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셋째 매형 제사상. 조촐하게 차려졌지만, 제기 하나하나에 정성이 깃들어져 있었습니다.
셋째 매형 제사상. 조촐하게 차려졌지만, 제기 하나하나에 정성이 깃들어져 있었습니다. ⓒ 조종안

엊그제(17일)는 셋째 매형(매형)의 첫 번째 제삿날이어서 제사에 참석하고 왔다. 요즘엔 발인과 함께 복을 벗는 게 예사이지만, 전통유교 방식으로는 소상(小祥)이고, 관혼상제 간소화 조치를 따른다면 탈상(脫喪)으로 복을 벗는 날이기도 하다.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둔 매형은 8남매 중 셋째여서 각처에서 조카들이 많이 모였는데, 사촌 형제들이 함께 제사를 지내고, 음복하면서 가족사를 얘기하는 모습이 제사의 참 의미를 보여주는 것 같아 좋았다.

매형은 체질적으로 술을 못했고, 새벽 등산을 좋아했다. 그런데도 혈압으로 쓰러져 10년 넘게 고생했다. 작년에는 정초에 화장실에서 넘어져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집과 요양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다가 그해 11월29일 74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는 셋째 누님(누님) 전화를 받고 6시쯤 도착하니까, 누님은 형수님과 함께 제수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평택의 막내 매형(69세)이 기다리고 있어서 미안했다. 가까이 살면서도 늦다니, '지척이 천 리'라는 옛말이 생각났다.

조금 있으니까 약속 때문에 조금 늦을 거라던 형님과 동생도 막 퇴근하는 길이라며 도착했다. 저녁을 먹고 제사상을 차리기 시작했는데, 영정 사진의 매형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아련한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필자가 열 살이던 1959년 늦가을(음 9월29일) 셋째 누님과 고향집 앞마당에서 전통혼례를 올린 매형은 부모 같기도 하고, 큰 형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친구처럼 지내면서 함께 여행도 다니는 등 함께한 시간이 많았던 만큼 애틋하고 아련한 추억들이 가슴을 가득 메우고 있다.

2년 전 필자가 고향으로 이사하던 날에도 거동이 불편한 몸으로 집에까지 와서 식구들이 짐 정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처남 일이라면 만사를 제치고 나서는 바람에 누님에게 지청구 듣기가 일수였던 매형, 그래서 작년 상(裳) 때도 꼬박 사흘을 날 새면서 접수를 보았는지 모른다.

셋째 매형의 '아버지 꿈' 이야기

  작은 아들이 사촌 형의 도움으로 아버지 제사상에 술잔을 올리는 모습.
작은 아들이 사촌 형의 도움으로 아버지 제사상에 술잔을 올리는 모습. ⓒ 조종안

조카들이 차례로 제사상에 술잔을 올렸다. 헌작이 끝나고 둘러앉아 대화의 자리가 만들어졌는데, 작년 가을 어느 날 시내 나가는 길에 들렀다가 셋째 누님에게 전해들은 매형의 꿈 이야기가 불현듯 떠올랐다.

"어이! 나 아버지(장인) 꿈을 꾸었는디 말여, 아버지가 하얀 옷을 걸치고 나한티 바짝 와서는 '이 사람아 인제 그만 가세!'라고 험서 자꾸 내 팔뚝을 잡어댕기 드랑게. 얼마 전에도 아버지 꿈을 꿨는디, 안 간다고 혀도 자꾸 가자고 허드라고, 아무래도 내가 죽을 모양여···."

그런데 용하게도 매형은 아버지 생신날 아침에 아무 미련이 없다는 듯 평온한 얼굴로 숨을 거뒀다. 숨을 거두기 며칠 전에도 누님에게 "어이, 우리가 결혼헌 지 몇 년이나 됐지?"라며 자꾸 물었다는 얘기는 가슴을 아리게 했다. 2009년은 결혼 5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었다. 

누님은 꿈속의 아버지가 매형에게 '내 딸(셋째 누님) 고만 성가시게 하고 가자!'는 얘기도 매형이 했다면서 눈물을 훔쳤다. 아버지가 매형 고향집 뒷산에 40년 넘게 잠들고 계셔서 그런 꿈을 꾸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매형은 장인 장모에게 아버지·어머니라고 부르며 살갑게 대했다. 얼마나 깊고 질긴 인연의 끈이 맺어졌는지 훗날 아버지·어머니는 매형의 소개로 사돈댁 마을 야산에 묻혔고, 몇 년 후에는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지금의 자리로 이장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셋째 매형 죽음은 '무언의 메시지'

 아버지 산소(1984년 4월)에서 포즈를 취한 둘째 매형(좌)과 셋째 매형(우). 26년 전 사진 한 장이 깊은 상념에 빠져들게 합니다.
아버지 산소(1984년 4월)에서 포즈를 취한 둘째 매형(좌)과 셋째 매형(우). 26년 전 사진 한 장이 깊은 상념에 빠져들게 합니다. ⓒ 조종안

죽음은 생명체의 삶이 끝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인간은 먹이사슬로 죽음을 맞이하는 자연계의 생명체와 달리 돌발적인 사고나 노화, 병사 등으로 생을 마감하는데, 인간이 정해놓은 형벌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일설에 의하면 심장마비나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등 사전예방이 가능한 죽음은 꿈에서 예시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그러나 병석에 누워있는 환자의 죽음은 흔히 꿈으로 예시된다고 하는데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숙명이기 때문이라고.

꿈의 예시는 과학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특별한 우주 영역의 신호라고 볼 수도 있겠는데, 셋째 매형이 꾸었다는 꿈은 너무나도 사실적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끈끈한 관계를 알고 있던 터라 더욱 가슴이 아팠다.

전생에서부터 필연으로 맺어졌을 매형과 아버지는 어린 학생이었던 필자가 질투를 느낄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성실하고 착했으니까 그랬겠지만, 깐깐하고 엄했던 아버지는 매형을 끔찍이도 아꼈다. 그래서인지 저승에서 만나 반가워하는 두 분 모습이 그려졌다. 

셋째 매형은 아버지 생일날 돌아가셨다. 따라서 제사도 아버지 생일 전야에 지내게 되었다. 인연치고는 기묘한 인연인데, 그런 면에서 매형의 죽음을 깊은 의미가 담긴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싶다. 해마다 한 번쯤은 아버지를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라는 무언의 메시지로.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매형 제사#아버지#인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