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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정부에서 '네덜란드 모델'을 추진하다 자본과 보수진영의 반발을 샀는데.
"'경영참여'란 단어가 재계의 터부를 건드린 셈이다. 그것 때문에 폭발했는데, 그것은 우리의 노사관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네덜란드와 차이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네덜란드 노조에서는 급진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분파가 있긴 하지만 지금은 힘이 많이 약화됐다.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대화와 타협을 내세우는 온건파가 주류다. 차이가 가장 큰 것은 '사·정'이다. (한국과 네덜란드의 '사·정'은) 사고방식이 아주 다르다. 사·정은 계몽이 필요하다. 세계화를 얘기하고 수출도 많이 하면서 외국 실정에는 어두운 우물 안 개구리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온다."

- 당시 왜 네덜란드 모델을 도입하려고 했나? 
"평소 생각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해결해야 할 몇 가지 숙제가 있다. 그중에서 노사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내가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에 노사관계와 부동산문제, 입시지옥 교육문제를 제일 중요하게 봤다. 한국 노사관계는 적대와 불신의 관계다. 이것은 한국 현대사의 산물이다. 이걸 바꾸기 위해 네덜란드 모델처럼 (사회적) 대화를 하면 좋겠다고 희망사항을 얘기한 것이다. 이것을 하려면 '사·정'이 바뀌어야 하고, 특히 '정'이 앞장서야 한다. '정'이 지금처럼 '사'에 편향된 태도를 버려야 한다.

대통령은 해외방문 때 재계 총수들을 데리고 다닌다. '노'는 무시한다. '정'의 생각 중에 '노'를 혐오하고 적대하는 생각이 늘 있었던 것이다. 모든 정부에서 '사'는 가까이 하려 하고…. 이런 편향된 생각이 노사관계를 망쳤다. 이걸 결자해지하기 위해서 '정'이 바뀌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가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그걸 못했다. 그게 제일 아쉽다."

- 원래 '스웨덴 모델' 지지자 아니었나?
"스웨덴과 네덜란드 다 얘기한다. 스웨덴은 재벌문제 때문에, 핀란드는 교육문제 때문에 배울 만한 나라라고 본다. 주로 북유럽 국가들인데, 네덜란드도 북유럽에 가깝다."

- 당시 어떤 점에서 '네덜란드 모델'이 의미있다고 생각했나?
"네덜란드는 1970년대 북해유전이 발견됐다. 그게 오히려 승자의 저주가 됐다. 석유가 발견된 이후 네덜란드 통화가치가 절상됐다. 수출주도형 나라인데 수출이 안 돼 경제가 나빠졌다. 그래서 (노사정이) 대타협을 했다. 그게 1982년 바세나르 협약이다. 네덜란드는 우리나라나 스웨덴처럼 수출주도형 국가다. 노사 대타협을 통해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에 제한된 경영참여를 허용해야 한다. 노조가 그냥 양보를 하겠나? 기브앤테이크(give-and-take)의 딜을 해야 한다.

노가 잃은 것도 있지만, 사가 얻은 것도 있다. (노사정) 3자가 머리 맞대야 하는데 노동이 경영참여에서 빠지면 굴러가지 않는다. 노동의 경영참여가 핵심부품이다. 그걸 말한 건데 (자본과 보수진영 등에서는) 아니라고 한다. 그만큼 한국 재계와 정부의 보수성, 해외사정에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 미국은 별로 없는데 유럽은 거의 노동이 경영에 참여한다. (한국은) 유러피언드림을 모르는 것이다."

