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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이의 슬픔, 누구를 위한 죽음인가
▲ 산화한 두 병사의 영결식에서 오열하는 유가족. 도이치벨레 제공 남은 이의 슬픔, 누구를 위한 죽음인가
ⓒ 조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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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라 내 땅'과 위도가 비슷한 이곳 독일 강변마을에 어제(27일) 첫눈이 왔다. 지천명을 훌쩍 넘어버린 나이지만 언제나 첫눈은 나그네를 '보헤미안의 꿈'을 찾아 방랑하는 소년시절로 되돌려 놓고는 했었다. 그러나 같은시각 '내 나라 내 땅'에서 들려오는 소식으로인해, 그 어떤 감상적 낭만도 내 가슴 속에 끼어들 수 없었다.

며칠째 이곳 독일 공중파 방송은 물론, 거의 모든 언론매체들이 지구 반대편 분단국 '코레아'의 포격전과 일촉즉발의 긴장을 톱 기사로 다루고 있다. '냉철함'의 대명사 독일의 언론들이 '코레아' 문제에 대해 이렇게 들썩이기는 내가 이곳에서 살기 시작한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연평도 곳곳에 화염이 치솟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었다. 그 장면만 놓고선 전면전쟁의 한  장면이라 해도 의심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포격이 발생한 다음날, 한국시각으로 꼭두새벽에 똥가리 엄마 우렁각시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해왔다. 엄지엄마가 새벽에 전화할 때는 분명 단순한 안부전화는 아니기에 나는 긴장을 했었다.

전화선을 타고 날아온 똥가리 엄마의 걱정

"여보! 전쟁이 나려나 봐요. 북한에서 연평도에 수많은 포탄을 쏘고 국군도 대응 사격을 하고... 와중에 군인들도 죽고 그랬나 봐요. 불안해 죽겠어요. 어머님 아버님이 인천에 계시는데 어떡해요. 당신은 또 어떡하고요. 당신, 내년에 어머님 아버님 뵈러 들어올 결심인데..."

"당신, 너무 걱정 마. 우리나라가 반 쪽으로 갈라진 이후 이런 비슷한 일은 다반사로 있어 왔으니까, 이번 포격전도 그 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이야. 조금 지나면 다시 잠잠해질 거야. 전쟁은 무슨... 염려 붙들어 매고 문단속 잘하고 잘 자. 새벽에 전화를 해서 깜짝 놀랐잖아. 똥가리는 잘 자지?"

엄지 엄마를 가까스로 안심시키기는 했지만 그날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여러 가지 상념들이 이젠 서서히 녹슬어 가고 있는 나의 뇌세포들을 밤새도록 자극했기 때문이다.

나그네의 뇌세포들을 피곤하게 몰아붙인 첫 번째 화두는 '적대적 공생관계'였다. 적대적 공생관계!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적의 적은 때론 친구이기도 했다. 자국내의 기득권과 입지를 위해, 그리고 등 돌린 민심을 추스리기 위해 적국끼리 밀실협약을 맺어 겉으로만 '으르렁'거리는 긴장을 조성한 사례는 비일비재했다.

이른바 짜고 치는 고스톱! 멀리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오호십육국시대, 이른바 조조, 제갈량, 유비 등으로 대변되는 삼국시대 등에도 그러한 장면은 수시로 등장한다.

근세엔 일본은 조선을 병합하고 미국은 필리핀을 속국으로 삼는데 대해 쌍방간에 묵인한다는 '카쓰라테프트 밀약'이 그러하다. 또 냉전시대 세계를 양분화해 양국만이 초강대국 위치를 유지하려는 미국과 소련의 의도적 긴장과 특정국가의 분열정책 등이 그러하다. 가깝게는 김일성과 박정희의 영구 독재 집권을 위해 밀약의 부산물로 태생한 북한의 사회주의헌법과 박정희의 6.23선언이 그러하다.

분단 이후 남북정권의 위기 때마다 있어왔던 이른바 '북풍'의 상당부분이 남북의 적대적 공생관계에 기인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분단 현실에서 북의 위정자들도 남의 위정자들도 '백성'들을 적당히 아우르고 입맛에 맞게 통치하기 위해서는 때론 적당한 긴장이, 때론 일촉즉발의 팽팽한 긴장이 필요한 것이다.

민족의 공존을 위해서 적대적 공생관계는 더 이상 안된다

오로지 정치학 강좌 차원에서만 바라본다면, 정치가들의 최종목적이 정권창출과 장기집권에 있으니, 정권유지를 위한 수단에서 본다면 적대적 공생관계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적과의 동침'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문제는 소수 지배집단의 이익을 위해 민족구성원이나 국가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힘없는 '백성'들이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데 있다.

