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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박사가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강신주 박사가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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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1970, 80년대에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했던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지금 한나라당에 들어가 있을까요? 그때 그들이 잘못 배웠던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어딜 가든 상관이 없거든요. 스스로 자신들을 '민중을 이끄는 지도자'라고 생각하고 그 자리를 좇은 거예요. 그 지도자의 자리가 과거에 운동가였다면 지금은 국회의원으로 바뀌었을 뿐이죠."

이재오 특임장관과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두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1980년대 민중 중심의 좌파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이끌었던 지도자급 운동가였다는 것, 다른 하나는 현재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의 핵심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군부독재가 이어지던 시기에는 '빨갱이'라 불리며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던 사람들이 지금에 와서는 한나라당 내에서도 전형적인 우파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치인으로 정치적 좌표를 급격히 옮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철학 VS 철학>의 저자인 강신주 박사는 80년대 노동운동 지도자와 현재의 한나라당 정치인이 "개념만 다를 뿐 그들의 행동 속에 있는 논리는 사실상 같다"고 말했다. 강 박사는 지난 19일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정치철학 특강' 세 번째 시간에서 "스탈린으로 대표되는 일국사회주의자들의 사회주의 이론 때문에 마르크스주의가 오독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강연에서 "진짜 마르크스가 꿈꿨던 사회는 인간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는, 억압이 없는 사회였다"고 설명했다.

"<공산당 선언>, 문자 그대로 믿으면 곤란하죠"

마르크스주의는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였던 칼 마르크스에 기반을 둔 사회이론과 정치 행위를 의미하는 말이다. 마르크스는 1848년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함께 공산주의자들의 최초의 강령적 문헌인 <공산당 선언>을 출간한 사상가이기도 했다. 그는 <공산당 선언>을 통해 생산 방식이 사회 제도의 성격을 규정하며 정치 및 사회의식의 기초가 된다는 유물사관론을 주장하며 프롤레타리아(노동자) 혁명을 권장했다.

마르크스는 이 책에서 인간의 생산력이 발전하자 중세사회가 유지되지 못하고 부르주아 사회로 바뀌었다고 설명하며, 인간의 생산력을 더욱 더 극도로 발전시키면 자연스럽게 부르주아 사회가 철폐되고 프롤레타리아 사회가 올 것으로 보았다. 강 박사는 강의에서 이 부분을 들어 "마르크스에 대해 근본적으로 오해되는 지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공산당 선언>은 마르크스가 억압받는 노동자들을 행동을 독려하기 위해 쓴 글이니 글자 그대로 믿으면 곤란하다는 얘기다.

"<공산당 선언>은 노동자들이 억압받고 있을 때 나온 책이에요. 마르크스는 탁월한 선동가였습니다. 노동자들이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본가와의 관계를 끊고 일어서야 합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의 직접적인 행동을 독려하기 위해 <공산당 선언>에서 '세계적, 역사적인 흐름은 생산력 발전이고 생산력은 노동자에게서 나온다'는 도식을 만든 겁니다. 헤겔의 '세계정신' 개념을 마르크스가 차용한 것이에요. 노동자들에게 '역사는 이렇게 되어 왔어. 그러니 너희는(노동자) 어차피 이기게 되어 있어'라는 느낌을 주려고 한 것이지요. 그래서 <공산당 선언>을 그대로 믿으면 마르크스는 헤겔의 이상한 버전이 됩니다."

헤겔의 '세계정신'은 말 그대로 한 개인이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역사가 발전해 가는 시대적인 흐름을 의미한다. 강 박사는 "헤겔의 '세계정신'과 마르크스의 '생산력 발전'은 개인이 그 흐름을 통제할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하며 의문을 던졌다.

"'생산력 발전'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니까 개인은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프롤레타리아 세상이 올 때까지 닥치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마르크스가 과연 이렇게 얘기한 걸까요?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에서 마르크스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동력을 개인의 실천으로 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생산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며 통제되는 개인을 주장했을까요?"

강 박사는 "마르크스가 진정으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주어진 사회 조건에 맞춤한 주체적인 개인의 능동적인 개입이었다"고 말했다. 생산력이 발전하면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이 저절로 온다는 주장은 마르크스의 정치적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소련 공산당의 논리, 박정희와 비슷"

강신주 박사가 <오마이뉴스>에서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강신주 박사가 <오마이뉴스>에서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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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력의 발전을 강조한 <공산당 선언>식 마르크스주의는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강 박사는 마르크스 이후에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을 쓰고 그것을 공산당의 교리로 삼았던 소련의 스탈린을 예로 들었다.

"스탈린의 논리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당 조직이 이끌어가야 합니다. 개개인들의 삶은 당의 명령을 따라야 해요. 당을 지배하고 있는 스탈린 입장에서는 아주 편한 겁니다. 생산력 발전을 조절하는 곳이 바로 당이잖아요. 개인들은 그냥 당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노예가 되는 거죠."

