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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A CUP(위더컵) 캠페인은 편리와 풍요를 향해 과속 질주하는 우리를 돌아보며 삶의 속도를 한 박자 천천히 늦추기 위한 '여성환경연대 슬로 라이프 운동'의 일환으로 제안되었습니다. 자기 컵과 함께 하는 즐거운 불편을 통해 새로운 관계와 소통 그리고 느린 시간의 유쾌한 경험을 나누려 합니다. [편집자말]
영등포에 위치한 카페 바오밥 나무.
 영등포에 위치한 카페 바오밥 나무.
ⓒ 최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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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카페에 가면 '움직이는 컵'이 있어."

순간 머릿속이 멍~ 해졌다. 컵이 움직인다고?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어떻게? 궁금했다. 그래서 수소문한 결과, '움직이는 컵'이 최근 여성환경연대가 진행하고 있는 '위더컵 캠페인'의 작은 프로젝트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

'움직이는 컵'은 국내 크고 작은 카페 11곳에서 진행한 '텀블러 빌려주기' 프로젝트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를 찾는 사람들에게 '비싼' 텀블러를 '그냥' 빌려준다고. 이번 '움직이는 컵'에 참여한 카페 대부분이 여성환경연대의 '촛불 켜는 가게'들이다.

'촛불 켜는 가게'는 느리게 살기운동에 동참하는 가게로, 대안적 삶을 지향하는 이들의 작은 공간을 말한다.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않으며, 희망무역(fair trade)을 통해 들어온 커피를 사용하려 하고, 공간을 통해 생태적인 삶을 실현하고자 이들이 만든 공간이라고 한다.

"컵 들고 오는 수고로움 덜어주기 위해 기획했어요"

김은정 커뮤니케이션 우디 실장
 김은정 커뮤니케이션 우디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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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캠페인의 의도는 무엇일까? '움직이는 컵' 기획에 참여한 김은정 커뮤니케이션 우디 실장은 "움직이는 컵은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컵을 들고 와서 커피를 담아가는 게 어렵다면 컵을 들고 오는 수고로움을 덜어 주는 거죠. 그리고 이 캠페인에 참여하도록 하는 겁니다. 누군가는 컵 회수에 대한 우려를 이야기 했지만, 신뢰를 보여주고 이런 문화가 우리 사회에서 구동이 가능한지 실험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어요. 이 캠페인은 계속 변화 발전할 것이고, 이 실험을 토대로 다른 시도를 계획해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캠페인에는 여러 사람들이 동참하고 있다. 김 실장이 몸담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우디'는 홍대를 중심으로 한 문화적 접근과 위더컵(With a cup)의 기초 기획을 함께 했으며, 앞으로도 소박하게 바이널 마케팅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움직이는 컵이란 캠페인 의도는 좋아보였지만, 직접 목격하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었다. 눈 뜨고 있어도 코 베가는 세상에, 아무런 조건 없이 커피보다 몇 배 비싼 텀블러를 빌려준다니, 어찌 그냥 덥석 믿을 수가 있겠나. 그래서 움직이는 컵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카페 몇 곳을 방문해봤다.

[카페①-가배나루] 고양이가 있고, 텀블러가 있는 '그곳'

커피 맛 좋기로도 유명한 충정로 가배나루에 가면, 반가운 손님 둘을 만날 수 있다. 첫째는 복슬복슬한 털을 가진, 사랑스러운 '고양이들'이고 둘째는 움직이는 '텀블러'다. 고양이들은 책 읽는 카페지기들 옆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퇴근시간 무렵엔 여행을 다녀온 손님들이 카페로 선물을 들고 오기도 한다.

충정로에 위치한 카페 가배나루.
 충정로에 위치한 카페 가배나루.
ⓒ 최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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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배나루의 가장 큰 매력은, 카페 문을 열면 들리는 "오셨어요?"라는 따뜻한 인사말이다. 손님을 기억하고 반겨주는 카페. 이 카페 한쪽에 지난 7월경부터 텀블러가 놓였고, 그 텀블러는 빌려주는 용이라고 했다. '움직이는 컵'에 참여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를 물어 보자, 역시나 "컵을 가져가면 잘 안 들고 온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실망하긴 일렀다. 손님들에게도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컵을 이용한다는 박준희씨의 말은 더 큰 희망을 갖게 만든다. 

"단골카페인 가배나루에 들렀더니 평소 찾던 텀블러가 있었어요. 크기도, 구성도 맘에 들었죠. 카페 대표님께 '텀블러 예쁘다'고 했더니 '빌려주는 용'이라고 하셨고 그래서 일단 빌려왔어요. 담아온 커피를 마시고 다른 물과 차도 마시다 보니 텀블러에 정이 갔어요. 하루 이틀 지나니 발걸음이 무거워졌죠. 이후 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컵 캠페인에 대해서도 떠올려봤어요. 일회용을 쓰지 말자고 캠페인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어서 가져다 드려야겠다 싶어 가져 왔어요."

이 이야기를 들어 보니 사람들의 마음속에 캠페인의 의미가 잘 전달되고 있는 것 같아서 반가웠다. 되도록 일회용을 사용하지 않는 행동까지 이어지는 것은 '그런 생각이 없거나', '귀찮거나', '바른 실천에 무작정 반감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큰 변화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번쯤 생각하게 만든다거나 작은 참여로 동참할 수 있게 한다는 것에서도 캠페인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가배나루 전화번호 : (02)312-0616
주소 : 서울시서대문구충정로3가  348-1 가배나루
교통편 : 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 2번출구 충정타워 뒷편

[카페②-바오밥나무] "텀블러 씻어 주는 건 문제도 아니죠!"

