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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보는 눈은 각자 다르겠지만, 저는 특별히 동류의식을 갖게 하는 사람이 좋습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주고 상대해 주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제가 가지고 있는 삶의 원칙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 원칙을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게 좀 광범위하게 잡을 뿐입니다. 가령, 사랑이든지 아니면 정의와 진리 등으로 말입니다. 그 중 권위로부터의 탈피도 요즘 제가 관심을 두는 영역에 속합니다.

 

얼마 전, 전에 목회하던 지역에 언론축제가 있다고 해서 다녀왔습니다. 다른 도의 지사 강연 순서 전에 강연자와 지역 몇 사람들이 만나 식사하는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시골의 작은 식당을 만남의 장소로 잡았습니다. 예약을 한 터라 수저와 컵, 그리고 물수건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각자 자리를 잡아 앉고 보니 두세 사람 앞에는 수저 등이 비어 있었습니다. 예약한 숫자보다 그만큼이 더 참석한 것입니다.

 

그때 앞에 앉아 있던 군수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수저와 물컵 등을 빈자리에 갖다 놓았습니다. 주인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의 서빙 맨이 된 것입니다. 이런 군수의 행동을 그냥 보아 넘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예사롭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 군수는 산전수전 다 겪으면 천신만고 끝에 지난 지자제 선거에서 군수로 당선된 사람입니다. 그런 만큼 한 군의 책임자로 새 출발을 하면서 그가 가진 각오도 보통을 넘었을 것입니다.

 

탈 권위는 21세기에 가로 놓인 우리의 화두입니다. 20세기까지는 권위가 지배하던 사회였습니다. 작은 자리를 확보해도 최대한 권위로 연결지어 활용하려고 하던 우리 사회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그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중앙이든 지방이든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자기와 동일한 사람일 것을 요구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탈 권위의 시대가 된 것입니다.

 

앞에 말한 그 군수도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읽고 있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그는 군수로 일하면서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몸은 하나인데, 군민들의 바람은 너무 다양하면서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전임 군수와는 다르게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고 했습니다. 정실을 배격한 인사, 뒷거래로 오가는 돈 등은 일반 사람들도 멀리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불필요한 권위 의식을 배격하는 군정을 이끌어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바람도 좀 바뀌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작은 마을 행사에도 군수가 참석하면 격이 높아진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가급적 꼭 필요한 곳이 아니면 행사 참석을 자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군수의 콧대가 높으면 얼마나 높으냐며 불만들이 없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충정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가 초청에 응하는 행사는 이런 것이라고 합니다. 사회적 약자, 즉 장애인 노인 다문화가정의 행사 등에는 가급적 참석하려고 노력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군수가 참석함으로 사회로부터 소외받고 있는 그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을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신선한 생각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는 정도(正道)를 걸으려고 하는데 잡아당기는 것들이 너무 많다고 했습니다. 원칙을 지키려고 하니 재선은 더 이상 욕심이 나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세로 군정에 임하는 군수를 군민들이 다시 부르지 않을 리 없습니다.

 

그가 나서지 않아도 될 자리인데도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군수를 보며 권위와 먼 지도자를 발견한 것 같은 장면 포착은 나의 마음과 눈이 예민해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많은 지도자들이 값 없는 권위를 가치 있게 내려놓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거리감 없이 어울리는 지도자를 기대합니다. 사람들의 마음도 이에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군수#탈 권위#식당 서빙#언론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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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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