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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세계 주요 20개국(G20)정상회의를 앞두고 있다. G20회의에서는 세계금융위기의 후유증으로 남은 IMF개혁, 환율 조정, 세계무역불균형 등의 굵직한 과제가 주요 논제로 다뤄질 예정이다. 한국은 G20회의 의장국으로서 그 중심에 서게 된다. 그 부담감 때문인지 지금 이명박 대통령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각 국의 정상들이 앉을 소파를 직접 앉아보며 잔소리를 하는가 하면, 회의장에 놓일 화분의 문양까지 세심하게 챙기고 있다. 국가적 행사를 꼼꼼히 챙기는 대통령의 세심함이 국민들의 감동을 자아낼 만도 하지만, 세심함 뒤로 보이는 정권의 행태는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지난달 31일, 대학 강사 박모씨가 서울 종로구 롯데백화점 근처에서 G20홍보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렸다가 경찰에 연행된 사건이 대표적이다. 박씨를 연행한 경찰은 그에게 '배후세력'이 누구인지 물었다고 한다. 재미로 그린 풍자그림 때문에 '조직적 G20 테러 행위의 행동대원'이 된 것이다. 물론 공공포스터에 낙서를 한 것은 잘못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당사자를 하루 동안 연행, 신체권을 제한할 만한 일인지 의심스럽다.

 

심지어 경찰은 박씨에 대해 구속영장까지 신청했다고 한다. 형사소송법 제 70조 1항에서는 주거불명, 증거인멸, 도주우려 등의 세 가지 요건을 구속의 사유로 명시하고 있다. 박 씨의 경우 위의 요건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경찰이 이를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은 G20회의를 앞두고 불만세력들을 길들이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는가하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그런데,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이러한 정부의 행태가 낯설지가 않다. 여기서 우리는 지난 3월부터 시작된 천안함 정국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올해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서 성공회대 이남주 교수는, 이탈리아 철학자인 조르조 아감벤의 '예외상태'라는 개념을 빌려 천안함 정국을 설명했다. 즉, 이명박 정부의 보수적 통치 행태와 한국 내에 정착된 민주적 거버넌스 사이의 부조화를 극복하고, 보수적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예외상태'를 호출하였다고 본 것이다. 천안함 정국 속에서 이명박 정부가 보여주었던 반공주의적 행태, 예를 들어 정보원을 독점한 상태에서 침몰 원인에 대한 어떠한 의문제기도 반애국적 행위로 매도해 자유로운 토론을 봉쇄했던 행위들을 보면, 이남주 교수의 문제제기는 설득력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G20회의의 준비과정에서 천안함을 느끼는 것은 나뿐일까. 천안함 사건이 '예외상태'로서의 효력이 떨어지자 G20회의를 이용해 또 다른 '예외상태'를 호출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G20회의를 맞아 부쩍 한∙미 FTA에 대한 발언이 잦아지는 것도 이러한 의심을 확실하게 한다. 한∙미 FTA는 지나치게 불공평한 독소조항의 비율, 쇠고기 문제, 자동차 재협상 등의 문제가 걸려 있어,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민감한 사안이다.

 

이를 섣불리 다루다가는 국민적 역풍과 함께 집권 후기의 권력누수가 가속화되는 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예외상태'를 호출하여, 민감한 사안을 해결하고, 권력누수를 사전에 차단하는 동시에 보수적 통치로써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일석 삼조를 의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G20회의는 세계무대에서 처음으로 한국이 중심이 되는 국가적 행사이다. 'G20회의가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를 촉진시킬 것'이라는 이상적인 반대론을 접어두고, 진보와 보수를 떠나 성공적으로 국가적 행사를 치러내야 한다. 이를 통해 국격을 높이는 계기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명심해야할 것이 하나 있다. 내약(內弱)한 외강(外剛)은 '속빈 강정'일 뿐이라는 점이다. G20회의가 한국 내 민주적 거버넌스를 부정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때, 한국의 국격은 결국 '속빈 강정'일 수밖에 없다.


태그:#G20, #천안함, #민주적 거버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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