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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합창단 오디션에 참가하기 위해 모인 마을 사람들이 스태프의 설명을 듣고 있다.
▲ 마을극장 안에 모인 오디션 참가자들 마을합창단 오디션에 참가하기 위해 모인 마을 사람들이 스태프의 설명을 듣고 있다.
ⓒ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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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단원 모집 포스터를 붙인지 열흘째 되던 지난 23일 토요일 저녁, 오디션을 위해 모여든 마을 주민들이 마을극장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성미산도 지키고 합창의 추억도 만들며 마을 사람들이 연말 합창 무대를 열어보자'는 누군가의
말에, 사람들은 "거 참 괜찮은 생각!"이라며 좋아했었다. 그러나 정작 단원으로 참가할 것을 권하면 "아이고, 내가 끼면 노래 망치지"하며 빼기 일쑤였다. 오디션만 면제해 주면 하겠다는 사람도 많았는데, 어떻게든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얘기다. 가뜩이나 바쁜 연말에 합창단에 참가하려면 두 달을 고스란히 연습 스케줄에 맞춰야 하는 것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대에 서서 노래한다는 건 확실히 낯설고 부담되는 일이었다. '뜻은 좋지만 과연 이게 되는 얘기냐' 하는 걱정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성미산을 지키기 위한 '유쾌한 반란', 마을합창단

그런데, 그랬던 사람들이 이렇게 모였다. 낯익은 마을 주민도 있지만 소문을 듣고 멀리서 찾아온 사람도 더러 보인다. 저마다 악보 하나씩을 챙겨들고 목청을 가다듬는 모습이 퍽이나 진지해 보인다. 50줄에 가까운 중년이 있는가 하면 초등학교 아이들도 있고 직장일을 마치고 달려온 사람부터 아이들 저녁밥 챙겨 주고 부리나케 달려 나온 주부도 있다. "어머~ 자기도?"하며 깔깔대며 쑥스럽고도 즐거운 수다 한판을 벌이는 모습에서 학창시절의 풋풋한 설렘 같은 게 느껴진다.

당락을 결정하는 오디션이 아니라 단지 성부를 나누기 위한 테스트에 불과하니 긴장하지 마시라는 스태프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오디션은 오디션이다!'는 사람들의 설렘과 가벼운 긴장감이 극장 안을 가득 채웠다. 이들 개인 참가자 말고도 4개 팀의 단체 참가자들이 별도로 준비하고 있다 하니, 애초 계획했던 '100명의 합창단'은 가뿐히 채우고도 남을 듯하다. '과연 될까?'하던 걱정이 가볍게 사라지는 순간이다.

2003년 처음 성미산 지키기 싸움부터 시작되어 온 이 마을의 역사와 특징이 그랬었다. 가볍게 그냥 '이런 거 어때?' 하며 시작된 흐름이 늘 만만치 않은 감동과 성과를 만들어 왔던 것이다. 그런 힘으로 산을 지켜냈고, 하루하루 따뜻한 마을공동체를 형성해 왔다. 지금 하고자 하는 '합창' 역시 다시금 닥친 성미산 훼손 위기에 맞선 새로운 도전의 하나다. 지난 5월 이래 하루도 빠짐없이 산을 품고 지켜온 이들의 즐겁고 유쾌한 반란인 것이다.

우리는 드림팀이다!

지휘자가 참가자들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파트를 구분해 가고 있다.
▲ 참가자들의 소리를 체크하고 있는 지휘자 지휘자가 참가자들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파트를 구분해 가고 있다.
ⓒ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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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합창단답게, 오디션도 '여럿이 함께' 모드다. 맨 처음 호명된 다섯 명의 지원자들이 나란히 서서 자기소개부터 시작했다. 다들 가볍게 상기된 표정이지만 시종 즐거운 웃음과 친근함이 흐르는 분위기다.

"나처럼 노래 못하는 사람이 노래로 성공하면 드라마가 되는 거지요. 혼자서 부르라면 자신 없지만, 여럿이 함께 부른다면 어쩐지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나왔습니다."