- '네덜란드 모델'의 핵심이 무엇인가? 
"나를 비판하는 사람은 '바세나르 협약의 핵심은 경영참여가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바세나르 협약의 핵심이라는 얘기다. 그 협약만 보면 그렇다. 그 협약을 가능하게 한 것이 노동의 경영참여다. 그것이 없으면 사회협약은 불가능하다. 노동이 경영참여를 하니까 노동재단에서 매주 만나 대화를 할 수 있고, 회사 안에서도 직장평의회 등을 통해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바탕 위에서 바세나르 협약이 나온 것이다.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네덜란드 모델을 도입하자고) 노무현 대통령한테 많이 시도했다. 대통령도 '그렇게 해볼까요?'라며 할 것처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다음에 보니까 갸우뚱하고 회의하고…. 결국은 (노사정 간) 불신의 벽이 아주 높아 못했다. 그게 제일 아쉬운 점이다. 풀고 싶었던 세 가지 문제 중에 부동산문제는 초지일관했다. 욕을 많이 얻어먹었지만 성공했다. 부동산의 고질병이 많이 고쳐진 것 같다. 부동산 투기라는 고질병이 처음으로 '거의 완치'에 성공한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이 자주 (부동산 규제를) 풀려고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상당히 성공한 것 같다. 하지만 노사관계문제나 입시지옥교육문제는 제대로 못했다."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 ⓒ 오마이뉴스 남소연
- 네덜란드 모델의 일자리 창출방식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무엇인가?
"(1980년대 초) 물가가 오르고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그런데 이게 치유됐다. 바세나르 협약의 위력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면서 파트타임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졌다. 네덜란드는 파트타임의 천국이다."

- 일각의 평가처럼 네덜란드 모델에서 파트타임 노동(시간제 노동)의 증가가 일자리 분배에 기여했다는 데 동의하나?
"동의한다. 우리의 비정규직은 악성 비정규직이지만, 네덜란드의 파트타임은 양성 파트타임이다. 노동자 개인 편의를 봐주는 양성 비정규직이라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파트타임은 거의 없고, 한시적 노동자가 대부분이어서 악성 비정규직이다.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최악이다. 네덜란드는 (정규직과 파트타임의) 시간당 임금이 같기 때문에 파트타임은 불만이 없다. 여자들의 경우 오전 근무만 하고 오후에 애들을 돌볼 수 있다. 가정과 일이 양립할 수 있다. 우리는 (일을 하려면) 가정을 팽개쳐야 하고, 애도 키우기 힘드니까 저출산이다. 악순환이다. 우리도 양성 파트타임을 늘려야 한다."

- 네덜란드 모델이 노동시장의 안정성(파트타임의 법적 보호)과 유연성(파트타임 증가)을 동시에 확보한 모델이라는 평가도 있는데.
"그건 덴마크의 경우다. 덴마크와 네덜란드는 다르다. 덴마크는 해고가 쉬운 대신에 재고용이 잘된다. 그게 플렉시큐리티(Flexicurity, 유연안정성)다. 반면 네덜란드는 해고가 (덴마크보다) 훨씬 어렵다. 그래서 유연안정성 모델이라고 보기 힘들다. 양쪽 노총의 태도가 다르다. 네덜란드는 고전형으로 해고에 완강하게 저항한다. 하지만 덴마크는 '기업 사정이 안 좋으면 해고가 가능한 것 아니냐'고 받아들인다. '노동자를 보호하지, 일자리를 보호하지 마라'가 덴마크의 모토다.

많은 나라들은 일자리를 보호하려고 한다. 하지만 덴마크는 사라지는 일자리를 지켜봐야 소용이 없으니, 그것에 집착하는 것보다 새 직장을 찾는 게 낫다고 본다. 미국은 경쟁적이고,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유연성이다. 반면 덴마크는 인간적인 유연성이다. 보험을 통해 보호해주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주고, 훈련시켜준다. 고용센터에서 잘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그런 게 없다."

- 네덜란드 모델이 덴마크나 북유럽(스웨덴, 핀란드 등), 독일 모델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네덜란드는 북유럽에 비해 사회보장이 약하다. '약한 복지국가'라는 얘기다. 북유럽은 교육이나 보건 등은 무료인 '탈상품사회'다. 하지만 독일이나 네덜란드는 아직 그런 단계가 아니다. (기본적인) 복지가 잘돼 있긴 하지만, 탈상품화 단계는 아니다.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 등은 영미형과 북유럽의 중간인 유럽형에 속한다."

