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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위촉한 전문·자문·상담위원들이 15일 오전 국가인권위 사무실에서 '61인 동반사퇴 기자회견'을 열고, "현병철 인권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눈치를 보며 반인권적 결정을 반복해왔다"며 현병철 위원장 사퇴와 청문회 등 인사시스템 도입 등을 촉구한 뒤 사퇴서를 제출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위촉한 전문·자문·상담위원들이 15일 오전 국가인권위 사무실에서 '61인 동반사퇴 기자회견'을 열고, "현병철 인권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눈치를 보며 반인권적 결정을 반복해왔다"며 현병철 위원장 사퇴와 청문회 등 인사시스템 도입 등을 촉구한 뒤 사퇴서를 제출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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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의 씨앗'은 역시 이명박 정권이었다. 4대강 사업, 747공약 등으로 전 국민을 속인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내민 카드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대통령 자문기관화와 기구 축소 안이었다. 그때 이미 오늘의 사태가 예견되었다.

'인권'에 대한 개념이 없는 대통령의 눈에는 인권위의 존재 자체가 원활한(?) 국정 운영에 방해가 되는 눈엣가시 정도로 보였으리라.

당시 안경환 위원장을 중심으로 인권위의 독립성 지키기 싸움이 힘겹게 진행됐다. 우리 정책자문단도 다양한 부문과 성격의 인사들로 구성됐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만은 묵과할 수 없다 하여, 한 목소리로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결국은 정치권과 시민사회, 뜻 있는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며 겨우 인권위의 위상을 지킬 수 있었다.

국민의 힘에 밀린 이명박 정권의 두 번째 카드는 기구 축소와 예산 삭감이었다. 당시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심화로 인한 극심한 사회 양극화 속에서, 실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양산, 농업의 피폐와 도시 빈민의 급증에 의한 심각한 주거 문제 등 생존적 인권 문제가 제기되던 때였다.

여기에 몇 차례에 걸친 촛불시위 등으로 국민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져, 인권수요가 증가하는 상태여서, 인권위도 지방지부의 설치 등 활동의 확대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기구를 축소하고 정원을 줄이라는 것은, 인권위 활동을 중단하라는 메시지에 다름 아니었다.

대한민국 '인권'의 저승사자, 현병철 위원장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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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인권위 안팎에서 우려하고 반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기구는 축소됐고 인원과 예산은 20% 이상 감축되고 말았다.

나를 포함한 인권위 여러 관계자들은 심한 모멸감과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인권에 대한 이명박 정권의 태도를 확실하게 확인하고, 안타깝지만 정책자문위원을 그만두었어야 했다. 그랬어야 지금과 같은 참담한 꼴도 안 보았을 텐데. 그때도 안에서 고생하는 상임위원들이나 사무처 일꾼들의 간곡한 만류와 어떻게 하든 일을 통해 극복해보자 하던 그 호소에 엉거주춤 남아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민주노총과 전교조의 전 위원장 자격으로, 노동운동이나 교육운동 선상에서의 인권 침해와 관련하여 최소한의 역할이라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나를 거기에 머무르게 했다.

이명박 정권은 '인권의 최후 보루'로서의 인권위 역할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았다. 견디다, 견디다 어쩔 수없이 임기를 채우지도 못하고 물러난 안경환 위원장의 자리에 인권에 대한 이해도, 소신도 없는 현병철씨를 임명한 것이다. 기구의 축소와 인원·예산 삭감 등으로 반죽음이 된 인권위의 마지막 숨통이라도 끊으라는 듯 이명박은 저승사자를 내려 보낸 것이다.

인권위 존재 자체 스스로 부정한 '인권위원장'

그때부터 저질러진 인권위의 파행과 독단 등 비민주적 운영은 전적으로 현병철 위원장의 망나니춤에 의한 것이었다.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진행돼야 할 각종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되는가 하면, 걸핏하면 해외여행 등의 핑계로 회의 자체를 소집하지도 않았다. 또 회의진행을 하면서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회의를 지루하게 고의로 지연시키는 등 온갖 추태를 연출하였다.

