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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한의사 김규만 시인이자 한의사 김규만. 그가 산악자전거(MTB)를 타고 티베트 속살을 꼼꼼하게 어루만진 <지나간 길은 모두 그리워진다>(바보새)를 펴냈다
시인이자 한의사 김규만시인이자 한의사 김규만. 그가 산악자전거(MTB)를 타고 티베트 속살을 꼼꼼하게 어루만진 <지나간 길은 모두 그리워진다>(바보새)를 펴냈다 ⓒ 이종찬

 

"티베트 자전거 횡단! 이 꿈은 오래 전, 아주 오래 전부터 꾸었던 막연한 꿈이다... 하늘에 피어오르는 구름같이 아득하고 지극히 피상적이며 비현실적인 꿈이었다. 다행히 그 꿈이 오래되면서 뿌리를 내리고 작은 싹이 자라게 되었다. 서두르지 않고 변화해가는 발효식품처럼 내 꿈도 조금씩 숙성되기 시작했다." - '꿈은 이루어지는가' 몇 토막

 

이 세상에는 참! 소리가 입에서 절로 나오도록 별의별 사람이 많다. 어떤 이는 나와 얼굴은 조금 닮았지만 마음 씀씀이가 아주 다르다. 어떤 이는 나와 얼굴은 전혀 딴판이지만 마음 씀씀이는 조금 닮았다. 삼라만상이 저마다 비슷한 것 같지만 자세히 바라보면 모두 그 생김새와 속내가 다르듯이 사람도 그러하다는 말이다.

 

참! 소리가 절로 흘러나오게 만드는 사람, 그가 시인이자 한의사 김규만이다. 그는 아들을 무등에 태우고 북한산 가파른 삿갓봉을 오른다.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마라톤 완주를 하기도 하고, 산악자전거로 타클라마칸사막도 가로지른다. 제주 서귀포에서 벌어진 철인3종 경기에 나갔다가 '똥꼬 시려오는' 오싹한 추억을 털어놓기도 한다.

 

그가 나아가는 발걸음만 보고 있으면 그는 분명 시인이나 한의사가 아니다. 모험가나 만능레포츠맨이 '딱'인 듯싶다. 그는 이번에도 산악자전거를 타고 그를 한의사로 이끌었던 티베트와 히말라야를 달라이라마처럼 넘었다. 참! 소리가 또 한번 터져 나온다. 사람들이 그에게 '만행의 한의사' 혹은 '만행의 시인'이라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중국 서남공정 통해 동북공정 속내 꿰뚫고 싶었다"

 

김규만, 지나간 길은 모두 그리워진다 ‘티베트 고원을 지나 히말라야를 넘어’라는 덧글이 붙은 이 책은 중국이란 공룡 아가리에서 잘근잘근 씹히고 있는 티베트를 새롭게 엿본다
김규만, 지나간 길은 모두 그리워진다‘티베트 고원을 지나 히말라야를 넘어’라는 덧글이 붙은 이 책은 중국이란 공룡 아가리에서 잘근잘근 씹히고 있는 티베트를 새롭게 엿본다 ⓒ 바보새

"필자는 중국 전문가도 티베트 전문가도 아니다. 여기에 쓰는 글은 지극히 지엽적이며 사적인 생각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와 가장 인접해 있고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실제로 잘 모르는 중국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중국이란 거대한 도가니 속에 들어가 있는 티베트와 히말라야를 주제로 개인적인 경험과 감상을 세탁하여 최대한 객관적인 관점으로 쓴 글이라는 사실을 밝혀둔다." - '머리말' 몇 토막

 

"고난은 자신을 성찰하게 하고 깨어있게 해준다"고 못 박는 시인이자 한의사 김규만. 그가 산악자전거(MTB)를 타고 티베트 속살을 꼼꼼하게 어루만진 <지나간 길은 모두 그리워진다>(바보새)를 펴냈다. '티베트 고원을 지나 히말라야를 넘어'라는 덧글이 붙은 이 책은 중국이란 공룡 아가리에서 잘근잘근 씹히고 있는 티베트를 새롭게 엿본다.

 

김규만. 그는 우리에게 아주 낯선 '티베트 의학'(Tibetan Medicine)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래서일까. 그는 예전부터 있었던 사암침법을 이리 찌르고 저리 찔러 '소문침법'으로 거듭나게 한 한의사다. 그뿐이 아니다. '모두가 살고, 모두를 살린다'는 '올리브(Allive)요법'을 널리 퍼뜨리고 있다. 그런 한의사가 왜 산악자전거를 타고 '만행'(?)을 했을까.

 

이 책은 모두 7부로 쪼개져 있다. 제1부 '멀고 험한 티베트 가는 길' 15꼭지, 제2부 '잠들지 않는 티베트' 10꼭지, 제3부 '돈키호테, 리체에 입성하다' 10꼭지, 제4부 '지고이지고이지고이!' 10꼭지, 제5부 '영원을 건너는 만트라' 10꼭지, 제6부 '꿈꾸고 탐험하며 발견하라!' 10꼭지, 제7부 '남은 길은 더 아름답게 가라!' 8꼭지 등 73꼭지가 그것.

