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6일 방영된 SBS 수목드라마 <대물>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서혜림(고현정)이 탄생했다. 흑막정치와 정경유착의 프레임에 갇힌 민우당 후보 강태산(차인표)을 제치고 대선 18대 대통령에 선출된 것이다. 기품 있게 대통령 취임식 연설을 하는 서혜림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첫 여성 대통령 탄생으로 말미암은 <대물>에 대한 관심은, 감동으로 번지지 못했다.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는 시청률 면에서도 그랬다. 종영을 앞두고 극의 가장 중요한 클라이맥스였지만 16일 시청률은 26.7%.에 머물렀다. 지난 9일 기록한 자체최고 시청률 27.7%도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이런 원인에 대해 시청자들은 창의적이지 못한 스토리를 지적한다. <대물>은 그동안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살짝 변형해 극에 반영하곤 했다. 아프가니스탄 피랍, 천안함, 한 여성 국회의원이 2006년 지원 유세 당시 했다는 "대전은요?" 같은 사건들을 따온 게 바로 그렇다.

 

하지만 10년도 지나지 않은 현실속 이야기의 재판(再版)은 시청자들에게 식상한 느낌을 들게했다. 16일 방영된 <대물>은 그런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날 극의 클래이맥스였던 대통령 선거 장면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2년 대선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듯 보였다.

 

<대물> 시청자들이 뿔날 만 했다. 첫 여성 대통령 탄생하는 결정적 순간까지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이것이'오마쥬인가, 아닌가'하는 논쟁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한 정치인의 인생역정을 고스란히 가져간 <대물> 제작진은, 특정인을 투영한 적이 없다며 오리발을 내민다.

 

아프가니스탄 피랍을 극에 넣은 것처럼. '극적 리얼리티를 살리다보니, (중략) 극적인 요소를 가져왔다'는 그럴듯한 이유를 댄 채 말이다. 그렇기에 <대물>의 '노무현 답습'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오마쥬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 보인다. 투영의 대상을 부정하는 오마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물>의 노무현 답습은 오마쥬가 아닌 다른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무엇보다 한 정치인의 삶을 아무런 양해 없이 베낀, 양심의 문제를 지적해야 할 것이다. 극적인 장면만 따왔다는 <대물>측의 변명은 궁색하다. 굵직 굵직 한 부분만을 짚고 빠르게 넘어가는 <대물>속 대선 과정에서 창작을 한 흔적은 쉽게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야권 단일화, 단일화 후보 지지 철회 같은 것이야, 백번 이해해, 극적이기 때문에 따왔다고 치자. 하지만 서혜림의 대선 광고 곡을 상록수로, 당 색깔을 노란색으로 설정한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2002년 대선 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상록수 노래를 불러 인기를 끌었고, 그 지지자들은 노란색 풍선을 상징과도 같이 흔들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을 상징하는 대표적 색깔도 노란색이었다.)

 

이것이 오마쥬가 아니라면, 노골적인 베끼기가 아닐까.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사건은 물론, 즐겨 부르던 노래와 상징적인 색까지 자신들의 창작물인양 가져가는 <대물>의 행태는 많은 시청자들에게 불쾌감을 주고 있다. 결국 <대물>이 말했던 첫 여성 대통령의 모습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생을 표절한 짝퉁이라는 생각에 말이다.

 

창작의 의무 저버린 <대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향수에 기대다

 

 

<대물>이 큰 포부를 갖고 첫 방송을 시작했을 때가 기억난다. 정말 큰 기대를 했었다. 세계 각국에 등장했던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 지도자들처럼, 대한민국도 드라마 상에서나마 그런 여성 지도자가 나올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 복지를 생각하는 서혜림의 정치 이상으로 볼 때 뉴질랜드의 여성 총리였던 헬렌 클라크와 비슷한 여성 대통령을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2002년과 2005년 국민당을 물리치고 총리로 선출돤 그녀는, 이후 근로자 가구의 육아 비용 지원, 국제연합(UN)의 이라크 파병 요청 거부등, 쉽지 않은 정치적 결정을 실행에 옮겼다. 국민의 시선에서 어려운 결정을 한, 매력적인 헬렌 클라크의 삶은 <대물> 속 서혜림의 롤 모델로 손색이 없었다.

 

비단 헬렌 클라크 뿐만이 아니라 여성 및 어린이의 권리를 향상시킨 방글라데시 전총리 셰이크 와제드 하시나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이라 지목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서혜림의 롤 모델로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대물>에 이런 새로운 여성 지도자상은 보이지 않았다. 

 

종영을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대물>에 대한 기대는 사라진지 오래다. '사회에 제대로 할 말은 하는' 서혜림 '은 6회 이후 영영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 등장한 '도덕책같이 바른말만 하는' 서혜림은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나는 도덕적으로 살고 싶고, 국회의원도 되고 싶어요.'라고 생각하는 듯한 6회 이후의 그녀는, 하지만 그 뒷감당은 보좌진들에게 넘기는 몽상가형 정치가였기 때문이다.

 

바른 말을 하는 정치인 서혜림, 하지만 그 책임을 지는 결단과 노력은 쉽게 엿보이지 않았다. 정치적 성장도 더뎠다. 결국 그녀는 도덕책에 나올만한 공자왈, 맹자왈을 떠드는 것 이상의 지도자로서의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했다. 국회의원, 도지사를 거쳐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른 서혜림의 업적이 '국민여러분! 회초리를 들어주세요?'것 빼고 없어 보이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한마디에 세상이 바뀌고, 대통령이 움직인다, 중국 지도자에게 "도와주지 않으면, 전쟁도 불사하겠다." 서혜림의 한 마디에, 중국 영해에 조난된 우리 잠수함 승무원들이 구출된다. 위기를 동화처럼 해결하는 대한민국의 첫 여자 대통령, 덕분에 냉혹한 현실도 훈훈하게 바뀌는 <대물>의 정치 세계는 어린이들을 위한 정치계몽 드라마 같다.

 

현실의 거울이 되어 일갈할 줄 알았던 서혜림(고현정)이, 이렇게 변한 이유? 이제야 답이 풀린다. 사실 그동안 어떤 시청자들은 정치적 외압 때문이라고 하고, 어떤 언론은 배우의 연기력 부족 때문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제, 필자는 제3의 의혹을 제시하고 싶다. <대물> 제작진의 기본적인 역량 부족이 아닐까 라고 말이다.

 

첫 여성 대통령의 이야기에 '노무현 라이프'를 답습하는 모습에서 그 심증을 굳힌다. 처음부터 끝까지, 카리스마 있는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 서혜림은 없었다. 짝퉁 대통령 서혜림이 있었을 뿐이다. 비단 극의 마지막에서라도 새로운 정치 사건을 창작하면 좋으련만, 끝끝내 故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기 일어난 탄핵 사건까지 극에 배치시키는 <대물>은 마지막 기대마저 사그라뜨린다.

 

이쯤되면 속상함이 든다.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을 짝퉁(?)으로 만들바엔, 고 노무현 대통령을 실화를 드라마화 하는 게 훨씬 나았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창작의 의무를 저버린 <대물> 제작진이 한번쯤 반성해야 할 문제다.


태그:#대물, #첫 여성 대통령, #서혜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잊지말아요. 내일은 어제보다 나을 거라는 믿음. 그래서 저널리스트는 오늘과 함께 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