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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 본관 주변에는 홍대 이사장과 총장에게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현수막과 수많은 대자보가 붙어 있다.
 홍익대 본관 주변에는 홍대 이사장과 총장에게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현수막과 수많은 대자보가 붙어 있다.
ⓒ 오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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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홍익대학교에 다녀갔다. 요새 며칠에 한 번 꼴로 홍익대를 찾는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이야기를 듣고 살피고 도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돕고 싶어서다. 홍익대 본관으로 가는 길목에는 현수막이 어지럽게 걸려 있었다. 대부분 홍익대 사용자 측을 비판하며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글이거나 비정규직 노동자를 지지하는 문구다. 그래도 많은 사람이 뜻을 모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령처럼 홍대 주변을 배회하다가 본관에서 노조 쪽 관계자(홍익대 노동자들은 공공운수노조(준) 산하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의 홍익대분회 소속이다)를 만나고 '청소엄마', '경비아빠'를 만난다. 여자는 3교대, 남자는 2교대로 본관에서 밤을 지샌다고 한다.

현장을 지키고 있는 권태훈 조직부장(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은 "젊은 장정도 이틀 밤 지내면 뼈 마디가 쑤시는데 연로하신 어르신들 건강이 크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이분들은 야외활동을 무척 힘들어 하신다. 영하 10도가 넘는 추위인 데다가 뼈가 약하기 때문이다. 본관 현관에는 외부인의 출입이 잦기 때문에 항상 어수선했다. 스크린을 통해 회의를 하거나 교육이 이루어지고, 매트리스에 앉아서 쉬기도 한다.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어수선한 분위기에 벽면마다 매트리스와 이불이 깔려 있고 간간이 전기장판이 있다. 전기장판이나 전기난로는 전력량이 한정 돼 있기 때문에 늘릴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가스난로를 지원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기름값이 또 들기 때문이다.

안쪽에는 비교적 나이가 많은 분들이 가족들과 함께 기거하고 있었다. 공공운수노조 비정규직지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청소엄마들의 평균 나이는 57세. 이 중에서 청소엄마 혼자 돈벌이를 하는 경우가 49.7%에 이른다고 한다. 한 사람의 청소엄마는 그저 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농성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어린 손녀들이 할머니의 손에 안겨서 맑게 웃으며 재롱떠는 모습을 보니 마음 한곳이 싸늘해지면서 눈시울이 젖어왔다.

현관에는 기부받은 컵라면이 가득했다. 쌀도 넘친다고 했다. 하지만 김치 같은 밑반찬은 많이 부족하다. 자취생들처럼 분말 국거리나 인스턴트 등으로 밥을 해결하는 경우도 있었다.

1월18일 저녁 홍대입구역에서 홍대 청소노동자 문제를 알리는 1인시위가 있었다. 기자로 보이는 외국인 두 명이 사진을 찍고 뭔가 열심히 적고 있다.
 1월18일 저녁 홍대입구역에서 홍대 청소노동자 문제를 알리는 1인시위가 있었다. 기자로 보이는 외국인 두 명이 사진을 찍고 뭔가 열심히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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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고 밖으로 나갔다. 아까 봤던 현수막이 다시 눈에 띄었다. 이번에는 글 밑에 글쓴 사람들을 가리키는 부분이 크게 눈에 들어왔다. OOO당 OOO지구당, OOO대학교 총학생회 등의 이름이 크게 적혀 있었다. 갑자기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너럭바위에 이름을 새겨넣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홍대 주변을 배회한 것도 이 때문이다. 홍대 문제를 방치하는 것 같아 너무 부끄럽고, 이름을 밝히기도 부끄럽다. 하지만 너무나 잘 보이는 이 수많은 이름들이 가장 부끄럽다.

돌아가는 길에 정말 부끄러운 일을 만났다. 홍대 프리마켓이 있는 언덕과 지하철 홍대입구역에서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문제를 알리는 1인시위 모습을 봤다. 그런데 한쪽 구석에서 기자로 보이는 외국인이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었다. 내 가정사를 누군가 알게 되는 것도 부끄럽지만, 내 나라의 치부를 외국인이 보는 것은 더더욱 부끄러웠다. 부끄러운 하루였다.

홍대 청소엄마가 진짜로 원하는 것

내가 홍대 청소엄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렇게 방문기를 남기는 일이나 트위터로 사정을 전하는 일, 아니면 아고라 서명으로 알리는 일 등. 최근에 배우 김여진과 외부세력이 벌인 '우당탕탕 바자회'는 무척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분들이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가다. 우리가 원하는 것 말고 말이다. 두 번 찾아간 끝에 청소엄마와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엄마는 50대 중후반으로 보였는데 나의 엄마보다는 조금 젊지만 비슷한 나이대여서 나는 내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해녀다. 48년 동안 물질(해녀 일)을 멈추지 않은 고단한 인생을 살아오고 계신다.(관련기사) 하지만 엄마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받기도 한다.

내가 만난 청소엄마도 내 엄마 못지 않게 오랜세월 동안 고단한 일을 해오며 자식들 뒷바라지를 해오셨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인정은 커녕 천대뿐이고, 몸은 거리로 내몰렸다. 수십 년 동안 바쳐온 수고의 대가가 불인정과 천대라니 기가 막히다. 파스칼도 말했듯이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일이 인정받지 못했을 때 뼈속까지 분노가 치미는 법이다. 이 화를 풀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청소엄마의 손을 잡고 힘이 되어드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더니, 청소엄마는 이렇게 와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며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생강차를 권하며 방명록에 꼭 글 한 줄 남겨달라고 부탁했다.

청소엄마의 표정은 다행히 밝아 보였다. 옆에 의지할 수 있는 동료가 있어서 힘이 되는 모양이었다. 이것이 함께 싸우는 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청소엄마와 저녁 한끼를 함께 먹기로 하고 다시 만날 약속을 한 뒤 휴대전화 번호를 받았다. 그리고 작별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청소엄마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돌아서서 가는 나를 향해 청소엄마가 짧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것으로 나는 답을 얻었다.

"조금 일찍 와. 이야기 많이 나누자!"

덧붙이는 글 |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태그:#홍익대, #청소노동자, #청소엄마,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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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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