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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1일 신묘년 새해 아침 해가 힘차게 솟아 올랐다. 우리 조상들의 입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토끼에 관한 전설 중 대표작이라고 한다면 단연 토끼전을 들 수 있다.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약으로 토끼의 간이 좋다는 말을 도사로부터 전해들은 용왕은 자라에게 명하여 육지로 나가 토끼의 간을 구해오도록 한다. 용궁에 가면 높은 벼슬을 주겠다고 자라는 토끼를 꼬여 데리고 간다. 토끼는 자신이 속아 용궁에 왔다는 것을 깨닫고는 간을 꺼내 육지에 두고 왔다고 속여 살아난다는 내용이다. 토끼의 기지가 돋보인다.

 

또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가 있다. 결국 앞서가던 토끼가 낮잠을 자는 바람에 느림보 거북이가 이겼다는 내용이다.

 

신묘년 토끼해를 맞이하여 잘 알려진 위 두 이야기와 다른 토끼에 관한 우리 전설 몇 편을 소개해 볼까한다.

 

1. 토끼바위 <금강산 전설>

 

예로부터 조선의 금강산이 아름답다는 소문은 하늘나라 옥황상제도 잘 알고 있었다.

 

더운 여름날 금강산 상팔담에 서넛의 선녀들이 내려가 목욕을 하고 왔다는 소문이 하늘나라에 퍼지게 된 후로는 누구나 다 금강산을 한 번 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이 소문을 들은 성질 급한 토끼는 금강산 구경을 하고 싶은 마음을 도무지 참지 못했다. 달나라에서 절구를 찧을 생각은 접어두고 오로지 금강산 구경할 생각만 한 것이었다. 급기야 토끼는 옥황상제를 찾아갔다.

 

"옥황상제님, 제 소원이 하나 있는데 들어주시겠습니까?"

"그래, 무슨 소원인고?"

 

옥황상제가 토끼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름이 아니오라 저 아래 조선 땅에 금강산이 있다는데 아름답기가 그지없다고 합니다. 그 금강산 구경을 한 번 하는 것이 제 간절한 소원입니다."

"으음 그래, 너의 소원이 그렇다면 내 들어주도록 하겠다. 그러나 다만 보름달이 되기 전에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알겠느냐?"

 

옥황상제가 쾌히 승낙을 하며 말했다.

 

"예, 감사합니다. 반드시 보름달이 뜨기 전에 돌아오겠습니다."

 

토끼는 좋아서 얼른 감사의 절을 올렸다.

 

다음날 여기저기 금강산 구경을 간다고 온 하늘나라 곳곳에 소문을 내고 돌아다닌 토끼는 들뜬 가슴을 안고 금강산으로 내려갔다.

 

토끼는 외금강으로 내려와 세존봉 줄기를 타고 오르다가 금강문에 이르렀다. 그리고 눈을 들어 주변을 휘둘러보고는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에 벌린 입을 닫지 못했다. 봄에는 금강, 여름에는 봉래, 가을에는 풍악, 겨울에는 개골산이라 부른다는 금강산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병풍을 둘러친 듯 기암괴석이 울퉁불퉁 파란 하늘을 향해 높이 솟은 봉우리들 아래로 옥류동의 폭포가 하얀 무명필을 펼쳐놓은 듯 했다. 물길 가는 곳마다 맑은 소들이 거울처럼 하늘을 하나씩 담고 있었다. 은실을 뿌리는 듯 흐르는 비봉폭포, 구슬 같은 연주담, 이 물길들이 하나로 이어져 떨어지는 구룡폭포의 칠색 무지개가 서린 위용을 바라보면서 토끼는 넋을 잃어 버렸다.