 

여기서 말하는 '지고이지고이지고이!'는 지독한 외로움과 지독한 괴로움으로써만 지극히 높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만트라'는 아멘, 할렐루야, 샬롬, 나무아미타불 등 종교에서 기도를 할 때 외우는 주문이다. 부록에 실린 '나의 젊은 날을 지배했던 MTB', '자전거 타기', '안전한 MTB 라이딩을 위한 팁'도 산악자전거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다.

 

지난 4일, 낮 4시 30분 교보문고에서 열린 팬사인회에서 만난 김규만은 "티베트는 중국 전체 면적의 1/4이고 우리나라 면적의 12배나 되는 광대한 고원이었다"고 귀띔한다. 그는 "내가 티베트를 산악자전거를 타고 횡단한 것은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하면서 중국화가 진행되었고, 중국의 서남공정으로 절반이 줄어든 티베트, 인도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던 달라이라마를 통해 동북공정의 실체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사람에게 어느 정도 괴로움과 어려움은 '필요악'이다

 

"괴로움과 어려움과 아픔을 극복하는 것은 살아있는 자들의 의무이자 사명이며 으뜸의 패권이기도 하다. 이렇게 극복해가면서 살아있는 중생들은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고통과 어려움이 너무 커지면 사람은 일속자(一粟子, 조 한 알)로 변해버리고, 그보다도 더 커지면 존엄성이 그 아래에 묻혀버린다. 인간에게 어느 정도의 괴로움과 어려움은 '필요악'이라고 생각한다." - '고난에 살고 안락에 죽는다' 몇 토막

 

이번 티베트 산악자전거 기행은 김규만 혼자 간 것이 아니다. 7명이 함께 같다. 우리나라에서 사병, 하사관, 장교를 거쳐 프랑스 외인부대 출신인 철인 김연수, 사비를 들여 혼자 국제대회에 참가해 '애틀란타 올림픽' 출전권이란 기적을 가져온 MTB 1호 국가대표 권영학이 그 두 사람이다. 

 

나머지 다섯 사람은 대근(LD)이란 닉네임을 가진 단단한 철인 서성준, 프로야구 MVP를 뽑는 '한국체육기자협회' 회장이자 한겨레 신문 기자 권오상, 훤칠한 키와 미모에 강인한 여자 철인 이경주, komsta(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 명장 한의사 김병수, 에베레스트 등 원정대장을 여러 차례 맡았던 산악인 오인환이 그들이다.

 

이들은 산악자전거를 타고 라싸에서 티베트 고원을 지나 히말라야를 넘어 티베트 국경인 장무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페달을 밟는 다리도 아팠다. 배도 고팠다. 고소 증세에 어지럽고 구토가 났다. 신기한 풍습도 보았다. 희한하게 사는 모습도 피부로 느꼈다. '고난에 살고 안락에 죽는다'는 맹자 말을 수없이 주절거리기도 했다.

 

마침내 티베트를 달리는 7명은 속세에 묻은 때를 모두 티베트 바람에 날려버리고 운수납자가 된다. 구름이 가는 대로, 물이 흘러가는 대로 인연을 따라가는 누더기 옷을 덕지덕지 걸쳐 입은 그 승려 말이다. 그때 그들에게 티베트와 중국 속살이 신기루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이들은 그 신기루 속으로 들어가 마침내 신기루가 된다.

 

달라이라마 취미는 '고장 난 시계수리'였다 

 

"티베트를 세계의 지붕이라고 한다. 바람이 몹시 불어 구름은 새털처럼 흩날려가고 잠시 세상은 온통 잿빛 하늘로 덮여 있다. MTB는 그 음산한 공간을 뚫고 달리고 있다. 한때 그 을씨년스럽고 삭막하며 메마르고 거친 고원이 아름다움과 전율로 와 닿는 알 수 없는 정서적 야만(?)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던 적이 있다." - '잿빛 하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몇 토막

 

김규만은 일행 7명과 함께 온통 잿빛 하늘로 뒤덮인 티베트를 달리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잿빛 하늘의 우울한 심정은 잠시도 잠들지 않는 바람의 노래와 희박한 공기 때문에 깊게 마셔지는 서늘한 한숨들은 틈을 찾아 무법자처럼 쳐들어오는 한기가 어찌 아름다움이란 말인가?"라는 물음표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기 때문이다. 

 

그는 "너무 절박한 환경은 음미할 틈을 주지 않았다. 이 자유의 공간에서 우수와 감상에 젖을 잠시의 사치조차 없다면 너무 불행한 일"이라고 주절거린다. 그것도 잠시. 그는 마침내 그곳에서 잿빛 하늘과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는다. 티베트 사람들이 몸을 괴롭히는 오체투지를 통해 '마음의 자유'를 찾듯이 그렇게.

