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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웬 강아지가 우리 집 마루 밑에 숨어있어요."

아들이 이야기를 한다. 얼핏 보니 귀엽게 생긴 강아지가 있다. 안 건드리고 놔두면 나갈 거라는 마음으로 그냥 놔두었다. 그렇게 지난 10일 밤은 평화롭게 지나갔다.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은 등교하고, 아내는 출근했다. 빨래를 널려고 방문을 열었다. 여는 순간, 뭔가가 갑자기 소리를 내며 나를 놀라게 했다. 바로 그 강아지다.

"으르릉. 으르릉."
"하이고, 꼴에 개라고 제법 무섭네 그랴."

강아지는 극도의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경계심을 풀어주려고 손짓 발짓 하며 불러 보았지만, 가까이 오려고 하다가 말고, 하다가 말고를 반복했다. 한 가지 꾀를 내었다. 아내가 맛있게 해놓고 간 고기 몇 점을 들고 나왔다. 강아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다. 처음엔 어찌나 강가지가 경계 하는지 세상에 고기를 보고도 먹지 않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사진을 뒤적여보니 어제 본 강아지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강아지 사진을 발견했다. 바로 이 강아지다.
▲ 강아지 내가 가지고 있는 사진을 뒤적여보니 어제 본 강아지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강아지 사진을 발견했다. 바로 이 강아지다.
ⓒ 진도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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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마음을 열고 고기를 먹는다. 내 손을 자신의 혀로 핥는다. 개가 자신의 체취를 묻힌다는 것은 친구가 되자는 의미다. 사실 그러기 전까지는 강아지가 확 물면 어떡하나 내심 나도 속으로 경계했다. 물리면 나만 손해니까. 경계심이 풀린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줄을 구해다가 강아지를 묶었다.

'이걸 어떻게 한담. 일단 응급조치는 했지만, 이 강아지를 누가 찾아가지 않는다면 고스란히 우리가 떠맡아야 하는데. 이 강아지가 소위 '유기견'이란 건가. 앞으로 이 강아지를 어찌 키우나'

좀 전엔 강아지를 묶느라 마음을 뺏겼지만, 이젠 새로운 고민이 마음을 쓰이게 한다. 어떻게 하면 이 사태를 해결할까. 궁리 끝에 한 가지 묘안이 떠오른다. 마을 부녀회장 아줌마에게 알린다. 부녀회장 아줌마가 마을회관에서 마이크로 마을에 알린다. 이런 생각으로 부녀회장 아줌마에게 전화를 넣었다.

"아줌니, 저예유. 어제부터 우리 집에 웬 강아지가 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부녀회장 아줌마가 말을 낚아챈다.

"하이고, 잘되었네유. 안 그래도 우리 옆 집 할머니가 어제 하루 종일 강아지를 찾았는디. 내가 말해 놓을 게유."

이럴 줄 알았다. 역시 부녀회장 아줌마다. 마을의 대소사를 훤히 꿰뚫고 있는 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반응이 올 줄이야. 전화를 끊고 5분도 안 되어 마을 할머니와 그 아드님, 그리고 부녀회장 아줌마가 오셨다. 거의 90도 가까이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는 한달음에 달려오신 게다. 마치 준비하고 있다가 들이닥친다는 느낌이었다.

"하이고. 내가 어제 하루 종일 이노무 강새이를 찾느라 마을을 이 잡듯 뒤졌는디. 워디 갔다 이제 왔냐. 내가 니 땜시..."

할머니가 잠시 목이 멘다. 할머니의 푸념이 또 이어진다.

"강새이를 잃어 버려서 밤에 잠도 안 오고. 꿈자리도 뒤쑹생쑹 하더라고. 울 집 아범도 같이 찾아 다님시롱 맴이 뒤쑹생쑹 했는디. 울 집 복실이를 누가 훔쳐갔나 보다 혔어."

할머니는 단 하루 만에 강아지를 만난 건데도 마치 이산가족 상봉하는 마음인 듯 보였다.

"사실, 이 강아지가 엊그제 장에 가서 3만원 주고 산 겨. 이제 막 젖 뗀 놈을 집에서 키울라고 샀는디.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남. 젖 뗀 놈이라 많이 낑낑대고 울부짖을 텐디 하도 조용헝게 어제도 못 찾았제."

그 아드님이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그러고 보니 어제 밤사이 한 소리도 못 들었다. 강아지가 낑낑 대거나 소리를 내었다면, 우리 가족이 밤새 잠도 못 잤을 것이고, 아침에 당장 조치에 들어갔을 거니까. 하지만, 그 강아지가 '으르릉' 대기 전까지 감쪽같이 몰랐으니. 그 아드님은 강아지를 껴안는다. 할머니는 말한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이렇게 고마울 데가. 우리 집 가서 커피라도 한 잔 하셔. 내 타 줄텐게. 꼭 가셔. 가자고."
"아 네 할머니. 말씀은 고맙지만, 좀 이따 손님이 오셔서 기다려야 되유. 암튼 잘 됬시유."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부녀회장 아줌마는 마을 일을 해결했다는 뿌듯함이 묻어 나온다. 모두 이런 일도 다 있다며 한바탕 웃어 제친다. 이렇게 사람은 좋은데 강아지는 아직도 마음이 어둡다. 사실 강아지의 어린 머리로서는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안 갈게다. 경계심이 또 수면 위로 떠오른다.

강아지는 어제 자신도 모르게 발버둥 치다가 줄이 끊어졌다. 무작정 집을 나섰다. 엊그제 장에서 올 때도 한동안 긴장했었다. 부모와 떨어져서 낯선 곳에 왔었다. 그렇게 겨우 새 주인을 만나 긴장을 푸나 했는데, 어제와 같은 일이 생겼다.

오랫동안 살던 집이라면 다시 돌아갔을 텐데 강아지로서도 준비되지 않은 자유 앞에 속수무책이었을 게다. 그렇게 어디론가 모르게 가다가 마루 밑이 있는 집에 흘러들었다. 마루 밑이 나름 안전해 보였을 것이다. 그 집 주인들도 굳이 큰 관심을 주지 않는 곳이라 편안했을 터. 강아지로선 관심을 가지며 가까이 오는 사람이 자신을 헤치는 존재로 느껴졌을 테니까.

다음 날, 아침 자신도 이제 바깥 동태가 어떠한 지 보려고 나왔는데, 커다란 한 사람이 자신과 마주쳤고, 자신도 너무 놀라 '으르릉' 댔다. 그 사람이 자신에게 고기도 주며 호의를 베풀자, 이제 새 주인을 만났나보다 하며 마음을 겨우 풀었다. 그런데 어렵사리 마음을 주자마자 5분도 안 지나서 또 할머니와 아들이 와서 자신을 강제로 데려간다. 강아지는 참으로 황당했을 것이다.

어쨌든 강아지는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강아지 주인은 심란한 마음의 고비를 넘기며, 우리 집은 책임지는 짐의 고비를 넘기며, 부녀회장 아줌마는 마을일을 해결해야하는 부담의 고비를 넘기며 일은 해결 되었다. 원래대로 돌아간 강아지만 안정을 찾는다면 다시 또 우리 마을에 평화가 깃들 것이다. 하기야 주인인 사람들이 좋으니 걱정할 것도 없지만. 


태그:#더아모의집, #송상호, #안성, #시골마을, #부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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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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