마을에서 '바람씽씽'이라 불리는 현석환씨는 참가 동기를 그렇게 설명한다. 응원하러 나온 아내와 아들의 환호를 받으며 나온 그는 "노래로 안 되면 스태프로라도 꼭 참가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며 큰 박수를 받았다.

학생시절 합창단 활동의 추억을 되살려 보고 싶다는 사람, 노래실력은 없어도 성미산을 지키고 싶은 열정 하나만은 남부럽지 않으니 이점 감안해 달라며 애교 섞인 인사를 날리는 사람, TV에서 본 '넬라 판타지아'의 감동을 여기서 한번 느껴보고 싶어 왔다는 사람 등 가지각색의 사연들이다.

피아노 반주가 흐르고, 드디어 오디션 시작이다. 오늘의 지정곡은 모두 3곡. '선구자', '고향의 봄', '옹달샘'이다. 합창단 총 지휘를 맡은 원창연씨는 "다소 교과서적인 감은 있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도무지 '모를 수가 없는' 노래여야 마을 분들이 편하게 부를 수 있고, 악보 해독에 대한 부담도 적을 것"이라고 선정이유를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오랜 세월 몸에 익고 귀에 익은 노래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수줍고 조심스럽던 소리들이 점차 따뜻한 온기를 찾아가며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부르는 사람, 듣는 사람의 표정에 저절로 미소가 피어나게 하는 노래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테스트 결과에 따라 성부별로 다시 재배치돼 앉으니, 어쩐지 기분이 묘하게 새로워진다. 이 대형 그대로 '드림팀' 구성이 완료되는 것이다. 네 개의 파트가 '도미솔도'를 각각 나눠 부르자, 기대 이상의 아름다운 화음이 울려 퍼진다. 그것은 드림팀이 만들어 낸 최초의 하모니. '아~'하는 단 한 음절의 소리에 스스로 놀라며 감격하는 이들의 순하디 순한 눈빛들은 뭔가 정말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으로 벅차올랐다.

성미산에 울려퍼질 아름다운 하모니의 시작

나란히 함께 부르는 이웃이 있어 한결 '안심'이다. 마을합창단은 '함께하는' 기쁨으로 시작되고 있다.
▲ 오디션부터 '여럿이 함께' 나란히 함께 부르는 이웃이 있어 한결 '안심'이다. 마을합창단은 '함께하는' 기쁨으로 시작되고 있다.
ⓒ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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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목소리가 어우러져 하나의 아름다운 울림으로 살아납니다. 빼어나게 잘 부르는 한 사람의 노래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울림과 감동, 그게 바로 합창의 묘미인 거지요. 우리는 이제 성미산도 지켜내고, 행복한 합창의 추억도 만드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겁니다. 두 달 동안 우리 마음껏, 제대로 한번 불러 봅시다."

성미산마을극장 대표인 짱가 유창복씨는 지금까지의 성미산 싸움의 진행 상황을 설명하며 합창으로 전하게 될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의 의미를 다시금 확인했다. 현재 성미산 싸움은 다자간 테이블이 형성되면서 새로운 국면 전환을 이루는 듯한 양상이지만, 그런 와중에도 날마다 성미산 기슭에선 주민과 건설사 직원들 간의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다.

끝없이 찢겨지고 다시 세워지던 주민들의 낡은 천막이 바람에 나풀대는 모습에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시려오기 시작하는 계절. 그 낡은 천막 하나에 담긴 험난했던 시간의 흔적을 반전시켜 새로운 에너지를 퍼올릴 새로운 동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성미산 사람들이 합창을 시작하게 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정식 공연장에서 제대로 된 공연을 하는 건 물론이고, 사람들이 모이는 지하철 광장이나 시내 거리에서의 게릴라 콘서트로 열 생각입니다. 다양하고 즐거운 방식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전해야지요."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 중순이면, 이들의 즐겁고 감동적인 무대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산과 마을과 사람들이 이뤄내는 감동의 하모니!  이번 연말이 한층 따듯해질 것 같은 예감이다.


태그:#성미산마을, #마을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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