 

그렇게 금강산 절경에 빠져 느릿느릿 거북이처럼 걸으며 구경하던 어느 날 저녁, 저 멀리 동해를 차고 오르는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토끼는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아차!" 하고 선 비명을 질렀다. 옥황상제와 약속했던 돌아가야 할 날짜를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네 이놈 토끼야! 어찌하여 너는 나와 약속했던 돌아올 날짜도 잊어버렸단 말이더냐! 느림보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 다니다니, 이제부터 넌 거북이가 되어라!"

 

옥황상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토끼의 몸은 서서히 거북이로 변해가는 것이었다.

 

"아아!"

 

토끼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달나라에서 절구를 찧느니 보다는 아름다운 금강산에서 지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금강산 세존봉 중턱에는 지금도 거북이 몸집에 토끼머리를 한 토끼바위라고 부르는 바위가 있는데 이게 바로 그때 옥황상제에게 벌을 받은 토끼라고 한다.

 

2. 벙어리가 된 토끼 <여수 오동도 전설>

 

자산에 살던 토끼가 아름답다고 유명한 섬 오동도 구경을 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바다에 막혀 오동도에 갈수 없었다. 바닷가에 서서 오동도를 바라보고 있는데 마침 거북이 한 마리가 바닷가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토끼는 재빨리 거북이에게 다가가 말했다.

 

"거북아! 나에게 저 오동도 구경을 좀 시켜주렴, 그럼 너에게 값비싼 보물을 줄게."

"그거야 물론 어렵지 않지. 그런데 보물은 정말 줄 거지?"

"그럼, 그런 걱정일랑 절대 하지마라."

 

그 말을 들은 거북이는 토끼를 등 위에 태우고 오동도를 향해 갔다. 한참 동안 오동도 구경을 실컷한 토끼는 거북이와 약속한 보물을 주지 않았다. 화가 난 거북이는 토끼의 가죽을 모조리 홀랑 벗겨 버렸다. 맨살이 벌겋게 드러난 토끼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때, 이곳을 지나가던 토신(土神)이 토끼 꼴을 보고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어허! 이놈 거짓말 하더니 꼴좋게 되었구나. 지금 저기 새하얗게 핀 억새풀꽃밭에서 뒹굴어 보아라!"

 

토끼는 토신의 말을 듣고 억새풀꽃밭에서 이리저리 뒹굴었다. 그러자 껍질이 벗겨진 몸에 새하얀 억새 풀꽃이 달라붙어 전보다 더 좋은 옷을 입게 되었다. 그러나 토끼는 이때부터 거짓말도 참말도 하지 못하는 벙어리가 되어버려 지금도 소리를 지르지 못 한다는 것이다.

 

3. 여우와 토끼와 두꺼비 <충남 부여 전설>

 

여우와 토끼와 두꺼비가 서로 친구가 되어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이 세 친구는 어느 날 함께 길을 가게 되었다. 여우가 맨 앞에 걷고 그 다음이 토끼, 걸음이 느린 두꺼비가 맨 뒤에서 어기적어기적 따라갔다. 그런데 맨 뒤에 따라오던 두꺼비가 커다란 떡을 길 가운데서 줍게 되었다.

 

"야! 떡 주웠다!"

 

여우와 토끼는 두꺼비의 소리를 듣고 뒤돌아보았다. 정말 두꺼비가 먹음직스런 커다란 떡을 손에 주워 들고 있었다. 어찌하여 앞서 가던 여우와 토끼는 그 커다란 떡을 줍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일까? 여우는 본시 길을 걸으면서 흘금흘금 뒤돌아보는 성질이 있어서 떡을 보지 못하고 지나쳐 버렸고, 토끼는 잘 조는 성질이 있어서 길을 걷다가 꾸벅꾸벅 조느라고 그 큰 떡을 보지 못하고 놓쳐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두꺼비는 앞만 보고 무작정 가다보니 그 떡을 발견했던 것이었다.

 

"야! 떡 주웠으면 친구지간에 함께 나누어 먹어야지, 어서 같이 먹자."

 

여우와 토끼가 말했다.

 

"안 돼! 이건 나 혼자 주웠다고!"

