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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 대선에서는 노태우 대통령이 일찌감치 후계자에 대한 마음을 비운 터라 김영삼이 'YS 대세론'으로 손쉽게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었다. 박근혜 전 대표가 그때의 YS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것 같지만 그를 둘러싼 여당 내 지형은 훨씬 험난하다."

 

예산안 강행처리 정국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향후 행보를 바라보는 '보수논객' 이상돈 중앙대 법학대학원 교수의 진단은 매우 비관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일으킬 수 있는 40여 명의 친박 의원들이 있고, 차기 대통령 지지도 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박 전 대표가 향후에도 입지를 더욱 굳혀 여당의 대통령 후보에 손쉽게 오를 것이라는 정치권 일각의 관측을 일축한 것이다.

 

16일 서울 중앙대 교수연구실에서 만난 이 교수는 박근혜·이한구 의원만이 새해 예산안에 표결하지 않고 한나라당 친박 의원들 대다수가 4대강 예산안에 무더기로 찬성표를 던진 현상에 주목했다.

 

박 전 대표가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나 홀로 불참'을 결정했지만, 친박 의원들을 설득하는 데에는 리더십의 한계에 부딪히지 않았겠느냐는 해석이다.

 

이 교수는 "영남권 친박 의원 상당수가 지역개발론에 흔들렸고, 정권 차원의 회유와 감시 때문에 친박 의원들의 대오가 많이 무너졌다"며 "밖에서 보는 것처럼 친박 세력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6월 29일 세종시 수정안 표결 때만 해도 43명의 친박 의원들이 그의 뜻에 동조해 반대표를 던졌지만, 수정안 부결을 정점으로 친박 의원들의 응집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노태우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캐릭터 차이도 거론했다.

 

▲ 김영삼에 끌려다녔던 노태우와 달리 이명박 대통령은 박 전 대표에게 2인자 자리를 쉽사리 내줄 생각이 없고 ▲ 노태우 정부의 실세들이 대통령 퇴임과 함께 권력의 뒤편으로 사라진 반면, MB정부 사람들은 자기 정치를 계속할 심산이라는 것이다. 힘 있는 신문·방송들의 우호적인 보도와 45~50%를 기록하는 여론조사 결과도 이 대통령의 '착시'를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지금도 '야당 바람'을 자초하는 일들을 계속하니 여당의 수도권 의원들도 전전긍긍하는 것"이라며 "박 전 대표도 이명박 정부와 계속 같이 가는 문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4대강 국민소송단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법원에서 패소 판결이 나오고 막대한 예산이 통과한 상황에서 더 이상 막을 방법이 없다. 공은 민심, 국민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판사 한 사람이 거대한 공사를 중단시키는 것을 감당하기 힘들었다고 본다. 4대강 사업 논란이 있기 전 가장 큰 환경 사건이 시화호·새만금·동강댐이었는데, <추적60분> 방송을 막은 KBS 등 일부 신문·방송은 그보다 훨씬 큰 문제에 침묵했다"고 안타까움을 거듭 표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문이다.

 

"친박 의원 상당수 무너져... 박근혜는 외로운 정치 해야 할지도"

 

- 새해 예산안이 여야의 격한 충돌 끝에 3년 연속 날치기로 통과됐다.

"정권의 몰락을 보여주는 몇 가지 지표가 있다. 국회에서의 물리력 동원, 대통령 측근들의 발호, 정권에 미온적인 여당의원들에 대한 회유와 사찰이 그것인데, 현 정부는 이 세 가지 모두를 다 갖췄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 2002년 안건상정과 표결 결과 선포는 국회의장석에서만 할 수 있도록 국회법을 개정한 후 의장석 쟁탈전이 치열했는데, 이번 몸싸움은 2004년 노무현 탄핵 사태에 버금가는 것 같다.

"여당이 이번처럼 예산안을 무리하게 처리한 적이 있었나? 법정 시한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늦추는 일도 있었는데… 과거에는 야당이 자기들 뜻대로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관성적으로 반대한 적도 많았다. 이번에 야당의 명분도 만만치 않았는데 그걸 강행처리했으니 여당이 내후년 총선에서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이다."

 

- 여당 소장파들이 "앞으로 강행 처리를 거부하겠다"며 불출마 배수진까지 쳤다.

"너무 늦었다. 이런 식의 뒷북 수습이 한두 번이 아니지 않나? 국민들 눈에 일 저질러놓고 면피성 수습책 내놓은 것으로 보일 것이다."

 

- 국회 표결에 불참한 여당 의원 6명 중에 박근혜 전 대표와 이한구 의원이 들어간다.

"두 사람이 취해온 스탠스로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이다. 몇 사람 더 동참하지 못한 게 아쉽다."

 

- 박 전 대표의 선택을 어떻게 봐야하나?

"4대강 예산을 탐탁치않게 보는 그의 입장은 확인됐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4대강 예산에 반대한다고 해도 세종시 수정안 표결 때처럼 친박 의원들이 집단적으로 따라줄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상황이었다. 집권세력의 집요한 압력으로 인해 친박 의원 상당수가 무너졌기 때문에 박 전 대표는 앞으로 국민만 바라보고 외로운 정치를 해야할 지 모른다."

