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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의 시대> 겉표지
<해적의 시대>겉표지 ⓒ 김영사

<해적의 시대>는 2008년에 암으로 사망한 마이클 크라이튼의 유작이다. 마이클 크라이튼이 사망한 뒤, 조수가 그의 컴퓨터를 정리하던 도중에 하드디스크에서 이 소설의 원고를 발견했다고 한다.

 

마이클 크라이튼은 대표작 <쥬라기 공원>처럼 현대의 과학기술과 상상력을 결합시킨 스릴러 소설을 많이 발표했었다. 그런만큼 그의 작품을 좋아했던 독자들은 유작도 그런 소설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기대와는 달리 <해적의 시대>는 제목처럼 해적의 이야기를 담은 역사모험소설이다. 무대는 해적들이 전성기를 보냈던 17세기의 카리브해다. 소재와 배경은 다르지만, 마이클 크라이튼 특유의 빠른 전개와 생생한 묘사, 전문적인 지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서 카리브해 일대의 섬들을 꼼꼼히 관찰하며 돌아다니지 않았을까. 어쩌면 반대로 카리브해를 여행하던 도중에 아이디어가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해적의 시대>를 읽다보면 카리브해의 푸른 바다와 수평선, 그 너머로 맞바람을 받아서 펄럭이는 돛을 달고 모습을 드러내는 범선이 떠오른다.

 

17세기 카리브해를 배경으로 한 모험소설

 

<해적의 시대>에 등장하는 해적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해적이 아니라 '사략선 선원'이다. 정부로부터 적선을 공격하고 나포할 권한을 인정받은 무장 민간 선박을 사략선이라고 부른다. 작품의 주인공인 38세의 영국인 찰스 헌터는 바로 이런 사략선의 선장이다. 그가 주로 활동하는 곳은 카리브해다.

 

17세기 중반, 카리브해의 패권은 스페인이 가지고 있었다. 영국은 세인트 키츠, 바베이도스, 자메이카 이 세 곳만을 식민지로 가지고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전부 스페인 왕 펠리페 4세의 영토다. 카리브해에는 영국 전함이 한 척도 없고 영국 군대도 없다. 반면에 스페인의 대형 전함은 열 척 이상 떠있고 수천 명의 스페인 군대도 주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영국은 자신의 식민지를 스페인 군대로 부터 지킬 수 있을까. 그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사략선을 활용하는 것이다. 무장한 사략선들이 스페인 군인들에게 경계심을 심어주고, 사략선이 약탈한 스페인의 금은보화는 식민지의 경제를 풍요롭게 활성화 시킨다. 요컨대 사략선은 경제와 군사 양쪽에 모두 필요한 존재인 셈이다.

 

찰스 헌터 선장은 오랫동안 이런 사략선을 지휘하며 활동해왔기 때문에 자메이카의 수도 포트 로열에서 자메이카 총독 못지않게 유명하다. 신흥도시 포트 로열은 부유하지만 쾌적하지 못한 도시다. 거리는 좁은 진창길이어서 쓰레기와 말똥 냄새가 나고 파리와 모기가 들끓는다. 벽돌과 나무로 조악하게 지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작품의 도입부에서 찰스 헌터는 한 차례의 원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싸구려 술집과 여관에서 술에 찌들어 지내는 중이다. 자신과 부하들이 전부 물렁해지고 있으니 이제 다시 출격할 때가 된 것이다. 다시 바다에 나가야 한다.

 

시기적절하게 헌터에게 유용한 정보가 들어온다. 포트 로열에서 동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스페인 요새 마탄세로스 섬에 스페인 보물선이 정박 중이라는 것이다. 마탄세로스 요새는 스페인의 동쪽 최전방 전초기지로서 보물선의 안전한 귀국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마탄세로스는 스페인어로 '학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을 만큼 난공불락의 요새다.

 

헌터는 마탄세로스를 공격해서 그 보물선을 나포하겠다고 결심한다. 위험하기는 하겠지만 성공한다면 돌아올 대가도 두둑하다. 마탄세로스 섬의 보물선에는 진주와 포르투갈 금화를 포함해서 계피와 정향같은 향신료가 가득할 것이다. 원정에 성공하면 갑부가 되고 실패하면 죽음이다.

 

헌터는 원정을 준비하면서 필요한 전문가들을 구한다. 화약전문가, 인정사정없는 킬러, 시력이 뛰어난 사람, 경험 많은 항해사 등. 그리고 수십 명의 선원과 함께 마탄세로스로 일생일대의 원정을 떠난다.

 

스릴러의 거장이 남긴 마지막 작품

 

마이클 크라이튼은 죽기 전에 <해적의 시대>의 원고를 완성해둔 상태였다. 그런데 왜 살아있을 때 발표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자신이 그동안 써왔던 소설들과 여러가지 면에서 다르기 때문에 발표를 미뤄왔을지 모르겠다.

 

아니면 지금처럼 자신이 죽고 난 다음에 극적으로 발견되기를 기대했을 수도 있다. 죽고난 다음에도 세상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싶어서. 작가가 실제로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완벽한 성공을 거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해적의 시대> 같은 마이클 크라이튼의 모험소설을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다.

덧붙이는 글 | <해적의 시대> / 마이클 크라이튼 지음 / 이원경 옮김 / 김영사 펴냄


해적의 시대

마이클 크라이튼 지음, 이원경 옮김, 김영사(2010)


#해적의 시대#마이클 크라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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