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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민주당 서울시의원들이 단독으로 '친환경 무상급식 조례안'을 통과시키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2일 예정되어 있었던 시정질문에 불출석하는 등 서울시와 시의회가 무상급식 시행 여부를 놓고 맞서고 있는 가운데 3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당이 복지의 탈을 씌워 앞세우는 망국적 복지포퓰리즘 정책은 거부하겠다"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지난 1일 민주당 서울시의원들이 단독으로 '친환경 무상급식 조례안'을 통과시키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2일 예정되어 있었던 시정질문에 불출석하는 등 서울시와 시의회가 무상급식 시행 여부를 놓고 맞서고 있는 가운데 3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당이 복지의 탈을 씌워 앞세우는 망국적 복지포퓰리즘 정책은 거부하겠다"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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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을 부자급식이라 부르고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 지도 제법 되었다. 오세훈 시장은 여전히 무상급식을 포퓰리즘이라 몰아붙이고 있고 곽노현 교육감이 언론 앞에서 자신과 정면으로 대화를 펼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겁하다"는 인신공격적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처음 망국적 포퓰리즘이란 말을 들었을 때, 왜 뜬금없이 '포퓰리즘'이란 말이 나왔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엔 오세훈 시장이 포퓰리즘이란 말을 단순히 대중에게 인기몰이를 하려는 행위로 해석했기 때문인 것 같다. 아쉽지만 포퓰리즘이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정치인이란 분이 이런 말을 쓰실 땐 무슨 의미인지 한 번쯤 찾아봤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포퓰리즘을 연구해 온 영국의 여성정치이론가 마가렛 캐노반(Margaret Canovan)에 따르면, 당대 민주정체에서 포퓰리즘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리는데, '신포퓰리즘'과 '정치꾼들의 포퓰리즘'이다. 물론 이 양자가 명확하게 갈리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 반드시 짚어야 할 점은 필자가 언급하는 것이 민주정체에서 나타나는 포퓰리즘이란 점이다. 만약 오세훈 시장이 언급한 것이 남미의 권위주의 국가에서 나타났던 포퓰리즘이라면, 지금 우리 현실이 권위주의 국가임을 오세훈 시장이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오세훈 시장의 '무상급식 포퓰리즘' 비난, 과연 맞는 말인가?

최근 민주정체에서 드러나고 있는 신포퓰리즘(New Populism)은 기득권이 인민의 권리와 이익을 무시하고 있기에 이들로부터 권력을 되찾아 인민에게 돌려주자는 운동이다. 전체를 기득권과 인민이란 부분으로 쪼개고 이를 맞서게 하는 이 운동을 움직이는 본질은 대중영합적 레토릭이 아니라 대중영합행위를 조장하는 한 사람의 강력한 정치지도자다.

신포퓰리즘의 대표적인 예로, 캐노반은 미국에서 로스 패롯이 벌인 대통령 선거 캠페인, 오스트레일리아 폴린 핸슨(Pauline Hanson)의 한국가당(One Nation Party), 캐나다 프레스턴 매닝(Preston Manning)의 개혁당(Reform Party), 많은 유럽의 사례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는 프랑스 장 마리 르팽(Jean Marie Le Pen)의 민족전선(Front Nationale), 오스트리아 외르크 하이더(Jörg Haider)의 자유당(Freedom Party), 이탈리아 움베르토 보시(Umberto Bossi)의 북부연맹(Northern League), 잠시 폭발적으로 분출된 예로는 네덜란드에서 핌 포르퇴인(Pim Fortyun)이 이끌었던 운동을 든다.

이 모든 운동에는 이 운동을 이끈 돋보이는 선동적인 지도자들이 있다. 2002년 네덜란드에선 의회 선거 바로 직전 포르퇴인이 암살되었는데, 암살 직후 포르퇴인이 동원한 운동은 바로 사라져버렸다. 포르퇴인의 사례는 신포퓰리즘 운동의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예인데, 운동이 제도적 정당구조라기보다는 개인적 리더십에 압도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이다. 결국 신포퓰리즘의 핵심은 강력한 정치지도자의 존재가 대중영합주의를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대중영합적 대중들은 '특정 지도자'의 주장이나 담론에 집중

정치꾼들의 포퓰리즘(politician's populism)은 "모든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자"는 일종의 전술로 전체 인민의 단결을 요구한다. 이 포퓰리즘 역시 주로 한 사람의 정치지도자를 중심으로 매우 개인화된다. 그 이유는 현대 사회의 매스미디어 덕분이다.

