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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그 사람이 자기만의 가슴 속에
간직한 뉘도 모를 고적이요, 문화재요, 명승지이다. -<보석보다 값진 유산>중-'정완영'

영화 <부초>
 영화 <부초>
ⓒ 태창흥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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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의 입김이 확연하게 느껴지는 근일. 어린 조카들과 DVD로 일본 만화 영화 <움직이는 성>, <공각기동대>, <원령공주>를 함께 보았다. 나는 오랜만에 보는 만화 영화라서 그런지 아이처럼 정말 재미가 있었다.

조카들도 나도 이에 만족하지 않고 DVD를 다시 빌려오자고 해서 서너 개나 더 빌려왔다. 한 편도 아니고 잇달아서 여러 편을 보고 나니, 기억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볼거리가 푸짐한 어린 조카들을 보면서, 문득 볼거리가 빈곤했던 어린 시절 생각이 났다.

지금부터 30-40여 년 전만 해도 도회지가 아닌 시골에서는 텔레비전이 있는 집은 정말 흔하지 않았다. 읍내에 가야 영화관이 있으나, 그 영화관도 항상 영화를 상영하지 않았다. 영화가 들어와도 어린이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만화 영화는 정말 흔치 않았다.

그 당시 아이들의 유일한 볼거리라곤 가뭄에 콩나듯이 찾아오는 곡마단과 동네 시장통을 찾아오는 약장수들의 만담이나 접시 돌리기, 노래자랑 등을 구경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영화관도 따로 없었던 그때 그 시절.

마을회관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대부분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영화였다. 어린이들이 감상할 수 있는 영화가 들어와도, 먹고 살기 바빴던 보릿고개 시절에는, 학교 단체 관람이 아니면 아동들이 개인적으로 영화관을 이용하기는 용이치 않았다.

추억의 학생 단체 관람 영화 <빨간 마후라>
 추억의 학생 단체 관람 영화 <빨간 마후라>
ⓒ 영화, 빨간 마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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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동네에 영화가 들어오는 날은 친구들과 극장 앞을 맴돌며, 간판 화가 아저씨가 붓으로 그린 영화간판을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러나 더러 영화관 표 받는 아저씨의 눈에 볼거리에 굶주린 내 모습이 측은지심을 일으켰는지, 공짜로 영화 구경한 기억도 제법 있다.

요즘 같이 아동들을 위한 많은 영상물이 쏟아지고 동화책이 흔한 세태에 한없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어린이들만 볼거리가 빈약한 것도 아니었다. 어른들도 볼거리가 너무나 귀했다.

그런 탓에 동네 시장통에서 약장수들이 펼치는 구수한 만담이나 노래 공연 및 접시 돌리기 따위의 볼거리는 구경꾼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곤 했다. 서커스단이라도 들어오는 날은 온 동네가 잔칫날 같이 들뜨곤 했다.

서커스단이 마을에 머무는 동안, 나는 갑자기 착한 아이가 되어 집안 심부름을 열심히 했다. 그래야 엄마가 나를 데리고 서커스 구경을 가시기 때문이었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서커스 구경 뿐만 아니라, 영화도 무척 좋아하셨다. 그 덕에 나는 젖먹이 시절부터 어머니의 등에 업혀서 영화 구경을 하며 자랐다.

그런데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 시절은 영화가 동네에 들어오면 약장수나 곡마단 구경처럼,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한 뻬에로를 앞세워 북을 치면서 동네 한바퀴를 돌면서 새로운 영화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렸다. 그러면 동네 아이들은 우르르 벌떼처럼 몰려 뒤를 따라다니곤 했다.

영화 <부초>
 영화 <부초>
ⓒ 태창흥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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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그럴 필요가 없지만, 유달리 키가 작은 나는 약장수들이 펼치는  공연이나 야외 서커스 구경을 하는 날이면 아침부터 자리를 잡아 놓고 어머니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영화관은 그렇지 않았지만, 서커스단이나 약장수들이 하는 연극 무대는 관객들이 어느 정도 모인 뒤에야 공연을 시작했다.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영화관에서 연극이나 가요 무대, 악극 등도 같이 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영화가 시작될 때는 연극처럼 막이 올라가야 영화가 상영되었다. 한때는 영화관에서 황지우 시인의 시처럼 애국가가 흘러나오면 국기에 대한 경례도 했다.

그렇게 어쩌다 감상한 영화, 연극, 서커스의 기억은 오래 뇌리에 남았다. 그리고 내 또래 아이들과 모여서 연극놀이도 하고 서커스에서 구경한 곡예를 흉내 내기도 했다. 그리고 서로 맡은 배역을 바꾸어가면서 그 배역이 잘되었나 못되었나 서로 의견을 나누다가 싸우기도 했다.

너무나 볼거리가 많아서 무엇을 봐야 할지 모르는 현실이다. 그래서 볼거리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없는 것은 어린 조카들이나 나나 마찬가지같다. 넘치게 풍부한 것이 꼭 행복한 삶은 아니구나 생각해 본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열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세상 떼어메고
이세상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 하세로
각각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_황지우>


태그:#연극, #영화, #악극, #약장수, #노래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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