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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끝자락, 10월의 마지막 날에 산사를 찾았다. 울긋불긋 단풍철인데다 억새밭이 장관인 요즘인데 굳이 조용한 산사에 든 까닭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보다는 왠지 늦가을 정취에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아서다. 그곳엔 갈등도 소란도 번잡함도 없을 것 같아서다. 전북 익산의 이름마저 포근한 함라산 자락에 자리한 고찰 숭림사다.

 

광활한 호남평야를 가로질러 찾아가는 길부터 늦가을 정취는 물씬 난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은 갈색 빛으로 평온했고, 도로변에 늘어선 억새는 푸른 가을 하늘의 구름을 털어내듯 연방 흔들거렸다. 콧날을 시큰하게 만드는 서늘한 바람에도 외려 따스한 솜털 같은 촉감이 느껴졌다.

 

숭림사에 드는 길 거뭇한 아스팔트길마저 초록빛으로 물들여버린, 반드시 걸어서 올라야 할 길이다. 사람들은 이 길을 숭림사의 백미로 꼽는다.
숭림사에 드는 길거뭇한 아스팔트길마저 초록빛으로 물들여버린, 반드시 걸어서 올라야 할 길이다. 사람들은 이 길을 숭림사의 백미로 꼽는다. ⓒ 서부원

일찌감치 차에서 내려 걸었다. 아무리 편리함만 추구하는 세상이라지만, 걸어 드는 건 청정함을 간직한 산사에 대한 예의다. 숭림사에서는 더욱 그래야 한다. 이곳을 와본 이들이라면 경내로 드는 길을 단연 숭림사의 백미라 입을 모은다. 하나같이 너무 짧아 아쉽다고 하소연하는 그런 길이다.

 

검은 아스팔트길이 초록빛을 띠고 있다. 터널처럼 울창한 솔숲 사이로 가을볕이 든 까닭이다. 이 길은 누구와 함께하든 천천히 걸어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호흡을 느끼며 걷노라면 몸과 마음도 어느새 초록빛으로 물들게 된다. 누구라도 그랬던지, 전국적인 걷기 열풍을 타고 이곳도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둘레길'로 지정됐다.

 

일주문 너머 콘크리트 주차장은 찾아온 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분명히 '지나친' 배려다. 경내에까지 서걱거리며 낙엽 밟는 발자국 대신 요란하고 거뭇한 타이어 자국을 내는 건 늦가을 정취는커녕 산사의 품격을 흐트러뜨리기 십상이다. 왔다 간다며 사진만 냉큼 찍고 서둘러 돌아갈 요량이 아니라면 자동차는 저 아래에 세워두고 오를 일이다.

 

정갈한 숭림사 부도밭 이끼라는 세월의 더께를 안고서도 은빛으로 반들거리는 것은 푸른 가을 하늘과 병풍처럼 둘러싼 숲 때문이다.
정갈한 숭림사 부도밭이끼라는 세월의 더께를 안고서도 은빛으로 반들거리는 것은 푸른 가을 하늘과 병풍처럼 둘러싼 숲 때문이다. ⓒ 서부원

옷매무새 가다듬고 안뜰에 들기 전 숭림사의 또 다른 보배인 부도밭을 만난다. 여느 절처럼 옛 영화를 자랑하듯 큰 규모를 뽐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섬세하고 화려한 조각술로 눈길을 사로잡는 것 또한 아니다. 그저 어린아이 키보다도 작은 고만고만한 부도 네 기가 흡사 한가족인 양 도란거리고 앉아 있다.

 

부도마다 세월의 더께처럼 이끼가 덮여 있지만, 돌 표면이 가을볕을 머금어 은빛으로 빛난다. 햇볕에 하얀빛을 뿜어내는 억새처럼 반들거리게 보일 정도다. 그것은 부도밭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초록 솔숲과 붉은 황톳빛이 유난히 선명하기에 느껴지는 착시현상 같은 것이다. 가을은 때론 은색으로 치장되기도 한다.

 

낙엽이 살포시 앉은 채 푸른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부도밭의 정경이 안온하다. 걸터앉아 잠시 쉬려니 안뜰 쪽을 가리키며 어서 가라고, 다음에 또 보자고 재촉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부도밭 너머 산비탈에 서면 숭림사 전체가 한눈에 조망된다. 숭림사의 건물들은 부도밭의 정갈함을 쏙 빼다 닮았다.

