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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등교하는 젊은이들의 꽁무니를 쫓아 삼육대 안으로 들어갔다. 학교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나이의 사람이 들어가자니 조금 민망하기도 했다. 이번 야생초 수업은 삼육대 안에 조성되어 있는 제명호라는 호수의 숲길을 돌아볼 예정이다. 이 길은 불암산 둘레길 하고도 연결되어 있어 일반 사람들도 가볍게 넘나드는 곳이다.

"산에 가면 늘 보았던 들깨조차도 가끔 헷갈릴 때가 있어요. 분명 들깨처럼 생겼지만 아닌 경우도 있거든요. 쐐기풀 종류 중에 들깨 잎과 매우 흡사한 잎을 가지고 있는 게 있어요. 생각없이 만졌다가 찔리면 그 아픔은 거의 죽음이랍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눈으로 확인하고 만지세요. 무조건 만진 후에 살피지 말고요."

강사의 이 말을 시작으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노랑새우풀과 콜레우스와 고구마 순이 묘하게 어울리는 대형 화분들을 지나 숲길로 들었다.

 물봉선의 잘 여문 꼬투리 씨방. 사람손이 닿았는가 싶은 순간에 화르륵 터지며 꼬투리가 용수철처럼 도르륵 말리고, 씨가 터져 나온다.
물봉선의 잘 여문 꼬투리 씨방. 사람손이 닿았는가 싶은 순간에 화르륵 터지며 꼬투리가 용수철처럼 도르륵 말리고, 씨가 터져 나온다. ⓒ 박금옥

계곡의 물이 흐르는 비탈에 '물봉선'이 아직도 피어있다. 물봉선은 여름 제철을 지나 가을까지 피지만 지금은 끝물이라며 익은 씨앗을 만져보란다. 집주변에 심어서 손톱에 물들이는 봉선화(봉숭아꽃)와는 달리 물봉선은 주로 산 속의 습한 곳에서 자란다. 봉선화의 씨방은 통통한 항아리 모양이지만 물봉선 씨앗은 작고 가는 꼬투리 모양이다.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란 꽃말이나 '만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라는 노랫말로도 감당이 되지 않을 만치, 손이 닿았는가 싶은 순간에 '후르륵 팍'. 빛의 속도다. 꼬투리가 도르륵 용수철 말리듯 말리면서 씨방이 터진다. 회원들의 탄성이 여기저기 들려온다.

 긴병꽃풀. 꽃은 이미 졌지만, 잎 앞에 앉으니 향긋한 허브향이 기분좋게 했다.
긴병꽃풀. 꽃은 이미 졌지만, 잎 앞에 앉으니 향긋한 허브향이 기분좋게 했다. ⓒ 박금옥

'긴병꽃풀' 군락지에 앉으니 허브꽃 향에 취할 듯하다. 꿀풀과의 여러해살이라고 한다. 바위취와 비슷해 초보자들을 헷갈리게 했다. 작은 동그라미를 닮은 잎 가장자리의 톱니도 부드러워 보이는 반원형이다. 벽을 타고 오르는 덩굴처럼 긴 줄기들이 바닥을 기며 온통 땅을 덮었다. 

마디마디 땅에 뿌리를 내리며 퍼지고 있었다. 뿌리내리면서 잎을 내고 또 뿌리내리면서 잎을 내고, 그렇게 병처럼 길게 자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가 보다. 봄에 피는 꽃은 이미 지고 없다. 음지에서도 잘 자라며 금방 군락을 이루고 향도 좋아 사람들이 관상용으로도 많이 심는다고 한다.

 꽃향유. 벌들이 어찌나 몰려드는지 곁에 있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꽃향유. 벌들이 어찌나 몰려드는지 곁에 있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 박금옥

길에는 '꽃향유'와 '향유'가 같이 피어 있어서 비교하기에 좋았지만, 이도 따로따로 본다면 구분하기 힘들겠다. 둘 다 꿀풀과라서 꿀주머니 같은 보라색 꽃을 강아지풀처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꽃이 둥그렇게 돌려가며 피는 것이 아니라 한쪽으로만 쏠려 피고 있다. 납작 머리처럼.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처럼.

서로 어떻게 다른지 자세히 비교해 보려는데 벌들이 어떻게나 설치는지 눈으로 일별하고 물러났다. 짠득짠득 손에 달라붙는 '털진득찰'과 조릿대 어린잎의 가장자리를 주름잡아 놓은 것처럼 보이는 '주름조개풀' 앞에서도 회원들은 찬찬히 들여다보며 각각의 생김새를 관찰하느라 애쓴다.

 개여뀌.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거의가 개여뀌다.
개여뀌.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거의가 개여뀌다. ⓒ 박금옥

 바보여뀌. 잎에 듬성듬성 털이 나있다. 초보자들에게는 개여뀌나 바보여뀌나 같아 보였다.
바보여뀌. 잎에 듬성듬성 털이 나있다. 초보자들에게는 개여뀌나 바보여뀌나 같아 보였다. ⓒ 박금옥

길 양쪽으로 '개여뀌'와 '바보여뀌'가 섞여 여뀌 숲을 만들고 있다. 개여뀌는 빨간 꽃이 강아지풀처럼 빼곡히 올라오지만 바보여뀌는 성글게 꽃이 피어있다. 개여뀌 잎에는 털이 없지만 바보여뀌는 듬성듬성 털이 있었다. 루페로 들여다보니 부드러운 털이 꼭 생선가시처럼 뾰족하게 올라와 있다.