 

- 친박의원들이 무너졌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영남권 친박 의원 상당수가 4대강 예산 확보라는 지역개발론에 흔들렸고, 박연차 게이트 때부터 국민들이 실상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정권 차원의 회유와 감시 때문에 친박 의원들의 대오가 많이 무너졌다는 얘기다."

 

- 2012년 총선 공천에서 친박·친이 중 누가 주도권을 쥘 것으로 보나?

"고집스러운 김영삼 대통령도 아들 문제가 터지자 대국민 사과성명을 내고 여당 내 권력을 후임자에게 내줬었다. 그런데 현 집권세력으로부터는 임기 마지막 해까지 그런 걸 보지 못하리라는 예감이다. 마지막까지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낙동강 소송 판사 '거대공사 중단'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

 

- 박 전 대표가 여당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 후보인데, 공천 과정에서도 당내 주류인 친이 세력의 뜻대로 판이 짜여진다는 말인가?

"밖에서 보는 것처럼 친박 세력이 많지 않다.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 전 대표를 밀었던 중진의원들 상당수가 박 전 대표와 멀어졌다."

 

- 2008년의 '공천 대학살'이 2012년에도 재연된다는 뜻인가?

"여당 내 상황을 다시 들여다봐라. 지금은 2년 전 만큼 솎아낼 친박 의원들이 많지 않다." 

 

- 2012년 여당의 역학 구도가 1992년처럼 흘러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집권여당 내에서 김영삼(YS)계는 소수였지만, 이른바 YS 대세론으로 대통령 후보는 물론이고 대통령까지 됐기 때문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차기대권 문제에 있어서 일찌감치 마음을 비웠다. 일부를 제외한 노태우 정부의 실세들이 스스로 권력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지금 이명박 대통령의 기세는 20년 전의 노태우 대통령과 전혀 다르다. 힘 있는 신문·방송들이 '이 정도면 잘하고 있다'고 써주고 있고, 여론조사에서도 국민들의 지지를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지막 해까지 권력을 계속 쥐고 간다고 봐야 한다."

 

- 여당 내부에 균열이 생겨도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에서 '한나라당 = 다수당' 공식이 깨지기는 대단히 어렵다.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서울에서 건진 구청이 몇 곳이나 되나? 총선 투표율은 지방선거보다는 높게 나올 텐데… 이명박 정부가 지금도 '야당 바람'을 자초하는 일들을 계속하니 여당의 수도권 의원들도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도 이명박 정부와 계속 같이 가는 문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할 것이다. 대선에서 이기려면 말을 갈아타야 하지 않을까? 간판을 바꾸든지 (여권의) 인적 쇄신을 할 수 있어야 박근혜 브랜드가 살지 않을까?"

 

- 4대강 사업 소송 중 낙동강 구간을 맡은 재판부가 외압을 느꼈다고 봐야하나?

"정부가 국가재정법상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안 한 것과 하천법이 정한 행정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 사전환경성 검토를 부실하게 한 것 등에 대해 법원이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은 두고두고 잘못된 판례로 남을 것이다. 한편으로, 판사 한 사람이 거대한 공사를 중단시키는 것을 감당하기 힘들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1심에서 가처분 인용 결정을 내렸다면 정부가 공사를 일단 중단하고 부산고법 판결이 나올 때까지 2~3개월을 기다리는 사태가 빚어졌을 텐데…"

 

- 낙동강 판결이 나오기 전의 대외 환경도 안 좋았던 것 같다. KBS <추적60분>은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방송이 보류됐는데.

"일부 신문·방송의 침묵도 안타깝다. 4대강 사업 논란이 있기 전에 우리나라 대표적인 3대 환경사건이 시화호와 새만금, 동강댐이었는데 언론의 문제 제기가 컸다. 4대강은 그러한 사업들의 몇 배 이상 가는 사업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압력이 있었다고밖에 얘기할 수 없을 것 같다."

 

-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15일 트위터 이용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4대강 사업은 내년 말에 공사가 마무리되는데, 홍수 방지도 되고 강이 정말 좋아질 것이다. 이런 데 투자하지 않고 복지 같은데 재원 다 써버리면 결국 남는 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홍수 피해를 많이 입었는데, 이명박 정부 이전의 정부들은 왜 '4대강 정비하면 홍수 문제 해결된다'는 생각을 못 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역대 정부들은 '본류 정비는 충분히 됐고 지천들을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이명박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새해 예산안과 함께 통과한 친수구역특별법도 그렇다. 수자원공사의 적자를 덜어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게 가능할까? 수변 개발로 인한 환경 문제는 차치하고, 지금 서울에만 집이 부족하고 다른 지역은 남아도는데 강변의 주상복합건물에 대한 수요가 어느 정도 될지 모르겠다."

 

- 법원 판결 나오고 예산안도 통과됐는데 4대강 반대운동의 진로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가?

"더 이상 막을 방법이 없다. 공은 민심, 국민으로 넘어간 것이다."


태그:#이상돈, #박근혜, #4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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