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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첫눈, 서울에서는 흔적도 없더니만 퇴촌에는 내린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습니다.
▲ 첫눈 첫눈, 서울에서는 흔적도 없더니만 퇴촌에는 내린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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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어제(27일) 새벽에 첫눈이 왔습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그늘진 곳에 흰눈의 흔적이 남아있어 눈이 온 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눈은 첫눈을 실감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마치, 연평도 사건이 터진 후에 호들갑을 떨다가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누군가에게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누군가에게는 아무일도 아닌 것인 세상이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마음 따뜻한 세상이라면 남의 아픔을 내면화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하고 소망해봅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아니라, 말로 다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음을 공유하는 것이 이웃이요,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이면 좋겠습니다.

눈이 오고 하룻밤을 지내고 퇴촌에 가서야 '눈이 제법 많이 왔어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습니다. 비로소, 낙엽들에게 쉼의 시간입니다.

고드름 햇살에 녹으며 얼기에 고드름이 생겨납니다.
▲ 고드름 햇살에 녹으며 얼기에 고드름이 생겨납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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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드름도 열렸습니다. 고드름은 그냥 추워서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따스한 햇살에 녹아 내리고, 그 물방울이 다시 얼음이 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부드럽던 눈이 녹아 다시 딱딱한 고드름이 되고, 고드름이 다시 녹아 물방울이 되어 처마끝에서 일정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날은 햇살이 따스한 날입니다.

꽁꽁 얼어붙은 남북간의 관계,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감이 오긴하지만 얽혀버린 실타래를 푸는 일은 쉬워보이지 않아 답답합니다. 그냥 봄날 따스한 햇살에 녹아내리는 고드름처럼, 그리하여 이제 막 겨울잠에서 깨어난 새싹들이 고드름에서 떨어진 물방울로 온 몸을 채우고 위로 솟구쳐 오르지 않으면 몸이 간질간질하여 견딜 수 없어 싹을 내는 그런 역사는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일까요?

바이얼린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무섭긴 무서운가 봅니다. 베짱이가 겨울이 오기전까지 노래하는 것이 왜 죄일까요?
▲ 바이얼린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무섭긴 무서운가 봅니다. 베짱이가 겨울이 오기전까지 노래하는 것이 왜 죄일까요?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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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얻는 정보들은 우리에게 간혹 왜곡된 정보를 주고, 그 왜곡된 것들이 진실인냥 믿고 살아가게 만듭니다. 간혹, 그것만은 아닐거라 생각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냥 그 왜곡된 정보대로 판단을 해버립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개미와 베짱이'이야기를 통해서 나는 열심히 일하는 개미와 노래만 불러대는 베짱이에 대한 편견을 어려서부터 가졌습니다. 어느 한 쪽에 대한 편견이지요.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 재해석한 이솝우화를 읽으면서 베짱이의 삶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도,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하나의 교훈을 담은 우화라는 것을 생각하면서도 종종 개미에 대해서는 우호감을 느끼고, 베짱이에 대해서는 비우호적인 감정을 갖게 됩니다.

뭐가 진실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어느 쪽 편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어쩌면 우리 나라가 분단되어 살아오면서 강요당했던 이데올로기요, 우리 민족의 불행이었을 것입니다. 다른 소리를 내면 반역자로 몰리는 처제에서 남과 북 모두 진실 혹은 객관적인 것들을 뒤로하고 서로를 향해 증오심만 키워온 것이지요. 결국엔 한 민족끼리보다 자신들이 의존하는 강대국의 이방인들이 한 민족보다도 더 가까운 것처럼 느껴지는 현실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컴퓨터자판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글을 쓰는 요즘, 잉크냄새가 그립습니다.
▲ 컴퓨터자판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글을 쓰는 요즘, 잉크냄새가 그립습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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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보는 것과 어떤 과정을 거쳐 보는 것은 다릅니다. 실재는 존재하는데 눈으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우리에게도 어떤 고정관념이나 이데올로기같은 것들이 색안경처럼 우리 앞을 가리고 있으면, 진실의 일부분 밖에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눈이 왔어도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눈이 왔는지 어떤지 모르고, 실감이 나지 않는 것처럼 누군가의 아픔도 그렇습니다. 난데없는 포탄에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도, 가족들의 심정도 그렇습니다. 문제는 그런 것들을 이용하려는 이들입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철저하게 그들을 이용해 먹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번 연평도 사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수많은 일들을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이용하는 이들이 늘 있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역사는 늘 겨울이었습니다.

봄이 올듯올듯 하다가 다시 겨울, 그런 역사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지요. 어느새 겨울입니다. 그러나 우리 역사는 따스한 봄날이 오길 바랍니다. 딱딱한 고드름이 녹아 긴 겨울을 보낸 흙 속의 씨앗들의 잠을 깨우는 그런 날이 오길 바랍니다.

춥습니다.
우리네 역사까지 춥다면 이번 겨울은 너무 추울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위의 사진은 스마트폰으로 담은 것들입니다.



#바이얼린#고드름#첫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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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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