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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최근 2년간 수주 물량이 없는 속에, 노사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최근 2년간 수주 물량이 없는 속에, 노사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 윤성효

"요즘 공장이 조용합니다. 망치 소리도 잘 안 들려요. 저물어가는 해 같은 그런 분위기입니다. 힘도 안 나고…."

 

수화기를 타고 전해오는 목소리에서 답답함, 배신감 그리고 분노가 느껴졌다. 스무 살에 입사해 어느새 쉰이 됐다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한진중공업지회 최우영 사무국장. 전면파업을 하루 앞둔 19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최 사무국장은 30년 동안 몸담은 한진중공업의 최근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부산 영도의 한진중공업지회는 20일 오전 전면파업에 돌입한다. 회사의 정리해고 방침 때문이다. 사측은 지난 15일 노조에 생산직 400명을 희망퇴직 형태로 정리해고하겠다고 통보했다. 12월 20일부터 24일까지 희망퇴직을 접수해 내년 2월 7일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를 하겠다는 계획이다.

 

사측 "구조조정 불가피, 타협할 수 있는 부분 아니다"

 

사측은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취한 조치라는 태도다. 영도조선소의 2009~2010년 수주 실적은 제로다. 그 결과 내년 4월 이후엔 일거리가 없는 상황에서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사측은 지난 11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영도조선소는 도크가 작아 대형 선박을 건조할 수 없고, 임금 등을 고려할 때 해외선사가 제시하는 가격으로는 영도조선소에 수주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이재용 한진중공업 사장은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영도조선소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며, 이는 타협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침체에 빠진 영도조선소와 달리, 한진중공업이 2008년 완공한 필리핀 수빅조선소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수빅조선소는 앞으로 3년 동안 작업할 물량을 이미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이 사장은 국감장에서 "수빅조선소의 인건비는 영도조선소의 20분의 1 정도"라며 가격 경쟁력을 강조한 바 있다. 영도조선소의 부지는 26만 제곱미터, 수빅조선소의 부지는 264만 제곱미터다.

 

사측은 이처럼 영도조선소에 객관적 한계가 있지만, 영도조선소를 포기할 계획은 없음을 강조해왔다. 수빅조선소에선 가격 경쟁력을 활용해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은 선박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영도조선소의 경우 고부가가치 선박을 건조하는 첨단 조선소로 만들겠다는 것. 이를 위해 영도조선소의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400명 희망퇴직'이라는 사측의 이번 계획은 이러한 판단을 근거로 하고 있다.

 

 한진중공업 사측이 15일 노동조합에 보낸 희망퇴직 통보 공문.
한진중공업 사측이 15일 노동조합에 보낸 희망퇴직 통보 공문. ⓒ 한진중공업지회

노조 "일거리는 안 가져오고 사람만 자르겠다는 건가"

 

그러나 노동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노조는 사측이 영도조선소를 회생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손쉬운 정리해고만 강제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최 사무국장은 "사측이 시도 때도 없이 정리해고 카드를 꺼내는데, 일거리는 안 가져오고 사람만 자르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영도조선소의 생산직 조합원은 1100여 명인데, 이 중 400명을 자르겠다는 건 사실상 조선소를 안 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사측은 지난해 말에도 구조조정 방침을 밝혀 노조와 심한 갈등을 겪었고, 노조는 올해 2월에도 전면파업에 돌입한 바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470명이 회사를 떠났다.

 

노동자들은 사측이 정리해고를 거듭 시도하는 것이 실제로는 간판만 남겨둔 채 영도조선소를 사실상 폐쇄하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

 

사측이 이야기하는 '영도-수빅 역할 분담론'에 대해 최 사무국장은 "회사가 말만 그렇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역할 분담을 위해 필요한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 사무국장은 "역할 분담 의지가 있었다면 회사는 영도조선소의 에너지 라인을 바꾸든, 도크 벽을 개조하든 뭔가 작업을 했어야 하는데 2년간 그런 게 없었다"고 비판했다.

 

영도조선소의 '한계'를 지적하는 회사 쪽 태도에 대해서도 최 사무국장은 "지난 10년 동안 영도조선소에서 4000억이 넘는 이익을 냈는데, 그렇게 흑자를 낼 동안 회사는 도대체 뭘 한 건가"라고 반박했다.

 

노조는 사측이 영도조선소를 살리겠다는 진정성이 있다면 "얼마 전 수빅조선소에서 수주한 8척을 영도조선소로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가 사측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근거 중 하나는 영도조선소의 수주 실적이 다른 조선사에 비해 유달리 부진하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올해 STX는 121척, 현대중공업은 80척을 수주했고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 역시 수주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를 근거로 노동자들은 사측이 영도조선소의 수주에 소극적이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최 사무국장은 "수주는 노동자들이 하는 게 아닌데, 수주가 안 된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건 곤란하다"며, "책임을 물어야 할 대상은 수주를 담당하는 조원국 상무를 비롯한 경영진"이라고 주장했다. 조 상무는 한진중공업의 오너인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한진중공업의 지주회사) 대표이사의 아들이다.