 

숭림사의 주법당인 보광전(보물 제825호) 보광전 너머로 푸른 하늘과 푸른 솔숲이 서로를 뽐내고 있다. 흡사 여름철 같은 시원한 눈맛을 안겨준다.
숭림사의 주법당인 보광전(보물 제825호)보광전 너머로 푸른 하늘과 푸른 솔숲이 서로를 뽐내고 있다. 흡사 여름철 같은 시원한 눈맛을 안겨준다. ⓒ 서부원

숭림사는 야트막한 산 능선을 따라 가로로 길게 늘어섰다. 건물 새로 짓겠다며 산을 헤프게 깎아내지 않아서인지 여느 절처럼 위계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절이라는 경건한 예불 공간만 아니었다면, 편하게 마실 다닐 것 같은 이웃집 같은 분위기다.

 

본래 숭림사는 주법당인 보광전(보물 제825호)과 이웃한 부속 건물이 전부였지만, 근래 들어 왼편으로 새뜻한 건물들을 지어 세웠다. 단청을 입히지 않아 황톳빛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들은 산사 체험(Temple Stay)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한 것이다. 오래된 것과 새것이 뒤섞여 있지만 조금도 번잡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본디 있었던 절을 그대로 복원한 것 같은 느낌일 뿐이다.

 

보광전 지붕선을 따라 펼쳐진 짙푸른 녹음은 철없게도 아직 겨울을 맞을 채비를 못한 것 같다. 옷깃을 저미게 하는 스산한 바람만 아니면 차라리 여름 풍경이었다. 그런데도 깊어가는 가을과 시나브로 다가서는 겨울을 막아내진 못했다. 이미 안뜰에는 농익은 가을빛이 노랗게 물들었다.

 

숭림사의 랜드마크, 은행나무 몇 백 년은 된 듯한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숭림사의 안뜰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숭림사의 랜드마크, 은행나무몇 백 년은 된 듯한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숭림사의 안뜰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 서부원

족히 몇백 년은 됐음직한 은행나무가 조그만 경내를 우산처럼 덮고 서 있다. 임진왜란 때도 불타지 않고 남은, 가장 오래된 건물인 보광전과 더불어 절의 맏형 격이다. 바로 앞 어른 키 두 배도 넘는 큼지막한 배롱나무조차 왜소하게 보일 만큼 거대해 숭림사의 랜드마크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아름드리 은행나무에서 뿜어내는 노란 빛깔은 하얗게 일렁이는 억새도, 빨갛게 물든 단풍조차도 흉내 낼 수 없는 완연한 가을빛이다.

 

누군가 가을은 '파스텔톤'이라고 했지만, 차분하고 정갈한 이곳 숭림사의 가을은 온갖 천연색으로 에워싸여 있다. 울긋불긋 단풍이 끼어들 틈조차 없이, 푸른 하늘 아래 짙은 초록과 반짝이는 은빛, 그리고 농익은 노란빛에 이르기까지 화사하고 다채롭다.

 

그렇지만 어느 것 하나 자신만의 빛깔을 뽐내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서 고유의 빛깔을 무심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을 뿐이다. 그러하기에 비록 각기 도드라진 천연색이지만 가벼워 보이거나 소란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정갈하다는 건 이를 두고 하는 말일 듯 싶다. 그것들에 눈길을 주고 말을 걸고 주변을 서성거리면서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는 건 오로지 찾는 이들의 몫이다.

 

산사를 뒤로하고 나오려니 의미심장한 글귀 하나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요란한 신앙(信仰)보다 조용한 신행(信行)이 더 아름답다.' 분명히 자신을 스스로 성찰하려는 경구일 테지만, 그냥 지나치려니 나 같은 얼치기 신자를 향해 내려치는 죽비소리처럼 들린다.

 

듣자니까 일부 개신교 교회의 신자들이 이곳 산사를 무슨 유원지처럼 여긴 채 찾아와 찬송가를 소리 높여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절의 입장에서 보면 어찌 불편하지 않을까마는, 그들에게 찾아가 일일이 대응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굳이 묻지는 않았지만, 다른 종교를 배려하기는커녕 공공연히 배척하는 그들에게 던지는 '짧고 굵은' 메시지는 아니었을까. 아무튼 갈등도 소란도 번잡함도 전혀 없을 것 같은 고즈넉한 산사에 평화로운 가을이 깊었다.


#함라산 숭림사#늦가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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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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