- 청와대 정책실장 당시 보수진영이 네덜란드 모델의 도입에 반발하자 "네덜란드 모델이 미국 모델과 배치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네덜란드식 노동유연화가 '해고자유'를 의미하는 영미식과는 다르지 않나?
"차이가 분명한데 내가 왜 그렇게 얘기했는지 모르겠다. 미국은 노동의 경영참여가 없고, 유럽은 있다. 그것이 결정적인 차이다."

- 네덜란드 노동운동이 바세나르 협약 등에서 자본측과 협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네덜란드 노사관계의 역사를 공부해봐야 (제대로) 알 것 같다. 우리는 극우 반공국가여서 노조를 적으로 불신하고 탄압해왔다. 그 악순환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일제시대부터 미 군정기, 독재정권을 거쳐 100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그것이 기본적으로 많이 안 바뀌었다. 유럽은 높은 길이고, 영미형은 낮은 길이다. 유러피언드림과 아메리칸드림의 차이다. 영미형 국가들은 높은 길이 있다는 걸 모르고 낮은 길만 열심히 간다. 미국은 경쟁을 강조하고, 유럽은 연대와 협조를 강조한다. 미국의 노사관계는 불신이지만, 유럽은 상호신뢰다. 미국에는 노동의 경영참여가 없고, 유럽에는 있다. 거기서 유럽의 고생산성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은 마지 못해서 하고 서로 불신하고 적대적이다. 진심으로 협조할 생각이 없으니까 퇴근한 후에 욕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유럽에서는 회사 안에서 문제를 푸니까 스트레스가 안 쌓인다. 그게 높은 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노동이 적대와 탄압의 대상으로 돼 있는데, 이것을 바꾸기 위해 네덜란드 모델을 얘기한 것이다."

- 네덜란드의 자본측도 한국과 달리 실용주의적이고 유연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의 자본은 권력의 비호와 정경유착 아래에서 자랐다. 그 속에서 노조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다. 정부가 경찰이나 정보기관까지 동원해 탄압한다. 아직도 삼성에는 노조가 없다. 노동을 기업경영의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는 노동이 기업경영의 파트너다. 그럴 정도로 네덜란드 자본은 실용적이고 합리적이다. 우리나라의 '사·정'은 완고하고 보수적이며, 세상 물정에도 어둡다. 높은 길이 있다는 걸 못 보는 '눈뜬 장님'이다. 낮은 길에서 시속 30킬로미터로 달릴 수 있지만, 높은 길에서 시속 60킬로미터로 갈 수 있다는 걸 모른다."

- 그런데 바세나르 협약의 경우 과도한 파트타임 노동을 허용했다는 점에서 노동측의 지나친 양보였다는 평가도 있다.
"(당시 노동계쪽 대표였던) 빔 콕 전 총리는 배신자라는 욕을 많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 길밖에 없다고 보고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우리나라 노조에서도 그런 배신자 소리를 들으면서도 결단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그런 지도자가 나오려면 '정'이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 노조에도 그런 배신자 들으면서 결단을 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하는데. 물론 지금 '노'로도 안 된다. 완강하고 변화를 싫어하는 등 문제투성이다. 그런 '노'도 바뀌어야 한다.

보수언론이나 재계는 노조의 보수성, 완고성 등을 비판한다. 하지만 이것은 남의 눈에 티끌은 보면서 자신의 대들보는 못 보는 격이다. 먼저 정이 바뀌어야 한다. 그렇게 바뀌는 순서가 '정사노'가 되어야 한다. 참여정부가 절호의 기회였다. '정'이 바뀌지 않으니까 '사'를 못 바꾸고, '노'도 못 바꾸었다. '정'이 바뀌어야 한다. 낮은 길로 사고하면 쌍용차처럼 강경진압하는 수밖에 없다. 왜 그리 됐을까, 근본 원인을 생각해야 한다. 높은 길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해법을 달리해야 한다.