 

욕심 많은 두꺼비가 떡을 뒤로 감추면서 말했다.

 

"뭐야! 같이 길을 걷다가 나도 먼저 보았으면 주웠을 것 아니야! 그러니 같이 나누어 먹자."

 

여우와 토끼가 다짜고짜 덤벼들며 말했다.

 

"안 돼! 너희들은 먼저 가면서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지 않니. 이 떡은 내가 주웠으니 내가 임자다. 나 혼자 먹겠어."

 

두꺼비가 떡을 사납게 움켜쥐면서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이러다간 정말 저 맛있는 떡이 온통 두꺼비 차지가 되고 말 것이었다. 순간 여우가 잔꾀를 생각해 냈다.

 

"좋다. 원래 떡이라는 것은 술을 못 마시는 이가 먹는 것 아니냐. 그러니 우리 셋 중에서 술을 가장 못 마시는 이가 그 떡을 먹기로 하자. 어때?"

 

"좋아! 그렇게 하자."

 

토끼가 찬성했다.

 

"으응 그래, 그렇다면 그렇게 하자."

 

두꺼비도 엉겁결에 그만 찬성을 하고 말았다.

 

"그래, 나부터 이야기 한다. 나는 술 한 잔만 마셔도 인사불성 대취한다. 아마도 우리 셋 중 내가 제일 술을 못할 것이다. 토끼 너는 술을 얼마큼 하니?"

 

여우는 딱 한잔에 대취한다고 의기양양해 하며 토끼에게 물었다.

 

"허허 그래, 나는 밀밭만 지나가도 크게 취해 정신이 없어."

 

뭐라! 밀밭만 지나가도 취한다고, 그러고 보면 여우보다 토끼가 술을 더 못 마시는 것이었다.

 

"야! 두꺼비 너는 어떠니?"

 

토끼가 자신 있게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야! 말마라. 너희들 술 이야기만 들어도 지금 취해서 쓰러질 것 같아. 못 앉아 있겠어! 어어 취한다!"

 

뭐라고? 여우와 토끼는 할 말을 잃어 버렸다. 여우가 생각해보니 정말 이러다간 저 두꺼비의 입으로 맛있는 큰 떡이 몽땅 들어가 버릴 판이었다. 여우는 얼른 다른 꾀를 생각해 냈다.

 

"그래, 그렇다면 이렇게 하자. 우리 셋 중 키가 제일 큰 사람이 떡을 먹기로 하자. 어때?"

 

여우는 말을 하며 토끼에게 얼른 눈짓을 했다. 두꺼비가 떡을 혼자 차지할 판이라 토끼는 재빨리 여우의 말에 찬성하고 들었다.

 

"좋아! 좋아! 두꺼비 너도 그렇게 하자?"

"응 그래, 좋아 그렇게 하자."

 

두꺼비는 엉겁결에 또 그렇게 하자고 대답했다.

 

"봐라! 내 키는 하늘에 닿는다. 그러니 내 키가 제일 크다. 알겠지."

 

여우가 말했다.

 

"에게! 고작 그 정도야. 내 키는 하늘을 꿰뚫는다. 하늘 위로 높이 꿰뚫는다."

 

토끼가 말했다.

 

"야 이놈아! 거짓말 마라. 네까짓 게 어떻게 하늘을 꿰뚫는단 말이냐?"

 

두꺼비가 토끼를 보고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내 키는 정말 하늘을 꿰뚫는단 말이다!"

 

토끼가 말했다.

 

"그래, 그러면 너 그 하늘 위로 팔을 뻗쳐 휘휘 휘저어 봤니?"

 

두꺼비가 말했다.

 

"그... 그럼, 내 휘휘 저어봤지."

 

토끼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거기 뭐 벌렁벌렁 한 것이 혹시 손끝에 잡히지 않던?"