 

아울러 노동자들은 사측이 '400명 희망퇴직' 방침을 통보한 다음날(16일) 주주들에게 배당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분개하고 있다. 경영이 악화됐으니 인력을 대폭 줄이겠다고 나선 회사가 주주들에게 174억 원을 배당하겠다는 게 타당하냐는 지적이다.

 

최 사무국장은 "작년부터 이미 임금을 20% 이상 삭감했고, 정리해고만 없다면 고통 분담을 할 의지가 있다"며 "구조조정을 할 거면 조남호 대표이사가 사재라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가 있는 부산 영도구 전경.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가 있는 부산 영도구 전경. ⓒ 윤성효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걸어온 가시밭길... 그 끝이 정리해고?

 

이처럼 사측이 믿음을 얻지 못하고 있는 배경에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지난 30년간 걸어온 가시밭길이 있다.

 

민주노조가 만들어지기 전, 살인적인 노동 강도로 인해 "한진중공업에서는 목숨값이 장비 설치 비용보다 더 싸게 여겨졌다"고 당시 일했던 노동자들은 말한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4월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한창 조선업이 부흥기여서 인력이 모자랄 때였는데, 사방 1미터도 안 되는 좁고 환기도 안 되는 공간(탱크)에 구겨져 들어가 용접을 했다"며 "철판에 깔리고, 바다에 떨어지고, 거미줄처럼 엉킨 전깃줄에 감전되고, 사고로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처녀 용접공 1호'로 1981년부터 한진중공업에서 일했던 김 지도위원은 민주노조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다가 1986년 해고됐고, 아직까지 복직되지 않았다.

 

또한 김 지도위원은 정리해고 방침에 맞서 올해 1월부터 24일간 단식할 때 노동자들에게 띄운 편지에서도 1980년대 당시 "쥐가 빠진 물에 살얼음 낀 도시락을 말아 먹으면서도 버텼다"며 "그런데 저들은 (2010년에도) 여전히 30% 구조조정을 말하고 희망퇴직, 단협 개악을 말하고 있다"고 분개했다.

 

이에 대해 최우영 사무국장은 "김 지도위원 말이 맞다, 나도 다 겪은 일"이라고 말했다.

 

"새벽 3시, 크레인에서 바라본 세상은..."

"새벽 3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 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올 가을에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김주익 한진중공업지회장이 목숨을 끊었던 2003년 어느 가을 밤, 이제는 고인이 된 정은임 MBC 아나운서가 라디오 방송에서 읊조린 말이다. 잔잔하게 정곡을 찌르며 고인을 위로한 의미 있는 방송으로 지금도 기억되는 내용이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겪은 고난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1991년엔 박창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이 경찰에 연행됐다가 안양병원에서 의문사했다. 2003년엔 사측의 정리해고 방침에 맞서 김주익 지회장이 129일 동안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다 목을 매 목숨을 끊었고, 노동자 곽재규씨도 도크 아래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렇게 험난한 길을 참고 견디며 회사를 키워왔다고 자부하는 노동자들로서는 회사가 정리해고 카드를 번번이 꺼내드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최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숫자놀음이나 이른바 경제논리로만 이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피와 땀과 젊음을 조선소에 바친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삶의 문제로 봐달라는 것이다.

 

노조는 11월에도 하루 4~6시간씩 부분파업을 하며, '대한민국 조선 1번지'인 영도조선소 회생에 동참해 달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해왔다. 1937년 설립된 영도조선소는 그동안 부산 경제의 중추 역할을 해왔다.

 

최 사무국장은 "한진중공업 문제는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부산시민들 그리고 국민 여러분이 관심을 갖고 영도조선소 회생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또한 "부산시장, 여당 의원들 그리고 고용 창출을 강조하는 정부도 적극 나설 것"을 요구했다.

 

 부산시 한진중공업에서 129일째 크레인 고공 농성을 벌이다 2003년 10월 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김주익 지회장과, 같은 달 30일 도크에서 숨진 채 발견된 곽재규 조합원의 시신이 그대로 안치되어 있는 가운데 조합원들이 30여 개의 천막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부산시 한진중공업에서 129일째 크레인 고공 농성을 벌이다 2003년 10월 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김주익 지회장과, 같은 달 30일 도크에서 숨진 채 발견된 곽재규 조합원의 시신이 그대로 안치되어 있는 가운데 조합원들이 30여 개의 천막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한진중공업#영도조선소#정리해고#김주익#박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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