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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청량리에 갈 일이 없는 건가?
▲ 경춘선 이젠 청량리에 갈 일이 없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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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을 끝으로 경춘선 열차가 멈춰 섰다. 오랜 시간 많은 젊은이들을 대성리, 강촌, 가평, 춘천 등지로 부지런히 실어 나르던 바로 그 열차. 그리고 그 자리에는 대신 경춘선 복선전철이 들어섰다. 서울 상봉을 출발해 춘천까지 가는 전철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1주일이 지난 요즘에는 경춘선 전철 안에 노인들이 북적인다고 한다. 65세 이상 노인들에게는 전철이 무료이기 때문일 터인데, 과거 청춘의 상징이요, 로망이었던 경춘선이 이제는 노인들의 회춘의 상징이 된 것은 시대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이름에 봄을 품고 있는 춘천의 얄궂은 운명인지도.

경춘선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본 호사가들의 이야기는 거의 대동소이했다.

'내가 왕년에 좀 탔었던 춘천 가는 기차가 사라지니 매우 아쉽다'

젊음의 길
▲ 춘천가는 철로 젊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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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자주 들렀던 그곳
▲ 강촌역 꽤 자주 들렀던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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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서울, 경기 지역을 살아왔던 청춘 중에 경춘선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슴 설레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는가. 청춘의 해방구로서, 지친 일상을 탈출하고 싶을 때면 으레 떠올리던 그 덜컹거리던 기차 창밖의 풍경.

물론 나 역시도 경춘선과 관련된 추억은 수도 없이 많다. 대학 신입생 MT 때 대성리역에서 내려 민박촌까지 걷던 그 철길변과, 밤새 마신 술 때문에 쓰린 속을 부여잡고 감탄했던 강촌의 물안개와, 첫사랑과 함께 2인용 자전거를 타고 갔던 얼어붙은 강촌의 구곡폭포 등등.

최근에 탄 경춘선은 3년 전 이모부가 돌아가시고 나서였다. 돌아가시기 직전 춘천을 가고 싶어 하셨지만 끝내 그 바람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으신 이모부. 생전에 그리 좋아했던 낚시 때문이었는지, 아님 '춘천'이란 단어가 서울 사는 이들에게 주는 아련한 향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종사촌 형은 아버지의 그 유언 아닌 유언을 지켜 고인의 뼛가루를 춘천 어딘가에 묻었고, 난 어느 늦은 봄날 이모부를 상기하며 경춘선을 탔더랬다.

생각만 해도 설레는 MT
▲ 경춘선을 기다리는 젊음들 생각만 해도 설레는 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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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경춘선의 마감을 이토록 아쉬워하는 걸까? 경춘선이 기차에서 전철로 바뀐다고 하더라도 구곡폭포와 물안개는 여전히 아름다울 것이고, 대학생들은 여전히 MT를 가기 위해 대성리역을 찾을 텐데 왜 사람들은 경춘선에 천착하는 것일까? 단순히 경춘선을 따라 형성되어진 추억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아마도 많은 이들이 사라지는 경춘선을 아쉬워하는 것은 결국 기차와 전철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덜컹거리며 서울-춘천 간을 달렸던 기차의 느낌을 그 대체 수단인 전철이 온전히 재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기차는 한 마디로 여행이다. 그것은 내가 있던 공간에서 낯선 공간으로 나를 데려다준다. 내가 기차를 타고 간다는 것은 그 공간이 나의 일상과 단절되어 있다는 뜻이며, 동시에 낯선 공간에 선 낯선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는 때때로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꾸며 기차를 타곤 한다. 김현철이 이야기 했듯이 기차는 조금 지쳐 있을 때, 내 생활이 쫓기는 듯할 때, 그리고 아무 계획 없이 무작정 떠나고 싶을 때 타는 교통수단인 것이다.

경춘선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았던 것은 결국 이와 같은 기차의 특성이 춘천이란 도시와 합쳐졌기 때문이다. 맑고 청정한 강원도 춘천의 이미지와 여행과 방랑이라는 청춘의 상징이 맥을 같이 하면서 경춘선은 많은 이들의 로망이 된 것이다.

전철화로 그 모습도 변할까요?
▲ 경춘간 간이역 전철화로 그 모습도 변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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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현재 새로 등장한 경춘선 전철은 어떠한가. 안됐지만 전철은 기존의 기차가 가지고 있던 단절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전철은 일상의 단절이 아닌 연장이다. 예전에는 서울과 독립된 객체로서 존재하던 춘천이 서울의 자장 안으로 들어오면서 광의의 수도권으로 편입되는 것이다. 수도권 전철 노선도에 경춘선이 들어오는 현실.

언론들은 경춘선 덕에 춘천 땅값 2배 가까이 올랐다며 호들갑을 떨지만 그것은 경춘선이 더 이상 일상의 탈출 공간이 아니라 일상의 연장 공간이 되어버렸다는 반증일 뿐이다. 출근길 63분이 된 서울-춘천 간 거리는 춘천도 서울의 베드타운으로 전락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징표이며, 더 이상 춘천이 기차 타고 떠나야 했던 여행의 목적지로 남기 어려움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아마도 춘천의 자본은 전철을 타고 서울로 향할 것이다. 소위 '빨대현상'이라고 불리는, 대도시가 주위 지역의 모든 것을 흡수하는 그 현상이 벌어질 테지. 조용하게 청춘들을 품던 춘천은 서울이란 거대 공룡의 식민화를 걱정하게 될 것이며, 아무리 지방자치제가 애를 쓴들 춘천은 서울과 비견될 만큼의 자립성을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경춘선 전철화가 가지고 있는 이면이다.

많은 이들은 사라져간 경춘선을 아쉬워하면서도 전철화가 시대적 대세라고 생각한다. 통신과 교통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맹목적인 믿음.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우리가 믿고 싶은 신화일 뿐이다. 빠른 통신과 교통이 우리에게 편리함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석훈이 이야기했듯이 빠름에 대한 숭배는 우리 사회를 직선으로 만든다. 그것은 굽이굽이 쉬어가며 뒤를 돌아보는 여유를 우리의 일상에서 앗아가며, 결국 과정이 생략된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풍토를 만들어낸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4대강 삽질은 느림의 미학을 잊어버린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요, 결정판인 것이다.

시대의 낭만, 경춘선이여, 안녕!

원조 막국수와 닭갈비를 먹으러 전철을 탈지도
▲ 춘천 막국수 원조 막국수와 닭갈비를 먹으러 전철을 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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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경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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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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