심지어는 용산참사와 같은 중요한 사안을 다루면서 자기 생각과 다른 결론이 나려 하자 '독재자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다'는 망발을 서슴지 않으며 회의를 일방적으로 끝내버리는 폭력을 행사했다니, 이것이 어디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은 자기에게 완장을 채워준 이명박 대통령의 구미에 맞추느라 용산참사 문제라든지,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등 중요한 인권침해 사례에 대해 인권위가 아무 의견도 내지 못하게 가로막았다. 인권위의 존재 자체를 스스로 부정해 버린 것이다.

해도해도 너무한 이런 사태를 맞으며 인권위의 존립 근거와 스스로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고민하던 두 분 상임위원이 사퇴하고, 이어서 비상임위원인 조국 교수마저 물러나며, 우리 사회는 현존 인권위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불난 '인권위'에 부채질한 이명박 대통령

그런데 더욱 가관인 일은 그 뒤에 벌어졌다. 이렇게 자기 몸을 던지며 심각한 문제 제기를 하면,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 의미를 알아보려는 노력을 할 것이다. 그런데 한 조직을 책임지고 있는 우두머리가 조직 내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국가인권위원회는 아무 일 없이 잘 굴러가고 있다'며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있으니, 정말 기가 막힐 일이 아닐 수 없다.

15일 인권위 상임위원에 임명된 김영혜 변호사
 15일 인권위 상임위원에 임명된 김영혜 변호사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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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한심한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자신이 임명한 위원장의 파행적 운영과 독단으로 국가의 중요한 한 조직이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으면, 원인을 파악해서 근본적 처방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사퇴한 상임위원의 후임을 임명해 사태의 본질을 흐리고, 문제를 부추기는 것은, 국가조직의 최종 책임자로서 무능한 것이거나 아니면 오만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무시하는 행동을 스스럼없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화가 난 국민들이 그냥 있겠는가? 국민을 대표해서 600개가 넘는 시민사회단체들이 들고 일어나고, 법학 교수들과 전직 인권위원들과 사무처 직원들까지 나서고, 인권단체들은 인권위 사무실을 점거하고 농성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불 난 집에 물은커녕 부채질하는 몰염치한 작태를 이명박 대통령은 저지른 것이다. 새상임위원으로 반인권인사인 김영혜 변호사를 임명했다. 그는,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이명박 정권의 교육정책을 비판하며 시국선언을 한, 전교조 교사들의 명단을 불법으로 공개하여 법원의 결정을 어기는 등 물의를 빚은, 조전혁 의원의 법정대리인 역할을 할 정도의 반인권 인사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은 인권위에 인권과 조직운영의 기본도 돼 있지 않은 사람을 위원장으로 임명하여 인권위를 파행으로 몰고 가더니, 이젠 한 술 더 떠 반인권 인사를 상임위원으로 완장을 채워 내려 보내 인권위 자체를 부정하는 폭거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명박 대통령은 인권위 무력화를 통해 국민 전체를 우롱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 생명 보호하는 첫걸음이자 마지막 보루, 인권위

이런 사태를 맞으며 우리 정책자문위원 등 여러 위원회 위원들은, 더 이상 위원회에 남아 있어야 할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뜻을 모아 함께 사퇴하게 이른 것이다.

이번 인권위사태와 관련해 직접적 책임은 현병철 위원장에게 있다. 많은 이들이 사퇴하고 어떤 의견을 냈기 때문이 아니라, 용산참사 등 인권위가 분명한 의견을 내야 할 때 내지 않은, 아니 내지 못하게 한 책임을 지고 현병철 위원장은 사퇴해야 한다.

그렇게 인권위가 제 임무를 방기하는 사이, 용산참사의 억울한 피해자들은 오히려 가해자의 누명을 쓰고 중형을 선고받아, 이 시간에도 신체 구금이라는 최악의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궁극적이고 총체적인 책임은 역시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국민에 대한 대통령으로서의 헌법적 약속을 그는 헌신짝처럼 버린 것이다.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인권을 무시하고, 인권의 최후 보루인 인권위를 무력화하려는 의도는,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다. 인권위야말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첫걸음이요,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생명을 무시하고 인권에도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국민과 국가를 무시하고 관심이 없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대통령이 아니다. 책임지고 물러나는 것이 마땅하다.

덧붙이는 글 |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인권위 정책자문위원을 지내다 15일 사퇴 의사를 밝혔습니다.



태그:#인권위, #현병철,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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