그런데 높은 길이 있다는 생각을 가진 정부가 한 번도 없었다. 미안한 얘기지만, 역대 노동부장관 중에서 '높은 길 개념'을 가진 장관이 거의 없었다. 그런 사람이 노동부장관을 했다. 그러니 얼음이 깨질 수 없다. 다음에 민주개혁정부가 들어서면 그렇게 해야 한다. 보수정부로는 안 된다. 높은 길을 사고하는 방식은 민주개혁적인 방식이다. 이것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유럽이 증명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표준적인 미국방식밖에 없다. 위를 쳐다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높은 길이 있는) 하늘을 쳐다볼 생각을 안 한다."

- 네덜란드 모델이 기업의 기술혁신 투자를 감소시켜 1980년대 이후 '생산성 정체'라는 한계를 불러왔다는 지적도 많다.
"생산성이 올라가야 하는데 왜 고리가 끊어졌는지 잘 모르겠다. 생산성이 안 나오면 문제가 있다. 높은 길에서는 고임금, 고생산성, 고신뢰가 선순화하는데, 고생산성이 안 됐다면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 일부에서는 임금인상 억제로 인해 임금소득 분배가 악화됐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파트타임이 많아지면서 그런 격차가 생긴 것 같다. 하지만 파트타임은 정규직(풀타임)과 시간당 임금이 같아서 별 불만이 없다. 우리나라는 차별이 심하다. 네덜란드는 적게 일하고, 적게 받아간다. 임금이 동결돼 실질임금이 삭감되면 불만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적 임금(social wage)이라는 것으로 보완해주면 된다. 기업에서 받는 임금 외에 정부가 제공하는 사회보장금이 그것이다.

'노'한테 임금 동결이나 삭감을 요구하려면 '기브앤테이크'를 해야 한다. 기업으로부터 받는 임금이 낮아지면 우리는 사회보장을 통해 사회적 임금을 보충해주겠다고 해야 한다. 그래서 노사정 대화가 필요한 것이다. 세금을 거두어서 사회보장금을 확충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노사정이 약속하면 국민도 승복할 것이다. 이것(노사정 대화)이 잘 굴러가면 국민이 승복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조세저항이 일어난다."

- 네덜란드 정부는 1980년대 후반의 빠른 고용증가 요인을 3분의 2는 임금인상 억제에서 찾고 있는데, 임금인상 억제와 일자리 증가(창출) 사이에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있다고 생각한다. 임금인상이 많이 되면 일자리 창출이 힘들다. 우리나라도 그렇다. 노태우 정부부터 민주화를 진행하면서 임금이 많이 인상됐고, 집값도 올랐다. 집값이 오르니까 임금인상을 더 요구했는데, 정부는 그것을 탄압해 억눌렀다. 민주화 이후에 임금인상을 자제했을 수 있어야 했는데 계속 오르니까 기업이 생각해낸 것이 비정규직이었다. 한국 경제가 살아나는 방식이 비정규직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연명책인 셈인데, 좋은 연명책이 아니었다. 거기에 차별이 생기고, 사기를 죽이고,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좀더 나은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한국 경제가 살길을 찾아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네덜란드 모델이다."

- 네덜란드에서는 파트타임 노동이 36%에 이르지만 정규직과 파트타이머(사실상 정규직 파트타이머)들 사이에 차별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하지만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은 아주 심한 편이다. 그런 점에서 네덜란드 모델을 한국에서 적용하기는 힘들지 않겠나?
"우리나라는 임금 격차를 줄여나가고 사회보장도 강화해야 한다. 격차를 줄일수록 사용자들이 비정규직을 써야겠다는 동기부여가 줄어든다. 한국 경제가 고임금의 압박을 버텨낸 수단이 비정규직이다. 100을 주던 임금을 75로 떨어뜨려 계속 수출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옳지도 않고, 문제도 많은 방식이다. 계속 지탱할 수 없는 방식이다. 새로운 방식, 유럽방식으로 지탱할 수 있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 단병호 전 의원은 "우리는 파트타임 사용의 목적이 임금이기 때문에 취지가 다르다"며 적용문제에 이의를 제기했는데.
"(정규직과 파트타임의 시간당 임금이) 같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한시노동이기 때문에 파트타임이 훨씬 낫다. 한시노동은 인간이 할 짓이 못 된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데…. 내년에 일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애착도 없고 일을 배울 생각도 안 한다. 당연히 생산성도 떨어진다. 한마디로 '나그네'다. 어느 나그네가 그 집에 관심을 가겠나? 파트타임은 계속 일할 수 있다. 그래서 열심히 배운다."

