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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벤치에 앉아 본 사람이라면 얼마나 인체공학적 설계인지 내심 감탄하게 된다. 통나무 간격만큼 푹 패인자리가 앉았을 때 부담을 덜어준다.
▲ 통나무 벤치. 이 벤치에 앉아 본 사람이라면 얼마나 인체공학적 설계인지 내심 감탄하게 된다. 통나무 간격만큼 푹 패인자리가 앉았을 때 부담을 덜어준다.
ⓒ 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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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기껏 왼손이 해 놓은 일도 오른손이 한 것처럼 가로채어 이익을 챙기거나 생색을 내는 일이 능력처럼 인정 받고 있는 세상에서 오른손도 모르게 하는 왼손의 선행은 가능한 것일까.

그런데 내가 날마다 오르는 삼각산(광주광역시 북구 소재)에서 오른손 모르게 은밀하게 이뤄진 왼손의 선행을 접하게 됐다.

삼각산은 운동 삼아 오르기에는 약간 아쉬움이 남는 산이다. 마을 뒷산이라고는 해도 집을 나설 때의 차림은 여느 등반가처럼 갖출 것은 웬만큼 갖춰 나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무리 짧은 산이라지만 등산화나 모자, 점퍼 등 어느 것 하나라도 소홀히 했다가는 등산길에서 적잖은 불편을 겪게 된다.

삼각산 정상인 깃대봉까지는 처음 구간만 약간 힘이 들고 중봉을 지나면서는 평지길에 가까운 숲길이다. 등산객들에겐 아쉬움과 허전한 감이 없지 않았다. 괜히 깃대봉 넘어 일곡지구나 장등 쪽을 넘보다 그냥 돌아서 오기를 몇 번. 그것도 흥이 나지 않는다. 괜히 낯선 곳으로 빠져 길이나 잃지 않을까 두렵고 인적도 드물어 선뜻 내키지가 않았던 것이다. 정상인 깃대봉 평상에 앉아 좀 쉬다 내려오면 도로까지 왕복 한 시간 남짓이면 끝이 난다. 늘 아쉬웠다.

광주 삼각산의 변신, '신항로'라 불러주마

그런데 얼마 전 이런 등산객들의 아쉬움을 해소해 줄 2km 가량의 길이 새롭게 조성됐다. 새로 생긴 길은 원래 길보다 숲 깊숙이에 만들어져 훨씬 아기자기하고 다양하다. 군데군데 옹달샘이 숨겨져 있고 통나무 다리가 놓인 건널목이 있다. 길은 구불구불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다 보니 걸음걸음 호기심과 산을 더듬는 욕구가 더해 간다. 기존의 직선주로에서 끊임없이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다가 두 길은 깃대봉 정상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중간 중간 원래의 길과 이어주는 연결선이 있어서 마치 큰길과는 인터체인지 모양으로 들고 나기가 용이하다. 그러니까 새로 난 길이 좀 벅차다 싶으면 언제라도 원래 등산로로 빠지면 되게끔 편리하게 설계돼 있다.

새 길을 걸어 정상인 깃대봉까지는 쉬지 않고 올라도 한 시간 십분 가량이 소요된다. 직선로가 35분이면 정상까지 내처 갈 수 있던 것에 비하면 이 길은 운동 삼아 오르내리기에 적합한 거리다. 고요한 숲속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마치 꿈처럼 이어져 동네 뒷산으로는 너무 훌륭하고 아름다운 길이 될 것 같다.  

나는 이 길을 '신항로'라 나름대로 이름 붙이고 요즘 신나게 오르내린다. 이 길이 새로 만들어진 걸 안 것은 운 좋게도 길이 막 완성된 바로 다음 날이었다. 날마다 오르는 산에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 한쪽에서 또 다른 길이 조성되었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었다. 새로 접한 신항로는 정말 동네산으로는 너무나 훌륭하고 아름다웠다.

