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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평구문화예술인협회 회장으로 선출된 정유천(53)씨는 두 달 전 롯데백화점 부평점 앞 상가 거리에 개업한 라이브 카페를 운영하느라 요즘 잠을 편하게 잘 수가 없다. 2010년 마지막 날 오후 3시 라이브 카페에서 만난 그는 아침 6시까지 호프집을 정리하느라 4시간도 채 못자고 나와 있었다고 했다. 눈은 퀭한 상태였지만 연신 전화를 받고 응대하는 그의 모습에서 최근 부평구문화예술인협회 회장으로 당선된 이후 바뀐 일상을 엿볼 수 있었다.

 

"록캠프는 언제나 현재진행형"

 

정유천 회장은 전업 음악예술인이다. 평소 모습은 이웃집 아저씨처럼 서글서글하고 소박한 이미지이지만, 전자기타를 잡고 하모니카를 부는 그의 연주 모습에선 이미 내로라하는 유명 기타리스트들 못지 않은 열정이 뿜어져 나온다. 노래도 정말 잘한다. 장르 또한 다양하다.

 

물론 그의 음악인생에 기반이 된 록(rock)을 바탕으로 모든 음악적 끼가 발산되지만, 라이브 카페의 주 고객층이 40~50대 중년 주부층인 점을 감안해 고전 팝송에서부터 댄스음악, 때론 조용한 발라드까지 음악장르를 두루 섭렵하고 있다.

 

이런 그도 1990년대 중반인 15년 전에는 당시 말조차도 생소했던 인디록음악 계통의 공연장인 '록캠프'를 운영했다. 그곳에서 후배를 양성하고 록문화를 확산시키고자 10여 년을 발로 뛰면서 양질의 인디씬(indie scene: 인디밴드)을 발굴해냈다. 그야말로 록 자체가 그의 청춘을 대변한 셈이다.

 

"97년에 록캠프를 시작해서 2006년에 그만 두었지요. 록캠프는 말 그대로 지금의 인디문화가 성장하게 되는 클럽문화의 효시였어요. 당시엔 몰랐지만 지금은 그런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대표적인 케이스로 루비살롱레코드의 리규영 대표가 지금 승승장구하고 있고, 그밖에도 로즈ㆍ써드스톤 등이 지금까지 관계를 맺어오며 멋진 활동을 펼쳐가고 있어요. 홍대 주변에 인디클럽이 생기게 된 배경도 어찌 보면 부평이 그 시작점이라고 말해도 손색없을 거예요. 행정적이나 제도적으로 이런 인디음악에 대한 재정지원의 폭이 조금만 넓었더라면 그만두지 않고 계속 성장해나갈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침묵)"     

 

정유천 회장은 당시 어려웠던 일을 회상하며 많은 아쉬움이 남는 듯했다. 당시 39세였던 그는 젊은 친구들과 함께 인디씬(indie scene)을 꾸려가느라 경제적 상황도 어려웠을 뿐더러, 새벽 1시까지 공연을 이어가느라 건강상의 문제가 생겨 10년 만에 록캠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후 그는 2006년에 강화도로 가 휴식기를 거친다.

 

하지만 강화도에 가서도 그는 음악적 열정을 멈추지 못하고, 뮤직캠프와 비슷한 라이브카페를 운영하며 연을 맺어온 인디밴드들을 초청해 주말공연을 이어나간다. 인디밴드 후배들이 마땅한 연주공간이 없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일종의 책임감 같은 것이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록캠프(rock camp)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라고. 문화적 대안공간으로서, 록 마니아층이 언제나 쉽게 공연장을 찾을 수 있는 그런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으로써 록캠프는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강조한다.

 

개인에서 공동체로, 나에서 남을 위한 삶을 생각하게 돼

 

정유천 회장은 이제 50대 초반을 막 넘어섰다. 하지만 록에 대한 열정이 언제나 그의 이미지를 투영하는지, 긴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의 외모에도 나이를 잊게 만드는 묘한 기운이 서려 있다. 특히 무대에 선 그의 모습은 매력적이다. 아마도 이것이 그가 언급한 1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한 계층을 아우를 수 있는 음악적 포용감이 아닐까 싶다.

