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전남 진도군 의신면 송군리 바닷가 조그만 마을이 내 고향이다. 마을앞으로 꼬막처럼 예쁜 모래밭이 시멘트 축대 때문에 유실되고 형상이 변했다.
▲ 해무에 갇힌 고향 모습 전남 진도군 의신면 송군리 바닷가 조그만 마을이 내 고향이다. 마을앞으로 꼬막처럼 예쁜 모래밭이 시멘트 축대 때문에 유실되고 형상이 변했다.
ⓒ 임경욱

관련사진보기


누구에게나 고향은 그리움의 대상이다. 고향은 늘 그 자리에서 그 모습으로 어머니처럼 푸근하고 따뜻하게 우리를 맞아준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찾아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커다란 행운이다. 청년기에 도회에서의 긴 방황을 끝내고 찾아가 몇 년을 쉬면서 제기의 힘을 얻었던 곳도 바로 그 고향이며, 인생의 굴곡에서 휴식을 요할 때마다 찾아가 안식을 찾던 곳이 고향이다.

내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 내 꿈이 영글던 곳, 동네 구석구석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묻어 있는 곳, 지금도 꽃밭으로 가득 찬 풍경으로 꿈속의 배경이 되는 곳, 내 어머니와 친지들이 사시는 곳, 아버지가 묻혀계시는 곳, 봄이면 솔 향기 바람에 날리고 여름이면 파도소리가 단잠을 깨우던 바닷가 조그만 동네 그곳이 내 고향이다.

그러나 꿈속의 고향과 현실의 고향은 많이 다르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이 변했다. 여느 농어촌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어린 시설 50호가 넘던 마을은 30가구로 줄었으며, 그나마 고향을 지키는 대부분의 주민이 노인들인데다가 혼자 사는 분도 10가구나 된다. 마을 주민은 250여 명에서 1/5 수준인 53명으로 줄었다. 세대를 잇지 못하니 노인들이 죽고 나면 마을이 텅 비게 될 것이다. 그래도 이곳은 어촌이라 몇몇 젊은이들이 지키고 있어 농촌보다는 나은 편이다.

사람과 집들만 줄어든 게 아니라 마을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초등학교까지 1시간은 족히 걸어야 했던 학교 길은 말끔하게 포장된 지 오래고, 집들도 대부분 블록 슬라브로 개량해 어릴 적 고향 정취와는 거리가 먼 풍경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마을 앞에는 해송 방풍림이 줄지어 서서 바닷바람을 막아 주었는데, 모두 베어냈는지 고사했는지 나무가 있던 자리는 시멘트로 포장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마을 앞으로 예쁘게 형성되어 아이들의 놀이터였던 모래밭도 해안을 따라 시멘트 콘크리트로 방파제를 만들어 없애버렸다. 마을 초입부터 동그랗게 형성된 해안선을 따라 호안도로를 낸다고 모두 시멘트로 축대를 만들어 놨다. 그래서 더 삭막하다. 마을 앞으로 펼쳐진 갯벌에는 썰물 때면 보리밥이라고 불리던 민챙이와 대사리라고 불리던 비틀이고둥이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는데, 지금은 구경조차 하기 힘들다. 마을 앞 바닷가로 이어진 도랑 주변에 자생하던 갈대밭에는 농게들이 진을 치고 살았는데 갈대고 농게고 흔적조차 없어졌다. 바닷가 돌 밑에 살던 참방게와 갯벌에 구멍을 파고 살던 칠게도 개체수가 많이 줄었다. 첨대낚시 하나만 담가놔도 문저리가 줄줄이 올라오던 바다였는데 먹이가 줄어드니 그도 줄어든 모양이다.

샘기미, 몰막기미, 안고랑, 삽사골, 써르끝 등 그 지명의 어원을 알 수는 없지만 지금도 들으면 정겨운 마을 곳곳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풀숲에 묻혀 샛길마저 사라져버렸다. 마을 왼쪽 산 너머 샘기미는 가족단위로 해수욕을 즐기기에는 안성맞춤인, 바람막이가 잘되고 아담한 백사장이 형성되어 있다. 고향에 가면 한 번씩 들르곤 하던 곳이었는데 몇 해 전부터 국적을 알 수 없는 물병과 과자봉지 등 쓰레기들이 밀려와 더미를 이루고 있다.

갯메꽃과 나문재, 순비기나무가 무리지어 살던 모래톱 위로도 스티로폼과 그물, 대나무 조각 등 폐 자재가 나뒹굴고 있다. 김, 미역, 굴 등 해산물의 양식기술이 발달하면서 겨우 뱃길만 남겨둔 채 온 바다를 덮을 정도로 증식면적이 늘어나면서 생긴 인위적 재해다. 물 흐름이 좋지 않은 바다는 플랑크톤이 줄고 적조현상은 물론 알 수 없는 갯병으로 인해 해조류가 죽어가니 이에 맞서 염산 등 화학약품을 무분별하게 살포한 것이다. 그래서 그 많던 톳, 우뭇가사리, 모자반, 미역 등의 해조류가 급격히 줄어들고 손맛의 즐거움을 선사하던 볼락도 잘 잡히지 않는다.

추석을 맞아 찾은 고향은 생기가 없었다. 전에는 명절이면 마을사람들이 회관에 모여 윷놀이를 하고 풍물놀이도 즐겼었는데, 최근 몇 년 새에는 그마저도 자치를 감춰 온 마을이 적막하기만 하다. 부모세대가 늙으니 자식세대도 나이가 들어 고향을 찾는 이가 매년 줄어든다. 어린 시절 달밤이면 동무들과 달맞이 하고 술래잡기하던 우리 농촌 고유의 전통문화가 핵가족화와 도시화에 밀려 잊혀가고 있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생기는 도시화, 핵가족화, 고령화 등 문명의 변화는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의 황폐화를 가져온다. 문명의 발달로 얻는 것도 많겠지만, 그로 인해 잃게 되는 것이 더 많다. 특히나 고향을 기억하는 세대에게는 변색되어가는 고향 모습에 마음의 고향이 하나씩 무너지는 느낌일 것이다. 부모세대가 세상을 뜨고 나면 그나마 찾는 이 없을 고향을 그 누가 있어 지켜줄까? 그래도 지금은 동생들 내외가 명절 때면 꼬박꼬박 찾아줘 고마울 따름이다.

고향이 늘 그 모습으로 있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내 지나친 욕심일까? 개발이란 미명하에 변해가는 고향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자식들을 타지로 보내놓고 텅 빈 집에 쓸쓸히 혼자 계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아프다.

불효자는 객지를 떠돌며 오늘도 웁니다.


태그:#고향, #송군리, #어머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생은 물처럼, 바람처럼, 시(詩)처럼 / essayist, reader, traveler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