길은 좁고 구불구불하지만 기존 직항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가파른 길의 헐떡거림과 깊숙한 골짜기에서 풍겨오는 숲 향기는 그만이었다. 중간 중간 놓여 있는, 통나무를 엮어 만든 다리들과 앙증맞은 샘물은 정말 꿈만 같았다.

오밀조밀 내리막을 주루룩 내려가다 보면 금세 만만찮은 오르막이 앞을 막아선다. 문흥지구와 일곡지구, 담양까지 이어지는 삼각산 자체가 워낙 원만하고 순한 산이다. 그러니 신항로라고 해도 여느 산과 비교해도 포근하고 부담이 없다. 오르막도 숨 한 번 잘 참으면 금방 올라서 이내 포근한 황토길이 편하게 이어지고 앞만 보고 터벅터벅 걷다 보면 눈앞에는 다시 내리막이 시작된다. 사람 호흡을 조였다 풀었다 조절할 만큼, 딱 그만큼의 산세로 형성되어 있다. 게다가 기존 직항로와는 마치 고속도로의 인터체인지처럼 간헐적으로 연결되어 외지고 깊숙한 신항로의 두려움과 소외감을 떨치게 해 준다.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기적 일군 우렁 할아버지

처음엔 당연히 이 신항로를 구청에서 만든 줄 알았다. 구청도 나름 주민들을 위해 애쓰는 구나, 당장 시급한 사안도 예산 부족으로 부족한 것 투성이인데 이렇게 주민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도 아끼지 않는구나 하고 감격했다.

그런데 이 새 길이 구청이 아닌 일흔이 넘으신 할아버지 한 분이 이뤄내신 거란다. 이 사실을 알고 동네 사람들은 경악했다. 일의 규모로 보아 결코 한 사람의 힘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연한 사실이었다. 구청에서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익명의 할아버지 한 분께서 여름 내내 이 어마어마한 공사를 다 마친 것이다. 당신의 연장과 톱이 하나 둘씩 닳아 없어지도록.

그러고 보니 구청에서 이루어 놓은 업적치고는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새 길이 닦아지고 개통되도록 홍보 행사는커녕 아무런 표지판 하나 세워지지 않았던 것도 그 중 한가지다. 늘 예산 부족에 허덕이는 지자체가 기존에 있던 등산로를 놔두고 새 길까지 만들어 주는 것 또한 친절과잉 행정이다 싶은 감도 없지 않았다. 무엇보다 관에서 이 모든 일을 했더라면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준공식이 있었을 것이고 각급 기관장들의 생색내기도 만만찮았을 것이다. 한 사람의 노인이,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이 길을 만들었으니 조용히 입소문으로만 길의 존재가 알려졌을 뿐이다.

할아버지의 섬세한 손길은 어느 곳 하나 소홀함이 없으시다. 신항로를 걷다 보면 할아버지의 등산객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조금이라도 가파른 길은 어김없이 나무를 잘라 땅에 박아 미끄럼 방지 역할을 한다. 아니면 보폭에 맞게 흙을 파서 내리막길의 안전을 도모하셨다. 지나친 급경사는 넓게 우회해 새 길을 닦으시고 옆이 위험한 낭떠러지 지형이면 통나무를 길게 박아서 가드레일 역할을 하게 해 놓으셨다. 무엇보다 할아버지의 센스가 돋보이는 곳은 통나무 다리다. 골짜기와 골짜기가 동떨어진 부분은 어김  없이 통나무를 엮어 다리를 만들어 놓으셨다.

정상인 깃대봉까지 가는 동안 어느 곳 하나 할아버지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희미하게 흔적만 있던 길들을 일일이 삽질을 해 어엿한 길로 넓혀 놓았고 끊어진 길을 이어 닦아서 한 줄기 등산로로 개척해 놓으신 것이다. 길가에 우거진 수풀과 나뭇가지들은 보행에 지장이 없도록 시원스레 베어내셨다. 도저히 일흔이 넘으신 할아버지 한 분이서 해 놓으신 일로는 믿기지가 않지만 사실이다.