 

"젊었을 때는 시야가 한정돼있었으나, 나이를 점차 먹으면서 교류의 폭이 넓어지고, 또 음악만 집중하기보다는 연극ㆍ사진ㆍ미술ㆍ서예ㆍ풍물ㆍ문학ㆍ무용 등 다양한 예술영역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시간을 더 할애하게 되었어요. 이것이 바로 개인에서 공동체로 전환하게 된 계기이고, 부평에서 45년을 살아온 나에게 지역예술계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전환점이 됐지요. 왜곡된 시각을 바로 잡고, 소외된 지역예술인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줘야하며, 전업 예술인들이 좀 더 안정되게 생활했으면 하는 바람들이 결국 이런 시각의 다양화를 가져오게 된 것 같아요"

 

정 회장에겐 자녀 세 명이 있다. 셋 모두 아버지의 끼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었다. 첫째 아들은 서예를, 둘째 딸은 국악분과에서도 서도소리 전공을, 그리고 막내인 셋째 아들은 현재 군대에 가 있지만 '힙합' 영역에서 나름의 터를 잡아놓았다. 정 회장이 공동체를 생각하게 되고 남을 위하는 마음이 더욱 생기게 된 건, 아마도 이런 가족 성원의 예술적 다양성도 한 몫을 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생활에 문화예술이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삶이 각박하고 삭막하겠어요. 숨 쉴 수 있는 공기가 필요하듯, 정서적 안정과 행복감을 맛보는 데 문화예술만큼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해요. 제3세계 가난한 나라의 행복지수가 더 높은 것도 이를 방증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 마음의 풍요를 누리기 위한 가교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예술인들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고마울 것 같아요. 힘든 생활과 어려운 활동으로 인해 안 그래도 서러운데 인식마저도 왜곡된다면 저희들은 더 이상 설자리가 없어집니다.(웃음)"

 

정 회장은 말한다. 공연작품이든 전시작품이든 많이 경험해본 사람이 시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이는 지역예술인들을 많이 활용하고 더 없이 아껴줘야 한다는 의미와도 같다. 결국 시민예술영역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희생하면서 앞장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 회장은 부평구문화예술인들의 역할과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정 회장은 부평구문화예술인협회 회장으로서 부평 문화예술축제의 진정성을 다시 찾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현재 협회에 속해 있는 7개 분야뿐만 아니라 다양한 아마추어 시민예술동아리들의 활동이 확대되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을 반영할만한 지역 고유의 축제가 그동안 없었다는 것이다.

 

"문화예술단체들끼리의 소통과 교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순수예술정신을 회복해야한다. 이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도 회복하고, 공동체적 신뢰도 회복할 수 있다. 특히 정책을 담당하는 행정가들이 문화예술 인식을 바꿔야한다. 아무리 좋은 공연장이라도 좋은 예술인들과 좋은 관객들이 참여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래서 중요한 건 시설투자가 아니라 사람투자인 것이다. 지역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다양하고 포괄적인 지원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인들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그런 의미에서 부평구 문화예술진흥조례는 빠른 시일 내에 만들어져야한다"

 

[정유천 회장 프로필]

 

1987년 밴드 '자유인' 1집 음반 발표

1991년 정유천 솔로 1집 '하나뿐인 지구'

1993년 정유천 솔로 2집 '빨간 사과'

1996년 밴드 '내츄럴 푸드' 결성ㆍ1000회 이상 공연

1999년 서울외국어대 인디페스티벌ㆍ클럽합법화 기념 대학로 공연

2003~2010년 결식청소년돕기 '사랑의 록 콘서트' 8회 연출ㆍ기획

2006년 썸머 록페스티벌 '비치붐붐' 기획ㆍ연출

2007~2009년 인천제야음악회 공연

2010년 부천무형문화엑스포ㆍ평창 동계올림픽 라이더스코리아 축제 공연 등

 

현재 부평구 문화예술인협회장, 인천밴드연합회장, 사)라이브음악문화발전협회 이사 겸 경기인천지회장, 대한민국 록페스티벌 추진위원, 사)한국음악저작권협회원, 인천아트프리마켓위원장.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부평구문화예술인협회, #뮤직캠프 정유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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