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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을 통해 지난 12월 8일~18일까지 조정래 작가의 <허수아비춤>에 대한 댓글 토론회를 진행했다. 기자를 포함해 총 15명이 작품에 대한 의견을 남겼다. 댓글 수는 70개. 이전에 출판사 <문학의 문학>을 통해 20권의 책을 제공했지만 책을 받아 읽은 독자들은 주눅들지 않고 소셜하게 읽고 토론을 나눴다. 인터넷 서평 이벤트에서 눈에 띄던 "주례사스러운" 멘트나 리뷰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하다 보니 조금 "세게" 나간 부분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읽은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고 공유하는 것이 독자와 출판사, 작가를 위해서 좋다는 암묵적 협의 같은 것을 느꼈다.

 

70개의 댓글을 분석해 보니 이야기는 총 5개의 물줄기로 흐르고 있었다. 첫째 작품성에 대한 토론, 둘째 <허수아비춤>의 대중성에 대한 부분, 셋째, 주요한 메시지인 경제민주화에 대한 토론, 넷째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에 대한 토론, 다섯 째 함께 읽으면 좋은 책에 대한 이야기였다. (페이스북 토론 전문보기)

 

허수아비춤의 작품성에 대한 거센 비판들

 

<허수아비춤>이 사회적으로 기여한 바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자 매서운 비판들이 나왔다. 완성도에 대한 문제제기가 가장 많았다. 한마디로 "뭔가 이야기가 나오 것 같으면서도 그냥 끝나버리는 게 아쉽다"(이준하)는 것이다. 조정래 작가의 역대 작품을 지켜봐온 권광선씨는 "왠지 급하게 써내려간 듯한 거친 숨소리가 여기저기 느껴진다"고 말했다.

 

작가의 목소리가 너무 강하다 보니 보니 짜임새가 부족해 클라이맥스를 느낄 수 없었다(김성훈, 김재원)는 평도 있었다. 다소 피상적인 작품세계도 문제가 되었다. 즉 경제민주화를 골든패밀리와 저항자의 관점으로 좁히다 보니 88만원 세대나 4천원 인생,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등 불공정하고 어두운 과제들을 방치한 것이 아쉽다(깔아논멍석)는 평가다.

 

등장인물의 성격묘사가 날카롭고 매력적(주성현)이라는 호평도 있었지만 인물들이 별 특징 없고 전형적이라는 비판이 우세했다. 상황 역시 미디어에서 보고 듣는 이야기라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평가였다. 작중인물로는 강기준이 호평을 받았는데 독자들은 강기준을 더 집중해서 그렸으면 하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통계와 계산에 능하고 임기웅변이 강하고 상관과 아내의 압박 등 작품 내의 포지션도 좋다. 실제로 작가가 가장 비중을 둔 인물이기도 하다.

 

작품의 관점에서 독자들이 대체로 동의한 결론은 "현실을 고발하는 데 일차적인 목적을 둔 작품"(이장규)이었다. 때문에 '사회과학 독자들'보다는 일반적인 독자들에게 더 호소력이 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하지만 반론도 있었다. 이승환씨는 "처음에는 작품이 다소 저속하게 느껴졌지만 상당히 의도한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평했다. 이처럼 독자 사이에서도 <허수아비춤>은 무척 논쟁적인 작품이다.

 

대중적인 의미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경제민주화"라는 화두는 오래 전에 알려졌지만 <허수아비춤>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만개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을 통해서 대중은 "경제민주화"라는 언어를 갖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품 자체에 대해서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 독자들이 "대중성"에 대해서는 이견을 달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허수아비춤>의 대중성은 언어에서부터 확연히 느껴지는데, 현학적 어휘보다 정감 있는 저잣거리의 언어들이 재밌었다는 독자들이 많았다. 특히 "많이 수컷스러운 용어들"(김재원)이 압권이다.

 

수십만 권의 판매고가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허수아비춤>은 많은 뜻 있는 경제학자, 시민운동가, 네티즌들이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여 했던 일보다 더 큰 결과를 보여줬다. 진정 문학의 힘이다. <허수아비춤>은 시민운동 진영에 이런 메시지를 주는 듯하다.

 

"늬들 너무 뜬구름잡는 거 아냐? 발을 땅에 붙여야지!"

 

시민운동, 노동운동에 대한 가혹한 비판

 

<허수아비춤>은 시민운동을 다루고 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시민운동에 대한 고민이 자연스럽게 흘렀다. 먼저 깔아논멍석이 포문을 열었다.

 

재벌기업들이 정부기능을 마비시켜 버리는 심각한 상황을 "시민사회단체의 힘"을 통해 경제민주화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신선함을 느꼈고 공감이 많이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시민사회단체는 얼마나 건강하냐?

