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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VS 철학>의 저자인 강신주 박사가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정치철학 특강' 강연을 하고 있다.
 <철학 VS 철학>의 저자인 강신주 박사가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정치철학 특강' 강연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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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무의식적인 내면에서 정치적인 부분이 차지하는 크기는 상당합니다. 어떤 분과 처음 만나서 데이트를 한다고 상상해보세요. 그 사람이 다른 부분은 다 좋은데 내가 정말 싫어하는 정당을 지지해요. 그래도 그 분을 계속 만나실 수 있을 것 같으세요?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경우라도 잘 만나거든요."

한나라당 당원인 남성과 진보신당 당원인 여성이 한 지인의 소개를 받아 만났다. 이 만남의 성공률은 얼마나 될까? 강의실에 모인 50여 명의 청중 가운데 긍정적인 대답을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철학 VS 철학>의 저자인 강신주 박사는 "한국인에게 정치는 매우 민감하면서도 내밀한 영역"이라며 "우리가 정치의 작동 원리에 대해서 특히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말했다.

강 박사는 지난 26일 '정치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열린 '정치철학 특강' 마지막 시간에서 독일의 정치학자 카를 슈미트와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이론을 도구로 정치를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슈미트, "정치는 '적과 동지'의 구분으로 만들어진다"

카를 슈미트는 그의 저작인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통해 정치를 '적과 동지'라는 범주로 설명한 학자다. 강 박사는 "슈미트는 '적과 동지'라는 범주가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등의 범주와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며 독일의 철학자인 이마누엘 칸트가 도입한 가치판단의 방법부터 설명했다.

"칸트에게는 안경이 세 개가 있었어요. 그의 대표 저작은 세 가진데, 과학(진리)의 범주를 다룬 <순수이성비판>에서는 참과 거짓, 예술의 범주를 다룬 <판단력 비판>에서는 아름다움과 추함, 윤리의 범주를 다룬 <실천이성비판>에서는 선과 악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칸트는 과학과 예술, 윤리를 분별하는 것이 지성인의 조건이라고 보았어요. 그러니까 어떤 것이 참이라고 해서 반드시 아름다울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어떤 대상이 아름다운지 분별하려면 그게 참인지 거짓인지, 선인지 악인지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게 칸트의 입장이었지요."

강 박사는 "칸트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경제적인 것의 범주는 아마 '이로움과 해로움'이라고 할 수 있다"며 "루마니아의 철학자인 미르체아 엘리아데는 종교적인 것의 범주로 '성스러움과 세속적임'을 제안한 바 있다"고 말했다. 어떤 현상이라도 과학, 예술, 윤리, 경제, 종교의 다섯 가지 범주로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슈미트는 이 다섯 가지 범주에 '정치적인 것'의 범주를 하나 더 덧붙인 셈이다.

강 박사는 오늘날 슈미트의 이론이 중요한 이유로 다른 다섯 가지 범주들의 갈등이 극한에 달하면 모두 결국에는 '적과 동지'라는 정치적인 범주 안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이는 자의적으로 국가의 '적과 동지'를 설정함으로서 권력을 유지해왔던 현대의 여러 독재자들의 역사로 증명된다는 것이 강 박사의 설명이다. 

"권력자는 비상사태나 전쟁을 선포함으로써 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외부에 적이 생기면 내부 분열이 순식간에 봉합된다는 점입니다. 히틀러가 집권할 당시 독일은 유럽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낙후되었을 뿐더러 지역감정이 매우 심했습니다. 그런데 히틀러가 등장해서 유태인에게 별표를 달고 공동의 적으로 만들자 비로소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인이 만들어질 수 있었지요.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박정희 독재정권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북한 정권을 불변하는 적으로 설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이러한 슈미트의 견해에 따르면 국가는 가장 정치적인 기구이다. 강 박사는 "슈미트는 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국가는 성립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며 "그는 국가가 어떤 식으로든 상호 간의 대립과 갈등을 만들면서 그것을 양분삼아 유지된다고 보았다"고 말했다. 강 박사는 "슈미트식의 정치관에 따르면 세계를 통일하는 방법은 외계인을 '적'으로 만들거나 모든 사람을 '동지'로 생각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왕따' 현상에서 정치의 본질 찾은 아감벤

강신주 박사가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강신주 박사가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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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을 가르지 않고 모든 사람을 '동지'로 생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강 박사는 이 지점에서 조르조 아감벤을 거론했다. 사람들을 '적과 동지'로 나눴던 슈미트와는 달리 아감벤은 인간에게서 '벌거벗은 생명'과 '정치적 존재'의 양면성을 발견했던 철학자다.