 

그는 티베트를 달리는 내내 달라이라마를 떠올린다. 1950년 티베트를 중국이 강제로 점령하면서 120만에 이르는 티베트인들이 살해되었다. 6000여 곳에 이르는 사원들이 파괴되었다. 1959년 달라이라마도 결국 온통 잿빛으로 뒤덮인 티베트 하늘을 가슴에 품고 티베트 소금장수들이 지나다니는 길을 따라 네팔을 거쳐 인도로 망명한다.

 

달라이라마는 지금도 망명정부에서 중국과 평화적인 해결책을 찾고 있다. 중국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는 그런 생각에 빠져 페달을 밟다가 문득 달라이라마 취미가 '고장 난 시계수리'라는 것을 떠올린다. 그래. "나의 고장 난 세계를 언젠가 그에게 맡기고 싶다... 안경알이 너무 커서 촌스런 Old fashion(?) 안경"도 바꾸어 주고 싶다. 달라이라마가 언젠가 고장 난 김규만 인생을 고쳐줄 것처럼 그렇게.

 

산악자전거를 타고 티베트 여행에 참가한 사람들  이번 티베트 산악자전거 기행은 김규만 혼자 간 것이 아니다. 7명이 함께 같다
산악자전거를 타고 티베트 여행에 참가한 사람들 이번 티베트 산악자전거 기행은 김규만 혼자 간 것이 아니다. 7명이 함께 같다 ⓒ 바보새

 

티베트는 새로운 희망 품게 하는 둥지이자 '피안의 땅' 

 

"참 거칠고 험한 하루의 여정이었다. 이곳 롱북곰파가 있는 곳의 고도가 5,050m라고 한다. 이 주위에 텐트사이트를 물색하여 도착하자 말자 텐트를 쳐야 했다. 밤공기가 비정해 보인다. 오늘은 추석, '더도 말고 덜도 말라는 한가위'에 찬바람 속에서 바로 텐트를 치고 식사 준비에 들어갔다. 나머지 사람들은 짐정리와 잘 준비를 했다. 밥을 먹고 나니 벌써 11시가 넘은 것 같다. 다들 숨 쉬는 것이 몹시나 힘든 모양이다." - '마지막 야영과 베이스캠프 나들이' 몇 토막

 

이인정(대한산악연맹, 아시아산악연맹) 회장은 "우리 산악인들에게 티베트와 히말라야는 말만 들어도 반갑고 가슴 떨리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글은 단순한 티베트 MTB 횡단기가 아닌 그의 사유와 감성의 깊이와 넓이를 새로이 가늠하게 한 인문학적 에세이"라며 "수직과 수평의 공간에서 그가 종횡무진하며 그린 도도(道圖, 길과 그림)함은 기대할 만하다"고 추켜세웠다.

 

박기성 <사람과 산> 편집장은 "라싸에서 장무까지 MTB를 타고 달린 이 여행기는 해발 4000m를 넘나드는 세계의 지붕, 5000m 넘는 고개를 몇 개나 넘은 길이었다"라며 "중국에 합병되어 자존심과 문화재와 자원을 모두 빼앗긴 티베트인들, 돈키호테처럼 무모한 도전을 일삼아온 자신의 인생 등 모든 사유를 자전거의 은륜(銀輪)에 싣고 법륜(法輪:Mani wheel)처럼 돌려가며 가풀막을 오르고 내리막을 치달았다"고 놀라워했다.

 

시인이자 한의사 김규만이 쓴 자전거 여행기 <지나간 길은 모두 그리워진다>는 자전거를 타고 티베트 고원을 지나 히말라야를 넘으며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느낀 만행이다. 그는 자전거 앞바퀴를 미래로 삼고, 뒷바퀴를 과거로 삼아 현재를 달린다. 티베트는 그에게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하는 포근한 둥지이자 '피안의 땅'이다.   

 

김규만(굿모닝한의원 원장)은 대학원에서 티베트의학(Tibetan Medicine)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문인>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만행(萬行)과 만행(蠻行, 오랑캐 발걸음)으로 얼룩진 삶을 살고 있다"는 그는 1984년부터 Yacht와 Wind-surfing을 시작으로 700Yacht Club Opening day Races 1위, 독도왕복 요트세일링, 100km 울트라마라톤, 산악울트라마라톤, 슈퍼맨 아이언맨 대회 등에서 완주했다.

 

1986년에는 MTB와 인연을 맺은 뒤 인도북부 라다크 MTB순환(스리나가르-레-마날리 2회), 티베트 MTB 횡단(라싸-장무), 카라코람하이웨이 MTB종단, 타클라마칸사막 MTB 종단에 이어 1988년에는 에귀디미디와 훼른리 리지, 1991년에는 동계에베레스트에 올랐다. 1993년에는 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komsta)을 만들어 초대 단장을 맡아 지구촌 국내외 오지 의료봉사를 여러 차례 다녔다. 지은 책으로는  <괴짜 한의사의 진짜 MTB이야기, 올댓 MTB>가 있다.


지나간 길은 모두 그리워진다 1

김규만 지음, 맵씨터(2014)


#김규만#지나간 길은 모두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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