 

"시민 없는 시민운동" 문제가 사회적으로 커다란 화두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이른바 시민운동 1세대들이 87년 양김 분열 이후 시민운동을 다져온 토대는 찬사를 받아 마땅하지만, 마치 국회의원처럼 시민의 대의적 기능에 몰두한 나머지 대중들과 직접 살닿는 부분이 무척 취약해졌다. 비정규직 노조와 정규직 노조의 차별은 "귀족노조"라는 말을 만들어냈는데, 2008년 촛불 이후 기존 시민단체의 대중성 문제가 또 한번 불거졌다.

 

기존 시민단체는 본의 아니게 영악한 소비자들이 지키고 있는 시장으로 떠밀려 나갔다. 자신들의 갈길을 묵묵히 그리고 도도하게 오던 행태에 대해서 시민단체들은 성찰의 시기를 가지게 된 것이다. 예컨대 참여연대가 촛불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든지, 민언련(민주언론시민연합)이 트위터와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어 네티즌들과 소통하는 모습은 장족의 발전이다. 그리고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철저히 대민 서비스라는 역할에 충실해 시민단체로서는 유일무이한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여전히 대중과 멀리 떨어져 있다.

 

노동단체도 예외가 아니다. 언론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은 언론인답게 가장 발빠르게 네티즌과 손을 맞잡았다. 2009년 9월 8일 유명한 여성삼국과 함께 미디어법 저지를 위한 바자회(탐탐한 바자회)를 열고 일상적으로 네티즌 친화적인 행보를 이어 왔다. 노동조합 중에서는 가장 독보적인 존재다. 공공운수노조(준)은 네티즌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조계사 김장담그기 행사, MBC 앞 라면쌓기 행사, 공감2009, 2010(사회공공성파괴 감시와 저지를 위한 공동행동)을 함께 해 네티즌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네티즌 행사에 이름을 올리거나 후원금을 집행하는 등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페이스북 독자들은 이와는 차원이 다른 시사점을 제시해 주었다. 경제를 쥐고 있는 힘이 매우 조직적이고,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그 권력이 매우 막강한 기업집단을 상대로 해서 과연 시민운동수준으로 민주화를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인 평가(안정우)가 요점인데, 이를 좀 더 본질적으로 말하면 "과거 헤게모니식의 사회 운동이 아니라, 개인의 공감을 획득하는것"(김성훈)이다. "네트워크는 확장할수록 강해진다"고 주커버그가 말했듯이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정보민주화를 이루면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김재원) 페이스북은 '기관'의 권한 을 축소시키는 대신 개인에게 권한을 부여했다. 이 점은 시민단체, 노동단체가 유의할 만한 대목이다.

 

정치민주화의 마이크를 들고 경제민주화를 외치다

 

경제민주화라는 말이 오랫동안 유통되었지만 "뜨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정치민주화라는 마이크를 들고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허수아비춤>이 있기 전까지 경제민주화를 가리키는 언어 자체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민주화는 정치민주화의 언어를 빌려 표현되었을 뿐이다. 진정한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경제민주화의 문법으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 독자들의 입장이다. 깔아논멍석은 <허수아비춤>에 담긴 한 메시지를 환기했다. "투명하지 못하고 도덕적이지 못한 기업들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대중들은 기업에게는 불매운동, 정치인에게는 낙선운동이라는 형식으로 "불매운동"을 갈고 닦아 왔다.

 

김광이씨는 통큰치킨 이야기로 경제민주화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치킨을 싸게 먹고 싶어하는 서민들을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저도 가난하니까^^"

 

<허수아비춤>의 관전포인트와 자매지

 

허수아비춤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경제민주화와 시민단체, 불매운동에 대해서는 앞서 얘기한 내용을 참조하면 되겠다. 소셜북스 커뮤니티에서 독자들이 가장 강조한 키워드는 바로 "자발적 복종"이었다. <허수아비춤>의 등장인물 박재우는 자발적 복종이라는 말을 직접 꺼냈다.

 

"대중들의 속성은 자발적 복종이다"

 

"더욱 잘 살기를 바라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제각각 교활한 이기주의와 약은 기회주의가 도사리고 있"고 자본가들은 이를 잘 이용한다.

 

<허수아비춤>과 가장 대비된 책은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이다. 최근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었다는 배순희씨는 소설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함께 읽어볼 만한 책으로는 <법률사무소 김앤장>이 있다.

 

깔아논멍석은 <삼성왕국의 게릴라>(프레시안북)을 강력 추천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는 삼성이라는 골리앗에 저항한 다윗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삼성 내에서 노조를 조직하려다 감옥에 다녀온 김성환 삼성일반노조위원장, 의정 활동을 통해서 삼성을 매섭게 몰아친 심상정 의원 등 삼성을 벌벌 떨게 했지만 좌절해야 했던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페이스북 토론회를 진행하면서 책 읽기가 훨씬 단련되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이는 책의 주제를 반추하고, 어떤 이는 확장시켜서 현실을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비판을 하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토론이 이루어진다. 페이스북은 책이라는 매체의 특징을 잘 살려주는 웹사이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태그:#허수아비춤, #조정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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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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