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만 왕방울처럼 컸던 소년은 그날도 힘없는 병아리처럼 마당에서 쓸데없이 곰방숟가락으로 금만 긋고 있었다. 밥을 먹고자 손에 쥐었을 때 반드시 있어야 하는 자루가 부러져 이미 숟가락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곰방숟가락은 빈병 따위들과 모아두었다가 이담에 여름이 오면 아이스케키랑 바꿔먹지 않는 이상엔 딱히 소용이 없었다.
그마저 아깝다고 버리지 않곤 마당에서 금만 이리저리 긋던 소년에게 문득 어디론가 분주히 가는 소년과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한데 그들의 대화가 예사롭지 않았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니까 교회에 가면 사탕이랑 과자도 주겠지?" "호호호~ 아이 좋아라. 난 그럼 주머니에 가득 담아올 거여!" 소년은 갑자기 심학규가 심청의 인당수 투신 덕분으로 눈을 뜨는 기분이었다. 옳거니! 오늘은 무조건 교회에 가는 거야. 예수님께선 평소 원수도 사랑하랬는데 그렇담 나같이 가련하고 가난한 소년은 더욱 환영하시겠지?
당시 가장 큰 교회는 시내 중심가의 천원군청 근방에 있었다. 소년은 교회를 가는 데 있어서 한 치의 주저함조차 없었다. 왜냐면 엄마는 예전부터 부재했고 아버지는 타관객지로 돈을 벌러 나가시어 가뭄에 콩 나듯 오셨기 때문이다. 유일한 '가족'이라곤 유모할머니만 달랑 한 분 계셨는데 마실(이웃에 놀러 다니는 일)을 가시면 당최 돌아오시려 하지 않은 때문이었다. 소년은 분주한 깡충걸음으로 교회로 갔다. 그리곤 많은 교인들의 숲에 섞여 시치미를 뚝 떼곤 교회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엔 공짜로 가져가라며 커다란 바구니에 달콤한 사탕과 과자들이 산더미만큼 쌓여있었다. 소년은 옆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최대한 두툼하게 그 사탕과 과자들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잠시 후 반공영화를 한 편 보여드리고자 교회 안의 불(전등)을 끌 테니 모두 조용해 주십시오." 교회 안은 일순 영화관으로 돌변했고 커다란 하얀 커튼에서는 <피어린 구월산>(참고1)이란 반공영화가 시작되었다. 과자는 소리가 날 것 같기에 소년은 소리가 안 나는 사탕을 슬며시 꺼내 입 안에 밀어 넣었다.
그러면서 보는 공짜영화는 사탕처럼 더욱 흥미진진하고 달았다. 그럴 즈음 파투(破鬪)가 나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건 바로 아랫집에 사는 녀석이 그만 초를 친 것이었다. "야~ 너도 여기 왔냐? 근데 넌 평소에 교회 안 다니잖아?" 녀석은 한 술 더 떴다. "가짜 교인(敎人) 주제에 공것을 얻어먹자고 교회를 와?"
소년은 부끄러움에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소년은 아까웠지만 서둘러 교회를 탈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집에 오니 할머니는 저녁을 짓고 계셨다. "어디 갔다 오는 겨?" "친구네 집에유..." 더 지나 잠자리에 누웠지만 소년은 궁싯궁싯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참 나쁜 녀석 같으니라고! 아는 체만 안 했더라도 그 영화는 마저 다 보고 오는 건데... 그날 밤 엄동설한 한밤중의 웃풍은 허름한 초가집을 더욱 춥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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