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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축하드립니다. 당선되셨습니다."

손님이 찾아와 술 한 잔 하던 중에 낮선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화번호가 '02' 어쩌고 저쩌고다. 이 번호면 서울쪽인데 나한테 서울에서 전화올 게 있나 싶어 받지 않으려다가 받아보았더니 이런 멘트가 들린다.

이건 또 무슨 마케팅인가 싶어, 얼른 바쁘다고 하고 끊으려 하니, 전화 속 남자가 황급히 다음 말을 이어간다.

"저 선생님, 여기는 경기도 남양주시 슬로푸드 대회 진행팀입니다. 끊지 마시고 잠깐 들어보십시오. 일전에 저희 슬로푸드 대회에 '미꾸라지 추어탕' 만드시는 걸로 응모하신 것 기억나십니까? 심사 결과 선생님 글이 금상에 당선되셨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아… 그 말을 들으니, 뭔가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지 슬로푸드 대회란 곳에 응모한 적이 있었지.' 일전에, 그러니까 여름에 내가 블로그에 올린 글 중에 '추어탕'을 만드는 내용의 글이 있었다. 그때 글 제목이 '최고의 슬로푸드 '추어탕''이다.

그냥 쓴 글이 '슬로푸드 대회'서 덜컥 채택됐다

남양주시 슬로푸드 사진경연대회 금상
▲ 당선사진 남양주시 슬로푸드 사진경연대회 금상
ⓒ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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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농촌으로 귀농해 들어왔지만 논에서 미꾸라지를 직접 잡아 추어탕을 끓여 먹어보기는 올해가 처음이었다. 체험을 한 뒤 신기하기도 해서 그 내용을 블로그에 한 번 올려려봤었다. 그 글이 'Daum'과 '오마이뉴스'에 노출이 됐고 댓글도 몇 개 달렸었다.

그 글을 보고 경기도 남양주시 '슬로푸드 대회' 축제팀에서 댓글을 달아놓았었다. 추어탕 만든 사연을 자신들의 행사(슬로푸드 대회)에 응모해 보라는 거였다. 그래서 그 글에서 안내하는 대로 내 글을 긁어서 그 사이트 응모란에 붙여 넣었었다. 그후 나는 응모한 사실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던 것인데 이제 연락이 온 거였다.

'오예~ 내 글이 채택이 되었단 말이지. 그것도 금상씩이나. 흐흐흐.'
슬슬 기분이 좋아지려고 했다. 그래서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이어갔다.

"아, 예 기억납니다. 제가 금상을 받았다고요?"
"예, 선생님 그래서 저희가 금상에 따른 부상으로 '달팽이밥상' 6주 분을 댁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오잉~ 이거 뭐야? 상이 겨우 달팽이밥상? 밥상이라고? 그럼 식탁이란 말인가. 어린이용 식탁...'

손님과 술을 한 잔 하던 중이었고 무슨 '어린이 밥상'을 준다고 하는 것으로 알아들은 나는 대충 알겠다고 하고 사이트에 한번 들어가 보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기분이 한껏 좋아질려다가 말았다. 그럼 그렇지.

"여보, 당분간 반찬 걱정하지마!"

당첨금액으로 유기농매장에서 장을 보고있다
▲ 장보기 당첨금액으로 유기농매장에서 장을 보고있다
ⓒ 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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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과 헤어지고 인터넷으로 슬로푸드 대회를 검색해 보니 시상내역이 나왔다. 어, 그런데 정말 내가 당선된 것이 아닌가. 내 글이 남양주시에서 주최한 슬로푸드 사진사연 분야에서 당당히 금상으로 선정됐다. 대상은 해당자가 없었고, 금상 2명 중 1명이 나인 것이다. 뭔가 분위기가 제법 그럴듯한 부상을 지급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40여년 살아오면서 무슨 응모니 추첨이니, 한 번도 당첨되어 본 적이 없는 내가 금상에 당첨된 것이다. 상품내역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좀 더 클릭을 하니, 담당자가 말했던 '달팽이 밥상'이란 것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된 글을 볼 수 있었다. 이 달팽이 밥상은 내가 오해했던 무슨 어린이용 식탁 이름이 아니고 농산물이고 음식물이었다. 그러니까 달팽이 밥상은 유기농제품으로 구성된 식품류로, 국, 밑 반찬, 간식거리 등을 1회 4만 원어치를 매주 수요일 6회에 걸쳐 보내준다고 한다. 합쳐서 24만 원 어치다.

이 대목에서 다시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상품이 쓸모없는 어린이 식탁에서 알짜배기 음식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참을성이 부족한 나는 당장 아내를 불렀다.
"여보 여보,  나 상받는다. 이제 당신은 당분간 장보러 갈 필요없어. 내가 싹~ 다 알아서 해줄게~ "

큰소리 친 뒤 일주일이 지났다. 서울의 담당자로 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그 달팽이 밥상을 내가 사는 집으로 보내려고 하는데,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상품이 음식인 관계로 서울 경기지역에만 당일 배송이 된단다. 경남까지는 배달이 힘드니,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한다. 그래서 담당자와 의논끝에 경남 진주에 있는 유기농 농산물 매장인 '한살림'에서 그 금액만큼의 유기농농산물을 지급받기로 하였다. 우리집에겐 더 좋은 일이었다. 상추를 비롯하여 채솟값이 천정부지인 요즘, 유기농매장에서 착한 가격으로 채소와 과일들도 구입할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블로그가 돈 될 때도 있다

유기농매장에서 장을 본후 집에 가져와서 진열한 사진
▲ 장본내용 유기농매장에서 장을 본후 집에 가져와서 진열한 사진
ⓒ 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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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아내와 내가 시간이 맞는날 진주 한 살림으로 물품을 받으러 갔다. 당연히, 딱 24만 원어치에 맞추어 구입물품 목록을 준비해서 나섰다. 네비게이션에 찍히는 대로 매장을 찾아가니 한살림 매장 담당자가 연락 받았다며 반갑게 맞아준다. 그리고 몹시 부러워 한다.
어떤 내용으로 금상을 받았는지 물어 보더니 내 블로그 주소를 가르쳐 달란다. 들어가서 추어탕으로 슬로푸드 상받은 내용을 자세히 한 번 본단다. 내 블로그 주소를 적어주고 우리는 천천히 매장에서 필요물품들을 바구니에 하나하나 담았다.

채솟값이 비싸 열무김치 타령을 해왔던 마누라가 한살림에서 1봉에 1400원 하는 열무를 냉큼 3봉지나 집어 든다. 1봉 남은 단배추도. 돌아오는 길에 마누라 왈 "열무 남은 두 봉도 다 가져 오려다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3봉만 집었다"고 한다. 

맛간장/ 새우가루/ 생 들기름/ 조선간장/ 마른새우/ 멸치액젓/ 새우육젓/ 혼합곡물/ 흑미/ 사과 2 상자 / 옥수수가루/찹쌀가루/ 흰밀가루/포도 1상자 / 꼬마 소세지/ 햄 / 열무 / 단배추...

요새같이 농산물 대란 시절에 이렇게 살림에 보탬이 되었으니 기특하지 않은가. 블로그가 돈 될 때도 있다. 우리 가족은 그날 저녁에 단배추 시래기된장국에, 갖 담은 무농약 열무김치를 먹으며 '양배추 김치' 먹는다는 대통령 부럽지 않은 밥상에 행복해 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블로그, #슬로푸드, #유기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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