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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맛있게 먹는 따끈따끈한 피자. 하지만 그 따뜻함이 한 사람의 노동의 대가임을 알고 있습니까.
 당신이 맛있게 먹는 따끈따끈한 피자. 하지만 그 따뜻함이 한 사람의 노동의 대가임을 알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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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오후 10시를 향하던 즈음, ㄱ치킨에 전화를 걸어 ○○치킨을 주문했다. 치킨배달은 대구에 있는 조카가 올라와야만 주문할 정도로, 나는 집에서 무엇을 주문하고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날은 10월 6일에 이사 한 뒤로 부모님과 오붓한 자리 한 번 못 가졌던 미안함을 털려고, '이 시간에 주문해도 될까'하면서 치킨집 전화번호를 꾹꾹 눌렀다. 20분 넘게 시간이 지났지만 닭 소식은 감감했다. 기다리는 마음 때문이었는지 꽤나 시간이 흐른 느낌이었다. 망설이다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아까 ○○치킨 주문한 집인데요, 닭이 아직 안 와서요."
"주소가 어떻게 되죠? 원래 한 30~40분 걸려요."
"아~ 네에~. 알겠습니다."

정말 한 40분 정도가 지나자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나가 보니 한 눈에 보기에도 고등학생 정도인 청소년이 주문한 음식을 내게 내밀었다. 치킨 값을 계산하고 콜라는 가져가도 된다고 말했다. 살짝 당황해 하는 그에게 "집에 콜라 먹는 사람이 없으니 학생이 먹어도 된다"고 했다. 300㎖짜리 작은 캔 콜라였지만 학생은 '횡재했다'는 표정을 짓고 세워둔 오토바이로 걸어갔다. 

청년유니온 회원들이 오토바이 배달을 의미하는 안전모와 면마스크를 쓰고 12월 21일 사망한 배달노동자 최씨를 추모하는 선전물을 들고 있다.
▲ '사람잡는 30분 배달제' 청년유니온 회원들이 오토바이 배달을 의미하는 안전모와 면마스크를 쓰고 12월 21일 사망한 배달노동자 최씨를 추모하는 선전물을 들고 있다.
ⓒ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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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높이라고 요구하는 노동조건

23일 청년유니온이 고용노동부가 있는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청년유니온은 고용노동부를 향해 청년들의 생명을 식게 하는 '30분 배달제'를 중단시키고 안전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기자회견 계기는 국내 대형 피자업체 체인점 배달원이었던 24살 최아무개 청년의 사망 사건이다. 최씨는 12월 12일 피자 배달 중 택시와 충돌하면서 크게 다쳤고, 지난 21일 끝내 눈을 감았다. 그는 부족한 학비를 벌기 위해 5개월 전부터 주말마다 배달노동을 했다. 그의 시급은 4500원이었고 배달 한 건당 400원을 추가로 받았다.

업체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현재 국내 대형 피자업체들은 '30분 배달제'라는 것을 운영한다. 주문 뒤 30분 안에 피자가 배달되지 않으면 가격을 할인해 주거나 아예 값을 받지 않는다. 문제는 업체가 손해 보는 피자 값을 배달원에게 부과한다는 점이다. 점포에서 거리가 먼 곳으로 가는 배달원들은 속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김영경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최씨의 사고를 택시기사나 본인 부주의로만 모는 것을 경계했다. 김 위원장은 "배달노동자가 (30분 배달제 때문에) 항시 불안하고 죽음이라는 노동조건에 놓인 환경이 문제"라며 "업체들의 관행과 고용노동부의 지지부진한 대책이 진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도 이런 제도를 시행하다 문제가 많이 발생해 없앤 제도를 왜 우리가 시행하냐"면서 배달노동의 근본문제 해결을 위해 "더 많은 청년과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행동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청년유니온은 12월 23일 과천 정부청사 고용노동부 앞에서 '청년들의 생명을 식게 하는 '30분 배달제' 중단과 안전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청년유니온은 12월 23일 과천 정부청사 고용노동부 앞에서 '청년들의 생명을 식게 하는 '30분 배달제' 중단과 안전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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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배달노동을 한 적이 있다는 선진혁씨도 "늘 불안하게 일했다"며 "정부에서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병철 청년유니온 10대 소모임장은 업체들이 "알바에게 신속만 강조하는데 고객서비스만큼 배달노동자의 안전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형근 서울지역모임장 역시 "피자를 만드는데 10분~15분 걸려 거리가 멀면 과속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다양한 업종에서 배달 일을 하는 청소년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다시 생각하자"고 말했다.