 

두꺼비가 말했다. 이걸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손끝에 뭐가 잡히지 않았다고 하면 시비를 걸게 분명하다고 토끼는 생각했다. 토끼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그래, 벌렁벌렁 한 것이 손에 잡히더라."

"오호! 그래, 토끼가 정말로 하늘을 꿰뚫은 게 사실이로구나. 대단하다! 사실은 토끼 네가 만진 게 내 턱이거든."

 

뭐라고? 두꺼비의 말을 들은 여우와 토끼는 굳게 닫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나 잔꾀의 대가인 여우가 어찌 가만있을 수 있겠는가! 저 꿀처럼 맛있는 큰 떡이 욕심 많은 두꺼비의 입으로 한꺼번에 죄다 들어가는 것을 그냥 넋 놓고 보고 있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고통이었다. 자존심이 잔뜩 상한 여우가 '에헴!' 하고 큰기침을 하며 요리조리 눈망울을 굴리면서 토끼와 두꺼비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본시 세상에는 아이와 어른이 따로 있는 법이고, 아이는 어른을 공경해야 질서가 바로 서는 법이다. 모든 먹을 것은 항상 어른이 먹어야 하고 아이는 참는 것이 미덕이고 예다. 그리하여 떡이라는 것도 나이 많은 연장자, 즉 어른이 먹어야 하는 법이다. 우리 셋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이가 저 떡을 먹기로 하자. 어떠니?"

 

그러면서 여우는 재빨리 토끼를 쳐다보며 깜박깜박 눈짓을 했다. 토끼가 생각하기에 가만있다가는 어차피 두꺼비의 입으로 들어갈 떡인데 여우의 말에 무조건 찬성하고 들밖에는 없었다.

 

"아암! 그래야지. 의당 나이 많은 어른이 떡을 먹어야지. 두꺼비 너는 어떠니?"

"응, 그래 그렇지. 장유유서라고 했거늘, 내 어찌 예를 따르지 않겠니. 그렇게 하자."

 

여우는 두꺼비의 대답에 속으로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나 태어나기를 저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함께 태어났다. 너희들은 이보다 빨리 태어나지 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무슨 소리! 나는 바람과 구름과 함께 태어났다. 원래 해와 달이 생기기 전에 바람과 구름이 먼저 생겼고 그 바람과 구름 속에서 해와 달이 생겼다고 했다."

 

이제 꼼짝없이 여우는 토끼보다 나중 태어난 것이 되고 말았다. 토끼의 말을 들은 두꺼비가 별안간 흑흑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야 이놈아! 떡 못 먹게 생겨 눈물이 나는가 보구나. 에구! 불쌍한 어린 녀석, 그 떡 이제 이 큰 형님에게 건네라."

 

토끼가 두꺼비의 우는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게 아니다. 이놈들아. 내 얘기 들어보아라. 내 큰 아들은 해와 달이 생겨날 때 죽었고, 둘째 아들은 바람과 구름이 일어날 때 죽었다. 너희들 얘기 듣고 보니 그 자식들 생각나서 내 눈물을 흘렸다."

 

"뭐... 뭐... 뭐라고!!!"

 

여우와 토끼는 두꺼비의 말을 듣고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그만 뒤로 벌렁 나뒹굴고 말았다.

 

위 세 이야기에서 우리는 토끼는 곧 민중 자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토끼를 보면 도무지 호랑이처럼 위엄도 없고 권력과는 거리가 먼 존재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또 토끼는 여우처럼 간사한 존재도 아니다. 속고 쥐어터지고 눌린, 그러나 항상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바로 토끼다.