이번 연평도 포격전이 인류역사 이래 있어왔고 또 정치적 동물인 인류가 지구상에 살아가는 한 필연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 적대적 공생관계에 기인한 짜고 치는 고스톱의 한 조각인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이번 사건도 예외 없이 그 피해는 '쫄따구' 병사들과 힘없는 백성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는 것이다.

전도양양한 두 명의 병사와 살길 찾아 외딴섬까지 흘러 들어와서 노동을 하던 두 분의 민초가 생목숨을 허망하게 잃어버렸다. 또 피난민들은 아직도 정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낯선 도시의 찜질방에서 허탈한 마음을 쓸어내리고 있다.

민초들이여, 그럴싸한 말장난에 현혹되지 말아라

남북의 위정자들은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란 답 안 나오는 '탁구게임'에 올인하기 전에 생명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부터 온 몸으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사람의 목숨이란 일국의 국방위원장이라 해서, 또 일국의 대통령이라 해서 귀하고 이름없는 병사라 해서, 힘없는 노동자라 해서 천한 것이 아니다.

대책회의를 위해 모처로 향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 독일 공영방송의 화면켑쳐 대책회의를 위해 모처로 향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 조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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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몇 날 며칠동안 한국 상황을 대서특필 하고 있는 독일방송을 보면서 나그네의 가슴을 더욱 씁쓸해진 이유는, 두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정부당국과 국민들의 이중적 태도 때문이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북의 민간인 마을 폭격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비록 군부대를 목표로 했다고 변명할지언정. 문제는 그 다음이다. 추후 민간인 노동자 두 분의 시신이 발견되자 남한 정부는 북을 향해 대대적인 정치공세를 가했다. 이곳 독일 방송에서도 그 문제를 크게 다루었다.

전시에도 민간인 피해는 할 수 있는 한 피해가야 하겠지만 평시에 민간인을 살상했다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일임은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당국도 유감이란 언어유희로 끝맺음 하려 하지 말고 '통크게' 정식으로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인민을 기본으로 생각하는 나라라면 더욱 그러해야 할 것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사건은 일어났고 남측의 '치명타 한 방'에 북측은 유감을 표명했고 국제정치의 장에서도 '코너'에 몰렸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나그네의 과문한 생각인지는 몰라도 이른바 '조폭집단'이요, '반국가이적단체'인 북에 치명타를 안겨준 '영웅'임에도 불구하고 두 분의 빈소는 왜 그리 초라하며 정부와 국민의 관심도도 상대적으로 적은 것일까.

어떻게 보면 북을 몰아 부치는데 국군병사보다 두 분의 노동자가 더 큰 일을 했지 않은가. 왜냐하면 두 분 노동자는 민간인이니까. 국민장은 못할지라도 최소한 초개처럼 산화해간 두 국군병사 만큼의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족을 단다면 나그네는 33개월 하고도 4일을 북의 땅굴로 유명한 최전방 25사단 고량포에서 국방의무를 마쳤다. 오월 광주민중항쟁을 전후로 해서.

마지막으로 북의 위정자들과 남의 위정자들에게 갈 곳 잃고 아직도 이녁 땅에서 방랑하고 있는 이름없는 나그네가 오체사지로 읍소하며 부탁한다. 7천만 우리 민족을 담보로 정치놀음과 전쟁놀음을 하지 말라.

누구를 위한 전쟁 '시츄에이션'인가. 무기를 팔아먹기 위한 미국의 군산복합체? 우리의 골육상쟁이었던 6.25의 부산물로 번영을 구가했던 일본이 뒤에서 실 눈을 뜨고 바라보고 있는 것이 당신들 눈에는 안 보인단 말인가? 당신들은 권력과 함께 영생불사를 꿈꾸었던 진시황이라도 된단 말인가?

인생은 유한하고 권력도 유한하지만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당신들의 후대들은 영원하다는 것을 잊지말라. 우리들만의 전쟁은 결국 힘없는 민초들의 처참함만 가져다 줄 것이고 남북 양쪽 다 공멸하는 '제로섬게임'이 될 것이다.

승자? 있기는 있다. 일본을 정점으로 한 주변 강대국들이 어부지리의 승자가 될 것이다. 남북의 민초들이여! 더 이상 위정자들의 말장난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제발 죽 쒀서 개 주지 말자.


태그:#전쟁놀음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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