영등포에 위치한 카페 바오밥 나무.
 영등포에 위치한 카페 바오밥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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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도 텀블러를 들고 가면 일정금액을 할인해 주고 깨끗하게 씻어서 음료를 담아준다. 당초 '움직이는 컵'이 쉽지 않아 보인 이유는 대형프랜차이즈가 아닌 작은 카페들에서 '그런 수고로움을 감당하려고 할까?'란 생각 때문이었다.

영등포에 위치한 카페 바오밥나무에 들러 "움직이는 컵이 어렵거나 귀찮지 않냐?"고 물었다. 다른 사람이 봐도 번거로운 일인데, 이상하게도 "씻어 주는 건 문제도 아니죠!"라는 답이 날아왔다. 빠름과 효율만을 좇는 시대에 이런 카페 주인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걸어가다 발길을 돌려 그 카페에 가면 든든한 나무 같은 친구가 있을 것 같은 느낌.

바오밥나무(여성미래센터점)의 이선영 대표는 지금의 텀블러가 조금 더 보완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라떼의 경우 컵이 잘 씻기지 않고 오래 두면 냄새가 날 수 있어 관리를 잘해야 할 것 같아요." 나도 보온병을 이용할 때 비슷한 문제를 겪은 적이 있었는데, 역시 카페 주인인지라 커피 맛 관리에 남다를 애정을 쏟는 듯했다. 이 카페는 WITH A CUP과 함께 직원들의 유쾌함이 있어 자주 가고 싶은 곳이었다.

바오밥나무 여성미래센터점 전화번호 : (02)2676-2100
주소 : 서울시영등포구영등포동 7가 94-59 여성미래센터 1층
교통편 : 지하철 5호선 2번출구 당산역방향으로 걸어와 사거리에서 '남부교육청' 인근

[카페③-커필]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카모메 식당' 같은 곳

파주에 위치한 '커필'
 파주에 위치한 '커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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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컵 캠페인에 가장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도 모자라, 텀블러 판매도 가장 많이 한 곳이 있다고 해 멀리 파주까지 달려가 보았다. 어머니와 딸이 함께 운영하는 '커필'은 말 그대도 홈스타일 카페였다. 내가 찾아간 날은 딸 혼자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헤이리에서 요가수업도 하고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움직이는 컵에 대한 에피소드를 물어보자, 텀블러를 빌려 주는 것 외에 위더컵 캠페인 기금 마련을 위해 제작한 텀블러를 70개 가량 판매했다며 수줍게 말했다. 출근길 단골손님이기도 한 중소기업 대표 한 분이 위더컵 캠페인의 취지를 듣고 너무나 반가워하며 직원들을 위한 선물로 구입하고 주변 친구들에게도 권했다고. 이후 텀블러를 이용한 손님이 다시 주변 지인에게 선물하고, 그러다 보니 많이 판매하게 되었다고 한다.

텀블러 전도사가 된 단골손님 대표는 종이컵이 쌓여 있는 책상을 보며 '어떻게 하면 일회용품 없는 사무실을 만들까, 어떻게 하면 설거지 갈등 없이 일회용 컵을 없앨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위더컵 내 컵 들고 다니기 운동을 보고 '바로 이거다' 싶어 무척 반가워했다고 한다. 카페 주인장은 위더컵 캠페인 취지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아 움직이는 컵도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고 "즐거운 경험"이라고 말했다.

파주에 위치한 카페 커필의 모습.
 파주에 위치한 카페 커필의 모습.
ⓒ 최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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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페는 마치 영화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그런 장소인 듯했다.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카모메 식당'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유동인구 많고 손님 많은 서울 카페들도 텀블러 판매는 잘 하지 못하고 있는데, 인적도 드문 이곳에서 이렇게 많은 텀블러들이 팔리다니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카페 얘기를 좀 더 하자. '커필'에는 에스프레소 머신이 없다. 로스팅부터 그라인딩 드립도 손으로 직접하고 있다. 또한 원두는 희망무역(공정무역)이라고 불리는 fair trade 유기농 커피(히말라야의 선물)를 사용하고 있단다.

추천 커피를 한잔 주문하자 그때 생두를 볶기 시작하는 주인장. 나에게 줄 수 있는 양을 볶아 그라인딩해서 내려주는 신선한 커피란…, 이번 인터뷰의 최고의 경험이 아니었을까 싶다.

'커필' 전화번호 : 031-949-1388
주소: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9-3번지
교통편 : 대중교통으로 오시는 길: 3호선 대화역 6번출구 앞에서 900번 타고 도레미미디어 앞 정거장에서 내리셔야 합니다. (버스 약 40분 소요)

* 지난 7월부터 11개 카페가 참여해 시작한 '움직이는 컵' 프로젝트는 지난 10월로 1차 프로젝트가 마무리된 상태고, 바오밥 나무와 커필만 캠페인을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태그:#위더컵, #여성환경연대, #움직이는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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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창립한 여성환경연대는 에코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모든 생명이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녹색 사회를 만들기 위해 생태적 대안을 찾아 실천하는 환경단체 입니다. 환경 파괴가 여성의 몸과 삶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여 여성건강운동, 대안생활운동, 교육운동, 풀뿌리운동 등을 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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