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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아침부터 안개가 가득 차 앞이 안 보일 정도였는데 늦가을 날씨 중 가장 포근한 날씨같다. 경남 창녕군 지역으로 문화유적을 찾아 간다. 창녕읍내에도 많은 알려진 유적을 중심으로 둘러보고 외곽지역 몇 곳 정도 일정대로 움직였다.

교동박물관과 고분군

창녕박물관내에는 창녕읍 교동과 송현동 일대 영산과 계성에 산재하는 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고분 내부 모형과 축조방식 순장방식 등이 알기 쉽게 정리되어 있다.

창녕박물관내에 고분축조과정 설명
▲ 창녕박물관 창녕박물관내에 고분축조과정 설명
ⓒ 김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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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박물관내 순장 방식 설명
▲ 창녕박물관 창녕박물관내 순장 방식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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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만에 복원된 송현동 15호분에서 출토된 여성의 인골은 가야소녀라 하여 주목된 것이다. 야외에는 각종 석조물들과 계성 고분 이전 복원관이 있다.

창녕박물관 가야소녀 재현
▲ 창녕박물관내 가야소녀 재현 창녕박물관 가야소녀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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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박물관 야외
▲ 창녕박물관 야외 창녕박물관 야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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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바로 옆에 있는 교동 고분군(사적 제80호)은 1918년에서 1919년 사이 일본인에 의해 발굴 되어 유물은 대부분 일본으로 옮겨가고 지금은 국내에 일부만 남아있다고 한다.
1500년 전의 은제허리띠 완형과 중·대형의 앞트기식 돌방무덤 등이 발굴조사 결과 확인되기도 하였다.

교동고분군
▲ 교동고분군 교동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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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동 마애여래좌상

화왕산을 가려는 등산객들로 주변 도로는 온통 복잡했다. 자하곡 입구 근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창화사로 들어가서 우측으로 20m쯤 가면 단촐한 단칸 보호각에 모셔져 있다. 주변에는 송현동 고분이 있다. 커다란 암석을 이용해 조각된 마애불로 암석 자체를 자연 광배로 삼았으나 문양은 없다. 얼굴은 풍만한 모습으로, 손 모양은 항마촉지인이며 결가부좌한 하체에는 두발을 표현하지 않았다.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 불상으로 추정된다.

송현동 마애여래좌상
▲ 송현동 마애여래좌상 송현동 마애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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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옥정 공원으로 가는 길에 창녕여중고등학교 병설 유치원내 석탑이 있다. 옮겨와 복원한 것인데 지붕돌이 2개로 복원 돼 이색적이다.

창녕석탑은 창녕여 중고등학교 병설 유치원내에 보인다. 2층만 복원한 것이 조금 특이하다.
▲ 창녕석탑 창녕석탑은 창녕여 중고등학교 병설 유치원내에 보인다. 2층만 복원한 것이 조금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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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옥정 공원의 유적

만옥정 공원에는 국보 제33호 신라 진흥왕척경비를 비롯하여 대원군 척화비, UN군 전승기념비, 퇴천리 삽층석탑, 객사, 현감, 부윤 , 관찰사 등의 비석군 등 볼 거리가 많다. 공원으로 잘 정비되어 있다. 주변은 완연한 가을 단풍이 물들어 분위기도 좋다.

창녕 진흥왕척경비
▲ 창녕 진흥왕척경비 창녕 진흥왕척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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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 척경비는 신라 영토로 편입한 진흥왕이 이곳을 순수하며 민심을 살핀 후 그 기념으로 세운 비라 한다. 원래 목마산성 기슭에 있던 것을 1924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둔 것으로, 자연석의 앞면을 평평하게 다듬어 비문을 새겼다. 그 둘레는 선으로 윤곽을 돌려놓은 모습이다. 비문은 심하게 닳아 있으나 일부 글자는 보인다. 인근에는 1959년 건립된 UN군 전승기념 전적비가 있으나 관심있게 둘러보는 이들은 없는 듯 하다.

