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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3일 아침 구정문 앞에서
▲ 구정문 앞 2011년 1월 3일 아침 구정문 앞에서
ⓒ 비정규직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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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31일 금요일 마지막 출근 날 아침에 나는 울산 현대차공장 구정문 앞에 가서 1인 시위를 하였다. 오전 6시에 일어나 나가니 여름과는 달리 주변이 어둠에 잠겨 있었다. 강추위가 지속된다는 기상청 보도에 중무장 하고 길을 나섰다.

두꺼운 옷에 장갑도 2겹으로 꼈다. 털모자에 귀마개 입마개도 했다. 아침 6시 50분께부터 섰는데 7시가 넘어도 날이 샐 기미가 안 보였다. 어둠 속에서 2010년 마지막 날 아침 출근하는 노동자가 많았다. 그동안 저녁에 주로 1인 시위 해왔으나 야간조가 출근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어 아침에 서게 된 것이다.

나는 왜 계속 1인 시위를 하고 있나

지난해 7월 22일 대법원에서 "법에 따라 2년 이상 근무한 이후부터는 현대차 정규직 근로자로 간주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억울해서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내긴 했지만,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품고 비정규직 노조에 자문을 구했었다. 변호사와 상담해보니 "불법파견 업체에게 사직서 낸 부분은 무효"라고 했다. "부당한 정리해고이므로 대법원 판결문에 적용 된다"고 했다. 나는 다시 비정규직 노조에 조합원가입을 했고 비정규직 노조는 나의 조합가입 원서를 받아들였다.

2000년 7월 초에 현대차 사내 하청업체에 들어가 일 잘해오다 2010년 3월 15일 느닷없는 구조조정이 휘몰아 쳐서 나는 정리해고 되었다. 당시 그 공정은 1년간 공사에 들어간다고 했다. 정규직은 1년간 유급휴직 한다고 했고 비정규직은 모두 정리해고 되었다.

그리고 9월 말까지 고용보험 타먹으며 버텼다. 고용보험이 끊기면서 가족 생계비가 걱정이었다. 건설 잡부라도 하면서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을 하는 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아침엔 1인 시위 할 수 없었고 저녁에 서기로 했다. 오후 8시부터 9시까지 야간조 출근이니까 낮엔 밥벌이 하고 저녁에 1인 시위를 이어가면 되겠다 싶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1인 시위. 힘들어도 나는 설 수밖에 없다. 커가는 자식들도 있고 아내도 있다. 불법파견으로 내게 부여된 권리를 나는 포기 할 수 없다. 비정규직 노조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 2000년 당시 1만여 명이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현재 8000여 명이라 한다. 10여 년간 2000여 명이 나처럼 해고 되었다고 한다. 필요하면 부려먹다가 필요 없어지면 언제든지 정리해고 되는 사람들, 비정규직 노동자. 올 해는 또 얼마나 나처럼 정리해고 될 것인지 알 수 없다.

[#1. 2010년 마지막 날] 현대차 구정문 앞 - 누군가 준 따뜻한 음료

어둡던 시야도 아침 7시 20분 쯤 되니 차츰 밝아졌다. 해가 솟아올랐다. 출근하는 사람들 얼굴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2010년 12월 31일 금요일 아침은 무지하게 추웠다. 중무장을 하고 갔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차가운 기운이 스멀스멀 내 몸속으로 천천히 파고들었다. 발과 손이 가장 시렸다. 두 겹의 장갑도 필요 없었다. 그날은 그만큼 강추위 날이었다.

"이거 하나 드세요. 추운데 고생 많습니다"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알 수 없었다. 나이든 한 분이 지나가면서 음료수 한 병을 주고 가셨다. 그분은 내 손에 음료수 한 병을 쥐어 주고는 이내 출입문 안으로 사라졌다. 그분이 주고 간 음료수는 따뜻했다. 고마웠다. 오전 8시, 2010년 12월 마지막 날 1인 시위는 끝났다.

[#2. 2011년 출근 첫날] 다시 1인시위 - 정규직은 다시 공장으로

아침 6시 일어나 옷을 두둑이 입고 다시 구정문 앞으로 갔다. 대법원 판결이 난 지 5개월이 흘렀고 해가 바뀌었으나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 현실은 바뀐 게 하나도 없다. 오히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진행된 불법파견 정규직화 요구에 현대차 사용자 쪽은 아직도 아무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새해 들어 출근 첫날. 작년과 다를 바 없었다. 여전히 출입증을 단 비정규직 노동자와 사원증을 단 정규직 노동자들은 먹고살려고 출근을 했다. 여전히 일용직 알바생을 찾는 업자와 하루 일당 벌려는 알바생이 북적거렸다. 바뀐 게 있다면 작년 말까지 보이지 않던 정규직 노동자가 출근한다는 것이다.

같이 일하던 정규직 노동자였다. 공사가 다 끝났나 보다. 새 공정 때문에 공사 들어간다고 그때 우리 비정규직은 모두 정리해고 당했다. 정규직은 유급휴가 떠났다. 공사 끝나고 다시 출근하는 정규직이 부러웠다. 나는 그때 정리해고 되었고 마땅한 직업도 없이 생계비가 부족해 빚내서 생계비 충당하고 있다. 아내는 벌써 빌려 쓰고 있는 생계비가 500여만 원이나 된다고 했다.

참 억울한 현실이다. 대법원에서 판결대로라면 불법파견에 대한 해결책으로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 배치해야 하고 나처럼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는 모두 정규직으로 복직시켜야 한다.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해결 된 게 없다. 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번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 속에서 몸에 불을 붙이기도 했고,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다쳐 병원에 입원하거나 구속되기도 했다. 또 수십 억 원이나 되는 손배가압류를 당하고 수백여 명에 대해 경찰 출두서가 배포되기도 한 상태다.

새해 아침도 여전히 강추위다. 어둠 속에서 선 1인 시위였는데 어느덧 날이 새고 해가 떠올랐다.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에게도 어둠이 걷히고 밝은 해가 솟아올랐으면 좋겠다. 힘든 생활이 이어지고 있는 내게도 하루 빨리 어둠이 걷히고 밝은 날이 왔으면 좋겠다. 언제 그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날이 올 때까지, 그날이 올 때까지 내 시위 용품 들고서 구정문 앞에서 '불법파견 정규직 복직 시위' 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노조에서도 출근 투쟁을 하였다.
▲ 1월 3일 아침 구정문 앞에서 비정규직 노조에서도 출근 투쟁을 하였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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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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