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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만유기를 써내려가면서 아쉬운 점이 하나 있는데 함께한 인물들을 묘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확히 14명과 함께했는데 제각각 인물들의 개성이 워낙에 도드라져서 인물 하나하나만 놓고 구라를 쳐도 안동만유기는 14편으로도 모자를 터이다. 간략하게 함께한 인물들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우선 한 사람은 그 자체가 국가의 중요기밀사항이다. 또 한 인물은 마누라 고쟁이에 달린 주머니에서 아파트 중도금 치를 돈을 슬쩍해온 인물도 있고, 남산 어디께 쯤 국가정보기관에서 찾는 사람도 있으니, 도대체가 인물들을 소개할 수가 없다. 그런고로 이놈의 안동만유기는 앙꼬 빠진 찐빵이요, 빤스 안 입은 여자인 셈이다.
 

쓸 곳도 없는 객쩍은 소리 말고 고로롱 선생과 또 떠나보자. 왁자하니 아침상을 물리고 오늘은 월영교로, 주산지로 떠난다. 

 

"월영교" 참으로 운치가 있다. 월영교 자체도 운치가 있지만은 주머니에 손 찔러 넣고 대가리 쿡 처박고 걷다 보면 맞은편 안동 민속촌의 고즈넉한 정자와 기와집이 보이는데 시상이 절로 떠오를 듯 그러한 목조다리다. 아마도 퇴계선생께서 살아계실 적에 월영교가 있었다면 더 많은 퇴계문집이 후대에 전해졌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그저 짧은 여행 일정이 아쉬울 뿐이다. 남들이 같잖은 놈이라며 팔뚝질을 하거나 말거나 아래에 짧은 글 하나 첨부를 해본다.

 

가진 지혜는 없는데
한줌도 안 되는 가슴에
세상 만물 모두 담을 듯
호연지기는 하늘을 찌르고


눈 감고
가부좌 틀어 앉으니
陽 기운 가득한 푸른 용 되어
발밑 세상 비웃는 듯 굽어본다.
 

강물에 桃花 따라
삽작 없는 仙界에 이르니
희미한 달빛 喝 호통소리에
천길만길 번뇌 속으로 떨어진다.


창 넘어 미루나무
암수 정다운 새 소리에
화들짝 놀라 눈을 떠 보니
나른한 한낮에 꿈이었구나.


육신은 땅에 있는데
넋은 허공 속으로 사라지니
아! 萬物을 집어삼킬 듯
남아의 호연지기 어디로 갔는가.


2010년 시월에 趙 相衍

 

여기까지는 점잖게 잘 왔는데 지금부터 누구누구를 잘근잘근 씹어볼까 한다. 왜? 마음에 안 드니까! ㅎㅎㅎㅎ.

 

월영교를 지나 민속촌마을로 들어서면서 내가 솔직히 창피해 죽는 줄 알았다. 일행에 양반하회탈 비스무리하게 생기신 분과 내가 누님, 누님하면서 쫄랑쫄랑 따라다니는 분이 계시는데 청도 좋지! 웃음소리가 하루 종일 개흙바닥을 흔들어 댄다.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 흘끔흘끔 쳐다보며 수군거리는데 정말 창피해 죽는 줄 알았다. ㅎㅎㅎㅎ

 

그리고 또 하나 엄청나게 못마땅한 인물이 있었으니 이 양반은 오늘 맘먹고 씹어보려 한다. 나하고 고로롱 선생하고 이양반의 차를 타고 이동을 하는데 스쳐지나가는 풍경이 정말이지 하나도 버릴 게 없었다. 안동댐 때문에 낙동강 속으로 수몰되기 전의 마을을 통째로 옮겨놓은 곳하며 아늑한 초가집, 기와집에 흙벽이 아닌 회벽 집 등등 이 모든 풍경이 버릴게 하나도 없건만 좋은 풍경 나오면 차를 세우란다. 