창녕 척화비와 퇴천리 삼층석탑 

척화비는 흥선대원군이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치르면서 서양세력의 침략을 더욱 강력히 경고하고자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 중요 도로변에 세우도록 한 비이다. 원래 창녕읍 교하리에 있던 것을 옮긴 것이라 한다.

창녕 척화비
▲ 창녕 척화비 창녕 척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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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천리 삼층석탑은 1969년 복원된 것으로 형식상 잘 갖추어진 통일신라 후기의 삼층석탑으로 주변과 잘 어우러져 있다.

퇴천리 삼층석탑
▲ 퇴천리 삼층석탑 퇴천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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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객사와 주변 비석군

객사는 조선시대의 지방 관아건물로 고을 수령이 임금의 위패를 모시고 예를 올리는 정당과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머물렀던 좌 ·우헌으로 구성되어 있다. 1924년 군수 이장희가 시장용 건물로 쓰기 위해 창녕읍 술정리로 옮겼다가 1988년 만옥정에 옮기고 보수했다고 한다.

창녕객사
▲ 창녕객사 창녕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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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사 옆에는 창녕에 부임했던 관찰사, 어사, 현감, 부윤들의 선정을 기념하는 기념비들이 주변에서 1970년 옮겨져 있다.

창녕 석부재는 만옥정공원 바로 아래에 있다.
▲ 창녕석부재 창녕 석부재는 만옥정공원 바로 아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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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어서 물밖에 나가면 개미에게도 놀림을 받는다고 하여 다리 기둥에 새겨 놓았다는 공하로 보이는 석조물이 2구 있다. 용생구자설에 설명되어 있는데 잘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만옥정 공원만 둘러보지 말고 이곳도 보면 기존에 몰랐던 새로운 발견의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창녕 석빙고

창녕 석빙고는 보물 제310호로 도로변에 공원으로 잘 정비된 곳에 있어 찾기 쉽다. 입구를 남쪽으로 내어 얼음을 쉽게 옮길 수 있도록 하였다. 입구 안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밑바닥은 경사졌고 북쪽 구석에는 물이 빠지도록 배수구멍을 두었으며, 바닥은 네모나고 평평하다. 내부는 잘 다듬어진 돌을 쌓아 양옆에서 틀어 올린 4개의 홍예를 중간 중간에 두었고 천장의 곳곳에는 환기구멍을 두어 바깥공기를 드나들게 하였다.

창녕 석빙고는 찾기쉬운 장소에 있다.
▲ 창녕 석빙고 창녕 석빙고는 찾기쉬운 장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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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서 있는 비석의 기록을 통해 조선 영조 18년(1742) 당시 이곳 현감이었던 신서(申曙)에 의해 세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석빙고 내부 사진도 안내문 옆에 같이 있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탑금당치성문기비

보물 제227호인 창녕 탑금당치성문기비는 인양사와 관련이 있는 여러 절의 범종, 탑, 금당 등의 조성 연대와 쓰인 식량 등을 기록하고 있는 비이다. 직사각형의 바닥돌 위에 비 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형태로 비 뒷면에는 스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어 독특하다.

탑금당치성문기비는 독특한 형태의 비이다.
▲ 탑금당치성문기비 탑금당치성문기비는 독특한 형태의 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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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당시 일부 피해를 입어 총탄 흔적이 있다고 한다. 창녕 답사의 유적 찾기 필수 코스에 들어가는 중요 유적지이다. 읍내에는 이외에도 볼 유적이 너무나 많아 다음으로 이어진다.


태그:#창녕박물관, #만옥정공원, #창녕 석빙고, #척화비, #창녕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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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문화유적을 찾아 답사를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석진 곳에 우리문화를 찾아서 알리고 문화관련 행사를 좀 더 대중에게 보급하고자 하며 앞으로 우리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나아가려고 합니다. 괌심분야는 역사유적, 석조조형물과 민속,고건축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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