- 특히 '임금인상 억제'와 '노동시장 유연화'(파트타임노동의 증가)를 핵심으로 한 네덜란드 모델은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파트타임은 유연성이다, 신자유주의다'라면서 나쁘게 볼 게 아니다. 파트타임은 악성이 아니라 양성의 비정규직이다. 우리나라도 맞벌이 부부가 추세인데 그럴수록 파트타임이 필요하다. 파트타임을 하고 싶은 사람이 굉장히 많을 것으로 본다."

- 노동계와 진보진영에서는 '노동유연화'라는 용어 자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질적 유연성, 양적 유연성이 있는데 양적 유연성이 제일 나쁘다. 우리는 그것만 발달돼 있다. 기능적 유연성이면 좋겠다.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생산성도 높이고 일의 단순반복에서 오는 지루함이나 소외감도 없애는 유연성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굉장히 덜 발달돼 있다. 양적 유연성만 지나치게 발달돼 있는 게 문제다. 불황이 닥치면 한국의 임금은 삭감됐는데 다른 나라는 삭감되지 않았다. 한국은 양적 유연성도 높고, (임금)가격 유연성도 높다. 이런 나라는 매우 드물다. 그런데도 재계는 한국에는 유연성이 없다고 불평한다. 한국에서 해고의 자유가 다른 나라처럼 경직적이지는 않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진보의 미래>에서 던진 화두처럼, 노동유연화는 '(정권)보수화'의 결과물인가, 아니면 '세계화'의 결과물인가?
"세계적인 추세이긴 하다. 하지만 그런 세계적 요구가 있다고 해도 쉽게 굴복하는 나라가 있고, 좀처럼 굴복하지 않고 그대로 가는 나라도 있다. 우리나라는 전자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는 (자본측이) 세계화를 기화로 자신들의 '숙원사업'을 해결해보자고 하는 것 같다."

- 특히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고 있는 한국에서 네덜란드 모델은 어떤 점에서 유용한가?
"우선은 임금인상을 자제하게 되면 일자리가 많이 생길 수 있다. 임금이 오르면 일자리 창출이 어렵다. 그게 제일 중요하다. 그 다음에 사회적 임금을 확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금을 늘리고 복지, 교육, 보건, 보육투자를 늘려야 한다. 그러면 그런 곳에 일자리가 많이 생길 수 있다. 미국에서도 교육, 의료 등 사회서비스쪽에서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미국보다 더 부족하다."

- 네덜란드 모델은 '노사정 사회협약' 모델이다. 한국에서도 사회협약기구인 노사정위원회가 김대중 정부에서 출범했지만 대체로 실패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지금 파산상태다.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에서) 나간 뒤로 안 들어오고 있고, 한국노총은 들어와 있지만 반쪽짜리다. 민주노총이 안 들어오면 대화가 안 된다. 김대중 정부가 노사정위원회를 도입할 때 순수한 뜻으로 한 것은 아니다. 경제위기로 인해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니까 정리해고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노사정위원회를 이용한 게 아닌가 싶다. 처음에는 들어왔는데, 들어와 보니 들러리고, 정리해고는 진행되고 있고 노동계의 요구는 안 들어주고 하니까 탈퇴한 것이다.

만약 정말 좋은 뜻으로 운영했다면 지금은 네덜란드 모델로 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기능상실, 정지상태에 있다. (김대중 정부 때) 좋지 않는 선례를 남겼다. 국난이 왔을 때 (노사정 사회적 대화 체제가) 가동됐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정부 책임이 제일 크다고 본다."

- 참여정부에서는 개혁성향 교수가 노동부장관에 임명되기도 했지만, 노사정 대화채널은 사실상 '기능상실 상태'였다. 무엇이 노사정 대화를 막았나?
"그것이 참여정부의 역설이다. 오히려 (노동문제를) 잘 아는 사람들이니까 안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상한 역설이 있다. 속속들이 잘 아니까 서로 불신하고 실패했는지 모른다."