 

"가롤로님, 멋진 풍경 나오면 차 세워달라고 하셔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울컥했다. 아니, 어제 주왕산행에서는 무장공비 잡듯 뛰어다니더니 뭐라고? 오늘은 좋은 풍경 나오면 차를 세우라고? 이게 뭔 춘향이 빤스 미루나무에 걸린 말씀이여? 자기는 맨 날 보는 거라 대수롭지 않다 이거지? 솔직한 말로 내 욕심 같아서는 차에서 내려 살랑살랑 걸어가며 모든 풍경을 카메라에 몽땅 담고 싶지만 일행이 있으니 나 혼자 좋자고 "사진 좀 찍게 차 좀 세웁시다" 이럴 수는 없지 않는가? 자기가 알아서 세워주면 일행에게 나도 덜 미안하고 그런 거지 사람이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다. 내색은 못했지만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기를 누르자니 안동에 와서 화병 얻어가는구나 싶은 게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다. "다음부터 조심하셔! 꼭 말로 해야 알겠소?"
 

그래도 내가 점잖은 사람이라 막말을 할 수가 없어서 분을 참고 삭이었기 망정이지 이 양반 못된 놈 만났으면 일치를 뻔했다. 각설하고 낄낄깔깔 거리다 보니 "내가 사진작가올시다" 하고 제 입으로 떠드는 사람치고 한 번씩은 다 와봤다는 주산지인지 깻묵덩어리인지를 도착했다. 와보니 별 것도 아니더먼! 눈에 보이는 풍경은 별스러운 게 맞지만 사진작가라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구라가 심했다는 말이다.

 

주산지에 모인 카메라를 둘러멘 군상들을 보며 나도 몇 컷을 카메라에 담는데 불현듯 "니미럴, 내가 이까짓 달력사진 찍으러 예까지 왔더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카메라가 아닌 마음의 렌즈에 풍경을 담아가며 감탄사 "억" 소리를 냅다 질러가며 싸돌아 다녔다. 내가 어디 체면이 있는 사람이어야지? 그저 내 감정에 충실하게 연신 "억억!" 감탄사를 연발하며 함께한 인물들을 조그만 손 카메라로 스케치 해나갔다. 내가 지금 안동만유기를 쓰면서 미치기 일보직전인데 함께한 인물들이 국가일급기밀사항이라 사진을 못 올리는 게 한스러울 따름이다.

 

가만 있어봐?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안동만유기 순서가 바뀌었다. 어제의 것과 오늘 것과 순서가 바뀌었다. 이틀만의 여행인데 지금도 내 몸은 주왕산에, 주산지에 있는 느낌이고 고운 소금을 뿌려놓은 듯 안개꽃을 닮은 누님의 푼수 같은 웃음소리가 내 귓전을 때리는 게 내가 지금 뭔 착각을 하고 있는 게 틀림이 없다.

 

고로롱 선생은 또 어떤가? 삼청교육대 끌려가는 사람마냥 양쪽에서 팔짱부축을 받고 서 있는 게 아닌가? 아이 니미럴, 여행 한 번에 사람이 넋을 놓아버리다니 이거 뭐가 잘못 되어도 크게 잘 못 되었다. 이거 까딱 잘못하다가는 나까지 고로롱 선생과 한 축으로 몰리게 생겼다. 내 아직은 청춘인데!


이것저것 다 그만두고 이번 여행을 통해서 사람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배웠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어떠해야 되는가를 배웠다. 함께한 사람 모두 서로가 타인의 아랫사람이고자 했지 어느 누구도 그 어떤 "척"이 없었다.  단 한 사람 무엇 무엇인 "척"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내 자신이었다. 

 

함께한 그들은 자신의 얘기를 하기 전에 남의 말을 들어주는 덕(德)이 있었고 상 위에 놓인
생선의 가시를 발라 남의 수저에 놓아주는 인(仁)이 있었으며 서로가 서로를 챙겨주는 예(禮)가 있었다. 또한 문(文)과 학(學)을 게을리 하지 않는 지(知)가 있었으니 내 어찌 그들을 벗 삼지 않겠는가? 그들이 내치지만 않는다면 그저 꼬랑지 내리고 쫓아다녀볼 심산이다. 허면 줄 것은 없어도 얻는 것은 있겠지 싶은 마음이다.


태그:#안동, #주왕산, #주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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