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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배우 정우성이 부상당해 촬영을 마치지 못한 <아테나 : 전쟁의 여신>은 결국 25일 결방했다.
 주연배우 정우성이 부상당해 촬영을 마치지 못한 <아테나 : 전쟁의 여신>은 결국 25일 결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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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거 투혼' 쯤은 이제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밀게 됐다. 이젠 '부상 투혼' 정도는 되어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시대가 됐다. 21세기, 한류의 흐름을 타고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는 대한민국 드라마의 위상 뒤에 숨겨진 제작 현실이다.

지난 25일 SBS 월화드라마 <아테나 : 전쟁의 여신>(이하 <아테나>)(오후 10시 방송)은 예정됐던 14회를 방영하지 못했다. 대신 그 자리에는 특별방송인 '<아테나> 스페셜 - 풀리지 않는 비밀'편이 방영됐다.

원인은 지난 23일 <아테나> 촬영장에서 발생했다. 23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경원대학교 지하주차장에서 액션신을 촬영하던 중 남자주인공 정우 역의 정우성이 차량 사고로 부상을 당한 것. 이 사고로 정우성은 오른쪽 무릎을 다쳤고, 곧바로 인근 병원 응급실로 향해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정우성의 부상은 심각한 편은 아니었지만 즉시 촬영장에 복귀할 정도로 경미한 편도 아니어서, 결국 이날 촬영은 중단됐다.

이날 정우성이 촬영하던 신은 14회 주요 장면인 인천대교 총격신과 연결되는 것으로, 결국 촬영을 마치지 못한 제작진은 특별방송을 대체 편성했다. SBS로선 지난 2008년 <바람의 화원>에 이은 2번째 사고였다.

<바람의 화원> 이후 2년... 개선되지 않은 제작환경

격렬한 액션신이 많은 드라마에서 부상의 위험도는 그만큼 높아진다.
 격렬한 액션신이 많은 드라마에서 부상의 위험도는 그만큼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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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방영 당시에도 여자주인공 문근영이 촬영 중 박신양이 휘두른 팔에 코뼈가 다치는 부상을 입어 결국 본방송 대신 특별방송을 대체 편성했었다. 이 일로 <바람의 화원>은 극 전개에 맥이 끊겨 시청률에 탄력을 받지 못했고, 결국 동시간대 경쟁에서 MBC <베토벤 바이러스>에 밀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아테나>와 같이 격렬한 액션신이 많은 드라마에서 출연배우들의 부상 위험은 늘 뒤따르게 마련이다. 아무리 조심을 하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고 해도 예기치 못한 돌발상황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주연배우의 부상으로 당장 방송이 불발되는 열약한 드라마 제작 현실이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바람의 화원>이후 2년이나 지났는데도 말이다.

사고가 난 날은 23일 오후였고, 이날 촬영분의 방송 날짜는 25일이었다. 방송을 불과 이틀 앞두고도 촬영을 마무리 짓지 못했을 정도로 <아테나>의 촬영 스케줄은 타이트했다. 그나마 <아테나>는 방송이 시작되기 6~7개월 전부터 촬영을 시작해 기존의 드라마보다 여유를 갖고 촬영을 해나갈 수 있었다. 정우성 역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테나>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영화제작과 동일한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아테나>의 제작사인 태원엔터테인먼트는 원래 영화제작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생방송과 같은 촬영이 이어졌고, 결국 주연배우의 부상으로 방송이 불발됐다.

다른 드라마로 눈을 돌려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SBS 수목드라마 <싸인>의 주연배우 박신양 역시 최근 다리 부상을 입었다. 다리 부상의 원인은 추위와 밤샘 촬영으로 인한 근육 경직. 다행히(?) <싸인>은 방송 불발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박신양은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권고에도 부상을 입은 다음날 촬영장에 복귀했다. 그리고 박신양은 자신의 트위터에 열약한 제작환경의 고충에 대해 토로했다.