여기서 '벌거벗은 생명'은 정치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 '정치적 존재'는 정치적 권리와 의무에 의해 보호되는 사람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폴리스'라는 정치공동체에 속할 수 없었던 사람들을 '조에'라고, 정치 공동체에 속했던 사람들은 '비오스'라고 불렀는데 이들이 바로 '벌거벗은 생명'과 '정치적 존재'의 대표적인 예다.

강 박사는 "아감벤의 이론에서 중요한 것은 '정치적 존재'인 '비오스'가 가지고 있는 공포심"이라고 설명했다. 비록 지금은 정치 공동체에 속해 있지만 공동체 안에서 자신이 수행해야 하는 의무를 수행하지 못할 경우 언제든지 '조에'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감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감시나 자기검열을 하게끔 만든다는 것이다.

"'조에'는 아무에게나 죽어도 되는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집단에서 배제되면 '조에'같은 존재로 전락할 수 있지요. 아감벤은 이런 존재들을 '호모 사케르'라고 불렀습니다.
한 집단에 왕따가 있으면 나머지는 편안합니다. 그런데 왕따가 자살을 하면 그때부터 '누가 호모 사케르가 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대학원생들이 교수들의 말을 잘 듣는 이유도 이와 비슷합니다.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찍혀서' 자기 논문을 못 쓰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나 스스로가 대학원생으로서 정치적 지위를 유지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두려움이 오는 것이죠."

강 박사는 "한 명의 권력자가 왕따를 정했을 때 내가 위험해지기 때문에 그를 도와줄 수가 없게 된다"며 "우리 내부에 있는 지배의 흔적, 훈육의 흔적을 관찰한 아감벤의 이론은 '나는 속속들이 길들여져 있다'는 푸코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근대 민주주의는 이주 노동자의 인권,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는 등 겉으로는 '벌거벗은 생명'들까지 감싸안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근대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근대 민주주의의 개인들은 여전히 그 안에서 '정치적 존재'가 되기 위해 치열한 자기 검열을 합니다. 자신이 이렇게 치열한 자기 검열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공포감을 극복해야만 그동안 정치권력이 제안해왔던 '정치적 존재'로의 유혹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강 박사는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먼저 왕따를 공격하는 입장을 취하는 아이들의 심리를 예로 들며 "아감벤의 이론은 이런 공포감을 극복하고 약자 곁에 설 수 있느냐를 묻기 때문에 우리 자신에게 불편하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그는 "유난히 정치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정치란 매우 민감하고 내밀한 영역이지만 현대 정치철학은 각각의 개인에게 이러한 '정치적 판단'이라는 숙제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하며 강의를 마쳤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강신주의 정치철학 특강'에서 수강생들이 질문을 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강신주의 정치철학 특강'에서 수강생들이 질문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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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오마이뉴스>는 현재 진행 중인 '정치철학 특강 1부' 강좌에 이어 오는 2월 9일부터 마르크스와 벤야민, 기 드보르, 랑시에르를 잇는 흐름 속에서 진보적 정치에 대한 철학적 성찰과 실천을 모색하는 '정치철학 특강 2부' 유료 강좌를 마련했다.

2~3월 매주 수요일 저녁 전체 8강 규모로 열리는 '정치철학 특강 2부'에서는 기 드보르의 <스펙타클의 사회>와 발터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칼 마르크스의 <독일 이데올로기> 등의 교재들을 통해 '인간적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할 정치가 무엇인지 살펴볼 예정이다.

☞ [클릭] 강신주 박사의 '정치철학 특강' 신청하기


태그:#강신주, #정치철학 특강, #아감벤, #슈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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