대중매체는 복잡한 정당이데올로기 구조나 이념을 집중 조명하기보다는 탁월한 한 정치지도자의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개인이 발휘하는 리더십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대한민국같이 전통적으로 강력한 리더십이 힘을 발휘해 온 나라에서는 더욱 이런 현상이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 정치꾼들은 이런 매스미디어의 경향을 잘 활용하여 자신의 입지를 넓히고 강화한다.

이들이 벌이는 운동은 정당정치가 제대로 자리 잡은 국가에서 정당의 대립구도를 흐리는 방향으로, 정당정치가 부패한 곳에서는 기존의 기득권 세력에 반대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전자의 예로는 영국의 토니 블레어(Tony Blair)가 있고, 후자의 예로는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르루스코니(Silvio Berlusconi)가 있다.

이런 두 가지 현상을 보면, 포퓰리즘에는 어떤 운동을 주도하는 강력한 정치지도자들이 반드시 존재한다. 대중영합적 대중들은 정당의 주장이나 담론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운동을 주도하는 정치지도자의 주장이나 담론에 집중한다.

'무상급식 반대' 활용하는 오세훈 시장이야말로 '포퓰리스트'

친환경무상급식 시행 여부를 놓고 오세훈 서울시장과 시의회가 맞서고 있는 가운데, 23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서 친환경무상급식연대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서울시당, 민주노총 서울본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의 무상급식 반대 광고 게재에 항의하며 무상급식 전면 실시를 요구하고 있다.
 친환경무상급식 시행 여부를 놓고 오세훈 서울시장과 시의회가 맞서고 있는 가운데, 23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서 친환경무상급식연대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서울시당, 민주노총 서울본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의 무상급식 반대 광고 게재에 항의하며 무상급식 전면 실시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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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오세훈 시장에게 묻고 싶은 것이다. 도대체 전면무상급식을 주장하는 강력한 야당의 정치지도자가 누구냐는 것이다. 야당에서 무상급식이 누구의 아이디어이며, 대중이 그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전체 시민들에게 똑같은 것을 제공하자는 주장이 포퓰리즘이라는 주장은 공허하다. 그렇다면 정치 권리의 평등한 분배도 포퓰리즘이라는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포퓰리즘의 입장에서 본다면, 오히려 오세훈 시장이 그 기준에 확실하게 들어맞는다. 전면무상급식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시민들이 인식하고 있는 이가 오세훈 시장이고, 대중매체들이 이런 오세훈 시장의 리더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아가 오세훈 시장은 자기가 내세우는 전면무상급식반대가 정파를 초월한 일이며 이런 일을 자신이 아니면 누가하겠냐는 주장을 통해 언론의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이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

반면 오세훈 시장이 지목하는 곽노현 교육감은 언론에 얼굴을 거의 드러내지도 않고 있는 실정이며, 곽노현 교육감을 대중에게 확고한 인지도가 있는 정치지도자로 규정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정작 제대로 된 포퓰리스트의 행보를 밟고 있는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을 두고 몹쓸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오세훈 시장의 논리가 기존의 포퓰리스트들보다 더 교묘한 것은, 전체(전면급식)를 부분(부자급식과 빈자급식)으로 쪼개고 이들을 맞서게 하는 전술을 쓰며 "부자들에게는 급식을 줄 필요가 없다"는 말로 가난한 이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반면, 이런 반대가 실질적으로 부자들의 정당인 한나라당의 이익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오세훈 시장이 좋아하는 선진국에서 무상급식은 가난한 이들에게 밥을 먹여주는 행위로 이해되지 않는다. 오히려 건강한 식단을 정부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확실하게 제공함으로써 청소년들의 건강을 향상시키고 이를 통해 질병을 줄이는 효과를 내어, 장기적으로 사회적 의료비용을 줄이는 좋은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이유에 근거해, 보수언론이 강조하는 이명박 대통령 '절친'의 아내 미셸 오바마는 '건강하고 굶주리지 않는 아이들을 위한 법안(Healthy Hunger-Free Act)'라는 이름으로 무상급식 확대법안을 만들어 심지어 저녁까지 제공하는 법안을 추진했고 이 법안은 이미 상·하원을 통과한 상태다.

