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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월화드라마 <아테나 : 전쟁의 여신>에서 조명호 대통령으로 분한 탤런트 이정길.
 SBS 월화드라마 <아테나 : 전쟁의 여신>에서 조명호 대통령으로 분한 탤런트 이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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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월화드라마 <아테나 : 전쟁의 여신>(이하 <아테나>)(오후 10시 방송)이 <아이리스>의 스핀오프(Spinoff) 드라마라는 사실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은 조명호 대통령(이정길 분)이 등장할 때다. 조 대통령은 전작 <아이리스>에서 현준(이병헌 분)에 의해 암살 위협에서 벗어난 후 대통령에 당선됐고, <아테나>에선 집권 3년차의 대통령이 됐다. 그를 보며 시청자는 이 두 작품이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이리스>에서 <아테나>에 이르는 이 한국형 판타지 첩보액션 시리즈가 기존의 서구 첩보액션물과 비교해 갖는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조 대통령의 존재다. 기존의 서구 첩보액션물에서 등장하는 고위관계자, 즉 윗선은 실무자급을 벗어나지 않았다. 국장과 실장으로 대변되는 실무자들이 사건을 진두지휘하거나 음모의 중심이 되어왔던 것과는 달리 <아테나>는 직접적으로 대통령을 전면에 내세운다.

NTS를 창설한 것도 조 대통령이었고, 실제 그의 딸은 '신형 원자로'를 노리는 검은 조직 '아테나'에 의해 납치되기도 한다. 전작 <아이리스>에서 그는 초국가적 군산복합체인 '아이리스'의 실체를 파헤치고 대한민국을 핵 테러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직접 현준을 만나 그에게 도움을 구하기도 했다. 이처럼 <아테나>에서 조 대통령은 이 모든 사건을 관장하는 커다란 축으로 작용한다. 바로 이 부분에, <아테나>의 본질이 담겨 있다.

<아이리스> 후 3년... 세계가 주목하는 국가로 성장한 대한민국

 극중 조 대통령은 신형 원자로 개발을 지시하고, 그 핵심인물인 김명국 박사의 망명을 계획해 권용국(유동근 분)에게 맡긴다.
 극중 조 대통령은 신형 원자로 개발을 지시하고, 그 핵심인물인 김명국 박사의 망명을 계획해 권용국(유동근 분)에게 맡긴다.
ⓒ SBS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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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가 <아이리스>에 비해 커진 건 NTS 내부의 과학수사실만이 아니다. <아이리스>에서 남북 간의 협조와 공조를 이루고(비록 그것이 아이리스라는 공동의 적을 상대하기 위한 임시공조에 불과했다하더라도), 핵 테러 위협에서 무사히 벗어난 대한민국과 조 대통령은 이제 신형 원자로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개발이 완료되면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핵 연료봉을 교체하지 않아도 되고, 방사성 물질도 쌓이지 않는,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신형 원자로 개발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조 대통령이 직접 나서 북한의 천재 핵물리학자 김명국 박사를 망명시키려는 계획이 <아테나> 첫 회, 첫 장면에서 그려진 건 <아테나>의 세계관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이 신형 원자로 개발의 진실을 알기 위해 미국 국토안보부(DIS) 동아시아 지부는 한국에 들어온 것도 모자라 NTS 내부에 사무실을 차리고, 러시아 정보부는 일본에서 김 박사를 납치하며, 북한은 호위사령부 박철영(김승우 분)을 특사로 내려 보내 상황을 파악케 한다. 이처럼 <아테나>에서 대한민국은 신형 원자로를 개발할 수 있는 국력을 갖춘 강대국으로 성장했고,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됐다.

그리고 조 대통령은 이 '세계가 주목하는' 대한민국을 친히 이끌어가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앞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을 먹여 살릴 핵심기술인 신형 원자로 개발을 실행하고, 그 개발완료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김명국 박사의 망명을 계획한다. 그 작전을 위해 권용관(유동근 분)을 만나 부탁하며, 이후 어렵게 개발한 신형 원자로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NTS를 창설한다. <아테나>의 초일류국가 판타지, 그 중심에는 조 대통령이 있다.

