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합동참모본부가 연평도에서 해상사격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힌 지난 20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대합실에 설치된 TV 모니터를 통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TV 뉴스특보를 지켜보고 있다.
 합동참모본부가 연평도에서 해상사격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힌 지난 20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대합실에 설치된 TV 모니터를 통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TV 뉴스특보를 지켜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성탄절(또는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성경의 한 구절이다. 신의 아들인 예수의 탄생은 하느님께는 영광을 돌리는 일이고 그의 탄생을 맞이하고 기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평화가 임하는 일이라는 얘기다.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은 물론 비기독교인들도 기꺼이 함께 축하하고 즐기는 성탄절이 눈앞에 다가왔다. 성탄절에 세계인들은 가족과 친지의 재회, 화해와 용서, 사랑과 베품 등을 통해 인류의 평화를 되새긴다. 특별히 성탄절에는 누구도 상처를 주지 않고 누구도 상처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보편적 정서가 전 세계적으로 공유되고 있다. 이런 성탄절 정신은 전쟁에도 적용되곤 했다.

1914년 전쟁터에 찾아온 '성탄 휴전'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성탄절에 독일군, 프랑스군, 영국군은 총을 내려놓고 함께 성탄절을 축하하는 역사적 사건을 만들었다. 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있었지만 전쟁의 끝은 보이지 않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한 전선의 독일 군인들이 갑자기 부상자들을 어느 나라의 관할도 아닌 "노 맨스 랜드 (No Man's Land)"라 불리는 중간지대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프랑스와 영국 군인들도 부상자들을 옮겼다.

이들 세 개국 군인들은 안전한 중간지대에서 만나 얘기를 하기 시작했고 전쟁이 아니라면 서로 친구가 됐을 좋은 사람들임을 발견했다. 하루 전만 해도 서로를 죽이던 이들은 담배를 나눠 피고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23일이 되자 이 얘기가 전선 전체로 퍼졌고 다른 곳에서도 서로 총을 겨누고 있던 군인들 사이에 성탄절 동안의 휴전 약속이 맺어졌다.

군인들은 총을 내려놓고 자신들의 "집"인 참호를 장식했다. 이들은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음식과 선물을 나눴으며 낡은 축구공으로 함께 경기도 했다. 군인들은 성탄절을 축하하기 위해 "고요한 밤"을 각각 자국의 언어로 돌아가면서 불렀다. 그 전날까지 적이 되어 서로를 죽여야 했던 군인들은 모두가 이상하고 믿을 수 없는 그 상황을 최선을 다해 즐기고 성탄절을 축하했다.

물론 모든 전선에서 이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함께 성탄절을 축하했던 군인들은 그 후에도 서로를 죽이지 않고 "고의적 실수"를 저지르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이 감동적인 실화는 역사학자인 스탠리 와인트라웁이 쓴 <고요한 밤(Silent Night)>란 책에 자세히 묘사돼 있으며 2005년에는 독일, 프랑스, 영국, 벨기에, 루마니아의 공동 제작으로 <메리 크리스마스 (Joyeux Noel)>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보스니아 전쟁은 냉전 종식 후 평화를 기대하던 세계에 충격을 던져준 참혹한 전쟁이었다. 1993년 성탄절 전까지 휴전 협상을 하고 있던 세르비아,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대표들은 공식 휴전에 합의하기 힘들어지자 대신 크리스마스 동안의 휴전에 합의했다.

각각 정교회, 가톨릭, 이슬람 종교를 믿고 있던 이들 민족의 협상 대표들은 성탄절을 축하하는 며칠동안만이라도 사람을 죽이는 전쟁을 중단하고 평화와 화해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에 동의한 것이다. 전쟁이 만연된 상황에서 비록 대표들이 합의한 성탄절 휴전이 널리 지켜지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그들은 성탄절의 의미와 정신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성탄절에 즈음한 유감 3종 세트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구절로 상징되는 성탄절을 앞둔 이번 주에 우리가 접한 소식들은 전쟁의 한복판에서조차 성탄절의 의미를 되새겼던 위의 사례들과는 상반되는 유감스런 것들이었다.

물론 대한민국이 기독교 국가도 아니고 기독교인이 국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모두가 성탄절을 평화, 화해, 용서, 베품, 돌봄 등의 온갖 좋은 말과 함께 기억하며 축하함에도 불구에도 대한민국 땅에 성탄절을 앞두고 드리운 것은 평화가 아닌 전쟁의 그림자다.    

