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김창국· 최영도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포함한 15명의 전직 인권위원들이 현병철 인권위원장에게 "책임 있는 처신"을 요구했다. 사실상의 사퇴촉구다. 현 위원장의 독단적 인권위 운영에 반발해 문경란·유남영 인권위 상임위원들이 지난 1일 사퇴한 것에 대해 전직 인권위원들이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상임위원 두 명이 임기 전에 사퇴의사를 밝히고, 전직 인권위원들이 전면에 나서 현직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선 이례적인 일이 발생함에 따라 현 위원장은 거취 결정에 상당한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8일 오전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상임위원 동반 사임'에 대한 전직 인권위원들의 긴급의견 표명 기자회견>에서 전 위원들은 "(최근의 인권위의 상황을 보니) 국민적 성원과 시민사회의 피땀으로 이룩한 성과가 일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이라며 "비통한 심정에 빠져든다"고 안타까워했다.

 

전 위원들 "현 위원장의 인권의식·지도력 문제... 책임있는 처신 해야"

 

전 위원들은 "독립성과 합의제 운영은 인권위의 소명을 다하기 위한 인권위의 본질적 존재 양식"이라며 "그러나 새 정부 들어 인권위의 독립성 문제가 불거지고 설득력 없는 조직 축소 논리로 적지 않은 별정직, 계약직 직원들이 인권위를 떠나야 하는 불행한 사태를 겪은 바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전 위원들은 "이러한 위기 상황을 내부 구성원들과 함께 타개해 가려는 수장으로서의 위원장의 노력은 보이지 않은 채, 두 명의 상임위원이 위원장의 독선적 조직운영과 인권현안에 대한 의도적 외면을 질타하면서 위원직을 사퇴할 수밖에 없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으며 인권위는 그 존립이 위협받는 중차대한 국면에 처하게 되었다"고 비판했다.

 

전 위원들은 "현 위원장이 사무처의 안건상정을 사전 차단하고 상임위원의 권한을 축소하려 했다는 내용과 국가인권위 수장이 '독재라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기사를 접하며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며 "위원장의 인권의식과 지도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현 위원장은 오늘의 파행에 대해 어떠한 형태로든 입장을 밝히고 책임 있는 처신을 취할 것"을 촉구했다.

 

최영애 전 상임위원은 '책임 있는 처신'에 대해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며 "(사퇴 요구 등도) 다 포함한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현 위원장 (사퇴) 기회 놓치면 본인에게도 심각한 문제 야기"

 

의견표명문은 인권위가 출범한 2001년부터 활동한 23명의 전직 인권위원들 중 15명(김창국·최영도 전 위원장, 박경서·유시춘·정강자·최경숙·최영애 전 상임위원, 김만흠·윤기원·원형은·이해학·이흥록·정인섭·정재근·최금숙 전 비상임위원)의 이름으로 발표됐다.

 

최영애 전 위원은 "모든 전직 위원들이 엄중하게 이 사태를 바라보고 (현 위원장의) 책임을 촉구하는 뜻을 함께 했다고 볼 수 있다"며 "이에 상응하는 위원장의 결단과 태도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기자들이 입장 표명 이후에도 현 위원장의 '책임 있는 처신'이 나오지 않았을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묻자 현 위원장의 인권위 운영 성과에 대한 비판부터 나왔다.

 

김만흠 전 비상임위원은 "현 위원장이 임명될 무렵에 인권위가 ICC(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의 의장국이 될 차례였는데 현 위원장이 스스로의 자격지심 때문에 포기해 버렸다"며 "그 때 이명박 대통령이 한창 국가 브랜드를 강조할 때였는데 스스로 좋은 기회를 차버렸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전 위원은 "그렇게 인권위를 운영해 왔기에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뿐 아니라 여당에서도 인권위 운영이 시정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며 "임명권자(대통령)나 당사자(현 위원장)이 현명한 판단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기원 전 비상임위원 역시 "누구보다 인권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인권위를 사랑한 전직 위원들의 뜻이 무엇인지 현 위원장이 헤아릴 때가 되었다"며 "이 자리는 현 위원장이 이 기회를 놓칠 경우 인권위원장으로서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는 마지막 메시지를 보내는 자리"라고 강조했다. 현 위원장이 '알아서' 제대로 된 결단을 내릴 것을 경고한 것이다.

 

최경숙 전 상임위원은 "현 위원장은 1년의 임기를 넘기면서 (발생한) 약간의 위기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해 온대로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않으며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넘어가겠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본다"며 "전임 위원들의 메시지는 '위원장 한 명이 바뀌었을 경우 한국의 인권지표가 어떻게 바뀌는지 봤기 때문에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으로, 당사자인 현 위원장과 정권이 (메시지에) 귀 기울여 주길 바란다"고 일침을 가했다.

 

"인권위 사태, 이명박 대통령이 책임 느껴야"

 

한편, 이날 청와대 앞에서는 시민사회단체들의 '국가인권위 독립성 훼손, 무자격자 현병철 임명한 이명박 대통령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을 주최한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인권시민단체 긴급 대책회의'는 "이명박 대통령은 인권에 대한 연구나 활동의 경험이 전혀 없는 현병철 위원장을 기어코 인권위원장으로 임명하였고, 인권위는 벼랑 끝에서 추락하고 있다"며 "국격 상승에 큰 기여를 했던 인권위가 이제 국격 하락의 선두주자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단체들은 "현 위원장이 임명 이후 부결된 사건들 'PD수첩 사건, 이른바 박원순 명예훼손 소송 사건, 민간인 사찰 사건'들은 정권의 이해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사건들"이라며 "이 사건들에 대한 논의가 부결되었다는 것은 바로 정권의 심기, 이명박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일종의 충성 서약인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단체들은 "인권위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인권위를 이렇게 만든) 인권위원장을 임명한 이명박 대통령은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그:#인권위 , #현병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