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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워싱턴' 핵항공모함이 서해로 들어온다. 북한에게 무력시위 하는 거다. 또 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그래서 겁먹고 잠잠해질 북한이라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오지도 않았다. 정부는 사상 최대 규모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시행하겠다고 공헌하지만, 북한도 준전시상황을 내려놓고 '불의 대응'을 부르짖고 있다. 결코 믿고 싶지 않지만, 다시 한 번 무력충돌을 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다시 충돌이 나면, 이번에는 제대로 대응하려고 벼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군 병사 조금 죽더라도 적진을 쑥대밭으로 만들면 된다, 이 논리라면 끔직하다. 묻고 싶다. 자칫 전선이 확대되어도 압도적 공중폭격으로 초기에 무력화시키면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차마 폭격하지 못한 포에서 발사된 포탄으로 죽은 수도권 주민들은 북한의 공격에 의해 희생당한 '애국 용사'라 하면 그만인가?

 

게다가 지금 국제정치 역학상 북한을 바꾸려면 중국을 움직여야 한다. 우리가 미국을 움직여서 북한과 불가침조약 맺게 하고 국교정상화 시킬 정도가 아니라면, 중국과의 긴밀한 공조가 필수이다. 그런데 해법이란 것이 중국 코앞에 미국 핵항공모함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 언론들은 이번 훈련이 중국에게 대북제제에 동참하라는 미국의 압박이며, 그것이 중국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분석하지만, 그건 상황을 잘못 판단한 것이다. 북한의 고립이 계속될수록 북한의 중국 의존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고, 중국이 그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더욱이 중국은 북한을 자기 체제의 방파제로 유지하고 싶어한다.

 

이재오를 특사로 보내라

 

난 이번 문제가 이명박 정권 최대의 정치적 위기라고 생각한다. 민간인까지 포탄에 맞아 죽었고, 북은 추가 공격을 공언한다. 우리 사회가 오랜 긴장과 위기를 겪어오면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지, 다른 사회였으면 이미 사회적 기능의 상당 부분에 문제가 생겼을만한 긴장 상황이다. 또한 이 문제는 야당이나 시민사회의 역할이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정권이 정치적 결단에 달려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 수뇌부의 결정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정권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군사적 보복은 극한의 무리수다. 국민의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 공격으로 죽어갈 이들은 남한 포격을 결정한 북한 정권의 실세들이 아니라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이름 모를 북한의 민중들이다. 경제제재도 이미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외교적 압박 역시 천안함 때 경험한 것처럼 만만치 않다. 더욱 중요한 것은, 결국 이 모든 방식이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시킬 뿐이라는 점이다.

 

위기는 기회다. 정치인은 전시에도 이 상황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마련이다. 당연하다. 그걸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다. 다만 제대로 활용하길 바랄 뿐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의 승리라 했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 대북 특사를 보내라. 정권 최고의 실세로 보내라. 미국 항공모함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정권의 정치력으로 상황을 수습하라. 특사를 영웅 만들고, 정권은 이 위기를 관리했음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레임덕을 넘고, 역사에 이름을 남겨라.

 

지금 상황에서 대통령이 직접 갈 수는 없다. 자신의 지지기반인 보수층이 결코 지지하지도 않겠지만, 정상회담이란 것을 하기 위해선 물리적 준비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재오 특임장관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정권 2인자로서의 무게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인 이재오를 키우는 것은 청와대에서도 바라는 바일 것이다. 그가 특사로 북한에 가 연평도 포격에 대한 북한의 유감 성명을 끌어내고, 서해지역 분쟁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 프로세스를 체결하고 오는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 이재오 특임 장관이 보여준 능력이라면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

 

 

이희호 여사도 함께 북한으로

 

비공개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가장 공개적인 방식으로 보내라. 특사가 북한으로 간다는 발표나 나오면, 그리고 그 발표가 전 세계 언론으로 퍼지면 지금의 긴장국면은 확연하게 누그러질 것이다. 특사가 가서 정상회담 준비를 시작하고, 막혀있던 문제를 해결하는 기초를 쌓아야한다. 남은 정권의 임기가 길지 않다. 정상회담을 한다면 내년 후반기가 적기이고, 그렇다면 어떻게든 지금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특사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지원이 있다면 하라. 그것은 은밀한 이면거래가 아니라 국민의 목숨을 구하기 위함이다. 군사훈련으로 수십억을 소모하는 것 보다,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 민중들에게 식량지원을 하는 것이 훨씬 전략적인 판단이다. G20과는 차원이 다른, 전 세계에 한국 정부의 정치력을 보여주는 장이 될 것이다. 미국은 납치된 미국인 몇 명을 구하기 위해 전직 대통령들이 기꺼이 북으로 날아간다. 지금의 긴장국면을 해결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살릴 수 있을지 생각하길 바란다.

 

그리고 이희호 여사도 함께 북한 특사단에 포함해서 가는 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미 수차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 말해왔고, 김대중 대통령 서거 당시에도 고위급 특사를 파견해서 당시 경색되었던 남북관계를 풀었던 바가 있다. 이희호 여사가 <김대중 자서전>을 직접 들고 북으로 간다면 남과 북 모두에게 그 상징성은 무엇과도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그 상징성은 우리 사회가 가진 자산이다. 이재오 특임장관의 정치력과 이희호 여사의 상징성이 모아진다면, 분명 성과를 낼 수 있다.

 

걱정하지 마라. 결국 공은 정부와 특사에게 돌아오게 되어있다. 오히려 이희호 여사 동행이라는 정부의 통 큰 결정에 이명박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많은 이들이 정권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그게 '국가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보여줄 자세이다.

 

모든 결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태그:#이재오, #대북특사, #이희호, #연평도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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