'이삭여뀌'는 줄기에 선명한 붉은 꽃을 다닥다닥 붙이고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가느다란 줄기 가득 좁쌀처럼 붙은 꽃에 비해 잎은 큰 둥근 타원형이다. 아마도 여뀌 집안에서 가장 넓은 잎을 가지고 있지 않나 싶다. 개여뀌와 바보여뀌와는 달리 여러해살이 풀이다. 그 잎 때문에 꽃줄기가 더 가늘어 보인다. 빨간 꽃을 단 긴 줄기는 쇠꼬챙이 하나들 힘도 없는 듯, 땅에 머리를 곤두박고 있다.

 이삭여뀌. 잎이 넙데데하다. 꽃줄기가 축축 늘어진다.
이삭여뀌. 잎이 넙데데하다. 꽃줄기가 축축 늘어진다. ⓒ 박금옥

탱자처럼 생긴 '산딸나무'의 열매가 빨갛게 익었다. 하나를 따서 만지는데 물컹하다. 순간 놀랐지만 그 안에서 나온 과육은 단호박 속 같다.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해서 맛을 보니 달다. 서로 조금씩 나누어 맛을 보았다. 한 그루 외롭게 서 있는 관목 '덜꿩나무'의 붉은 열매도 눈길을 잡는다. 모든 것이 열매 맺고 익어가는 시기다.

 산딸나무. 빨갛게 익은 열매는 물렁물렁하고 속은 노랗다. 맛이 달았다.
산딸나무. 빨갛게 익은 열매는 물렁물렁하고 속은 노랗다. 맛이 달았다. ⓒ 박금옥

"인디언들은 굴참나무의 껍질을 벗겨낼 때면 나무에 대고 '가져가겠다'며 기도를 한다고 해요."

굴참나무의 수피 한 귀퉁이가 벗겨져 있는 것을 본 강사의 말이다. 누군가 호기심에 무분별하게 벗겨본 것 같다. 그렇게 나무를 볼 때는 고개를 뒤로 젖혀 하늘을 올려다보고, 풀을 볼 때는 주저앉아 고개를 숙이며 제명호에 도착했다. 학생들이 견학을 나왔는지 호수 근처에 고교생들의 소리로 왁자지껄하다.

 여뀌. 잎이 날렵한 것이 버들잎처럼 생겼다. 잎에서 매운맛이 느껴진다. 미국가막사리 밑에서 힘겹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여뀌. 잎이 날렵한 것이 버들잎처럼 생겼다. 잎에서 매운맛이 느껴진다. 미국가막사리 밑에서 힘겹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 박금옥

"오늘의 하이라이트, '여뀌'예요. 잎의 맛을 보고 느낌을 말해 보세요"

강사가 제명호 물가 근처에서 따다 나눠주는 잎을 넣어 씹는데, 천천히 혓바닥 가운데를 지그시 눌러오는 통증이 느껴진다. 매운맛이다. 여운이 꽤 오래간다. 입에 넣었던 사람들 모두 놀란다. 이 맛 때문에 여뀌 잎과 줄기를 찧어 물에 풀면 고기가 기절을 하는가 보다. 지금까지 본 어느 여뀌보다 날렵한 잎을 가지고 있다. 앞에 어떤 다른 명칭을 달지 않은 그냥 '여뀌'다. 여뀌집안의 귀족, 여뀌집안의 날씬이라고 불러줘야 할 판이다.

꽃도 붉은 색과 초록색이 섞여 있다. 여뀌는 흔하지 않다고 한다. 우리 눈에 많이 띄는 것은 대개 개여뀌다. 여뀌는 매운맛 때문에 향신료로도 이용되고 있단다. 자료를 찾아보니 마디풀과의 여뀌집안이 꽤나 많았다. 그중 여뀌집안 4형제(여뀌, 개여뀌, 바보여뀌, 이삭여뀌,)와 조우를 했지만, 참나무 6형제(떡갈, 신갈, 상수리, 굴참, 갈참, 졸참)처럼 구별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주목. 열매의 진액이 손에 묻으면 끈적거린다. 열매를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주목. 열매의 진액이 손에 묻으면 끈적거린다. 열매를 먹을 수 있다고 한다. ⓒ 박금옥

짧은 침엽의 '주목'에 빨간 열매가 앵두처럼 달렸다. 관상용으로 학교 건물 앞 화단에 심겨져 있었다. 열매는 알로에 같은 진액을 갖고 있다. 손 안에서 터지면 물컹거리는 진액 때문에 끈적끈적하다. 그 느낌은 좋지 않지만 맛은 달다. 앵두처럼 과육이 입안에 차기도 전에 씨가 먼저 튀어나온다.

 쇠별꽃(석죽과). 털별꽃아재비(국화과)와는 다른 집안이다.
쇠별꽃(석죽과). 털별꽃아재비(국화과)와는 다른 집안이다. ⓒ 박금옥

수업 마무리 중에 하얗고 앙증맞은 꽃이 관목들 사이에서 도드라져 보인다. '쇠별꽃'이란다. 5장의 꽃잎이 깊게 파여 있다 보니 꼭 토끼 귀 같다. 4-6월에 피는 꽃이라는데 아직도 피어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야생초 수업을 들으면서는 특히 더 하다. 도감이나 책을 아무리 봐도 아리송할 때가 많다. 그래서 실물에서 오는 교감은 어떤 도감보다도 우월하다.


#마들꽃사랑회#야생초수업#삼육대제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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