조 대통령이 꿈꾸는 초일류국가 판타지는 언뜻 달콤하게 다가온다. 그가 신형 원자로를 개발하려는 이유가 사익추구가 아닌 국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라는 점은 국가 지도자의 이상향을 그렸다고 느껴질 법하다. 또한 평화통일을 위해 북한과 직접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나, 신형 원자로 개발을 통해 대한민국이 갖게 될 이익을 북한과 나누겠다는 그의 모습은 개혁적이며 신선하게 느껴진다.

현 정권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조 대통령과 신형 원자로

그러나 그 달콤한 표피를 한 꺼풀 벗겨내고 나면 조 대통령의 초일류국가 판타지에서 현 정권의 그림자를 찾아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신형 원자로 개발이 완료되면 원전을 수주하러 나서겠다는 조 대통령의 모습은, 1년여 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 성공과 터키 원전 수주 계획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현 정권의 모습과 겹쳐진다.

또한 "북한이 우리의 진심을 모르고 도발해 온다면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강경하게 발언하는 그의 모습과, 비꼬는 북한 특사에게 닥치라며 강경하게 나가는 권 국장의 모습 역시 천안함, 연평도 사태 이후 대북 강경노선을 달리고 있는 현 정권을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아테나>에서 현 정권의 향수를 가장 강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은 바로 극의 핵심소재인 신형 원자로에 대한 부분이다.

극중 조 대통령이 신형 원자로 개발에 목을 매는 이유는 그것이 앞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을 먹여 살릴 획기적인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획기적인 기술개발을 위해 그는 김 박사 망명 작전을 지시하고, NTS를 만들며, 딸의 납치에도 굴하지 않는다. 실제로 신형 원자로가 완성된 뒤 해외 원전 수주를 통해 어느 정도의 경제적 이익이 발생하고 그것이 어떤 식으로 국민들을 먹여 살릴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단지 믿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믿음은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현 정권의 맹목적인 믿음과 일맥상통한다. 4대강 사업이 타당성이 결여된 국책사업이라는 반대편의 비판에 정부와 여당은 4대강 사업을 '국가를 살리는 미래사업'으로 명명하며 반박하고 있다. 4대강 사업이 수자원을 확보하고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정부, 여당의 맹목적인 믿음은 신형 원자로에 대한 조 대통령의 강한 믿음과 흡사하다.

부실한 토대 위에 얹어놓은 액션신... 볼수록 피곤해지는 <아테나>

 현직 첩보요원이 대통령의 딸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설정의 허점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현직 첩보요원이 대통령의 딸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설정의 허점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 SBS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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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토목, 치수사업이 아닌 과학기술에 대한민국의 경제와 미래를 걸었다는 점에서 <아테나>의 조 대통령은 현 정권의 이명박 대통령보다 조금은 나은 안목을 보여준다. 그러나 신형 원자로 개발이란 청사진 하나에 대한민국의 국운을 걸고, 그것을 맹신함으로써 그에 대한 물음을 원천봉쇄하는 조 대통령의 모습은 <아이리스> 후 3년, 대한민국이 진정 초일류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아테나>의 이야기가 나날이 볼품없어져 가는 건 처음부터 '왜'가 거세되고 맹목적인 믿음만이 가득한 이런 부실한 토대 위에 서사를 쌓으려 했기 때문이다. 아니,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부실한 토대 위에 그나마의 서사를 쌓으려는 노력조차 등한시한 채 할리우드를 표방한 자칭 블록버스터급 볼거리만 잔뜩 얹어놓았기 때문이다. 부실한 얼개를 액션신으로 땜질하려 들었기에 이 꼴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아테나>에서 수없이 등장하는 설정상의 허점들은 별다른 지적거리도 못 된다. 국정원 현장요원이었던 정우(정우성 분)가 현직 대통령 딸의 얼굴을 모르고, 그동안 베일에 감춰져 있던 비밀조직 '아테나'의 정체가 국정원의 테러조직 명단 업데이트로 밝혀지는 것 정도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많은 사건이 치밀하고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순한 우연의 남발과 설정의 허점으로 발생하는 건 별 것 아니다.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한다. 또 드라마는 현실의 축소판이다. 그러나 한 명의 천재 핵물리학자로 인해 개발 및 완성되는 과학기술. 그리고 그것으로 국민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대통령의 맹신은 굳이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이미 현실에서 피곤할 정도로 경험하고 있는 사실이다. <아테나>까지 거들 필요는, 없다.


#아테나#수애#이정길#유동근#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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