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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뒤뜰 나무에 까치 두 마리가 앉아 유달리 노래를 아름답게 부르더니 정초를 맞이하여 산골에 첫 손님이 왔다. 순천에 살고 있는 아내의 친구 영희씨가 그녀의 남편과 딸 그리고 사위가 될 잘생긴 청년과 함께 이 지리산 산골 동네를 찾아 주었다.

가까운 곳에 친한 지기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순천은 간전면에서 계족산을 넘어가는 새 길이 개통되면서 매우 가까워 졌다. 구례읍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계족산을 넘어가면 청소골로 해서 순천시에 닿는다.

정초 지리산 산골동네를 찾아온 첫손님
 정초 지리산 산골동네를 찾아온 첫손님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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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희씨는 원래 서울에 살다가 남편의 직장을 따라 순천에 내려와 산 지 30년 가까이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은행에 다니는 영희씨 딸과 4월에 결혼을 하게 될 예비 사위가 세배를 왔는데 드라이브도 할 겸 이곳 지리산 산골동네를 찾아온 것이다.

이렇게 멋지고 귀한 예비 신랑부부가 찾아주다니, 우리로서는 여간 고맙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신랑은 아주 남자답게 생기기도 잘 생겼고, 서글서글하여 영희씨의 사윗감으로는 안성맞춤인 듯 했다. 영희씨는 아들없이 외동딸 하나를 잘 키워 시집을 보내게 된 것인데, 아마 저 사위는 영희씨의 아들 역할까지 톡톡히 해낼 것 같다.

삭막한 겨울풍경. 그러나 차라리 솔작하게 보인다.
 삭막한 겨울풍경. 그러나 차라리 솔작하게 보인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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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희씨는 아내와 함께 수다를 떠느라 집에 남아있고, 그녀의 남편과 예비 커플들과 함께 만수마을 쪽으로 산책을 갔다. 이런 시골이 처음이라는 신랑은 마을의 돌담길이며 대나무 밭을 거닐며 매우 신기하고 즐거워했다. 겨울의 들판은 삭막하다. 그러나 모든 걸 훨훨 벗어버린 겨울 들판은 차라리 솔직 담백하다.

만수마을로 가는 길에는 소를 키우는 농장이 있다. 소들이 음매 음매 하며 소리를 지른다. 이곳은 아직 구제역이 전염되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소를 키우는 농부들은 불철주야 소를 돌보느라 아무 일도 못한다. 지난번에 남원으로 목욕을 갈 때에도 소를 키우는 오씨는 목욕조차 가지 못했다. 서울 토백이라는 예비신랑은 소를 보면서도 매우 신기해 했다.

청정 만수마을의 소는 구제역이 없다
 청정 만수마을의 소는 구제역이 없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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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준 씨도 찾아왔던 만수마을

만수마을에 도착하자 대나무 샛길로 접어든다. 유명 관광지가 아니면서 이처럼 소박하고 꾸밈이 없는 호젓한 길을 찾아보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자연석 돌담은 고즈넉하고 마음을 가라앉게 해준다.

"이 동네는 배용준씨가 찾아온 동네야.'
"정말요?"
"그럼.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이란 책을 쓰면서 찾아 온 곳이지."
"아니 그가 여기까지 왔어요?"

인기 탤런트 배용준은 2009년도에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이란 책을 쓰기 위해 이곳 만수마을 찾아왔다. 만수마을은 조선말기 대학자인 매천 황현 선생님이 16년 동안 머문 곳이기도 하다. 또한 최근에는 천연염색작가 안화자씨가 이곳에 머물고 있다.

만수마을 다랑논의 자연석 논두렁
 만수마을 다랑논의 자연석 논두렁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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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준씨가 이곳을 방문한 뒤로 봄이면 일본에서 배용준씨 팬들까지 찾아들기도 한다. 배용준을 사랑하는 일본 팬들의 열성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를 아끼고 그가 간 곳을 빠짐없이 찾아다니니 말이다.

내가 살고 있는 만수마을과 중평마을은 자연석 돌담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계단식 논두렁도 모두 자연석 돌로 쌓아올려 운치가 그만이다. 대밭을 지나는데 꿩들이 푸드득 거리며 날아간다. 만수된장 공장의 항아리들도 정겹게 느껴준다. 몇백 년을 묵었을 소나무들이 마을 어귀에 세월을 지키고 있다. 돌담 위에 새워진 흙집도 예스러운 멋을 풍긴다.

자연석 돌담이 예술이다
 자연석 돌담이 예술이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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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마을은 백운산 줄기를 뒤로하고 앞으로는 깎아지른 듯 서 있는 계족산이, 북쪽으로는 지리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풍수를 모르는 내 눈에도 이곳은 매천 선생이 자리를 잡을 만한 수려한 풍광을 지니고 있다. 만수마을은 백운산 줄기에서 맑은 물이 사철 흘러 내려온다. 마을 사람들은 이 물을 받아 먹는다.

"이렇게 소박하고 멋진 동네는 처음 봐요!"
"머리 아픈 일 있으면 자주 들리게나. 우리 방을 빼줄테니."
"정말요?"
"그럼."

만수콩 된장공장 담장을 너머로 된장 항아리들이 옹기종이 모여 있다. 만수 마을을 한 바퀴 돌아 집으로 돌아오니 또 다른 손님이 와 계신다. 남원에 살고 있다다는 송 교수라는 분과 시인 한분, 그리고 박 선생님이라고 하는 세 분의 손님이 거실에 앉아 아내와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다.

천연염색작가 안화자 씨가 운영하는 만수콩된장 공장
 천연염색작가 안화자 씨가 운영하는 만수콩된장 공장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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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뜻밖에 찾아온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며 인사를 했다. 이 세 분은 내 블로그에 실린 글을 읽어보고 만수마을 매천 황현 선생 유적지를 다녀오는 길에 잠시 들렀다고 한다. 영희 씨는 예비 사위가 서울 갈 길이 바쁘다고 먼저 집을 나섰다.

우리는 새로운 손님들과 귀농이야기, 여행담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인연이란 또 이렇게 맺어지는 것인가 보다. 역사학을 전공하신 송 교수는 남원에 홀로 내려와 계시고, 박 선생님은 지리산 자락에 보금자리를 틀고 계신다고 했다.

만수마을 대밭샛길
 만수마을 대밭샛길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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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보이차를 세 주전자나 비우면서 우리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어서인지 밤새도록 이야기를 해도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계족산으로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그들은 떠나갔다. 남원에 꼭 한번 들려달라는 박 선생님의 모습이 한 십년을 넘게 사귀어온 친구처럼 다정하게 느껴졌다.

"또 한 군데 갈 곳이 있어서 즐겁군요."
"꼭 한 번 들려주세요."

정초에 고향의 산소에 갔을 때에도 유난히 많은 까치들이 노래를 들려주더니 이곳 지리산 자락 산골 집에 정초부터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와 기쁘다. 매천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초라한 '구안실(苟安室-누추하지만 그런대로 편안하게 지낼만하다는 뜻)'을 찾아준 설날 정초 손님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지리산산골동네, #만수마을, #섬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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