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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학년도 신입생들의 원서 접수가 마무리된 자율형사립고의 응시 현황은 '충격과 침통' 그 자체다. 많은 학교들이 '설마 또는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비참한 결과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전체 26개 중 절반에 이르는 12개 학교가 미달이다. 3개의 여학교와 3개 공학의 여학생 전형은 모두 정원을 채웠는데, 남학생만 대상으로 한다면 23개 학교 중 12개가 정원에 미달하여 절반이 넘는다.(52%) 미달 인원도 용문 355, 동양 198, 장훈 185, 대광 176, 선덕 150, 경문 123, 동성 119, 보인고 100 등 무려 8개가 100명 이상 정원을 채우지 못했고 이렇게 미달 인원을 모두 더하면 1725명에 이른다. 무더기 미달이라는 말 이외에는 설명할 표현이 없다.

자율형사립고 경쟁률은 부자(富者)순? 동네가 부자 또는 학교가 부자

서울 소재 자율형사립고 중 여학생을 모집하는 학교가 훨씬 적기 때문에 여학생 전형은 일반전형 기준 한가람고 5.43대1, 이화여고 2.56대1, 이대부고 2.55대1 등 경쟁률이 매우 높아서 모두 모집 인원을 초과하였다. 여학교를 제외한 나머지 23개 학교(공학 남학생 전형만 포함)를 대상으로 분석해보면 지역적 차이와 학교 간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2011학년도 서울지역 자율형사립고의 신입생 지원 경쟁률. 지역별로, 학교별로 뚜렷한 차이가 보인다. 지원률이 높은 학교들은 지역이 부자이거나 학교가 부자이거나 둘 중 하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민밀집 지역 학교의 대부분의 정원을 채우기도 힘들어 미달이다. 이들은 어떻게 될까?
 2011학년도 서울지역 자율형사립고의 신입생 지원 경쟁률. 지역별로, 학교별로 뚜렷한 차이가 보인다. 지원률이 높은 학교들은 지역이 부자이거나 학교가 부자이거나 둘 중 하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민밀집 지역 학교의 대부분의 정원을 채우기도 힘들어 미달이다. 이들은 어떻게 될까?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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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강남8학군으로 불리는 서초구와 강남구의 중동고, 휘문고, 세화고(여고)는 모두 정원을 훨씬 초과했다. 현대고(남)는 미달인데 이는 이 지역에서 현대고만 남녀공학이라는 점이 설명해 준다.

즉, 일반적으로 내신성적이 여학생에 비해 불리한다고 생각한 남학생들이 주변의 중동, 휘문 등을 두고 굳이 현대고를 다닐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남과 더불어 사교육 특구로 불리는 목동을 포함하고 있는 양천구의 한가람고와 양정고 역시 정원을 훨씬 초과했다.

강남 3구 중 하나로 불리는 송파구 보인고가 미달인 것은 지역적인 차이가 아니라 이 학교가 얼마 전까지 보인상고라는 실업계 학교였다가 인문계로 전환하는 과정에 있어 아직 지역사회에서 인문계고로 실력을 검증받은 바가 없고, 재정적으로도 열악한 사학법인이라는 인식 때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반해 서민 밀집 지역인 이른바 서남부 지역의 경우, 금천구 우신고 95명, 강서구 동양고 198명, 영등포구 장훈고 185명 등 모두 엄청난 규모의 미달사태가 발생했다. 이외에도 동대문, 성북구, 강북구, 도봉구, 서대문, 마포구 등 강북에 속하는 용문 355, 대광 176, 선덕 150, 동성 119, 숭문 65 등 대부분의 학교들이 무더기 미달사태에 처했다. 강북 지역 중에서 미달 사태를 면한 중앙고와 신일고, 경희고, 한대부고 등은 재정적으로 튼튼하거나 대학이 운영하고 있는 학교들이라 대학연계 교육이나 입학사정관제 등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하였을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자율형사립고의 경쟁률은 대체로 부자(富者)이다. 학교가 있는 동네가 부자이거나, 아니면 학교가 부자이거나….

학교 사활 걸린 미달 자율형사립고들.... 이제 어쩌나?

이번에 겨우 정원을 채운 학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고 미달된 학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학생 1명이 미달되면 당장 공식적 등록금만 1년에 500만 원씩이기 때문에 학교 운영에 심각한 지장을 넘어서 사활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당장 한 학교는 전 교사들의 수업을 빼고서라도 중학교 홍보를 계획하고 있고, 또 다른 학교의 교사는 "인제 우리 학교 어떻게 되냐?"고 걱정스럽게 다른 학교 친구에게 문자를 보낸다. 일부 언론에서는 사설입시기관의 입을 빌려서 자율형사립고를 반납하는 학교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충북의 어느 외고는 작년에 외고 지정을 반납하고 일반학교로 전환했다.