"아직 촬영 중, 모두 잠을 안 잔다. 못 잔다. 정말 할 말이 없다. 밤 너무 많이 샌다. 누가 먼저 쓰러지나 내기하는 것 같다."

드라마 생방송화의 대안, '사전제작'의 어려움

SBS 수목드라마 <싸인>에 출연 중인 박신양 역시 다리 부상을 입었지만 채 회복하기도 전에 촬영장에 복귀했다.
 SBS 수목드라마 <싸인>에 출연 중인 박신양 역시 다리 부상을 입었지만 채 회복하기도 전에 촬영장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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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생방송화에 대한 문제는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지적됐었다. 드라마 방영 시작 2주 후면 여유 촬영분이 바닥나 이후부턴 분초를 다투며 밤샘 촬영은 예사로 이어지는 제작환경. 그 속에서 연기에 대한 연구와 깊은 생각은 할 겨를도 없이 대사 외우기에 급급한 배우들과 피로감이 누적된 스태프들이 만들어낸 완성도 떨어지는 드라마에 대한 비판의 결론에는 언제나 '사전제작'이 유일한 대안으로 언급됐다.

그러나 사전제작은 언제나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 외면 받아왔다. 방송사 자체제작이 아닌 외주제작사에 의한 드라마 제작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편성을 받지 못한 사전제작 드라마의 제작은 시작 단계에서부터 난관을 겪게 된다. 무엇보다 편성이라는 확실한 보증을 받지 못한 상황인 만큼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다. 재정상태가 열약한 대다수 외주제작사의 입장에선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설사 드라마를 완성시킨다고 해도 편성이란 관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아이돌 그룹 '애프터스쿨'의 멤버 유이가 주연한 드라마 <버디버디>는 지난해 3월 촬영을 시작해 11월에 끝난 100% 사전제작 드라마.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월화드라마 <역전의 여왕>의 후속작으로 MBC와 조율했던 <버디버디>는 결국 편성이 무산됐다. 이처럼 완성된 드라마가 편성을 받지 못해 방영이 불투명한 경우, 그 위험부담은 결국 온전히 제작사의 몫으로 돌아간다. 그 때문에 제작사는 사전제작을 꺼릴 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사전제작의 현실적인 어려움은 적지 않다. 잘못된 편성으로 작품이 빛을 못 보게 되는 경우도 그 중 하나. 예컨대 2009년 방영됐던 MBC 주말드라마 <탐나는도다>는 빼어난 영상미와 잘 짜인 이야기로 호평을 받았으나 오후 8시 주말드라마 타임에 편성되면서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시청자들은 "홈드라마 시간대에 16부작 미니시리즈를 편성한 탓"이라며 아쉬워했다.

이제는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

또한 편성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편성과 투자를 모두 이끌어내야 하는 만큼 제작사 입장에선 잘 나가는 소수의 특급 연예인의 캐스팅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동남아시아 및 일본시장에서 지명도가 높아 드라마의 해외 투자 유치와 수출에 용이한 소수 한류스타에 대한 쏠림현상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그러나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드라마 생방송화를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제2, 제3의 문근영, 정우성은 계속 나오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시청자들은 본방송 대신 대체 편성된 특별방송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배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링거를 맞고, 응급실에 실려가며, 때론 의사의 권고도 무시한 채 목발을 짚고서라도 촬영장에 복귀할 것이다. 쪽대본과 날림 편집으로 드라마는 후반으로 갈수록 엉망이 될 것이며, 그 피해는 시청자의 몫이 된다.

100% 완전 사전제작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50%, 70% 사전제작이라도 노력해서 정착시켜야 한다. 편성과 투자를 위해 소수 한류스타에게 목을 매고, 그로 인해 배우들의 몸값이 올라가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 좋은 방송콘텐츠에 대한 정부 지원도 필요할 것이다. 최근 고현정과 문근영은 인터뷰와 시상식에서 열약한 드라마 제작환경에 대해 토로한 적이 있다. 언제까지 우리는 배우들의 이런 모습을 봐야 할까.


태그:#아테나, #정우성, #사전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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