디자인 서울이 '미래 세대의 건강'보다 중요한가

4일, 서울시 성북구 숭인초등학교 1학년~5학년 학생들이 '친환경 급식'을 먹고 있다. 성북구는 지난 10월 1일부터 성북구 공립초등학교 6학년에게는 친환경 무상급식을, 1학년~5학년에게는 친환경 식재료 차액을 보전하고 있다.
 4일, 서울시 성북구 숭인초등학교 1학년~5학년 학생들이 '친환경 급식'을 먹고 있다. 성북구는 지난 10월 1일부터 성북구 공립초등학교 6학년에게는 친환경 무상급식을, 1학년~5학년에게는 친환경 식재료 차액을 보전하고 있다.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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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시장은 재차 무상급식에는 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무상급식을 하려면 세금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인가? 지금 부과된 세금을 법대로 제대로 걷어선 할 수 없는 일인가. 진정 현재 배정된 예산을 조정해선 만들어낼 수 없는 재원인 것인가.

예를 들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장에 썼던 서울시 광고비 같은 것들이 미래 세대의 급식비보다 중요한가? 그 광고가 없으면 서울의 지명도가 떨어지는가? 정말 그런 종류의 돈을 삭감해서 급식비에 보태면 나라가 망하는가? 그리고 4대강이란 엄청난 자금이 들어가는 사업을 원하는 한나라당은 왜 부자들에게 세금을 올리는 대신 깎아주고 서민들의 복지비는 삭감해대는가?

나는 디자인 서울을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서울을 겉으로 디자인하는 데 드는 돈을 자라나는 미래세대의 전체 건강을 위한 건강한 식단 디자인에 조금 돌려 쓰는 것이 망국으로 가는 일이라는 의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한 사회가 세대와 세대 간의 교체를 통해 지속성을 갖는 것이라면, 한 사회 내 분배 정의에서 미래 세대의 건강보다 중요한 분배 기준은 사실상 없다고 보아도 좋다.

무상급식이란 교육의 차원에서 미래 세대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지키는 데 쓰이는 것 아닌가? 물론 돈에 미쳐 있는 사람들은 교육을 단순히 미래자원투자로 인식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한 사회의 정신이 건강하고 상식이 있다면, 교육은 미래세대가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고, 교육의 일부로써 전면무상급식은 공공기관이 미래세대의 건강을 도모하는 적극적 행위이며, 장기적으로는 사회의료비용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정책인 것이다.

'정치꾼은 선거를 위해 유권자 손을 잡지만, 정치가는 미래 세대를 준비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세훈 시장의 행보를 두고 차기 대권을 노리는 일종의 정치적 행위로 보고 있다. 오세훈 시장이 처음 정계에 발을 디뎠을 때 나는 오세훈 시장이 '건강한 보수'라고 생각했다. 정치가가 권력욕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권력욕은 정치가를 정치꾼으로 만든다. 정의론의 대가 롤스는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위해 유권자의 손을 잡고, 정치가는 미래세대를 준비한다고 했다. 오세훈 시장이 권력욕을 버리고 자신이 가졌던 건강한 보수의 초심에서 자신을 디자인하고 미래세대를 디자인하는 일에 나섰으면 좋겠다. 초심이 정치꾼의 권력욕이었다면 할 말이 없다. 지금 하는 대로 하라.

덧붙이는 말, 혹시 미국이 전역에서 전면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으로 오해하진 마시길 당부드린다. 무상급식이 확대되고 있다는 뜻이다. 미셸 오바마가 제안한 법이 통과가 되면 시행될 때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고, 미국에 오래 거주한 분들은 이 맥락을 건너뛰고 "살아보니까 무상급식을 안 한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핵심은 무상급식의 가치가 미국 의회에서 전체 공감을 얻고 확대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만권 기자는 현재 미국에서 정치학 박사과정 중에 있습니다.



태그:#오세훈, #무상급식,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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