강 박사는 "마르크스주의를 왜곡했던 스탈린이나 이런 국가주의를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공산당이 생기게 된 이유를 살펴봤을 때, 그것은 당연히 억압받는 노동자의 편이어야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는 1968년 프랑스에서 일어나 유럽 전역으로 퍼졌던 68혁명(드골 정부의 실정과 사회의 모순들로 인해 일어났던 저항운동과 총파업투쟁을 말한다) 당시 프랑스 공산당의 움직임을 예로 들었다.

"68혁명 때 혁명세력을 배신했던 것이 프랑스 공산당이에요. 68혁명으로 인해 드골이 망명하기 직전까지 갔을 때 공산당이 드골 편을 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68혁명은 무너지고 프랑스 지식인들은 공산당은 억압받는 자들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공산당에서 벗어납니다. 프랑스 철학에서는 68년 이후에 자크 데리다 등의 해체주의자들이 등장하는데요. 이들의 특징은 공산당을 포함한 인간 사회를 통제하는 모든 중심들을 해체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런 것들을 해체해야만 한명 한명의 개개인들이 삶의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소련식의 공산당을 공격하다 보면 철학적으로 '세계정신'을 언급한 헤겔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래서 68혁명 이후 프랑스 철학에서는 헤겔 철학을 공격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지요."

생산력 발전의 논리로 개인을 휘두르려고 했던 것은 소련 공산당뿐만이 아니었다. 강 박사는 "공산당이 이끄는 대로 계획경제를 해서 생산력이 발달하고 나면 모두가 여유롭게 될 거라는 소련 공산당의 논리는 보릿고개 넘어가기 위해서 시위하지 말라고 했던 박정희의 논리와도 흡사하다"며 "두 가지 논리 모두 사람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산력주의에 매몰되는 순간 사람들은 당에 지배되든, 자본가에게 지배되든, 독재자에게 지배되든, 똑같이 수단에 불과해진다"며 "1980년대 마르크스주의를 잘못 공부했던 사람들이 지금 한나라당에서 정치할 수 있는 비결이 거기에 있다"고 덧붙였다. 

마르크스가 꿈꿨던 사회가 오독된 이유는?

그렇다면 마르크스가 꿈꿨던 세상은 어떤 곳이었을까? 강 박사는 마르크스의 저작 <독일 이데올로기>를 인용해 "마르크스는 어떤 조건에서나 인간은 자유로운 공동체라는 이념, 즉 코뮤니즘(communism)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고 말했다. 코뮤니즘은 그동안 국내에서 '공산주의'라고 번역되어 왔던 단어다. '자유로운 공동체'를 가장 중시했던 마르크스의 코뮤니즘이 그동안 '모든 노동자가 생산 수단을 공유하는 것'을 가장 중시하는 공산주의로 그 본질이 오독되어왔다는 것이 강 박사의 설명이다.

"코뮤니즘은 프랑스에 있었던 파리 코뮨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말하는 거예요. 억압도 없고 지배도 없고 자발적이었던 사회죠. 기본적으로 억압이라는 것은 내 삶이 누군가의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에 삶이 억압인 이유는 그가 스스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원하는 것을 만들기 때문이죠. 마르크스는 이런 점들을 모두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개인들이 자유롭게 발전하고 교류하는 공동체가 답이라고 본 거죠."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우리는 오늘날의 상태를 지양하는 현실적인 운동을 코뮤니즘이라고 일컫는다"고 말했다. 코뮤니즘이 우리가 실제로 도달할 수 있는 어떤 명시적인 지점이 아니라 현실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가 그것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얘기다.

강 박사는 "코뮤니즘에 대한 마르크스의 이러한 생각들은 결국 스탈린 등의 일국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오독됐다"며 "자신의 생각이 오독될 것을 직감하고 있었던 말년의 마르크스는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는 설명과 함께 강의를 끝냈다.

수강생들이 강신주 박사의 '정치철학 특강'을 수강하고 있다.
 수강생들이 강신주 박사의 '정치철학 특강'을 수강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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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오마이뉴스>는 현재 진행 중인 '정치철학 특강 1부' 강좌에 이어 오는 2월 9일부터 마르크스와 벤야민, 기 드보르, 랑시에르를 잇는 흐름 속에서 진보적 정치에 대한 철학적 성찰과 실천을 모색하는 '정치철학 특강 2부' 유료 강좌를 마련했다.

2~3월 매주 수요일 저녁 전체 8강 규모로 열리는 '정치철학 특강 2부'에서는 기 드보르의 <스펙타클의 사회>와 발터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칼 마르크스의 <독일 이데올로기> 등의 교재들을 통해 '인간적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할 정치가 무엇인지 살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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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코뮤니즘, #강신주, #정치철학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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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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