 

토끼바위에서 나오는 금강산 구경을 간 토끼는 좋은 것을 보고 싶고, 가고 싶어하는 인간의 마음 그대로를 대변하고 있다. 물론 이야기의 또 다른 주제는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토끼의 행위를 들여다 보면 먹고 싶고, 보고 싶고, 좋은 것을 갖고 싶어하는 욕망에 자신을 송두리째 던져 많은 것을 잃고 마는 티 없이 순수한, 어찌 보면 바보같이 살아가는 민중 자신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전설 속의 토끼, 민중들과 많이 닮았네

 

벙어리가 된 토끼에서도 마찬가지다. 거북이에게 보물을 주겠다고 꾀어 오동도 구경을 실컷 했으나 결국 보물을 주지 않는다. 없어서 주지 못했는지 아니면 있어도 욕심 때문에 주지 못했는지 그 까닭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이 대목에서 토끼가 가진 보물이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꾸며 거북이를 속여 오동도 구경을 실컷 했다고 이해한다. 이는 가난한 토끼, 즉 민중이 자신의 불결하지도 탐욕스럽지도 않는 욕망(오동도 구경)을 꾀를 내어 실현한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끼가 받은 형벌은 가혹하다. 가죽이 벗겨지고 벙어리로 살아가야 하는 참혹한 형벌을 받는다. 이게 곧 민중 자신이다. 작은 죄를 짓고도 그에 몇 배나 되는 가중된 형벌을 참고 감내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곧 민중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오로지 자신의 탐욕 때문만으로 수많은 민중을 학살한 독재자나 혹은 수많은 죄를 짓고도 거짓말을 밥 먹듯이 일삼아 권좌에 오른 권력자들이 벌을 받기는커녕 나 잘났다고 큰소리 치며 떵떵 거리며 살아가는 후안무치한 철면피들을 보면 민중은 아직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부르짖고 있는 형국이니 어찌 벙어리가 된 토끼 신세가 아니겠는가.

 

여우와 토끼와 두꺼비 이야기에서도 우리는 적나라한 민중의 실상을 발견한다. 머리가 좋아 꾀가 많고 아무데서나 가리지 않고 자신이 최고라고 나서기 좋아하는 성질 급한 여우는 입만 살아서 나불거리는 간교한 지식인 혹은 언론인, 종교인의 자화상이다.

 

그렇다면 두꺼비는 누구인가? 큰 떡을 손에 거머쥐고 혼자 먹겠다는 권력자 재벌, 관리이다. 토끼는 민중 자신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이야기에서 세 동물의 걷는 모습에서도 여지없이 실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의심이 많아 흘금흘금 뒤돌아보기 좋아하는 여우에게서 교활한 지식인의 모습을, 앞만 보고 걷는 두꺼비에게서는 거만한 권력자의 모습을, 걷다가 조는 토끼에게서 일상에 지쳐 고단한 그러나 바보스런 민중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어리숙한 토끼는 영리한 여우의 꾀에 속아 부화뇌동 넘어가지만 결과적으로 여우보다는 강자다. 그러나 두꺼비는 탐욕스럽고 우직하고 미련스럽지만 결국 항상 최후의 승자가 되고 만다. 재빠르고 머리 좋은 간사한 여우는 제 꾀에 망하고 갈팡질팡 토끼는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한다. 두꺼비는 어기적어기적 느림보 같으나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게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면서 가진 것을 절대로 나누려하지 않고 앙큼하게 모든 것을 독차지한다. 어찌 작금의 탐욕스럽고 사악한 권력자와 재벌, 관리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 즉 전설은 이렇게 세계 어느 민족의 이야기보다도 세상의 실상을 정확히 꿰뚫어 그 진실한 내면을 숨김없이 열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전설은 서양의 것에 짓눌려 흔적 없이 사라지고 있다. 2011년 1월 1일, 신묘년 토끼해를 맞이하여 우리는 우리 조상들이 들려주는 토끼, 즉 민중 자신의 실상을 깊이 헤아려 깨닫고, 제발 민중 자신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힘찬 역사를 새로 써가는 위대한 한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새로 쓰는 한국의 전설을 오마이뉴스 블로그(http://blog.ohmynews.com/koldstory)에서 연재하고 있으니 많은 관심 바랍니다.


태그:#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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