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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여당이 단독 상정한 예산안이 본회의장에서 사실상 여당 단독 투표로 강행 처리되자 여당은 쾌재를 불렀다. 야당의 존재 이유와 소수당의 역할 등 민주정치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덕목'을 깡그리 뭉개놓고 청와대와 여권 수뇌부는 의기양양했다.

오만한 정권, 국민 생각 잘못 읽다

여당은 오만했다. 김무성 원내대표는 국회 파행을 두고 "이것이 사회정의다"라고 말했고 이재오 특임장관과 안상수 여당 대표는 "속히 개헌을 논의할 때"라며 예산국회 파행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딴전 피는 식의 발언으로 국면전환을 시도했다. 얕은 꼼수였다.

여권의 '기고만장'은 대통령의 발언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명박 대통령은 예산 날치기 직후 외유차 비행기를 타면서 국회 파행을 이렇게 평가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국민의 반응은 예전과 사뭇 달랐다. '폭력 국회'라는 고질병에 실망해 있는 국민들의 심리를 이용해 예산파행을 야당의 책임으로 돌리려 했던 여당의 기대가 수포로 돌아가고 있었다. 국민들은 여당의 오만함을 주목했다. 4대강 예산을 강행 처리하고 '형님예산', '위원장 예산' 등 여권 실세들의 지역구 예산은 대폭증액하면서도 무상급식은 '정치적 포퓰리즘'이라며 한 푼도 예산에 반영하지 않겠다는 여당의 폭압적 발상에 서민들의 분노가 커져갔다.

민생예산 쏙 빠지고 4대강 예산과 4대강 이자, 여권 실세 지역구 챙겨

하지만 여당은 자축하고 오만을 떠느라 '장외투쟁'을 선언한 여당의 외침이나 이러면 안 된다고 책망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며칠 동안 외면했다. 필자 같은 범부도 '한나라당 대선 총선 실패 자초한다'(12.8) 등의 글을 포스팅하며 사태를 거꾸로 바라보는 여당을 비난했을 정도였다.

양육수당, 영유아 예방접종 지원, 겨울방학 급식지원비 등 주요 민생예산이 빠졌다. '봉은사 외압'으로 곤혹을 치렀던 여당이 불교계 '달래기' 일환으로 약속한 템플스테이 예산과 사찰 화재 방지 예산 50억 원도 누락돼 불교계의 반발도 거세다. 대신 여당이 챙긴 건 청와대의 '특명' 때문에 목숨 걸고 밀어붙인 4대강 예산과 여권 실세 봐주기 예산 등이었다.

여당은 9조3천3백억원의 4대강 예산을 통과시키면서 수자원공사에게 줄 금융비용 지원비도 260% 늘려 2550억원으로 책정하는 등 '특명'에 대해 각별한 예우를 표했다.

이상득 의원 지역구인 포항은 1623억 원이나 증액돼 이른바 '형님 예산'의 파워를 과시했다. 예산심사의 칼 자루를 쥔 여당소속 이주영 예결위원장은 자신의 지역구 예산에 430억 원을 늘려 배정했고, 박희태 국회의장도 자신의 지역구를 위해 182억 원이나 더 가져갔다. 증액된 지역구 예산 대부분이 SOC분야인 관계로 내년 SOC 예산은 정부안보다 무려 6400억 원이나 늘어났다.

잔뜩 성난 민심, 여당 전전긍긍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지난 주말 대통령과 여당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대통령은 11일 안상수 대표와 당 지도부를 불러 긴급 회동을 가졌고, 12일에는 고흥길 정책위원장이 예산안 파행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의사를 밝혔다. 예산파행을 정책위장이 책임진다? 무슨 짓인가. 부화 치밀게 만드는 여권의 '꼬리자르기'다.

민심이 잔뜩 성나있다. 예산 강행 성사 직후 축배를 들던 여당이 설마 하고 관망하는 사이 사태는 순식간에 정권퇴진 운동으로 비화되고 있다. 2년 전 촛불집회 이후 '이명박 퇴진' 이라는 구호가 다시 대대적으로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여당도 놀라 당정 주요 인사들에 대한 추가문책 등 사태 수습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성난 민심에 화들짝 놀란 이재오 특임장관이 어제(12일) 예산안 폭압처리에 항의하며 장외 농성 중인 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만나기 위해 서울광장을 찾았다. 하지만 손 대표는 "4대강 예산을 삭감하고 날치기 법안을 파기하고 오라"며 이 장관을 돌려보냈다. 손 대표가 잘한 거다. 우선 야당들이 성난 민심을 대변해주어야 한다.

야당은 이겨도 국민은 절대 이기지 못한다

수적으로 우세하다고 그 힘을 믿고 밀어붙이기해서 예산 단독처리 하라는 뜻으로 많은 의석을 몰아 준 게 아니다. 몸집 크다고 으스대라는 뜻으로 절대다수당 만들어 준 게 아니다. 경제 잘 하고 국민 뜻 잘 따르며 야당과 타협하는 정치력 발휘해 보라고 밀어 준 거다.

절대다수의석을 거느린 정권이라면 수적 열세의 야당 정도는 맘만 먹으면 쉽게 꺾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정권이라도 권력의 주인인 국민을 꺾을 수 없는 법이다. 민심이 화났다. 권력을 손에 쥐어 주었더니 그 권력으로 국민을 꺾으려 한 정권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예산 밀어붙이기', 청와대와 여당이 큰 실수를 저지른 거다.


태그:#예산파행, #4대강예산, #민주당 장외투쟁, #손학규, #이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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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시사 분야 개인 블로그을 운영하고 있는 중년남자입니다. 오늘은 어제의 미래이고 내일은 오늘의 미래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미래를 향합니다. 이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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