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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직한 친구와 그 동료들과의 소주 한 잔
 퇴직한 친구와 그 동료들과의 소주 한 잔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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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래된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그 친구의 직장동료 2명, 선배 2분과 함께…. 정확히 말하면 한 달 전까지 서로의 직장동료였고 선배였습니다. 지금은 전 직장의 동료이고 선배들입니다. 이 분들이 근무하던 곳은 국내 최대은행이었고, 직책은 지점장이었습니다. 조직슬림화를 위한 경영정책에 따라 이 은행 총 직원의 10%가 넘는 3000여 명이 함께 퇴직했다고 합니다.

회사에서는 자발적인 '희망퇴직'이라고 했지만 그렇지는 않은 듯싶었습니다. 회사는 근속 년수가 많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퇴직대상자를 작성하고, 그 대상자들에게는 자발적인 형식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60세까지는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는 등의 말로 보아 이들이 자발적으로 한 퇴직은 아닌 듯싶었습니다.

저는 이 분들에게 우선 "온전하게 자신을 위해 살 기회를 얻었으니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넸습니다. 우리는 함께 점심을 먹으러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자리에 앉은 우리는 식사와 함께 소주도 2병 시켰습니다.

이들은 회사에서 돌고 있는, 희망퇴직신청을 하지 않을 경우 겪을 불이익이 담긴 문자 메시지를 아내에게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한 아내는 "그래도 회사에 남아라"는 주문을 했고, 다른 한 명은 "그러다 남편 스트레스로 잃겠다. 빨리 퇴직하라"는 말을 했습니다. 나머지 분들의 아내는 "남았으면 좋겠지만…"하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합니다.

아무튼 그들은 모두 퇴직했습니다. 제 친구를 비롯한 3명은 27년 동안 그 직장에 있었고, 두 선배는 29년을 다녔다고 했습니다.

"퇴직 후 행복한 삶 위해... 소비를 줄이고 부인을 존중하세요"

저는 훨씬 먼저 조직을 자발적으로 떠난 '실업자의 선배'로서 몇 가지를 주문했습니다.

"앞으로 직장에 몸 담았던 세월보다 더 긴 세월을 독자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두 가지만 꼭 실천하세요. 첫째는 본인이 꼭 하고 싶었던 일을 하세요. 둘째는 첫째의 것이 꼭 본인의 행복을 보장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두 가지를 더 주문했습니다.

"절대 조금이라도 위험이 따르는 투자는 하지 마세요. 차라리 퇴직금과 연금으로 사는 것이 옳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리스크가 있는 곳에 투자를 했다가 실패를 할 경우, 나머지 30년 이상이 서러울 수 있습니다.

소비패턴도 바꾸어야 합니다. 우선 씀씀이를 반으로 줄이세요. 지금까지의 반만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한 소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봉사하세요. 지금까지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한 생활이었다면 지금부터는 나와 내 가족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사용하는 삶을 계획해보세요. 30년 가까이 돈을 다루는 일을 했으니, 인근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실용적인 돈의 탄생과 흐름, 혹은 환율에 대해 쉽고 재미있는 에피소드 위주로 강의를 해도 좋을 것입니다."

제 말끝에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건 돈이 안 되잖아."

저는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돈이 안 되는 그 일이 돈이 되는 일보다 더 즐겁고 본인 스스로를 더욱 신나게 해줄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두 가지를 염려했습니다. 수입이 없거나 준 남편을 부인이 어떻게 대할까하는 것과 집에서 함께 해야 하는 시간들을 어떻게 견딜까가 그것입니다.

"부인을 모시는 모드로 바꾸세요. 서로를 존중하는 자세는 충돌을 방지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핸드폰에 입력된 부인 이름부터 바꾸세요. 제가 아는 소엽 선생님은 아들 전화번호에 '감격'이라는 이름으로 입력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감격씨입니까?"라고 묻는
낯선 목소리의 전화가 왔더랍니다. 소엽 선생님은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고 말하고는 그 이유를 물었겠지요. 전화 건 사람은 서울역에서 핸드폰을 주웠는데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단축키 1번을 눌렀다고 말했습니다. 소엽 선생님은 아들이 자신을 '감격'이라고 여기고 있다는데에 감격해서 그 분도 자신의 전화기 속 아들의 이름을 '감격'으로 바꾸었답니다."

이 말이 끝나자 각자 전화기를 꺼냈습니다.

"나는 그냥 '마누라'라고 되어 있는데 당장 '중전'으로 바꾸어야겠다."
"우리 마누라를 단축키 1번으로 옮기고 '대비'로 바꾸어야겠군."
"내 친구는 마누라 전화에 자신의 이름이 '웬수'로 되어있더라는데 내 처 전화기를 보니, 나는 '허니'로 되어있더군. 내가 여전히 마누라에게 '꿀'이라면 내가 여전히 대우를 받는 건가?"

"남편과의 여행 위해 미련없이 퇴직했습니다"

희망퇴직이든, 명예퇴직이든, 정년퇴직이든 일을 그만두는 것은 직장에 몸 담고 있는 모두가, 언젠가는 맞이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퇴직도 '학습'이 필요합니다. 준비된 퇴직은 사회와 가족을 위해 청춘을 바친 헌신에 대한 대가로 주워지는 가장 큰 '포상'입니다.

저는 지난 봄, 모티프원에서 만난 교장 선생님 부부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체크아웃을 하기 전에 저와 차 한 잔씩을 앞에 두고 앉았습니다. 과묵한 남편 대신 부인이 말을 꺼냈습니다.

"저희는 이곳으로 은퇴 축하 여행을 왔어요. 남편은 몇 개월 뒤에 정년퇴임하는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고 저는 정년이 아직 3년 남은 고등학교 선생입니다. 남편은 행정적인 일을 마다하지 않아서 교감과 교장의 길을 갔습니다. 저는 행정적인 일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평교사로 남았습니다.

저는 10여 년 전부터 방학 때마다 혼자 배낭여행을 다녔습니다. 남편은 행정일을 맡았기 때문에 방학 때도 학교를 비울 수가 없어 한 번도 함께 여행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행 계획을 세우면 남편은 제 등을 떠밀었습니다. 그 덕분에 동남아를 시작으로 중국과 유럽, 북미와 남미 등지를 적잖게 다닐 수 있었습니다.

저는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도 제 남편하고 함께 올 곳을 답사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남편이 마침내 올해 말에 퇴직을 앞두고 있고 저는 기다리던 남편과의 여행을 위해 정년이 3년 남았지만 미련을 두지 않고 퇴직을 신청했습니다. 모티프원은 그 계획된 여행의 첫 행선지이고, 올 여름방학 때에는 남편과 함께 보름 일정으로 인도를 여행할 계획입니다. 제가 그동안 세계 각처에 보아두었던 곳을 같이 가기 위한 워밍업입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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