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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 밑에 널브러진 은행열매들, 행인들의 옷차림, 서늘한 공기 속 커피 향이 계절감을 자극한다. 유독 길었던 무더위가 무색해질 정도로 제법 을씨년스럽다. 대중음악계에서도 가을 분위기가 일기 시작했다. 올 여름 대세는 단연 일렉트로닉 댄스였다. 샤이니, 나르샤, 세븐은 일렉트로닉 댄스로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발라드의 대표주자 조성모 역시 <성모 Meet Brave>란 일렉트로닉 앨범을 발매하며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최근엔 2NE1(투애니원)이 첫 정규앨범 <To Anyone>으로 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댄스와 발라드로 분할되었던 음악시장을 댄스가 독과점한 지 대략 3년쯤 되어간다. 이제 OST를 제외하면 발라드 음반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올해 여름, 테이의 6집 <太利>가 발표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활동중단 선언으로 큰 활약을 하진 못했다. 하지만 10월을 기점으로 주목할 만한 발라드 음반이 계속 발매되고 있다. 바야흐로 발라드의 계절이 온 것이다.

 

솔리스타들의 미니앨범

 

음반업계의 긴 불황으로 정규 앨범보단 디지털싱글과 미니앨범으로 활동하는 풍토가 자리 잡았다. 3년 만에 컴백한 임정희 역시 정규 앨범보다는 미니앨범을 선택하였다. 인트로를 포함해 총 6곡으로 이루어진 <진짜일 리 없어>는 방시혁이 제작을 맡았다. 방시혁은 옴므 바이 히트맨 뱅(HOMME by 'hitman' bang)의 "밥만 잘 먹더라"를 통해 'Hitman Bang'이란 브랜드명을 입증했다. '한국의 알리샤 키스'란 별칭을 가져다주었던 기존 앨범에 비해 흑인 음악 냄새는 다소 얕아졌다. 정규앨범을 고수해오던 임정희이기에 정규앨범을 기대했던 팬들에게는 미니앨범은 다소 실망스러울지 모르겠다. 곡수가 한정돼 있다보니 3년 동안 노력했던 성과를 다 보여주기는 조금 부족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

 

김범수의 7집 <Solista Part.1>는 박진영과 함께했다. 타이틀 곡 "지나간다"는 박진영이 작사·작곡하였으며 전 JYP 수석 프로듀서 권태은이 편곡을 맡았다. JYP발라드와 보컬리스트 김범수의 만남은 훌륭한 결과물을 창조했다. 곡의 흐름, 창법, 분위기 모두 기존의 박진영 스타일을 옮겨왔지만, 그것을 실현한 김범수는 JYP사단의 어느 보컬보다 노련함과 묵직함을 보여 주었다. 이밖에도 이승철이 피처링한 "언젠가는", 정엽과 에코브릿지가 참여한 "괜찮다"가 눈에 띤다. "지나간다"를 제외하면 앨범분위기는 기존 앨범과 비슷하다. 이 때문에 김범수의 발라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만족스러울 앨범이다.

 

서영은의 미니앨범 <With Soulish Mates>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앨범 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앞서 발표한 "이 거지같은 말", "혹시 돌아올까봐"를 포함해 총 4곡의 듀엣곡과 2곡의 솔로곡이 수록되어 있다. 데뷔 전 카페에서 재즈보컬로 활동했던 그녀이기에 깊이 있는 발라드를 구사한다. 편안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 함께 노래하는 사람의 목소리와 잘 어우러진다. 서영은은 테크닉을 선보이며 자기만족에 빠지기보단 완급조절과 절제로 포근한 보이스로 유명하다. 그녀는 이번 앨범에서 3명의 힙합퍼(노블레스, H-유진, 길미)와 함께 했는데, 모두 포인트를 주는 동시 멜로디에 스며드는 랩을 담았다.

 

 

이적, 사랑을 노래하다

 

이적은 패닉 시절부터 음악을 매개체로 사회에 메시지를 전달했다. 때론 "달팽이"처럼 희망적이거나 혹은 "왼손잡이"처럼 사회적 편견을 꼬집었다. 그의 학력과 말투 때문에 지적이고 이성적인 사람, 또 그런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는 편견이 있다. 그러나 이번 앨범 <사랑>은 사랑에 관련된 음악으로만 채워졌다. 선공개된 "빨래"는 "레인", "다행이다", "미워요"를 잇는 이적스러운 발라드다. "빨래"가 전하는 감성은 단독으로 들을 때보다 음반의 일부분으로 들을 때 더 애절하다. <사랑>은 록, 발라드, 언플러그드 등 여러 장르를 포함하고 있지만 일관성 있는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모든 곡의 작사·작곡을 이적이 홀로 소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을 테마로 한 앨범이기에 이전 앨범에 비하면 대중적이다. 그동안 그가 추구했던 음악은 대중의 코드와는 조금 어긋났었다. <2적>에 수록 된 "어느날", "서쪽숲"이나 <나무로 만든 노래>에 수록된 "사랑은 어디로", "자전거 바퀴만큼 큰 귀를 지닌"은 이적 음악의 정수를 보여주는 곡들이다. 하지만 주목받았던 곡은 "하늘 달리다", "다행이다"처럼 대중성을 가진 곡들이었다. 이번 앨범으로 대중과 이적이 가지고 있던 괴리감을 좁힐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은 보컬 뿐 아니라 연주에도 공들인 음반이다. 요즘 트랜드인 디지털 사운드를 살아 있는 연주가 대신하고 있다. 세션 라인업을 살펴보면 서울전자음악단의 신윤철, 메이트의 임헌일 등의 이름이 올라 있다. 루시드폴과 정인은 백그라운 보컬로 참여했다. 살아 있는 음악을 선사하려는 이적의 집요함이 전해지는 앨범이다.

 

발라드, 부흥할 수 있을까?

 

군 전역 후 성시경이 선택한 첫 TV방송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이었다. 오랜만에 모습을 보인 그는 여전히 늡늡했지만 조금은 긴장된 모습이었다. 유희열과 성시경의 대화에서 가요계에서 발라드가 처한 상황을 알 수 있었다. 특히 한국 가요계에서 성시경의 역할을 묻는 유희열의 질문에 대한 성시경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점점 더 잘나가는 노래를 할 수는 없지만, 점점 더 깊이 있게 연기하고 톤이 좋은 가수가 되겠다." 발라드 가수들이 대부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화려한 인기는 얻을 수 없지만 인정받는 보컬리스트가 되고 싶을 것이다. 올 가을, 발라드쟁이들의 귀환으로 멜랑꼴리의 행복을 즐길 수 있을 듯싶다.


태그:#이적 , #서영은, #임정희, #김범수, #발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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