따뜻한 피자보다 안전과 인권 먼저 생각하자

청년유니온은 최씨의 사고는 "고용노동부의 관리 소홀과 피자업체들의 무리한 이윤추구로 발생한 명백한 인재"라며 "청년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30분 배달제' 영업형태를 중단하고 고용노동부가 영업형태 제재와 안전대책 수립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번 사태를 "한 청년노동자의 죽음에 산재처리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배달업 청년노동자들의 안전과 인권을 생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12월 14일자 <한겨레신문> 기사에 따르면 피자나 치킨집에서 일하는 배달원의 상당수는 아르바이트나 계약직으로 일하는 10대 청소년들이다. 이들은 일하다 다쳐도 고용불안 때문에 산재신청을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배달노동 종사자 인원이나 사고 발생률 통계조차 없다.

이날 기자회견과 관련해 배달피자 전문점인 도미노피자는 배달사원의 안전을 최우선하고 있다는 글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렇지만 어떤 방법으로 안전을 최우선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날 기자회견과 관련해 배달피자 전문점인 도미노피자는 배달사원의 안전을 최우선하고 있다는 글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렇지만 어떤 방법으로 안전을 최우선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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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모임이 많은 12월은 배달도 그만큼 늘어 사고도 2배 정도 높다고 한다. 가족모임이 있는 12월 마지막 주 아마 우리 집도 치킨 배달을 시킬 것이다. 그때는 주문과 함께 꼭 이렇게 말해야겠다.

"조금 늦어도 되니까 배달하시는 분이 안전하게 올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고용노동부가 나서야 해결된다"
[인터뷰] 조금득 청년유니온 사무국장
청년유니온 조금득 사무국장
 청년유니온 조금득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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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기자회견 배경은?
"올해 초 사업으로 30분 배달제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대책을 마련하려고 했다. 그런데, 배달업무라는 특성상 실태조사가 쉽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 고민 중이었다. 그러다 21일 24살 청년이 학비를 벌려고 피자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일종의 부채의식이 들었다. 꼭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업체 규탄과 더불어 이걸 방관하고 있었던 고용노동부에 책임을 묻고 안전대책을 세울 것을 촉구하려고 준비했다."

- 배달노동자 안전보건은 크게 주목받지 않아 왔다. 
"청년유니온은 정규직,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경제활동 인구에 잡히지 않는 청년 아르바이트생들 노동문제에 주목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을 벌이는 것이 큰 목표이다. 이 친구들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노동이 편의점이나 배달아르바이트다. 위험하고 최저임금을 못 받는 노동환경으로 불안정 노동을 많이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가 전반적인 청년의 중요한 노동문제라고 생각했다." 

- 올해 실시한 관련 사업이 있었나?
"배달 업무 실태조사가 어려워 (올해는) 보류했던 사업이다. 고용노동부 차원에서 실태를 조사하고 시정조치를 안 하면 굉장히 힘든 일이다. 피자를 계속 시켜 먹어서 실태조사를 할 수도 없고. 우리가 가진 책임의식을 담아서 고용노동부가 실태조사에 적극 나서라고 요구를 할 예정이다."

- 이번 사고가 난 사업장은 노조가 있는 것으로 안다.
"(노조와의) 연대를 염두에 두긴 했다. 우리가 업체를 밝히기 꺼렸는데, 국내 피자 대형업체에서 유일하게 있는 노조이기 때문이다. 탄압이 워낙 심해 잘못하면 (노조) 존폐위기까지 갈 수 있다. 우리가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태가 표면으로 올라올 수 있었던 것도 노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안다."

- 2011년에는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인가?
"기자회견 이후 어떻게 할지는 운영진 내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 앞서 말했지만, 이 문제는 고용노동부에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해결이 어려운 조건이다. 고용노동부에 정확한 안전대책을 세울 것을 요구하고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같은 유관기관과 함께 이 문제를 제도화시키려고 한다. 30분 배달제 중단 요구가 가장 시급하다. 노동부가 될지 청년유니온이 될지 모르겠지만 고충센터 운영도 필요한 것 같다. 배달 노동을 하면서 고민이 많은 친구들인데 쉽게 하소연할 곳이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일과건강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청년유니온은 ‘30분 배달제’를 경험한 청년 피자 배달 노동자를 찾고 있다. 그들의 경험과 피해사례가 또다른 배달 노동자 안전대책 마련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30분 배달제 문제를 나누고 싶은 노동자는 ‘전화_02)2633~0261 메일_union1030@paran.com 까페_http://cafe.daum.net/alabor로 연락하면 된다.



태그:#30분 배달, #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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