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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초청 당 소속 광역단체장 간담회에서 박맹우 울산시장은 반구대 암각화 보존과 관련한 입장을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문제는 사연댐 수위를 낮추면 거의 댐 기능이 사장된다는 점이다. 지금 1조 원을 들여도 만들지 못하는 댐의 기능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 지금 식수 공급도 안 되고 있다. 그렇게 한다면 맑은 물이 추가로 공급돼야 한다. 7~8만 톤 정도는 부족하기 때문에 그것을 정부에서 책임져 줬으면 하는데 아직 정부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문제는 대구, 경북의 양해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지난 해, 박 시장은 반구대 암각화를 2015년까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 시키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했고, 그에 앞서 작년 6월에도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해 사연댐에 수문설치안을 수용하여 댐수위를 낮추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진행하기 위한 전제로 제시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울산시 맑은 물 공급대책'의 실행이다. 그런데 이 사업은 시행에 필요한 기간이 2025년까지인 대형 사업이다. 다시 말하면, 2025년에 울산시민의 식수원 확보 이전까지는 사연댐 수위 조절은 없다는 것이 울산시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은 국보 반구대암각화의 붕괴위기와 사연댐의 물은 문화재보존과 부분적인 식수원이 상충하는 '난감한' 형국이다. 그러나 이 난감함은 사실을 정확히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나 그런 것이지 실제는 전혀 난감하지 않은 형국이다.

현재 울산시민부터 정확히 모르고 있는 사실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사연댐이 울산시 전역의 식수를 담당하는가?
답은 '아니오'다! 사연댐은 울산시의 일부 주민들의 식수를 대고 있다. 울산시가 마치 사연댐이 울산시민 전체의 식수원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사실의 호도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수위를 낮추면 사연댐은 기능정지인가?
답 역시 아니오다. 사연댐 수위를 낮추면서 발생하는 수원의 상실분은 하루에 약 3만 톤이다. 울산시는 이를 6만 톤이라고 주장해 왔는데 이번 시장의 발언에서는 그 수치도 8만 톤으로 늘었다. 그런데 이 상실분은 현재 울산시가 취수/정수하고 있는 낙동강물의 정수처리량을 늘임으로써 간단하게 해결된다.

울산시는 지금도 하루 14만 톤의 낙동강물을 고도정수처리하여 상수도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정수처리장의 시설용량은 하루 28만 톤이다. 그러므로 현재 울산시는 이 정수시설의 시설용량 가운데 절반만 가동하고 있다는 말이다. 사연댐 물을 대체할 수 있는 수량은 이 시설의 가동률만 높이면 해결된다. 마치 울산시는 시민들에게 정수를 필요로 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깨끗한 식수를 공급하는 듯이 사연댐 수질 걱정을 내세우는 것은 낯간지럽다.

셋째, 시장이 말하는 '정부의 책임'은 무엇이며, '대구,경북의 양해'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정부가 앞장서서 대구·경북 지역의 식수원인 운문댐의 물을 끌어다 울산으로 보내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구·경북의 양해를 바란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역시, 앞서 낙동강 정수시설의 가동률 상향조절이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또 한 가지 방법이 울산시에 의해 외면당하고 있는데, 바로 태화강 하상여과수 활용이다. 이 방법은 현재 하루 4만 톤 생산시설이 완료되어 있고, 시설계획량이 14.6만 톤이다. 이 시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울산시는 정부와 이웃 지자체의 선처를 바라야 하는 난감한 상황을 만들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여기에 나열한 사실 말고도 더 있지만 이 세 가지 사실만으로도 울산시장의 주장이 설득력없으며, 이웃 지자체로부터 외면받기 십상인 내용임이 분명해진다.

이런 사실을 울산시민들은 얼마나 알까? 기자와 통화한 한 울산시 시의원은 시의회에서조차 사실들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고 상황을 전했다. 그러므로 110만 울산시민들이 이런 사실들을 알 방법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울산시장은 201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반구대 암각화를 등재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이 공언에 과연 진실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은 현재 울산시장이 말하는 내용이 그 답을 잘 보여준다.