미달된 자율형사립고는 당장 정원을 채울 수 있을지 걱정이다. 서울지역 자율형 사립고 모집 정원이 2010학년도 5000명 정도였다가 올해 1만500명 정도로 2배 이상 늘었는데, 작년 경쟁률은 2.88:1로 올해의 1.44:1보다 두 배나 높았다. 그래서 작년 자율형 사립고와 외고에 1차 불합격한 학생이 1만 명을 넘었는데 올해는 5600명에 불과하다. 작년의 경우 2차에 추가로 모집한 인원이 450명인데 지원한 학생은 700명 정도였다. 그런데 올해에는 미달된 학생은 1725명인데 정원을 초과한 학생수는 5625명이고 이중 남학생은 4281명이다.

즉, 작년의 경우는 2차 추가 모집에 1차에 낙방한 1만 명의 학생 중 700명이 지원했는데 올해는 4000여 명의 학생 중 1700명 이상을 채워야 한다. 당연히 산술적으로 2차 추가 모집에도 미달되는 학교가 나올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학교도, 학생도, 그리고 교사들에게도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성급하게 추진한 일부 학교들이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자율형사립고를 하도록 부추긴 것은 정부와 공정택 시기 서울교육청이라는 점에서 이들 학교와 교사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다.

곽노현 신임 서울교육감이 자율형사립고에 대해서 비판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고 추가 지정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이미 밝혔지만, 현재 벌어진 사태에는 뾰족한 묘수가 보이지 않는 듯하다. 이미 지정된 학교들에 대해서는 특단의 위법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최소 5년 동안 자율형사립고를 운영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상황에서 지정을 취소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학법인이 스스로 자율형사립고 지정을 반납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인 셈이다.

MB와 공정택, 이주호의 실패한 합작품이 빚은 예고된 재앙

자율형사립고 제도는 MB의 대선 핵심 교육 공약이다. 학교다양화 300프로젝터의 핵심 정책으로 그 기초를 잡은 사람이 바로 현재 교과부 장관인 이주호 당시 한나라당 의원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시장에서 상품을 고르듯 학교에 다양한 자율권을 주고 학생에게 학교선택권을 주면 교육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철학에서 자율형사립고를 밀어붙였다. 당시 국민들의 대다수 여론이 자율형사립고 도입에 반대하는 것이었지만 MB정부는 시범 실시도 없이 이를 전국적으로 실시하였다.

이를 앞장서서 집행했던 이가 바로 서울의 공정택 교육감이다. 첫해에 13개에 이어 두 번째 해에 다시 13개가 지정되어 현재 서울에만 자율형사립고가 26개이다. 전국적으로 자율형사립고가 43개인데 그 중 60%가 넘는 26개가 서울에 있다. 첫해에 13개도 사실 많다는 우려가 많았고, 등록금을 3배나 내야 하는 상황에서 귀족학교로 될 가능성이 많고, 등록금을 많이 내는 학부모들의 현실적 요구에 맞추어 입시학교가 될 것이라는 충고가 쏟아졌다. 이런 비판과 우려에도 굳이 하겠다면 몇 년 동안의 시범 실시 후에 도입 여부를 결정하자는 타협안도 제시되었지만 MB정부는 이를 강행했다. 공 교육감이 앞장섰고, 그가 비리로 물러난 이후에는 교육부에서 파견한 부교육감이 예정대로 실행했다.

09년에는 추가로 자율형사립고를 신청한 모든 학교들이 자율형사립고로 지정받았는데 그중에는 재단전입금이 0원~몇천만 원 수준인 선덕고, 보인고, 장훈고 등도 있었다. 그러나 서울교육청은 제대로 된 심사도 없이 숫자 채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이들 모두를 자율형사립고로 지정했다. 이러니 이번에 이 정도 정원을 채운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 판이다. 한편 자율형사립고가 아닌 일반 사립고나 공립고들은 그들대로 성적 상위자가 대부분 자율형사립고와 외고 등으로 가버려 수업 자체가 어렵다는 하소연을 하고 있는 것도 자율형사립고가 불러온 또 다른 어두운 이면이다.

자율형사립고들이 차별화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입시와 재정이라는 여건에서 할 수 없는 구조라는 하소연이 나오는 것도 이유가 있다. 예고된 재앙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런 MB정부의 조급증에서 기원한 것이다. 교육의 빈익빈부익부, 귀족학교, 입시명문고 등의 비판으로 성공하기 힘든 정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이번 전형 결과로 어느 정도 증명된 상황에서 정치권과 교육계를 중심으로 전면적 재검토 요구가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자율형사립고 정책을 대선 핵심공약으로 내세웠던 MB, 이를 입안하고 주도했던 이주호 장관, 그리고 서울시민의 반대여론에도 이들의 집행관으로 이를 집행했던 공정택 서울교육감은 지금 이 사태에 대해서 뭐라고 변명할까?


#자율형사립고#무더기 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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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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