일 수도 있고,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장인들의 과시욕일 수도 있다. 또 벽에는 옛날에 사용하던 나무판 장식이 걸려 있다. 역시 기하학적인 무늬와 식물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곳에는 또한 대리석 관들도 있다. 관에 새겨진 명문이 라틴어로 되어있으니 기독교 성인이나 성직자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850년대에 만든 로마서나 복음서들도 보인다. 책표지의 천과 장식으로 보아 지위가 높은 사람이 사용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 외 대리석 조각도 보이고, 청동제 성물도 보인다. 이들 모두 1200년 메스키다-카테드랄의 역사를 보여주는 귀중한 증거들이다.    

 

정말 좁고도 아름다운 유대인 거리

 

 

대성당 내부를 보고 나란호스 정원으로 나오니 밝은 세상이 펼쳐진다. 그동안 침침한 공간 속에서 과거의 역사와 놀았다면, 이제 자연과 함께 하는 밝은 세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정원의 오렌지 나무에는 노란 오렌지가 주렁주렁 열렸다. 정원을 지나 우리는 용서의 문을 통해 성당 밖으로 나온다. 우리가 다음으로 찾아갈 곳은 유대인 거주 지역(Juderia)이다. 유대인들은 대개 도심에 인접한 지역에 터를 잡고 공동체를 형성해 살아왔다.

 

유대인 거주 지역은 우선 골목이 좁다. 그렇지만 벽이 깨끗하고 그 벽에 꽃을 장식해서 항상 산뜻한 느낌을 받는다. 우리가 찾아간 칼레 데 라스 플로레스도 마찬가지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유대인들의 삶의 모습을 보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이곳에서 보는 대성당 종탑의 모습이 기가 막히게 아름답기 때문이다. 원래 대상이라는 것은 상대적이어서 주변 환경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이곳에는 또 기념품 가게들이 있어 작은 소품들을 구입할 수도 있다. 시간을 가지고 집도 보고 기념품도 보면서 과거 유대인들의 삶을 느껴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나서 그 골목을 나와 대성당 외벽을 따라 다른 유대인 지역으로 이동한다. 마침 시간이 12시인지라 대성당 종탑에서 종이 울린다. 마치 우리를 위해 종을 울리는 것 같다. 잠시 눈을 돌려 종탑을 한참이나 올려다본다.

 

유대인 거리를 가면서 우리는 코르도바 대학을 지난다. 이곳은 시내에 산재해 있는 대학 건물 중 철학과 인문학을 가르치는 교사라고 한다. 그 앞에는 무하마드 알-가페쿨이라는 사람의 반신상이 서 있다. 1965년 800주년을 기념해 세웠다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1100년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가이드에 따르면 두뇌 외과 수술을 처음 시도한 사람이라고 한다. 유대인 거리에서 마지막으로 지나간 곳은 카사 살리나스다. 이 건물은 성곽과 붙어 있다. 

 

성벽에서 느끼는 과거의 흔적

 

코르도바 도심을 둘러싼 성곽은 대성당의 서쪽으로 잘 남아있다. 이 성곽을 제대로 보려면 서쪽문인 알 모도바르 문(Puerta de Almodovar)으로 가야 한다. 이 문은 성의 안과 밖을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여서 그런지 드나드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그런데 이 문은 말발굽 모양이 아니다. 아마 후대에 변형시킨 것 같다. 들어가고 나가는 부분은 직사각형으로 하고, 그 위로 문을 더 파서 길고 둥근 유럽형 아치를 만들었다. 이슬람교와 기독교간 쟁패가 벌어질 때 유럽인들은 이슬람의 둥근 형태를 미워해서 사각형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고 한다.

 

알 모도바르 문은 이슬람 통치시대에 만든 것으로 원래 이름은 밥 알 샤브즈였다. 14세기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으며, 19세기 초에 한때 통행이 차단되기도 했다. 현재는 구도심과 빅토리아 대로를 따라 나 있는 공원을 연결해 주는 주요 통로다. 그러나 이 문은 사람들만 통행할 수 있다. 성문 밖으로 나오니 성벽을 따라 해자가 만들어져 있다. 해자는 일반적으로 외적의 침입을 막는 구실을 한다. 그 해자에 비친 성벽의 실루엣이 참 아름답다.

 

 

성벽은 이들 해자를 따라 과달키비르 강까지 연결되었으나 현재는 2/3 정도만 남아 있다. 성벽 위에는 외적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뾰족한 구조물이 촘촘하게 박혀있다. 성곽을 보고 우리는 디에고 데 리바스 공원을 따라 점심을 먹으러 간다. 공원에는 활엽수들이 울창하고 그 밖 도로 쪽으로는 야자수와 오렌지 나무가 가로수 역할을 하고 있다. 길에는 차량이 상당히 많다. 코르도바에는 현재 32만6천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바위 돔 사원(Dome of the Rock)

 

예루살렘의 사원산(Temple mountain: 성서의 시온산)에 있는 이슬람 사원이다. 일반적으로 이슬람 교도들에게는 무하마드가 하늘나라로 승천한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637년 이슬람 세력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사원 건축을 명령했고, 692년 알 아크사 사원과 바위 돔이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바위 돔은 메카에 있는 카바 신전 다음으로 오래된 사원이다.

 

바위 돔은 산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알 아크사 사원은 산의 남쪽 사면에 위치한다. 바위 돔은 기도를 위한 사원이라기보다, 성스러운 영묘로 순례를 위한 사원이다. 이슬람 전설에 따르면 대천사 가브리엘의 인도로 무하마드가 이곳 바위산에서 승천했고, 다시 가브리엘의 인도로 이곳에 내려와 아브라함, 모세, 예수와 함께 기도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과 함께 무슬림이 되자고 말함으로써 이슬람교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태그:#메스키다, #카테드랄, #문명의 공존, #유대인 거리, #알 모도바르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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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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