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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장터에서 만난 추억의 '왕잉어 뽑기'. 이것을 두고 한탕주의나 사행심 조장이라 말하지 마시라. 은근히 재미있는 추억의 게임을 두고, 돈 아깝게 그런 것을 왜 하느냐고도 묻지 마시라. 어릴 적 추억이고 그리운 맛이다. 혹시 왕잉어라도 뽑힌다면, 로또도 안 부럽다. 그야말로 기분역전이다.

 추억의 '왕잉어뽑기'
추억의 '왕잉어뽑기' ⓒ 김학용

어릴 적 '야바위' 시장에서 최고의 사랑을 받았던 '왕잉어 뽑기'를 기억하는가? 중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길거리에서 왕잉어와 거북선을 선망하며 제비를 뽑던 기억이 있으리라.

지난 10일 전라남도 광양의 한 시골축제 현장. 시골축제의 야시장에서 사람들 한 무리가 한 천막 앞에서 모여 있다. 왠지 호기심이 발동해 그 옆으로 슬쩍 끼어든다. 간판이름은 '추억의 뽑기'…. 그렇다. 내 발길을 붙드는 그것은 이름하여 추억의 '왕잉어뽑기'다. 붕어, 칼, 용, 잉어, 호랑이, 거북선 등을 머리 위에 걸어놓고 나를 유혹하기 시작한다.

 손님을 유혹하는 추억의 '왕잉어뽑기'
손님을 유혹하는 추억의 '왕잉어뽑기' ⓒ 김학용

"자자, 애들도 와라, 한 판에 천원이여!"

일단 번호가 1에서 80까지 적힌 유리판 위에, 상품의 이름이 적힌 유리토막을 번호 칸 안에 마음대로 놓는다. 그리고 제비뽑기를 하여 나온 번호 위에 상품 이름이 겹쳐 있으면, 상품에 해당하는 노오란 설탕 과자(뽑기)를 선물로 주는 방식이다(과자라고 해봤자 설탕 녹여서 틀에 부은 원초적인 식품이다).

가만히 옆에서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난다. 여러 번 해도 '꽝'인지 찡그리며 주먹을 쥐는 아이, 번호가 맞아 얼굴에 생기가 도는 아이... 모든 뽑기 놀이가 다 그렇듯, 만감이 교차한다.

 번번히 '꽝'이다.
번번히 '꽝'이다. ⓒ 김학용

나도 옛날 기분으로 돌아가 상품이 적힌 막대를 샤샤삭 배열하고 사알짝 눈을 감고 천지신명께 절 올린 후 번호통 위에 손을 올려본다. 두두두~! 살며시 뽑은 번호표는 영락없이 '꽝'이다. 여기서 물러설 내가 아니지.

대왕잉어는 못 뽑을지라도 최소한 거북선 하나는 뽑아야 체면이 서지 않겠는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심호흡을 크게 한 후, 뽑아봐도 역시 '꽝'이다. 추욱 처진 내 어깨를 보던 주인아주머니, 내가 불쌍해 보였나?

"돈 안 받을 테니 한번 더 해봐요!"

아주머니의 배려(?)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주문을 외며 번호표를 뽑는다. 살짝 눈을 떠보니 46번이다. 유리판을 바라보는 순간 '46번=청용도(용이 그려진 칼)'. 야호,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드디어 당첨이다! '46번'은 과연?
드디어 당첨이다! '46번'은 과연? ⓒ 김학용

 이젠 당첨되어도 기분이 별로이다. '대박'이 아니면 뽑히지를 말라.
이젠 당첨되어도 기분이 별로이다. '대박'이 아니면 뽑히지를 말라. ⓒ 김학용

그런데 이 게임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80개의 숫자에 번호막대의 번호가 24개(4개씩 6마디) 있으니, 뭐든 걸릴 확률은 30~40%정도 된다는 계산이다. 어찌됐든 대박(왕잉어)이라고 적힌 숫자가 당첨될 확률은 80분의 1인 셈이다. 그런데 약 30분 동안 20여 명 중 왕잉어를 뽑은 사람이 세 사람이나 나온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꽝'만 전문으로 뽑는 이들을 위해 "한번 더!"하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뽑기 아주머니.
'꽝'만 전문으로 뽑는 이들을 위해 "한번 더!"하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뽑기 아주머니. ⓒ 김학용

"번호가 적혀진 번호표의 위치와 특징을 미리 알아두고, 해당 번호에 왕잉어가 쓰인 번호막대를 올려놓고 뽑는 일이 많아. 예전에는 번호세트를 몇 개씩 준비했는데, 요즘은 알면서도 그냥 넘어가는 거지. 그런 거 다 막으면 무슨 재미로 하겠어.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거 아니겠어? 호호호..."

마음씨 좋은 주인아주머니의 말이다. 주인아주머니는 사람들의 편법을 알면서도 개의치 않으며 크게 화내는 일도 없다. 오히려 '꽝'이 걸리는 사람에게는 서비스로 한번 더해보라고 권한다.

"다른 사람을 속이려는 기만은 오히려 스스로 속는 일이 된다"는 뽑기 아주머니의 긍정적인 생각, 이래서 추억이 소중하고 또 세상은 아직 살맛나는 곳이리라.

 추억의 '왕잉어뽑기'
추억의 '왕잉어뽑기' ⓒ 김학용


#왕잉어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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