"그 동안에 보존대책에 대해 논의했으나 유로(流路)를 바꾸는 등 방법이 있겠으나 문화재 가치가 워낙 크고 경관도 아울러 보존해야 된다는 뜻에서 정부에서는 수위를 낮추자는 결론을 내고 있다."

인용한 내용 역시 같은 날 간담회에서의 발언에서 나온 말이다. '유로를 바꾸는 방법'을 언급하는 것은 세계유산 등재와 완전 모순되는 방법임은 이미 수년 전부터 밝혀져 재론의 여지가 없는 안이다. 이를 다시 입에 담는다는 것은 그의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인식이 수년 전에 멈추어 있음을 반증한다.

또, '정부에서 수위를 낮추자는 결론을 냈다'는 말에서 사연댐 수위 조절이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본인의 의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정부 권로를 따르는, 어쩔 수 없는 입장임을 은연중에 비치고 있다. 그런 그가 2015년 세계유산 등재 로드맵을 스스로 밝혔으니 이 또한 큰 모순이다.

지금까지 박맹우 울산시장은 세 번째의 임기를 거치면서 공약을 잘 지킨 시장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공약만큼은 전혀 그 평가와 어울리지 않는다. 이는 울산시장부터 반구대 암각화를 잘 모르고 있는 현실, 부실한 문화인식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2015년에 과연 반구대 암각화가 세계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울산시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10년 안에 등재되도록 하라는 요구에 반토막으로 기간을 줄여 추진력을 보이려 했다면, 이 또한 졸속행정, 박약한 문화의식 말고는 설명할 말이 없다. 식수 부족은 핑계 말고는 이해해 줄 방법이 없다. 어찌 보면 박 시장은 스스로 미로 속을 들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돌아서서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일 뿐, 가던 길은 불행으로 통할 길일 뿐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울산시의 식수원 확보를 보는 다른 시각
최근 가뭄과 수해의 극단적인 기상현상 속에 전국의 지자체는 상수도원 확보가 시급한 과제로 보고 있다. 이 문제해결에 비상한 노력을 기울이는 지자체 가운데 대구광역시는 가장 모범이 되고 있는 사례로 꼽히고 있다.

대구광역시는 일찍부터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프랑스 에비앙, 독일의 슈투트가르트의 사례를 면밀히 연구하여 '지하수 활용법'을 이용한 '동네우물 살리기'로, 앞서 든 두 도시의 미네랄 워터보다 훨씬 높은 품질의 식수를 시민들에게 공급하게 되었다.(매일신문 2010년 3월 16일 자 사설 등 참고)

대구광역시 역시 낙동강에서 취수하고 있었고, 해마다 식수공급 문제로 골머리를 앓기로는 울산시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전향적인 지자체의 추진력과 신선한 발상의 전환이 전문가의 자문을 적절하게 활용하게 만들었고, 이제 세계적으로 물 활용을 잘 한 도시로 꼽혀 조만간 '세계 물 포럼'을 개최하려고 하는 데 이르렀다.

울산시도 대구 식수문제를 자문한 전문가에게 문제를 의뢰했다. 울산시와 대구시의 차이라면 대구시와 달리 울산시는 구태의연한 방법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바로 중앙정부에 이웃 지자체 자원을 얻도록 해 달라고 의뢰하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는 태도에서 추진력이나 발상의 전환을 찾아보기 어렵다.

또 대구광역시는 해당 문제를 시민들과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했지만, 울산시는 시민들에게 막연한 불안감만 조장했을 뿐 정확한 정보도 주지 않았고, 해결의 노력도 보이지 않은 점에서 대구와 달랐다. 그 결과 세계유산급 문화재를 관할에 두고서도 그 경제적 효과를 누리기는 커녕 잃어버릴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대구시가 물포럼을 개최하게 되면 올해 세계 육상대회와 함께 도시의 위상이 급격히 올라갈 것이 뻔하다. 한편 세계 속에 우뚝 설 산업도시 울산은 무엇으로 위상을 올릴 것인가? 조상들은 울산에 위대한 선물을 남겼지만 운명은 어울리지 않는 행정집단을 만나게 하고 말았다. 울산시민에게도 그렇지만 우리 민족에게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울산시#반구대암각화#사연댐#상수도#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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