우리가 낮은 산에 아쉬워할 즈음 할아버지는 묵묵히 사람들을 위해 이 신항로를 개척하셨다. 워낙 존재감 없는 '우렁이 할아버지'인지라 누구라도 그 할아버지를 직접 뵜다는 사람이 없는데 나는 이 할아버지를 맞닥뜨린 행운을 얻었다.

할아버지는 개통된 후에도 여전히 당신 마음에 미진한 부분을 손보고 계신다. 그날도 통나무로 엮어 만든 길 위에 미끄럽지 않게 황토를 덮느라 열심히 삽질을 하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극구 당신의 존재를 감추려 하셨지만 어렵사리 할아버지 신상에 조금이나마 근접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서 허는 일이지요. 삼각산이 하도 좋아서, 내게 좋은 산 사람들도 기쁘게 오르시라고. 아, 내가 좋아서 허는 일인데 뭣이 미안하다고 그러시나. 어여 올라들 가요. 나는 암시랑 않다니까. 나 혼자 그냥 좋아서 허는 일이구만."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에게조차 감쪽같이 하고픈 할아버지의 결벽은 당신을 익명의 영역으로 남게 해주길 원하셨다. 할아버지 사시는 곳과 연락처를 가까스로 알아 온건 그나마 큰 수확이었다.

원수 외나무다리와 선녀남편탕...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더 아찔한 원수외나무가 있는데 그림이 잘 안나와서 그냥 예쁜걸로. 외나무 다리가 너무 평평한가?
▲ 원수 외나무 다리2 더 아찔한 원수외나무가 있는데 그림이 잘 안나와서 그냥 예쁜걸로. 외나무 다리가 너무 평평한가?
ⓒ 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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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항로 곳곳엔 내가 혼자 임의로 이름 붙여 놓고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장소들이 있다. '원수 외나무다리'는 가장 긴 통나무 다리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원수 외나무다리'는 이 길에서 두 번째 놓인 다리인데 몇 개의 다리 중에서 가장 아찔한 높이에 설치되어 있다. 오다가다 원수라도 만난다면 꼼짝없이 일전을 불사할 수밖에 없는 난감한 지점에 위치해 있다. 그 아슬아슬함을 즐기고자 '원수 외나무다리'라고 불러 놓고 보니 썩 어울리는 것 같다.

조금 깊이 들어가면 '북청 물장수' 샘이 나온다. 맑은 물이 퐁퐁 솟아 나오는 폼이 한
모금 마시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위치상으로 목마름이 극에 달할 때 마주하는 샘이니까 그만큼 갈증 해소 효과도 만점이다. 우렁이 할아버지는 세 군데에 있는 샘을 일일이 청소하신다. 언제 보아도 어제 떨어져 가라앉았던 나뭇잎들이 말끔히 치워져 있다. 새벽마다 고요히 다가와 잠자는 머리맡에 찬물을 쏴~ 쏟아 놓고 그만 몰래 사라지는 북청 물장수. 남몰래 옹달샘을 청소하시는 할아버지와 북청물장수는 같은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북청 물장수' 샘이 흘러 지나가는 위로는 통나무로 만든 징검다리 '원수 악수다리'가 있다. 물론 내 마음대로 이름 붙이고 여기에 동조하는 사람은 달랑 우리 가족뿐. 아무리 철천지 원수라 할지라도 졸졸 흐르는 옹달샘 아래 이 앙증맞은 징검다리에서 조우한다면 그간의 미움일랑 깡그리 잊고 덥석 손을 잡아 버리고 말 것이다. 징검다리를 건너면 바로 평평한 풀밭이 놓여 있는데 여긴 서로 화해한 예전의 원수가 그간의 회포를 풀기에 적당한 장소다.