[유감①] 연평도 사격 훈련

연평도 사격훈련이 있던 20일 한반도 소식은 국제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씨엔엔(CNN) 뉴스 앵커는 지도에서 휴전선과 연평도의 위치까지 정확히 짚어가며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임을 거듭 강조했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통상적인 훈련으로 절대 북한을 겨냥한 군사력 과시의 목적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북한이 훈련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었고 때문에 북한이 그것을 빌미로 군사적 도발을 감행할 위험이 있음을 전 세계가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뒷골목에서 깡패와 한판 벌이듯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는 강경 입장을 설파하는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는 북한의 공식 입장이 나올 때까지 하루 종일 불안에 떨어야 했다.

이번 주에는 연평도에 이어 다른 군사훈련도 이어지고 있다. 육군은 23일 최대 규모의 육·공군 합동 화력훈련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또한 해군은 22일부터 강원도 거진항 동쪽에서 해상사격 훈련에 돌입했다. 이 훈련은 25일 성탄절에 끝날 예정이다.  

외교적 접근과 북한과의 직접 담판은 뒤로한 채 자국 영토 내에서의 전쟁과 인명 피해도 불사하겠다는 정부와 군의 허세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세계적인 축제이자 대한민국 국민들도 모두 좋아하는 성탄절을 앞두고 최소한 이번 주만이라도 전쟁의 악몽을 생각하지 않고 편안하게 지내고 싶다는 바람이 깨진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북한에게 남한 군사력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든, 군의 긴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든, 안보 정국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든 상관없이 성탄절을 전후한 며칠 만이라도 전쟁이 아닌 진정한 평화를 얘기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특별히 대통령도 성탄절을 축하하는 기독교인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더욱 유감스런 일이다.

[유감②] 한나라당 조찬기도회

지난 2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기독인회 조찬기도회에 참석회 신도들이 통성기도를 하고 있다.
 지난 2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기독인회 조찬기도회에 참석회 신도들이 통성기도를 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연평도 사격훈련 다음날인 21일에는 한나라당 기독인회가 주최한 조찬기도회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보도에 의하면 한나라당 의원들을 포함해 300여명이 모인 기도회에서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남북 긴장상황을 타개해야 한다는 주장을 "사이비 위장평화"로 규정하고 북한이라는 악의 세력에 맞서 그 옛날 십자군처럼 용기 있게 싸우자는 다짐이 있었다고 한다.

설교를 한 목사는 북한의 위협에 아랑곳하지 않고 "배짱 있게" 사격훈련을 실시한 대통령을 칭찬했다고 한다. 성탄절을 앞두고 열린 공식적인 기도회에서 전쟁과 전쟁준비를 정당화하고 칭찬하는 얘기들이 나왔다고 하니 이 사람들이 성탄절을 축하하며 "땅에는 평화"를 암송하는 기독교인들인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위선 없이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용기에 감탄하면서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종교를 악용하고 성탄절의 의미조차 기꺼이 잊어버리는 이들 기독교 정치인들을 봐야 하는 현실이 정말 유감스럽다. 

[유감③] 애기봉 성탄트리 점화

21일에는 최전방 애기봉에 성탄트리가 점화됐다. 지난 7년간 중단됐던 성탄트리가 '평화통일과 민족화합을 위한 애기봉 성탄트리 점등행사'라는 거창한 이름의 행사와 함께 세워졌다.

이 성탄트리에 대해 북한은 대북심리전을 위한 것이라며 "대형전광판에 의한 심리모략전은 새로운 무장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망동"이라고 위협을 담은 원색적 비난을 퍼부었다.

성탄트리를 빌미로 북한이 애기봉에 공격을 가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국방장관은 "과감하게 응징할 것"이라고 답했다. 평화와 화해를 되새기는 성탄절을 축하하기 위한 성탄트리가 남북 대결을 악화시키고 전쟁의 불씨가 될 가능성을 가지게 됐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다.

남과 북이 전쟁 불사를 운운하며 민감해진 시기에 성탄트리가 군사적 충돌의 빌미가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성탄트리를 세운 기독교인들도 성탄절에 "땅에는 평화"라는 성경구절을 읽을지 궁금하다.

평화는 무기와 전쟁으로 얻어지지 않으며 전쟁은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지옥이라는 것이 전쟁을 겪은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진리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전쟁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으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살아 있는 증거가 되고 있다.

우리가 겪은 한국전쟁도 평화가 아닌 남과 북의 완전한 몰락을 가져왔을 뿐이다. 지금 정부와 군은 무모하게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이런 명백한 역사적 교훈을 외면하고 있다. 성탄절을 진정한 평화의 화두를 복귀시키는 계기로 활용하지 못하고 종교를 오히려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쟁의 한복판에서 성탄절의 의미를 되새겼던 위의 두 사례는 깊이 성찰해볼 만한 이야기다.


태그:#성탄절, #남북 대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