- 네덜란드 모델은 노사 간 혹은 노사정 간 신뢰 확보가 제일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노사정위원회라는 사회협약기구가 다시 가동되어야 하지 않나?
"노사정위원회는 사회적 대화주의, 소셜 코포라티즘(social corporatism)의 핵심 조직이다. 그것 없이는 안 된다. 국민의 정부는 국난 상황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해야 했기 때문에 노동자와 관계가 나빠질 수밖에 없는 면이 있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그런 구조조정도 끝났고, 민영화도 안 했다. 노사정 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 새 출발을 해서 문제를 풀었어야 했는데, 그런 절호의 시점에 5년을 보내버렸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 노사정위원회를 다시 가동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먼저 (2기) 민주개혁정부가 들어서야 한다. 보수정부로는 못한다. 두 번째는 정부 스스로 과거의 노사관계, 노사정관계를 반성해야 한다. 교황이 자기 책임은 아니지만 중세의 마녀재판을 사과하듯이, 민주개혁정부가 4․3제주학살을 사과했듯이, 반성하고 사과해야 사람의 마음이 풀린다. 그게 얼음을 녹이는 첫 단계다. 또한 대통령이 노사정 관계가 잘못된 것을 사과해야 한다. '과거 정부가 잘못한 게 많다, 이제 그런 것 하지 않겠다, 다시 대화의 장으로 나와 달라'고 해야 한다. 그것이 2단계다.

3단계는 '사'를 바꾸어야 한다. 유럽 각국을 얘기하면서 '사'측의 의구심, 불안감을 해소시켜야 한다. '그런 길로 가면 절단 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유럽은 이런 식으로 경영해서 선순환해서 기업이 잘되고 있는 것 아니냐, 미국식만 있는 게 아니라 유럽식도 있다'고 설득해야 한다. 노사정 유럽 시찰단을 만들어 같이 가는 게 좋다. 그러면 공동결정도 하고 경영참여도 하는 독일은 별 문제가 없다고 느낄 것이다. 노사정 대표가 시찰보고서를 만들어 모든 기업 사장들에게 보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조를 설득해야 한다."

- 1기 '민주개혁파' 정부에서도 노사관계가 안 좋았기 때문에 2기가 들어선다고 해도  노사정위원회가 복원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1기 '민주개혁파' 정부였던) 지난 10년은 일도 많았고 국난을 맞아서 그런 일까지 못해냈고, 여유가 없었다. 2기 민주개혁정부는 반드시 이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경제를 살리는 방식이다."

- 민주개혁파 정부에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래도 진보가 보수보다 유능하다. 지난 10년 정부가 과거 독재정권보다 훨씬 유능했다. 독단에 빠지지 않고 여러 사람의 얘기를 듣고 책임 있게 정책을 집행했다."

-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경우에는 '지난 10년의 민주개혁파 정부는 무능했다'고 비판했다. 
"보수는 기본적으로 무능하고 정부를 할 만한 자격이 없다. 자기 이익만 챙기는 '이익 확보주의'에 빠져 있다. 지난 청문회가 그런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서양에는 사익을 추구하지 않는 보수가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보수다. 이런 보수는 정책을 담당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보수세력이 없다. 극단적 사익 추구세력만 있다. 공적 일을 맡겨 놓으면 부패하고 자기 잇속 챙기는 데 급급할 뿐이다.

물론 진보는 실무에는 어두울 수 있지만 (그 단점이)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 진보는 여러 사람의 얘기를 듣고 공정하게 결정할 수 있다. 보수는 이익에 눈이 멀어 엉뚱한 결정을 한다. 한국 현대사 100년이 낳은 기형적인 집단이다. 이 집단이 바뀌지 않는 한 정권을 줘서는 안 된다. 공적을 일을 할 준비가 안 돼 있다."


#유러피언드림#이정우#노무현 정부#네덜란드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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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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