'원수 악수하는 다리'도 건너고 화해도 했으면 다시 길을 재촉해야 한다. 몇 걸음 지나면 왼쪽 옆으로 지금은 가을이라 낙엽으로 뒤덮여 안 보이지만 그 밑은 늘 물이 고여 있는 습지가 나온다. 여기는 '호세 늪'이라는 곳이다. 내가 좋아하는 중국 여류작가 삼모의 사하라 이야기에서 따왔다. 이 작은 습지를 보는 순간 저절로 '호세 늪'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삼모의 남편 호세가 늪에 빠져 고전하는 아찔한 장면이 나오는데 지금은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삼모와 호세가 너무 그리워 이 습지는 거창한 늪이 됐다. '호세늪'을 지날 때마다 삼모와 호세를 생각한다.

선녀는 나무꾼을 받아들였을까? 그러길 바란다. 그래야 이곳이 나무꾼탕이  아닌 선녀남편탕으로 남을수 있으니까.
▲ 선녀 남편탕 선녀는 나무꾼을 받아들였을까? 그러길 바란다. 그래야 이곳이 나무꾼탕이 아닌 선녀남편탕으로 남을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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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남편탕'도 있다. 제일로 깊숙한 곳에 위치한 샘이니까 선녀는 이쯤에서 나무꾼과의 거취 문제를 결정지어야 할 지점이다.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선녀가 갈등하는 사이 길은 이제 고개 하나만 넘으면 왼쪽으로는 종착지 깃대봉으로 죽 이어지고 오른쪽으로는 장등동으로 내려가는 비탈길이다.

선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자연스레 '선녀탕'이라고 했다가 선녀가 몸을 담그기엔 가림막이 되어줄 수풀이나 변변한 나무 한 그루 주변에 없는 것이 걸려서 그냥 '선녀 남편탕'이 되었다. 더군다나 결정적으로 선녀가 선녀복을 벗어 던져 놓을 바위조차 하나 없으니 이건 선녀탕으로는 여러 가지로 부적격이다. 노천탕에 가까우니 이곳은 나무꾼 등목에나 어울리지 선녀탕으로는 아무래도 어울리질 않는 거였다.

이 황당한 갖가지 이름들을 가는 곳마다 지어 붙여 놓고 옆에 가족들한테 명명하길 강요하며 오르내리는 신항로는 내게 더 없는 행복의 길이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것은 생물학적 불가항력에 속한다. 내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인간의 본능이야말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에 알리는 가장 강력한 전달물질이다. 하지만 이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 넘은 할아버지의 겸손과 미덕은 낮은 산 삼각산의 신항로를 개척하는 기적을 낳았다.

나는 신출귀몰 존재감 없는 채로 여전히 산길을 닦고 계신 우렁이 할아버지의 존재감을 이제 골짜기마다에서 따뜻한 온기로 느낀다. 아직 마르지 않은 흙의 온기로, 선녀남편탕에 어제 없던 표주박이 놓여져 있는 걸로, 미끄럽던 내리막길에 문득 나무 심지가 박혀 있는 걸로 할아버지는 그렇게 존재하신다. 여전히 왼손이 하는 일이 못내 궁금한 나는 할아버지 금기를 깨고 자꾸 왼손이 하는 일을 곁눈질 하는 방정맞은 오른손이다.

오늘은 하산 길에 '족탕'에 오래 얼굴을 비춰보다 왔다. 아, '족탕'은 가장 아래 있는 첫 번째 샘 이름이다. 왜 샘 이름이 '족탕'인가 하고 친구가 물었다. 처음 이 샘을 봤을 때 산에서 처음 접하는 샘이 너무 신기하고 좋아 물을 한 모금 달게 마셨다. 물을 마시고 나중에 보니 옆에 나뭇가지에 녹색 때타올이 걸려 있는 게 아닌가. 누군가는 여기에서 때를 미는데 나는 목마른 원효대사처럼 그 물을 마셨다는 후유증으로 내게 그 샘은 '족탕'이 되어 버렸다. 발씻는 '족탕'.


태그:#선행,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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